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첫 아이, 첫 육아(유이토 1개월)


"이건 이렇게...맞아?"

"응. 맞아."


소라에게 귀저기 가는법을 배우던 레이는 이내 유이토를 능숙하게 품에 안아든 소라를 빤히 쳐다본다.


"왜?"

"밤에 유이토가 울 때마다 깨서 달래는 건 또 힘들어 보이던데 이런건 잘한단 말이야...대체 기준이 뭐야?"

"그야 엄마가 된 건 처음이지만 아이를 돌보는 건 처음이 아니니까. 신이치랑 내 나이차를 잊은거야?"

"아, 7살 차이났지? 장모님이랑 장인어른 다 제로 소속이랬으니까 널 쿠도 상에게 맡겼을 걸 생각하면 알만하네."

"그래도 내가 만능은 아니니까-"

"알아. 그래서 나도 노력중이야."

"물론 바쁜데 무리하라는 소린 아니야. 휴가 받은건 난데 나 잠깰 때마다 레이도 같이 깨고 있잖아. 피곤해서 일은 제대로 하는거야?"

"괜찮아. 내가 무리하면 네가 힘들다고 하쿠도 상도 적당히 봐주고 있거든."

"그건 다행이네."


레이는 소라의 품에서 방긋방긋 웃고있는 유이토를 보며 초반에 부부를 모두 잠 못들게 만들며 당황하게 만들었던 일을 떠올린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지만 초반엔 둘 다 다크서클을 달고 살았었다. 특히 젖몸살이 주기적으로 왔던 소라 때문에 마사지를 배워온 레이가 몇 번이고 정성들여 풀어주어야 했다.


"요즘엔 통증 없어?"

"아, 젖몸살?"

"응. 초반에 힘들어 했잖아."

"이젠 괜찮아. 또 아프면 부탁할게. 레이의 마사지 제법 마음에 들었으니까."

"제법?"

"네, 네- 아~주 마음에 들었어."

"당연히 그래야지. 무심코 내 가슴에 대고 연습하다가 이시다한테 들켜서 웃음거리가 된 적도 있으니까."

"푸핫- 진짜로?"

"이런걸로 거짓말 해서 뭐해."


소라는 남편의 처음듣는 웃긴 에피소드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웃다가 뾰로퉁해 있는 레이를 보고 서른이 넘어도 여전히 귀여워 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지 잘 해내는 남편이라 둘째를 낳을 때는 이런 귀여운 면을 더 볼 수 없을 것 같으니 지금 실컷 봐둬야 겠다는 생각은 덤이었다.


"뭐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둘째는 배테랑이 돼서 이 귀여운걸 못 볼 것 같아 아쉽다?"

"너..."

"그렇게 눈 흘기는 것도 귀여워."

"...무슨 말을 못하겠네."

"자, 이제 레이가 안아봐. 나 잠깐 화장실."

"어, 어-"


아직은 조금 자세가 어색한 레이가 최선을 다해 아기를 품에 안는다. 본인을 닮았어도 신기하고 예뻐했겠지만 눈동자와 피부색을 빼면 자신이 그렇게도 사랑하는 아내를 쏙 빼닮아 더 예뻐할 수 밖에 없는 첫 아이였다.


"아빠가 아직 많이 서툴어서 미안하다. 어느 정도 말썽을 피우는건 상관없으니까 건강하게만 자라줘."


여러모로 서툰 아빠였지만 전해주는 사랑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아빠였다. 그리고 그건 엄마인 소라도 마찬가지였다.



1. 유이토의 사고뭉치 각성의 날(유이토 19개월)


"후...낮잠 재운 사이 일처리를 몰아서 하는 것도 한 두번이지..."


레이의 아들 아니랄까봐 유이토는 태어난 이후로 크게 아픈 일도 없고, 음식도 가리지 않아 건강 측면에서 걱정할 필요는 없었지만 호기심 만큼은 넘쳐나서 잠시도 나나 레이를 쉬지 못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종종 육아를 도와주는 동생들이나 카자미 상이 없으면 유이토의 질문에 시달려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래도 아직까지 큰 사고를 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감사하고 있다.


