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리, 그거 당장 내려놔! 안 그러면 정말 혼쭐을 내줄 거야! 카이는 연습용으로 만든 칼을 들고 저 멀리 도망가는 말썽꾸러기 정령을 향해 소리쳤다. 샐리는 자신의 몸보다도 세배는 큰 숫돌을 용케도 들고서 카이를 피해 도망쳤다. 언제나처럼 잡을테면 잡아보라지라며 카이를 약 올리면서. 카이가 침착하고 현명한 성격이었다면 정령을 쫓아가는 대신 무반응으로 대응했을테지만, 불행히도 그의 성격은 불같았고, 당장 필요한 숫돌을 가져간 정령에게 무척 화가 나 있었다.

네개의 무기라 불리는 대장간은 부모님이 실종된 후 카이와 니야에게 남은 유일한 것이었고, 둘은 어린 나이에도 대장간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이곳에서 정령이 산다는 사실을 안 건 얼마 전이었다. 카이가 열심히 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때마다 기이한 일이 생겼고, 그는 그게 자신의 능력 부족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신의 칼에 손을 살짝 대서 휘어지게 만드는 이상한 정령을 보지 않았다면 평생 그렇게 생각 했을지도 모르지. 카이와 눈 마주친 정령은 뻔뻔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샐리라고 소개하며 이 대장간에서 오랫동안 살았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정령에게 뭔가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 카이는 생각했다. 일주일간 샐리랑 같이 있어 본 결과 샐리가 엄청난 장난꾸러기에 골칫거리인 것만 알게 되었을 뿐 별로 소득이 없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 눈에는 정령이 보이지 않으니 샐리가 친 사고는 카이가 모조리 뒤집어쓰게 됐다. 그러다 보니 카이가 능력을 갈고닦을 시간은 거의 없었고, 이렇게 사고의 뒷수습이나 하게 되어 버리게 된 것이다.

간신히 숫돌을 되찾았을 때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였고, 카이는 갈아야 되는 무기의 양을 보면서 한탄했다. 자신도 아버지처럼 훌륭한 대장장이로 거듭나서 이름을 날리는 장수들의 무기를 직접 제작하는 걸 내내 꿈꿨었는데, 이렇게 칼이나 갈고 있다니. 내 신세도 딱하지. 

대장간에 있는 무기들은 대부분 동생인 니야가 만들어낸 것이었고, 서투른 그의 솜씨와는 다르게 니야는 훌륭한 무기들을 만들어 냈다. 갑옷, 방패, 칼, 화살, 석궁 같은 전사라면 모름지기 들만한 무기들을 진열해두며 대장간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카이는 니야한테 신세 지는 것 같아 미안했고, 자신도 보탬이 되기 위해 몰래 수련했지만, 알다시피 그 결과가 좋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사고는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발생한다. 치열한 전투에 나갈 전사에게 엉뚱한 칼이 전송된 것이다. 그 쓸모없는 무기로도 어떻게든 살아 남았는지 전쟁이 끝나지마자 찾아왔지만. 카이는 문제의 칼이 자신이 만들다가 실패한 칼임을 한 눈에 눈치챘다. 분명 제대로 버렸을 텐데 이런 장난을 할 자는 샐리밖에 없을 거야. 전사는 사과 대신 이 칼을 만든 사람의 목숨을 거둬갈 거라고 윽박질렀고, 때마침 온 니야 덕에 새로운 칼을 만들어주는 걸로 합의 봤다. 그가 내민 조건은 단 하나 카이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일주일 안에 칼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솔직히 카이는 자신이 없었지만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니야가 가게는 자신이 보겠다며 일주일간 카이에게 자유롭게 대장간을 쓰라고 말했고, 그 덕분에 카이는 이렇게 망치질을 하면서 철을 늘리고 있었다. 샐리는 그 전사가 다녀간 이후로 카이에게 장난을 치지 않았고, 그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봤으나 네가 죽으면 내 장난에 호응해줄 사람이 없다는 단조로운 대답만이 돌아왔을 뿐이였다. 일곱번째 날 카이는 마지막 남은 재료로 칼을 완성했다. 여전히 부족하다고 여겨지긴 해도 그가 만든 것 중에 최선이였다.

전사는 약속대로 일곱번째 날 찾아와 카이의 칼을 살펴보았다. 카이는 조마조마한 마음을 숨기며 눈치를 보고 있었고, 그 전사의 곁에는 아들로 보이는 금발의 녹안 청년이 있었다. 아버지와 다르게 그는 카이의 검이 맘에 들었다. 서투른 흔적으로 다듬은 칼일지라도. 잘만 다룬다면 분명 뛰어난 검을 만들 수 있을 거야. 게다가 이 대장간에는 불의 정령도 남아 있으니까. 한명쯤 데려간다 하더래도 지장이 없겠지. 그러니까 이런 곳을 떠나서 나와 함께 가자.

가마돈은 아들의 눈에 들어버린 카이를 보고, 맘대로 하라는 의미로 카이의 칼을 가져갔다. 그의 아들은 언제나 원하는 것은 손에 넣는 편이였고, 이번이라고 별반 다를게 없었다. 가마돈이 물러나자 로이드는 미소를 띄우며 자신을 소개하며, 카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로이드가 내민 손을 잡고 대장간을 나가는 카이가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니야는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애초에 카이란 존재가 없었던 것처럼. 샐리는 니야에게 어떻게든 알리고 싶었지만, 니야는 자신을 볼 수 없을 뿐더러, 로이드에게 입막음 당할게 분명했다. 샐리가 할 수 있는 건 대장간에서 가만히 앉아서 점점 멀어지는 카이를 바라보는 것 뿐이였다.





lara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