-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07


안톤 쉬거 씨만 아는 상태로 영화를 보았다. 안톤 쉬거 씨를 아는 이유...단발여자가 받을 수 있는 최악의 사진 2위 안에 드니까...참고로 다른 한 명은 친절한 금자씨 나오시는 신부님이시다. 머리 잘랐는데 이 두 분 사진이 날아오면 죽이고 싶어짐... 


전형적인 영화였다. 전반적으로 매끄럽게 스토리가 진행되었고, 복잡하게 꼬인 플롯 대신 한 가지 플롯으로 영화를 끌고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안톤 쉬거라는 거대한 빌런이 존재하고, 거기서부터 도망가는 주인공...이었다. 초반 60분 쯤 그랬던 것 같다. 르웰린이 허무하게 죽어버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작품을 이끌어나갈 두 명의 주인공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던 르웰린은 허무하게도 안톤 쉬거와의 싸움에서가 아니라, 맥시코 갱들과의 총격전을 통해 사망해 버린다. 영화를 보다가 르웰린이 죽어버리길래 몇 분 남았나 확인해 보았더니 이제 막 중반부를 지나고 있어서 정말로 당황했다. 투톱 주인공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 뒤부터는 안톤 쉬거가 그야말로 폭풍처럼 사람들을 살해하고 다녔다. 그를 붙잡으려던 이들도, 그에게 쫓기던 이들도 죽음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안톤 쉬거가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라 재난처럼 묘사되었다고들 하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안톤 쉬거는 재난이 아니다. 피가 돌고 살이 붙은 평범한 인간이다. 극의 후반부, 그는 모든 일을 마친 폭풍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대신 차에 치여 버린다. 그는 이해하기 힘든 규범을 가지고 홀로 움직이는 존재지만, 세상의 법칙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 것이다. 결국 그는 재난을 표방한, 시대의 '젊은이'를 상징하는 존재기에 그렇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결국 늙은이들이 이 안톤 쉬거라는 변칙적인 새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노인이 정말로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오게 될까? 아마...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감독이 자신을 노인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더 이런 연출을 넣은 것 같다는...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노인은 스스로 설 자리를 알지 못한다. 시대는 자신을 밀어내고, 구시대적 사상과 인물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신시대 또한 마찬가지가 아닌가? 어차피 우리 모두는 밀려나게 되어 있고 어떻게 멋지게 밀려나는가가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사실 영화 자체는 호도 불호도 아니라 쓸 말이 많이 없긴 하다. 전반적으로 허무한 영화였단 생각이고...그래도 이제 노인을위한나라를없다 도장깨기를 했다는 데 의의를 가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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