"으...일단 잠깐 두고 부엌이나 뒤져봐야겠다...당 떨어져..."


혹시 그 짧은 사이 연락이 올지 모르니 폰만 챙겨들고 간단히 먹을 것을 찾으러 부엌으로 향했다. 레이가 나를 위해 만들어 둔 간단한 핑거푸드들을 찾아서 일단 입에 하나를 집어넣고 가져가서 먹으려고 챙기는데 아니나 다를까 벨소리가 울린다.


"응, 레이. 무슨 일이야?"

[유이토가 힘들게 하진 않는지 걱정돼서. 급한건 정리했으니까 힘들면 대충 챙겨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

"괜찮아. 곧 낮잠에서 깰 때가 되긴 했지만 일은 거의 다 마무리 되가니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늘 말하지만 미안해 할 필요없어. 레이도 충분히 할만큼 하고 있는걸. 퇴근도 예전에 비해 빠른 편이고 퇴근하면 혼자서 유이토 봐주고 난 쉬게 해주잖아."

[그래도 돌보는 시간은 네가 더 많으니까. 더 크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더 힘들게 할테고-]

"음...그래도 나름 얌전한 면도 있던데 괜찮지 않을까? 지적 호기심이 많은거랑 사고뭉치인거랑은 별개니까."

[혹시 모르지. 태몽도 그랬고 그 녀석들 닮았을지도...]

"...진페이 오빠만 안 닮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동감이야. 어쨌든 괜찮다니 다행이다. 챙겨놓은건 먹었어? 지금쯤 당 떨어질 때 됐는데.]

"역시 레이~ 안 그래도 먹고 있어. 먹으면서 일 마무리 하려고."


나는 통화를 이어가며 한 손에 접시를 들고 작업실로 향했다. 그런데 작업실 문 앞에서 하로가 어쩔 줄 몰라하며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응? 하로, 왜 그래?"

[하로?]

"응. 작업실 문을 열어놓고 나왔는데 문 앞에서 빙글빙글...아아!!"

[소라? 왜 그래!]


하로에게서 시선을 돌려 열린 작업실 문을 통해 안쪽을 보는데 인터넷 선으로 보이는 것을 흔들며 방긋방긋 웃는 아들을 발견했다. 걱정하고 있을 레이에게 답을 돌려줄 새도 없이 유이토가 손에 쥔것을 확인하기 바빴다. 안타깝게도 그건 인터넷 선이 맞았고 인터넷 연결 없이는 안 될 작업을 하고 있던 나는 저장을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하는 비극이 벌어진거였다.


"유이토..."

"엄마! 줄줄이!"

"그래...그렇구나...줄줄이가 좋았구나...하하..."

"웅?"


나는 차마 아무것도 모르는 유이토에게 소리 칠 수가 없어 선을 다시 원래 자리에 꼽아넣고 유이토를 안아들었다. 유이토는 타들어가는 내 속을 모르고 내 품이 좋다고 방긋방긋 웃고 있다.


[소라, 무슨 일이야? 응?]

"...레이- 나 좀 살려줘."

[...설마 유이토가 사고쳤어?]

"그것도 대형사고. 작업 중에 인터넷 선을 뽑아버렸어...처음부터 다시해야 해..."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지 않았어?? 작업실 문을 열어놔서 들어갔던거야?]

"하...머리 아파..."

[챙겨서 집으로 갈게. 조금만 기다려.]

"으응..."


나는 힘이 다 빠져서 유이토를 안은채로 바닥에 주저 앉았다. 한 번도 대형사고를 치지 않은 나름 얌전한 아이였는데 이렇게 큰 사고를 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엄마...나 잘못탰서?"

"음...아들, 이 방은 엄마가 일 할 때 쓰는 곳이야. 그러니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야."

"안 대?"

"응. 그러니까 다음엔 그러면 안 돼. 궁금하면 유이토가 더 컸을 때 이것저것 알려줄게."

"우웅..."

"괜찮아. 이따 아빠 오신다니까 엄마 일 할 동안 놀아달라고 하자. 엄마는 다시 일 해야 해."

"응..."


