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머무르는 공간은 언제나 청결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에 따르기 위해, 세트는 생각보다 살림살이가 깔끔한 편이었다. 그의 집에 놀러온 사람들은 모두 머리카락 한가닥 없는 바닥, 오와 열을 맞춘 냉장고 속, 칼각을 유지한 이불 등을 보며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렇게 안 봤는데.. 너 생각보다 생활력이 좋구나? 하면 혼자 산지 3년이나 지났는데 이 정도는 당연하다는 대답을 했다.

"벌써 3년이나 됐구나.. 나 너네 그룹 진짜 좋아했었는데.."

대부분의 반응은 이런 식이었다.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을 되새기는 사람들에게 세트는 언제나 자신도 같은 마음이라며 담백하게 웃어보였다. 이렇게 웃을 수 있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세트는 바쁜 일이 없다면 일주일에 한 번, 크리스마스와 같은 특별한 날이 있는 주에는 매일 같이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어차피 혼자 사는 집이니 편하게 오라는 세트의 말에 사람들은 기꺼이 그의 초대에 응했다. 꽤나 요리 실력이 좋은 세트가 제공해주는 안주에, 따뜻한 바닥, 막차가 끊긴 사람들을 위해 비워둔 손님 방까지. 세트의 집은 훌륭한 모임장소였다.

사람들은 세트가 기운을 차렸다며 기뻐했다. 축하할 일도 없는데 자꾸만 술잔을 기울이는 이유였다. 위하여! 하며 외치는 문장의 목적어는 없었다. 세트도, 사람들도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그들이 생각하는 대상은 다를 것이 분명했음으로.

술에 취해 분별력이 없어진 사람은 실수를 하기 마련이었다. 숙박비를 내놓으라는 농담을 할 만큼 세트의 집에 자주 오는 사람조차 길을 잃게 만들 정도로 이번 술은 독했다. 일렁이는 바닥을 따라 걸어나가던 그는 방향감각을 잃고 비틀거렸다. 눈 앞에 나타난 문이 세트의 집에 머문 횟수만큼 자주 보던 문이었지만 평소와 다르게 생활감이 없어 이질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익숙하게 문고리를 잡고 돌렸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문고리가 돌아가지 않는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 망할 문고리는 왜 오늘따라 말썽이냐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온 힘을 다해 문고리를 돌려대다가 문을 발로 걷어차기까지 했다.

"...뭐하냐."

등 뒤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한 채였다. 때마침 나타난 집주인에게 고장난 문고리에 대한 한탄을 하려는 순간 목을 옥죄는 압력에 숨이 막혔다. 옷에 달린 모자를 잡아당긴 것이 분명했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애써 모아둔 술기운이 전부 날아간 그는 불만을 표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으나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곧 고개를 숙였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세트의 표정은 난생 처음 보는 것이었다. 분노? 슬픔? 여러가지가 섞여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었다.

".....화장실은 이쪽이야."

하며 어깨를 붙잡고 억지로 돌리는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쇄골이 부러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자신보다도 세트가 더욱 고통스러워 보였다. 술이 어느정도 깨고 나서야 남자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세트의 집에는 거실과 안방, 손님을 위한 방, 그리고 굳게 닫혀 열리지 않는 방이 하나 있었다. 어쩌다 한 번씩. 1주년 기념일과 같은 특별한 날에만 방문이 열렸다. 깔끔하게 정리된 다른 방들과 달리 그 방만은 유독 물건들이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병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깔끔함을 유지하는 세트의 집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이걸로 되겠어? 조금 더 꾸미는게 좋지 않을까?"

침대나 책상 등 필요한 가구들은 있었지만 정말 딱 필요한 만큼의 가구들만 있었기에, 열정만큼이나 취미도 많은 세트의 눈에 그 방은 텅 비어보였다. 운동기구라던가, 만화책이라던가. 누가 보면 방에서 잠만 자는 줄 알겠어. 중얼거리다 아! 하는 깨달음의 소리를 내며 입을 다물었다.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두 귀를 늘어뜨리는 세트의 모습에 방 주인이 소리를 죽이고 웃기 시작했다. 연인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은 기분이 좋았으나 그 웃음의 원인이 자신인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만 웃으라는 의미로 온힘을 다해 강하게 끌어안았으나 웃음소리는 오히려 더욱 커졌다.

"그러니까~ 작곡 말고 다른 취미도 찾아보라니까? 이렇게 방이 텅 비어있으니 맨날 하는 일이 똑같은거 아니야."

투정부리듯 말하며 은근슬쩍 연인을 침대 쪽으로 몰아붙였다. 연인은 다리에 힘을 주며 잠시 버티는가 싶었지만 두 배 이상 차이가 나는 덩치를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바닥에서 발이 떨어져 매달리다 싶이 끌려가던 연인이 다급하게 어깨와 등을 치기 시작했지만 세트에게는 그런 행동마저 사랑스러울 뿐이었다. 한 팔로 가볍게 연인을 들어올려 침대 위에 눕혔다.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지 말라더니.]

속삭이는 소리에 세트는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지만 꽤나 강한 힘으로 볼을 잡아 당겨진 탓에 끝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두 팔 안에 갇힌 연인과 눈이 마주쳤다. 먹음직스러운 두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날카로운 눈빛만으로도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어젯밤에 그렇게 해댔으면서 또 할 생각이야? 연인의 한해서 세트는 독심술사와도 같았다. 긍정의 의미를 담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건 예외야."


텅 비어 있던 방 안이 가득 차게 된 것은 세트의 영향이었다. 자신의 방은 가득 찼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며 온갖 잡동사니들을 가져다두었다. 그가 애용하는 운동기구들은.. 뭐, 그럴 수 있다 쳐도 (두 사람의 방은 따로 있었음에도 하나의 침대만 유독, 자주, 사용되었다.) 오늘 아침에 입고 나간 겉옷이나 반쯤 쓰다 만 로션 같은 것들은 왜 놔두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의 방을 창고로 쓰는 거냐며 불만을 얘기해보았으나 세트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웃어넘길 뿐이었다. 조만간 날을 잡고 방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버려버리겠다 다짐했다.

그러나 막상 그 기회가 왔음에도 그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일로 세트가 며칠 간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세트의 물건들을 정리하던 그는 연인의 의도를 금방 알아차렸다. 그가 벗어두고 간 옷에서 그의 체취를 맡았고, 그가 두고 간 로션에서 지난 밤을 떠올렸다. 그가 곁에 없었음에도 하루종일 그를 떠올리고 그리워했다. 아, 세트는 그래서.. 그는 세트가 지어보였던 알 수 없는 표정과 그 이유를 깨달았다.





세트는 물건에 사람의 영혼이 깃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작곡가의 갑작스러운 작고로 그룹이 해체되었을 때도, 알룬이 이제 그만 오빠를 놓아줘야겠다고 말했을 때도, 그는 악착같이 연인의 물건을 끌어모았다. 그가 남긴 메모 한 장, 그가 신었던 양말 한 짝 사라질까 신중하고 꼼꼼하게 짐을 꾸렸다.

그렇게 아펠리오스가 이 세상에 남기고 간 영혼들은 전부 그의 연인에게 남겨졌다.





그냥.. 셑펠이 사별한다면... 세트는 아펠의 모든 걸 보관하고, 바라보고, 추억하고, 기억할 것 같아서........ 영원히 과거에 머물러 살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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