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그렇게 부를 거야?”


“뭐가?”


 그의 말에 시큰둥하게 대답하였다. 이것은 그와 동거를 시작하고 얼마지난 뒤의 기억이다. 우리는 같은 시기에 군에 입대한 동기였다. 24살에서 27살, 이등병에서 병장을 달게 될 적까지 한 소대에서 부대끼며 지냈던 우리는 군을 나오자 같은 지부에 배치되었다. 그도 나도 본가는 꽤나 먼 지방이었기 때문에, 그와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함께 지낼 곳을 구하게 되었다. 새벽근무와 야근, 밤샘작업 등등에 지쳐있을 때에 그저 몸을 편하게 축일 수 있는 곳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작은 집을 구해 세 값을 반씩 쪼개어 내기로 했다.


“뭐냐니, 진심으로 묻는 거냐?”


“어. 모르겠는데.”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체 하였다. 그것은 나의 방어선이었다. 물뿌리개에 물이 차오르기 전에 그것을 땅에 흩뿌려 버리기 위한 나의 몸부림 중 하나였으니까. 그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과연 이번에 자라난 싹은 꽃으로 변하진 않을까, 그것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었다.


“너…, 여태 나 단 한 번도 이름으로 부른 적 없잖아.”


 아. 그래 그 이야기일 줄 알았어. 나는 그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여태까지 그를 이름만으로 불러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거의 습관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전에는 분명 의식하고 쓰지 않으려 하였지만 이제는 이것이 무의식에서 나오는 것인지 의식하여 나오는 것인지도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다. 자라나는 싹을 바라본다. 아아, 너에게서 피어날 꽃은 얼마나 아름다운 꽃일까. 그리고 그것을 자르는 것은 과연 얼마나 아픈 일일까. 자라나는 새싹과 피어나는 꽃, 그리고 그걸 잘라내는 것 모두가 나 자신인데.


“그게 뭐 어쨌다고”


 나는 덤덤하게 말을 뱉어냈다. 알고 있다. 네가 꽤나 나에게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나라도 무감각하게 너를 대해야하는 것이다. 나는 너와 이어지고 싶지 않기-아냐 이어지고 싶어 함께하고 싶어. 하지만 너를 받아들인다면 내가 여지 것 꺾어 버린 이 꽃들은 대체 무엇이었던 건지 나는 답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가까워질 이 거리를 다시 멀리 떼어놓아야만 한다. 그렇기에 나에게 이름이라는 것은, 참으로 편리하고도 날카로운 창이자 방패였다. 그것으로 너를-그리고 나를-찌른다. 더 이상 나에게 다가 올 수 없도록 찌르고 다시금 찌른다. 그리고 그것으로 나를 지킨-마음을 죽인-다.


“같이 산다고 이름을 불러야 하는 건 아니잖아?”


 가시 돋친 말을 내뱉는다. 그것은 나의 입에서 너에게로 전해지기 때문에 너는 그것에 아파한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입에서도 질척한 피가 배어나온다. 아파? 아프겠지. 맞아 아파.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피워내 버릴 거잖아. 그에 대한 꽃을. 나의 꽃을 꺾는 것은 아팠다. 슬펐다. 하지만 그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꽃까지 뜯어내야 할 때의 아픔은 더 컸다. 하지만 나는 그래야만 한다. 내가 피워내는 꽃은 여성과 남성 모두를 위한 것이었고, 그 꽃은 남성에게 피어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이 꽃들은 모두 피어나서는 안 되었을 꽃이란 뜻인가. 그렇다면 그것의 씨앗은 대체 무엇이지? 나에게 이 씨앗을 심어버린 사람은 대체 누구야? ‘나’라는 토양에서 왜 이런 ‘씨앗’이 뿌려져서, 차라리 뿌리내리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처음부터 나라는 토양이 메마르고 메말라서,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하는 척박한 땅이었더라면 이런 고생도 하지 않았을 텐데.


“그럼 나만 부른다?”


“뭐?”


그의 말에 그 전까지 생각하던 흐름들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뭐? 나만 부른다고? 그럼 나에게 물었던 이유는 네가 부르고 싶어서 그랬다는 건가?


“명월아~”


“이런 미친놈이.”


 정말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 녀석이 비음을 섞은 목소리로 나를 흥겹게 부르기 시작해서, 그에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말을 내뱉어 버렸다. 아니 분명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은 분명 이게 아니었는데, 그러니까 내가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이…


“한~명월~”


“닥쳐….”


 내가 본래 이야기하려 했던 말을 생각할 틈도 없이, 그는 뭔가에 신이라도 난 듯 웃으며 한껏 높인 목소리로 나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우리 가족도 저런 식으로, 아니 잠깐 가족도 저런 식으로 부를 리가 없잖아. 어느 가족이 콧소리를 섞어서 내 본명을 부르겠어. 여동생이 그러고 있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젠장. 생각해보니 이 녀석 그냥 나를 놀리고 있을 뿐 아닌가. 이럴 때에는 확실하게 화를 내는 편이.