유이토는 내가 화내지 않았지만 자기 잘못을 아는지 풀이 죽어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가 레이가 오기 전까지 일을 포기하고 놀아주자 금새 방긋방긋 웃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어락 소리가 들리고 작업실로 레이가 들어온다. 서둘러 왔는지 옷이 제법 흐트러져 있고, 챙긴 서류들도 가방에 마구잡이로 쑤셔넣어져 있었다.


"아빠!"

"그렇게 급하게 올 건 없었는데..."

"내가 대신 해줄 수 있는 일이면 몰라도 그게 아니니까 유이토라도 봐줘야지."

"고마워."


레이는 유이토를 자기 품에 안아들고 내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덕분에 다시 힘을 내서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뭐, 앞으로 같은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말이야...레이의 작은 응원 덕분에 처음보다 더 빨리 일이 마무리 되었다.


"끝났어? 일찍 끝났네."

"덕분에 기운이 좀 나서? 유이토, 아빠랑 잘 놀고 있었어?"

"응!"

"이제 엄마랑 놀자. 아빠도 일해야 하거든."

"난 괜찮아. 급하거나 중요한건 이미 다 처리하고 돌아온거니까."

"그래도 유이토 보면서 일하는게 쉬운게 아니잖아. 자, 아들- 아빠 일 할 동안 방에 가서 엄마랑 놀자~"

"응. 아빠 이따 또 놀아!"

"그래. 엄마 너무 힘들게 하지말고."

"응!"


이렇게 전부 평화롭게 해결되어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겠지 하고 안심했지만 그 후 몇 년 간 잊을만 하면 사고치는 유이토 덕분에 조용한 날이 없었다.



2. 분해광 진페이의 DNA를 발견한 날(유이토 4세, 시오 1세)


"일 아직 남았어? 이따 유이토는 내가 데려갈까?"

"시오는 어쩌고? 아이가 계속 봐준데?"

"오늘 어디 안 간다더라고."

"그럼 부탁 좀 할게. 이따 용의자 심문도 있고 일찍 끝날 것 같지가 않네."

"알았어. 오늘도 고생이 많네 우리 남편."

"말만?"

"으이구- 이젠 눈치도 안 보지?"

"내가 뭐하러?"


갈수록 뻔뻔해지는 레이를 살짝 노려보았다가 원하는대로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춰주었다. 다른 수사관들도 이젠 익숙한지 한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다. 보여도 안 보인 척, 들려도 안 들린 척의 정석이다. 아직은 업무가 남아있어서 개인 사무실로 돌아가보려는데 무슨 일인지 유이토가 다니는 보육원에서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아, 유이토 군 어머님이시죠?]

"네. 무슨 일 있나요?"

[실은 유이토 군이 장난감들을 죄다 못쓰게 만들어 버려서 혼을 냈는데 울음을 그치지 않아서요...]

"네..? 장난감을...아니, 그보다 계속 울고 있다는 말씀이세요?!"

[네...아, 오해는 없으셨으면 하는게 때리거나 하진 않았어요..!]

"아, 네. 그 점을 걱정한건 아닌데...어쨌든 제가 지금 바로 갈게요!"

[네. 바쁘실텐데 죄송해요.]

"아니에요."


통화를 마친 나는 집어들었던 서류를 다시 레이의 책상 위에 올려둘때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는 레이와 눈이 마주쳤다. 


"왜? 무슨일이야?"

"유이토...어쩌면 우릴 닮은게 아니라 진페이 오빠를 닮은거 아닌가 몰라...보육원 장난감들을 죄다 못쓰게 만들었데. 그것 때문에 혼을 내신 모양인데 울음을 안 그친다고 해서 가봐야 할 것 같아."

"아니, 무슨...일단 다녀와.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해둘게."

"응. 고마워."


나는 서둘러 경찰청을 나서 유이토가 있는 보육원으로 향했다. 무슨 일 생기면 달려갈 생각으로 보육원을 집보다는 경찰청에 가까운 곳으로 보냈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가 도착할 때까지 여전히 유이토가 울고 있는 건 좀 경악할 일이었다.


"유이토!"

"끄윽...어, 엄마..."

"그래. 그만 뚝하자 응?"


