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삿포로에 간다는 말에 좋아한다는 의미를 담는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평생 이해 못하겠지 싶었다. 나에게 좋아함이라는 단어는 그저 단어일 뿐이고, 그걸 입 밖으로 내뱉는다고 무슨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단어이고, 말인 것으로 끝이지. 단어에 주술을 걸어 상대에게 저주를 거는, 그런 건 말 그대로 동화 속에나 나올 일이다.

이렇게 생각했던 게 엊그제도 아니고 어제다.

 

좋아해, 영락아.

네?

사랑까지도 하나 봐, 나.

 

누구한테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사랑은 더더욱. 종종 약에 취한 구매자들이 나를 다른 이로 착각해서 하는 사랑이나, 성욕을 사랑으로 둔갑시켜서 하는 사랑은 익숙했다. (내가 사랑을 더욱 기피했던 이유가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비정상적인 사랑을 사랑인 줄로만 알았으니 어쩌면 사랑을 기피함이 나에게는 정상적인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건 사랑이 아니잖아. 진짜 온전히 사랑이라는 감정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상대가 정확히 나라는 게 확실하고, 그 감정이 정확히 사랑이 맞는, 그런 사랑이 처음이었다. 따라서 나는 그걸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몰랐고, 그래서 그냥 네, 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대답한 게 끝이었다. 멍청하다, 진짜.

 

형사님이 나를 좋아한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웬만해서 눈치가 약간이라도 있으면 대충 알만했다. 형사님 본인은 나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티가 나도 너무 나잖아. 형사님이 나를 보며 느끼는 감정이 그저 그런 우애 같은 건 아니라는 거. 그 이상의 뭘 갖고는 있다는 거. 그런데 그냥 모르는 척을 했다. 뭐랄까, 모르는 척이라기보다는 인정을 안 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네. 내가 형사님의 감정을 인정하게 되면 모든 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상을 할 수가 없었다.

인간은 알고 있는 결과 앞에서도 불안함을 느낀다. 그러니까 예상을 할 수 없는 미래에서 불안함을 더 느끼면 느꼈지 덜 느끼지는 않을 거라는 거다. 라이카는 괜한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다. 쟤는 미래라는 존재가 연속된다는 걸 모르니까. 개는 그만큼까지 고등하지 못하다. 그런데 나름대로 고등하다는 이 인간은 하필이면 완벽하게 고등하지 않아서, 미래가 연속된다는 것만을 알고 정작 그 미래가 뭔지 알지는 못한다. 나라고 뭐가 다르겠어. 나도 불완전하게 고등한 인간이라 불안함을 무서워하는 거다. 그래서 나는 형사님의 그 감정을 삼키지 않고 입안에만 물고 있던 거고.

그런데 삼킬 생각 없이 물고만 있던 그 감정은 형사님의 좋아해, 이 한마디에 목구멍을 넘었다.

 

형사님 입에서 나오는 좋아해 자체가 예상을 할 수 없던 거였다. 형사님도 그럴 생각이 없었을 거다. 한국의 초여름 저녁은 참 이상하다. 도대체 무슨 성분을 갖고 있는지 그때의 공기를 들이쉬면 금방이라도 사랑에 빠질 것처럼 만든다. 이 성분 따온 약이 있으면 그거 얻으려고 발광할 인간들이 수백수천일 거다.

정말 일시적이고 강력한 힘을 가졌다, 초여름 저녁 공기는. 형사님의 고백은 그 공기에 의존한 거였다. 한국인들이 명언처럼 되뇌는 취중진담. 일종의 그런 거였다.

 

형사님의 타자 소리만 들리는 취조실에서 나와 그냥 있는 정수기 옆에 기대었다. 형사님, 저한테 왜 그런 말을 하셨어요? 이것도 취조의 일종이에요? 며칠 전까지는 눈만 스쳐도 얼굴 찌푸리시더니, 그게 형사님의 사랑인가 봐요. 이런 생각을 계속 하다 보니 결국에 다다른 건, 형사님, 저도 형사님을 사랑한다면 어쩌실래요? 이거였다.