“한명월.”


…아. 망할…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


“이름으로 부르니까 좋지 않냐.”


 그는 이를 다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그러게, 그러게…. 그를 바라보며 옅게 떨려오는 왼손에 힘을 줘 주먹을 꽉 쥐었다. 아파. 너무 좋아서 아프다고, 멍청한 놈아. 속으로 쓰게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누구는 이렇게 골머릴 썩고 있는데 이 녀석은 천하태평이다. 부럽다면 부럽고, 한심하다면 한심하였다.


“좋아 그럼 볼일 끝났으니 씻어야지, 3일 내내 잠복근무 했더니 찝찝해 죽을 거 같아. 나 먼저 화장실 쓴다!”


 그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끝내버린 그 녀석은 뻐근한 듯 어깨를 휘두르다 잠옷을 대충 챙겨 화장실 안으로 쑥 사라져버렸다. 저 개새끼가 진짜…. 깊게 한숨을 내쉬다 주머니 속의 수첩을 꺼내었다. 얼마 전에 여동생의 생일이었다. 하지만 본가에 내려가지는 않았다. 아마 내려갔어도 뭘 이런 걸로 내려 오냐며 다시 올라가라고 하였을 테고 여동생도 그다지 탐탁지 않아 했을 것이다. 그녀도 내가 하는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알게 모르게 피하고 있다. 그 덕분인가, 하여튼 여동생과는 서먹하다.


 차라리 예전처럼 보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는 사이가 더 편할 텐데. 그래 내가 그 첫사랑을 시작하기 전만 하더라도….


“…반찬거리나 봐야지.”


 부스럭 거리며 냉장고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둘이서 서너 끼 정도 먹을 양은 들어가는 작은 사이즈의 냉장고였다. 오늘은 밖에서 먹고 왔으니 더 안 먹을 테고. 며칠간 집을 비운 덕분에 황량해져버린 냉장고 속에는, 한참 전에 저 녀석의 어머니가 보낸 찬거리가 남아있었다. 어머님, 꽤나 좋으신 분이었지 라고 중얼거리다 냉장고 문을 닫았다. 어머니를 뵌지 얼마나 됐더라. 햇수를 세어보던 나는 이전에 본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라버려 그만 두기로 하였다.


 아, 슬슬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나는 정말로 경찰이 되고 싶었던 건가? 아니, 아니야. 그래 맞아 나는 분명 그 이전에 되고 싶었던 것이 있었어. 나는 정말로 아무도 사랑하면 안 되는 건가? 하지만 이미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는 왜 가족들을 소중히 하는가. 나도 분명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있는데, 그런데 가족은 그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또 가족은 그러한 행동을 하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하다 못해 혐오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나의 모습과 같은 것인데 왜, 왜 그걸 받아들여 주질 못하는 거죠? 아버지도 어머니도 여동생도 대체 왜. 나는 경찰 따위 되고 싶지 않았어. 아버지의 욕심 때문이었지. 대체 왜? 사랑하는 사람도 포기하고 원하던 꿈도 버렸어. 그런데 나는 왜 가족과의 관계에서 홀로 붕 떠버린 것일까. 왜, 대체 왜.


“…명월씨~?”


아차 싶어 고개를 들었다. 평소와 같은 그 녀석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릿속에 복잡하게 얽혀가던 사념들이 서서히 사라져간다. 너는 왜 나에게 이렇게 까지나 친절한 거야?


“우응~ 우리 명월씨 깼어용~?♥”


아까전의 생각은 취소다. 이 새끼 아까 전부터 정신이 나갔어. 씨발 진짜 저런 말투는 대체 어디서 배워서 왜 하필 나한테 쓰는 거야. 거기다 그 기분 나쁜 손 모음 제스처는 뭔데, 그대로 이불에 쳐 박혀 잠이나 영원한 잠에 빠져버리지.


“무슨 생각을 그렇게 마니해용 우리 명월이는~?”


“아오 진짜 그거 그만 안 둬? 대체 어디서 배워서 나한테 쓰고 지랄이야.”


“뭐가앙~? 아. 이 말투? 누나가 아버지한테 쓰던 걸 배워왔지! 어때? 좀 괜찮아 졌어?”


“그 말투 한번만 더 하면 네 아가리를 찢어 버릴 거야….”


 내가 말을 마치자 그는 또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슬며시 다가왔다. 씻은 지 얼마 되지 않는 그에게서는 따듯한 온기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아, 나도 이제 씻어야 할 텐데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하였고 내 옆의 그는 그런 나에게 안정을-안정이 맞을까. 사실은 그 반대는 아닐지 잠시 생각해본다. 그와 함께 지내고 있기에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정작 그를 볼 때에만… 아, 젠장 이것도 어지럽다-주고, 있었다. 그래 아마도.


“그래서 무슨 일인데?”