잘못한 일에 대하여 나중에 혼내더라도 우선은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게 먼저다. 나는 유이토를 안아 울음을 그칠때까지 토닥여주었다. 우는데 체력을 많이 쓴 모양인지 울음이 그쳤을때 쯤엔 아에 잠이 들어버린 유이토. 잠든 유이토를 한쪽에 늬여두고 선생님께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한 경위를 듣게 되었다. 어릴 때 부터 호기심이 많긴 했지만 뭔가를 분해 해버리는 일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집에 그럴만한 물건이 없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일단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망가진 장난감에 대한 배상과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제대로 교육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내가 너무 단호한 말투여서 걱정되셨는지 어리니 그럴 수도 있다며 너무 크게 혼을 내지는 말아달라고 하셨다. 일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고 나는 잠든 유이토를 데리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형부한테 연락 받았어. 유이토가 사고쳤다며?"

"음...조금. 일단 잠들었으니까 깨면 다시 얘기해보려고."

"혹시 형부 어릴 때 사고치고 다니는 쪽이었어? 시오에 비하면 제법 얌전하다고 생각했는데."

"레이 보단 진페이 오빠 쪽. 어릴때 치하야 상 폰을 분해했다가 혼난 일이 있었다고 들었거든...집에선 분해할만 한거라곤 작업실에 있는 것들 뿐이니까 몰랐나봐."

"앞으로 고생길이 훤하네- 그 동기들 다 말썽 많은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았어?"

"다는 아니야. 유전자의 힘을 믿어 봐야지. 난 말썽쟁이 아니었어."

"외모만 언니 닮은거 아니고?"

"...아닐꺼야."

"그래 뭐 언니 믿고싶은대로 믿어."


아이의 말에 뭔가 굉장히 억울한 기분이었지만 말을 아끼고 아이가 안겨준 시오를 품에 안았다. 이따 유이토가 깨어나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시오는 잠이 들었고, 유이토는 방 앞에서 기웃거리다 밖으로 나오는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란다.


"아들, 엄마랑 얘기 좀 할까?"

"네에..."


평소엔 그냥 '응'이라고 하면서 잘못했다고 존대라니...귀엽긴- 이런건 아빠 닮은걸까? 어차피 본인도 충분히 잘못한걸 알고 있을터라 크게 혼낼 생각은 없었던 나는 쇼파에 앉아 유이토를 안아서 무릎에 앉혀 날 마주보게 만들었다.


"유이토, 뭘 잘못했는지는 알지?"

"네...장난감 다 망가뜨렸어요..."

"맞아. 왜 그랬어?"

"어떻게 움직이는 건지 궁금했어요..."

"그랬구나. 하지만 유이토, 그런거라면 엄마나 아빠에게 얘기했어야지. 그랬으면 똑같은걸 사줬을거야."

"하지만 엄마랑 아빠가 사준거 망가뜨리면..."

"그건 괜찮아. 그러고 싶어서 산다고 솔직하게 말한다면 열개고 스무개고 사줄 수 있어. 엄마랑 아빠가 그런거 안 된다고 말한 적 있어?"

"아니요...없어요..."

"앞으로는 솔직하게 말할거지?"

"네..."

"기죽지 말고. 아직 어리니까 이것저것 궁금한게 나쁜게 아니야. 대신 위험하니까 분해해보는건 어른들 있을때만 하기로 약속하자."

"응..!"


해결책을 제대로 제시하자 그제서야 환하게 웃는 유이토. 그래...분해 그것 좀 하면 어떻겠어. 인터넷 선 뽑을때 보다야 낫지...

하지만 이런 생각은 유이토의 호기심을 좀 얕본 것이었다. 그렇다고 약속을 어기고 비슷한 사고를 쳤냐 하면 그건 아니었지만 이후로 사자마자 실험용으로 쓰이고 버리게 되는 것들이 한두개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이의 호기심을 무작정 막을 수도 없을 노릇이니 오롯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시오가 같은 짓을 안 하는걸 감사할 뿐이었다.


3. 처음 이상형(?)을 마주한 시오(유이토 5세, 시오 2세)


"소라가 있었으면 더 빨리 끝났을텐데 다른 일이 있었던 모양이지?"