 

사람이 서로 사랑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처음으로 든 의문이었다. 내 인생에 사랑이라는 건 그냥 단어 중 하나였을 뿐이지 그걸 딱히 특별하게 여긴 적이 없다. 그냥 그걸 특별하다고 여길 일이 없었다. 사랑.... 글쎄.

어렸을 때부터 나 돌봐 준 우리 여사님. 그게 사랑이었을까? 내가 우리 여사님께 느꼈던 것도, 여사님이 나한테 느꼈던 것도, 그 어느 것도 사랑은 아니었을 거다. 말하자면 여사님은 나에게서 다른 애를 봤고, 그 다른 애를 사랑한 거다. 나는 그런 여사님이 필요했던 거고. 서로를 필요로 한 사랑을 사랑이라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악어와 악어새가 사랑하는 사이라고 서술하지 않는다. 그래, 공생관계. 그런 거지.

여태 살면서 누군가 나를 성애적 감정으로 사랑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나는 쌍방향 사랑은 한 적이 없다. 애초에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데 쌍방향은 무슨. 그리고 나는 설령 사랑이 뭔지 알았다고 해도 사랑할 틈이 없었다. 요새 한국인들 결혼도 포기하고, 연애도 포기하고 그러는 거 여유 없어서 그러는 거잖아. 나는 태어날 때부터, 아니. 컨테이너에 실려서 이 한국에 온 뒤부터 그렇게 살았다고.

다시 돌아와서. 서로 사랑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 서로가 서영락과 문정현이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형사님은 이 선생을 어떻게든 잡고, 나는 한국에서 사라지고.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저 멀리 외국 어디를 나가서 살 거다. 작업을 하고 뭘 할 것도 없다. 이미 내가 이름 모를 누군가가 다 준비해 놓았을 거니까. 형사님은... 형사님한테 슬쩍 말해 보면 나를 따라 오실까? 따라 오신다면 그게 사랑일까? 그런 게 사랑이라면 난 형사님을 사랑하는 게 맞다. 와, 나는 문정현 형사님을 사랑하는구나.

나는 늦은 첫사랑을 시작했다.

 

형사님. 왜? 연애해 보셨어요? 내 물음에 마우스 휠 소리가 멈췄다. 세상을 삼킬 것 같은 정적. 나도 형사님을 봤고 형사님도 나를 봤다. 누구도 눈을 안 피할 것 같았는데 형사님이 먼저 눈을 피했다. 응, 있어. 그렇구나. 어땠어요? 뭐가? 저는 모르겠거든요. 그 감정을. 서로가 사랑하는 거. 정갈하게 늘어놓은 설명에 형사님은 그냥 어색하게 웃는 걸로 답을 했다. 락아, 너는 정말 또라이야. 왠지 그 웃음이 이런 의미인 것 같았다.

 

다 잠든 새벽, 형사님은 책상에 엎드려 얕은 잠을 자고 있었다. 그 옆에 박카스 하나 놓으면서 생각했다. 감정이라는 거에서는 나쁜 놈 되는 거 없는 거죠, 형사님. 사랑에 빠지게 만든 사람이나, 사랑에 빠진 사람이나 나쁜 놈은 없는 거잖아요. 나중에 사랑에서 빠져나오게 만든 사람이나, 사랑에서 빠져나온 사람이나 거기에서도 나쁜 놈은 없는 거죠, 형사님? 그랬으면 좋겠어요, 저는. 제가 형사님한테 나쁜 새끼 되는 건 괜찮을 거 같은데 형사님이 저한테 나쁜 사람이 되면... 그건 어떻게 될지 예상을 잘 못 하겠네요. 감정에서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는 거라고 해 주세요. 형사님은 그런 거 잘 아시니까. 형사님이시잖아요.

장르 부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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