그가 가볍게 물에 젖은 머리를 털며 나를 바라보았다. 차가운 물방울이 튀었지만 그것에는 별로 토를 달지 않았다. 그에게 어디까지 이야기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 어디서부터 이야기 하는 것이 좋을까. 그의 물음에 한참을 고민하다 천천히 입을 뗐다.


“…그냥, 다 잘 되어 가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피식하고 웃음이 나버렸다. 있지도 않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듯 손으로 이마부터 머리를 뒤로 넘겨보였다. 멍청이. 그에게 말해서 무얼 하려고? 한심하다. 아무리 바보 같은 녀석이라지만 그런 걸 아무렇게나 받아들일 녀석은 아니잖아. 그래, 평소와 같이 행동하는 거야. 커다란 가위를 꺼내서 잘라내 버리면 돼.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 죽을지 몰라. 사랑하는-정말로?-가족이.


“음, 뭐 잘못하고 있는 거라도 상관없지 않아?”


…? 잘못하고 있는 거라도, 상관없어?


“너는 늘 고민이 많아서 문제더라. 뭐 조금 잘못하고 있으면 어때? 나중에 바로 잡으면 되지.”


“그게 불가능한 걸지도 모르잖아?”


“그럼 그게 이상한거지. 보통은 거의 가능하잖아. 애초에 바로 잡을 수 없는 건 음. 살인이라도 있으려나? 그런데 그건 살인 자체가 잘못된 전제잖아? 그럼 분명 그 속에는 이상한 모순이 있는 거라고. 그 모순을 바로 잡으면 되는 거잖아.”


“그게 말이 쉽지 잘 될 거 같아?”


“어려워도 이상한건 고쳐야 하는 거 아닌가. 어 뭐라더라. 인류는 그렇게 발전했다고 들었는데.”


 그가 어렵다는 듯이 끙끙거리며 뒷머리를 긁적이기 시작했다. 모순. 모순… 그렇다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은 모순투성이라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사랑을 표현해도 되고, 누군가에게는 하면 안 되는 이것은 모순 된 것일까. 내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으면 누군가 죽을지도 모르는 이 상황도 모순 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커다란 가위의 날은 눈이 매서워 질 정도로 반짝이고 있었다. 앞으로 꼬꾸라지기 시작한 꽃을 잘라내기 위해 빛을 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것을. 여태 죽여와 버린 꽃을. 금방이라도 피어날 것만 같았던 이 꽃을…


“…나 잠깐 나갔다 온다.”


“야 지금 새벽 3시거든? 어디 가는데?”


“한강. 근처 몇 바퀴 뛰다가 올 거고, 늦을 거 같으니까 먼저 자.”


 몸을 벌떡 일으켰던 나는 외투를 걸치고 운동화의 끈을 조이기 시작했다. 그래, 잠시 아무런 생각 없이 뛰고 싶었다. 다른 그 어떠한 것도 생각하지 않고, 찬 새벽공기를 맞으며 뛰고 싶었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다.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은 채 한참을 서 있다가 문을 열고 밖으로 한 발자국 내밀었다.


“…늦을 거 같으니까 먼저 자라 서윤.”


 그 말을 내뱉고 바로 전속력으로 뛰었다. 아. 아, 말해버렸다. 말해버렸어 말해버렸다고 말했다고 어쩌지? 아니 괜찮은가? 괜찮은 거지? 그렇지? 이상하다. 평소의 반도 안 뛰었는데 벌써부터 숨이 차오른다. 워밍업도 제대로 안 되었을 텐데, 귀까지 화끈 거리는 느낌이야. 이상해. 이상하지? 고작 이름인데 왜 나, 그렇게나 두근거렸던 것이었을까. 고작 이름인데, 분명 이제 겨우 처음 네게 닿았을 뿐일 텐데.


“하…, 푸하, 하하.”


 숨이 차 죽을 것 같은데, 발걸음을 멈추지도 못하겠는데 웃음이 났다. 난생 처음 한 표현이 고작 이름을 부르는 거라니. 하지만 나는 서툴러서 그런 거 잘 모르겠는 걸. 아 어떡하지, 진짜로 웃음이 안 멈춰. 정말로 괜찮을까? 나는 너에게 닿아도 되는 것일까? 좀 더 사랑하고 싶어, 좀 더 사랑을 나누고 싶어. 아니 서로 사랑을 해보고 싶어.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게, 그것을 이상하게 보는 것이 모순이라면 괜찮은 거지. 그렇지? 나도 누군가를 사랑 하는 마음을 피워내도 괜찮았던 거지? 내가 하는 사랑은 모순 된 것이 아니었던 거야. 단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이들과 다를 뿐이었지, 틀린 게 아니었던 거야. 그렇지? 응, 그럴 거야. 아니 그래야 할 텐데.



 차가운 바람이 넘실, 하고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을 것이다. 괜찮을 거야 분명. 그라면 괜찮을 거야.

잘라버리기도 전에 굳게 다물고 있던 꽃을 피워 버린 건 내가 아니라 너였으니까.



잡덕 그냥 ㅁ뭐 잡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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