"쉬는 날이야. 그냥 쉬는 것도 아니고 아직 어린 시오를 돌보고 있으니까 일 떠 안길 순 없어."

"흐음- 그렇군. 시오라면 둘째 였던가?"

"왜 관심가지는 거지? 신경꺼."

"하하- 설마 내가 딸을 뺐기라도 하겠어? 일이 마무리 되면 곧장 귀국할 예정이야."

"일을 빨리 처리해야겠군."


레이는 날이 선 말투로 빠른 일처리를 위해 손을 바삐 움직였다. 자신의 딸이나 아내에게로 향하는 조금의 관심 조차 썩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악연을 청산한 것과 하하호호 하는 사이가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하지만 그런 레이의 노력은 금새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뭐? 갑자기?"

"네...이 건은 소라 상이 아니면 안 되는 일이라 잠깐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어. 연락할테니까 그거 두고 가봐."

"네..!"


레이는 한숨을 내쉬며 딸을 돌보고 있을 아내에게 마지못해 연락을 한다. 오늘따라 운이 따라주지 않았는지 그런 레이의 전화 타이밍은 그리 좋지 못했다.


"소라 잠깐 와줘야 겠는데."

[응? 지금? 음...]

"왜 그래? 곤란하면 좀 번거로워도 내가 그쪽으로 갈게."

[그건 안 되지. 바쁜 사람 오라가라 할 수 없는걸. 조금만 기다려.]

"응. 미안해."

[뭐가 미안해. 난 괜찮으니까 신경쓰지마.]


통화를 마친 레이는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곤란해 하는 소라 때문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오늘은 신이치와 란이 오랜만에 집을 찾아온다고 해서 시오를 맡길 곳이 없어서 문제인 건 아닐터라 괜히 더 걱정되는 그였다. 하지만 경비기획과로 들어오는 소라를 보자마자 원인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시오?"

"파파!"

"미안해. 신이치랑 란이 마침 돌아갔던 참이라 맡길 때가 없어서 데리고 왔어."

"호오- 딸은 레이 군을 많이 닮았군."

"어? 슈이치 상 안 가셨네요? 시오랑은 처음 보는 거였던가요?"

"그래."

"누구야?"

"시오, 여긴 파파의 친구인 아카이 슈이치 삼촌이야. 처음보지?"

"누가 친구..!"

"레이- 시오 앞에서 소리지르면 안 되는거 알지?"

"윽..."


시오가 놀랄까봐 반박조차 함부로 못하는 레이는 잔뜩 구겨진 얼굴로 입을 꾹 다문다. 그 구겨진 얼굴만으로도 시오가 낯설어하긴 충분했지만 지금 시오의 관심사는 오로지 처음 본 슈이치 였다. 소라와 레이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시오의 눈은 매우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듯 평소보다 더 반짝거리고 있었다.


"웅...슈!"

"그럼 안 돼. 삼촌이라고 제대로 불러야지."

"시러! 슈!"

"왜 이러지...다른 사람들은 제대로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마마! 시오 나죠!"

"에?"


급기야 시오는 품에서 버둥거리며 소라의 품을 벗어나려고 한다. 결국 소라는 시오가 원하는 대로 내려주었더니 짧은 다리로 도도도 달려가 슈이치의 다리에 덥썩 매달린다. 소라는 그 모습에 조금 놀란 얼굴로 '어머-'하는 감탄사를 내뱉었고, 레이는 충격 받은 얼굴로 몸이 굳어버린다.


"호오- 활발한 꼬마 아가씨군."


슈이치는 매달린 시오를 신기하다는 얼굴로 내려다 보더니 웃으며 아이를 안아든다. 그러자 시오는 좋다고 그 품에 덥썩 안겨들었다. 레이는 이제는 세상이 무너진 얼굴을 한 채 떨리는 눈으로 시오를 쳐다보았다.


"아니,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시오가...아카이를..."

"소라, 레이 이 녀석 완전 맛이 갔는데?"

"음...지금은 저도 좀 충격이라...왜지? 아, 혹시 레이 닮아서 그런건가..? 나름 첫사랑이 엘레나 상이었으니까."

"아냐! 내 첫사랑은 너라고..!"

"...에?"

"엘레나 상은 그냥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우를 해준 어른이었을 뿐이라고- 동경! 그러니까 날 닮았으면 저놈이 취향이면 안 되지!!"

"그래..? 근데 레이 그거 그렇게 크게 소리쳐도 되는거야? 여기 사람 많은데..."

"지금 그게 중요해?"

"아니, 그럼 뭐가 중요한건데...어라? 그럼 외할아버지를 닮은건가?"

"음? 외할아버지라면 소라 네 아버지 쪽을 말하는 건가."

"네. 엄마는 고양이상 미인이셨거든요. 엄마가 완전 아빠 취향이라 엄청 들이댔다고 들었거든요. 그러니 외할아버지를 닮은거면 이해가 가는 취향이긴 해요."

"재밌는 상황이군. 그럼 이 아이는 내가 봐주고 있을테니 급한 일 처리하지."

"어머- 고마워요."

"뭐? 누구 마음대로!"


정신을 차린 레이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하지만 소라에 의해 다시 앉혀지고 곧바로 둘 사이에 끼어든 덕분에 시선마저 차단된다.


"시오, 마마는 파파랑 일 해야하니까 삼촌이랑 잠깐 놀고있어. 알았지?"

"웅!"

"...그래, 밝아서 참 좋네. 그럼 슈이치 상은 얼른 휴게실이라도 가주시겠어요? 이대로 있다간 레이가 제대로 일을 못할거예요."

"그러지."


그 뒤로 어떻게든 소라도 레이도 일을 끝마치긴 했지만 레이는 좀처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로 시오를 슈이치와 만나게 하지 못하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쓰기 시작한 레이였다. 무섭고 냉정한 상사의 이미지에서 딸바보로 유명해진 계기가 되기도 했다.



4. 켄지의 면모를 발견한 날(유이토 6세, 시오 4세)


"우리 유이토가 벌써 초등학생이라니- 시간 참 빨라~"

"근데 걱정 안 돼?"

"응? 뭐가?"

"누나랑 매형 닮아서 인기 많잖아. 솔직히 보육원 때는 서로서로 뭣 모르니까 별일 없었지만 초등학생은 알거 다 알 나이인데 유이토 사이에 두고 싸움나는거 아니야?"

"에이- 나랑 레이 닮았으면 그럴 일 없을걸? 우리들이 한 외모해도 그런 일이 없었으니까."

"글쎄- 그건 모를 일이지."


신이치의 우려에 소라는 말도 안 된다며 넘겼지만 더 빨리 깨달았어야 했다. 유이토는 후루야 부부 못지않게 레이의 동기들을 닮았다는 점을 말이다.


"네? 그게 무슨..."

[지금 여학생들의 부모님들도 와서 이야기 중이신데 아무래도 유이토 군의 부모님과도 얘길 나눠봐야 할 것 같아서 연락드렸어요. 어머님은 통화가 안 되시길래...]

"아, 네. 아내가 지금 일에 손을 땔 수가 없어서...알겠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네. 교무실로 와주시면 되세요.]

"네. 알겠습니다."


레이는 업무 도중에 걸려온 황당한 전화에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쓸어내린다. 이제 더는 말썽 피우지 않고 어른스러워진 유이토였는데 이런 문제가 생길 줄은 몰랐던 것이다.


"뭐야? 어디가?"

"유이토 학교."

"오- 한동안 잠잠하더니 초등학교 입학하기 무섭게 사고친거야? 이번엔 뭐 분해했데? 이거 폭처의 재능이 보이는데~"

"...그런거였으면 좀 덜 당황스러웠겠네."

"응? 아냐? 그럼 뭔데? 설마 너 닮아서 누구랑 주먹질..?"

"그것도 나쁘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드는게 문제지."

"그럼 대체 뭔데?"

"...유이토를 두고 여학생들이 크게 싸웠다는 모양이야. 뭘 얼마나 크게 싸웠는지 나까지 와달라고 해서."


이시다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가 상황파악을 끝내고 레이의 사무실이 떠나가라 웃어댄다. 상상도 못했던 이유라 그런지 진짜 숨이 넘어가라 웃었는데 대충 짐을 챙긴 레이가 사무실을 나서기 직전에 그런 이시다의 뒤통수를 풀 스윙으로 내려치고 가버린다.


"아악!! 머리 흔들렸어! 뇌가 흔들렸다고! 이거 산재청구할거야아!!"

"닥쳐. 돌아올 때까지 일처리나 똑바로 해. 소라한테 대신 얘기 전해주고."

"끄윽..."


대들었다간 이번에야 말로 병원 신세를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시다는 머리를 붙잡고 사무실에서 업무에 빠져있을 소라에게 소식을 전하러 움직인다.



* * *



"아, 아버지..?!"

"설마하니 이런걸로 불려올 줄은 몰랐어, 아들."


부모님이 오신다는 얘기를 듣고 당연히 소라일거라 생각했던 유이토는 떡하니 등장한 레이 때문에 당황했다. 담임 선생님도 소라는 만났어도 레이와는 첫만남이었는데 속으로 과연 유이토의 부모님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리고 그건 유이토의 부모를 보면 한 소리 할 생각이었던 여학생들의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아들 교육을 어떻...어머-"

"부부가 둘 다..."

"...아, 드님이...아버지를 많이 닮았던 모양이네요."

"그게 지금 중요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들은 아내쪽을 닮았습니다. 그보다 저희 아들 때문에 싸움이 났다고 들었는데-"

"아버님! 전 히이라기 유이라고 해요! 유이토 군과 가장 친한 친구예요. 곧 여자친구가 될지 모르니 잘 부탁드려요!"

"하? 무슨 소리야! 유이토 군은 나랑 제일 친하거든? 아버님, 저런 헛소리는 들을 필요 없어요. 제가 더 친해요. 아, 저는 유키무라 쿄코예요."


레이는 아마 자신의 아들을 차지하기 위해 싸웠다는 것이 지금 펼쳐지고 있는 이 수라장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부모님도 함께 있으니 차마 한숨을 쉴 수 없었지만 속으로는 몇 번이고 내뱉은 한숨이었다. 아마 소라가 왔으면 아버님이 아닌 어머님 소리를 수십번은 들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저기, 이제 그만해줬으면 좋겠어. 바쁘신 분들을 여기까지 오게 만들어서 죄송하니까."

"미안해, 유이토 군. 그치만-"

"그리고 누구와 더 친하다느니 그런걸 정할 수 없어. 난 모두와 똑같이 친하게 지내고 있어. 그러니 이런걸로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렇지 않으면 내가 모두와 함께 놀 수 없으니까."

"으응..."

"유이토 군이 그렇다면..."


결국 원인도 그걸 해결하는 것도 유이토가 되어버렸다. 레이는 이런 와중에도 웃으며 부드러운 언행을 보이는 유이토를 보며 가장 먼저 떠났던 친구인 켄지의 면모를 보았다. 본인과 소라를 닮았다면 이쯤되면 싸늘한 얼굴로 돌려까는 말이 나왔어야 하니 말이다.


"아무래도 아이들끼리 싸움이 좀 과해졌던 모양이니 각자 가정에서 주의를 주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아들에게는 제가 나름대로 잘 이야기 하겠습니다. 그러니 이 일은 그만 마무리 짓고 헤어지는게 어떨까 싶습니다만...안 그런가요, 선생님?"


여학생의 학부모들이 호감형인 자신의 얼굴에 넘어가지 않았다면 쓸데없는 트집이 잡혔을걸 알아차린 레이가 웃고있지만 제법 날카롭고 강압적인 어조로 상황을 정리했다. 소라가 왔다면 괜히 더 트집을 잡혔을거라는 생각을 하니 더 기분이 나빴던 것도 한 몫했다.


"아, 네...그렇네요...그, 어머님들도 여기까지 하시고 그만 돌아가시는게 어떨까요?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저도 주의하겠습니다."

"뭐...그래요. 저희도 바쁜몸이니-"

"다음부턴 주의해주시죠."

"그럼 저도 이만."


한바탕 길어질뻔한 상황이 한순간에 정리되었다. 레이도 더 말이 나오기 전에 유이토를 데리고 서둘러 학교를 빠져나왔지만 집이 아닌 경찰청으로 다시 돌아가봐야 했기 때문에 운전을 하면서 간단히 설교 아닌 설교를 해야했다.


"유이토,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는거 나도 잘 알지만 과도한 친절은 때론 독이 되는 법이야. 특히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너희 나이의 아이들에게는 말이야."

"네. 죄송해요. 바쁜데 오신거죠?"

"그건 죄송하지 않아도 돼. 가족에게 문제가 생겼다는데 가지 못한다는게 더 미안할 일이니까. 그리고 어떻게 보면 엄마가 아니라 내가 온게 다행이었지."

"음...그건 혹시 그 아이들 어머니들이 어머니를 괴롭혔을거라는 얘긴가요?"

"비슷해. 이제보니 이런 눈치 빠른 점은 우릴 닮긴 했나보네."

"당연하죠. 전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들인걸요."

"뭐, 친구들과 잘 지내는건 칭찬할 일이야. 그 점은 나와 소라를 닮지 않아 다행이지. 설마 동성 친구는 한 명도 없는건 아니지? 그건 곤란해."

"그런거 아니에요. 다 같이 잘 지내고 있어요. 이번 일은...다음부턴 주의할거예요."

"그래. 그렇다고 과도하게 거리를 두거나 네 성격을 무리하게 바꿀 필요는 없어. 유이토는 유이토 다운게 좋은거니까."

"어머니도 같은 말씀을 하겠죠?"

"그렇겠지."

"그럴게요. 그래도 일하시는 도중에 오시게 만든건 죄송해요."

"음- 이런 고집은 또 날 닮은 건가...아니, 소라도 한 고집 하긴 한데..."


뭐든 자신을 닮은 건지 아내를 닮은 건지 비교해보는 레이의 모습이 재밌었는지 유이토는 소리를 죽여 웃는다. 그 뒤로는 특별한 대화 없이 집에 도착했고 유이토를 내려준 레이는 곧장 경찰청으로 돌아갔다. 소식을 듣고 기다리고 있던 소라는 어떻게 됐는지 레이에게 간단히 전해듣고는 그 정도 했으면 자신은 더 할 말이 없다며 일을 끝내고 집에 도착했을 땐 유이토에게 그저 스스로 생각했을 때 나쁜짓이라고 생각되는 일만 하지 말라 이른다.


"언젠가 얼굴값 할 줄 알았어."

"내가 그랬잖아~ 싸움 한 번 날 줄 알았...악!"

"기껏 놀러와서 한다는 말이 그따위야? 네가 얼굴값 못했다고 질투해? 넌 우리 아들처럼 착하지 않아서 그랬던거야."

"뭐? 그게 누나가 돼서 할 소리야?"

"그럼 넌 그게 삼촌이 돼서 할 소리야?"

"윽..."

"둘 다 똑같아. 뭐, 싸움난걸 보면 모두에게 친절하다는거니까 그런 점은 저 사교성 없는 부부를 닮지 않아 다행이네."

"하하...처제, 그러기야?"

"내가 뭐 틀린 말 했어요? 유이토, 친구는 많다고 나쁜게 아니니까 부모님 닮지마."

"음...그럴게요."


다행히도 이 이후로 유이토가 나름 신경을 쓴 덕분에 또 레이나 소라가 불려가는 일은 없었지만 그를 두고 여학생의 소소한 다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덕분에 친절한 켄지의 성격에 소라나 레이의 성격이 더해져 반반이 되어 성장한 유이토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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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눌러주신 Haeun 님, B_블링 님, 슈비 님, 하루아침 님, 나나 님, kky 님 감사합니다.

이제 남은 건 할로윈의 신부 뿐이군요. 영화 세 번이나 보면서 타임라인과 주요내용 열심히 머리에 박아두고 메모해놨으니까 열심히 써볼게요! 다만 원작에서 11월에 잡힌 놈이 갑자기 10월에 탈옥하고 있고 아주 시간선이 멋대로라 그 점은 자체 설정을 추가해야해서 외전이지만 본편과 조금 시간선이 달라서 세계관이 다른 쪽이 되버리는 현상이 생길지 모르겠군요...올릴 때 따로 쓰긴 하겠지만 본편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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