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좀비한테 죽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니, 스팬담이 되어 있었다.

그것도 사고 다 치고 내리막길만 걸을 예정인,

어그로만 잔뜩 끌린 워터 세븐 이후, 중환자 스팬담이.

씨발, 이건 아니잖아요.



굳세어라, 스팬담!

written By. 시쟌

-150-


탑승하는 건 센고쿠 대장의 배였다. 그는 중장들 사이에 끼어있는 거프를 보더니 눈을 부릅떴다.

“어이, 거프!! 너는 왜 나왔냐! 부른 적 없다!”

“치사하게 그러지 마라!!”

배 위에서 서로에게 오가는 고성에 스팬담이 인상을 찡그렸다. 억울하게도 초대받기 싫었던 쪽은 초대받고 저쪽은 아예 초대도 안 받았는데 소식 듣고 달려온 모양이었다.

‘의욕도 넘치시는군.’

그럼 굳이 자신을 데려갈 필요도 없지 않나 싶어진 스팬담은 한숨을 내쉬었다. 보르살리노가 한숨 쉬지 말라고 타박하기에 그러면 어깨에서 팔이나 치우라고 말했더니 모른 척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시키의 일은 내가 전부 일임받았다! 넌 저리 꺼져있어!!”

“아- 신경 쓰지 마. 공훈은 전부 너한테 줄 테니까!”

“그런 문제가 아니잖냐!!”

스팬담이 인상을 찡그리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이가 들어도 시간이 지나도 사람은 결국 티격태격하는 모양이었다.

“음? 이 녀석은 판인가? 아직 소령이라고 들었는데, 이번 출정은 일단 준장 이상만 참가하는….”

“어, 쿠잔 녀석이 부탁하길래 내가 그냥 데리고 오라고 했다!”

“가-프!! 누가 멋대로…!”

“에이, 약한 놈도 아닌데 알아서 하지 않겠냐!”

이 절망적인 상황의 범인은 가프였군.

스팬담이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노려보자 가프가 그 시선을 느꼈는지 “그렇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소리치곤 쏙 배 위로 올라가 버렸다.

“…….”

스팬담은 오랜만에 살심(殺心)이 일었다. 뒤쪽에서 느껴지는 직속 상사의 시선도 영 무시 못 할 것이긴 했고 말이다. 여러모로 피곤했다.

“자, 공훈 세우러 가자고오~….”

“…….”

거무죽죽한 낯의 스팬담은 그야말로 질질 끌려 배 위에 올랐다.

 

**

한창 싸움이 진행되는 전장에 도착하자 펑펑 터지는 폭약과 매캐한 냄새, 거기에 뒤섞인 피 냄새와 지독한 살의가 머리를 아프게 했다. 명백히 열세에 몰린 것은 골 D 로저 쪽이다.

일단, 함대의 수부터 부족했다.

“해군이다!!”

“해군 대장 센고쿠와 영웅 거프가 왔습니다!!”

금사자 시키의 대함대 뒤에 도착한 군함과 후방의 대열이 대치 상태에 있었다. 센고쿠가 명령을 하기도 전에, 가프가 코트를 바닥에 벗어 던지더니 그대로 날아올랐다.

“잔챙이들은 다 비켜라!! 로저는 내가 잡는다아-!!”

“어이, 거프 멈춰 너 혼자 날뛰지……!

콰아아앙-!

가프가 날아가 주먹 하나로 시키의 함대 하나를 부숴버렸다. 거대한 범선이 반으로 쩌적 나뉘어 쿵 바다에 떨어졌다. 센고쿠가 뒷목을 잡았다.

‘굳이 따지자면, 시키 쪽이 더 싫긴 하니까….’

생각하던 스팬담은 설핏 고개를 기울였다. 그는 느리게 눈을 끔뻑였다. 생각해보니까 지금 로저가 살아있다.

“……헐, 사인받을 기횐가?”

작게 중얼거린 판은 눈을 크게 떴다.

사인을 받은 수첩을 과거의 나한테 주고 가면 어쩌면 아주 낮은 1%의 확률로 사인이 남아 있을 수도 있지 않나.

“뭐, 이따 보자고~….”

“쓸데없이 다치지 마라.”

“어이, 판. 이거 끝나고 저녁에 술 마실 거다! 잊지 마라!!”

저 서툰 말들이 전부 다치지 말고 무사히 보자는 격려라는 것을 알기에 스팬담은 미간을 문질렀다.

“……어휴, 내가 어쩌다 저런 미친놈들이랑 동기가 돼서는. 너희나 다치지 마라. 금사자 시키는 바닷물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니 맥주병 되지 않게 조심하고.”

솔직하지 못한 염려에 답하듯 퍽 퉁명스러운 염려가 길게도 이어졌다. 세 사람이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곤 각자 대함대를 향해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도 가볼까.’

가볍게 몸을 푼 스팬담도 느긋하게 단검을 꺼내 무장색을 둘렀다. 그 순간, 머릿속을 격통 하는 기억에 스팬담은 눈을 크게 떴다.

 

<야, 너희 알았음? 성이단 아빠 강간범인거? 감빵에도 다녀왔대.>

<헐, 미친. 그럼 쟤는?>

<강간해서 태어난 애라던데? 이번에 참관 수업 때 우리 아빠 왔었잖아? 우리 아빠 검찰 쪽에서 일하거든. 아는 척하길래 물어봤더니 말해주더라.>

<헐, 와. 존나 소름 돋아. 미친, 맨날 개 착한 척하더니……. 저 새끼도 강간하는 거 아님?>

<씨발, 더럽고 역겨워.>

 

“……아.”

작게 탄식하며 한 차례 눈을 끔뻑였다.

‘전쟁 중이야,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자.’

무장색이 풀렸는지 원래대로 돌아온 단검을 조금 더 꽉 붙잡았다. 이윽고 새까맣게 물든 단검을 물끄러미 보던 그가 월보를 써서 해군 상황이 불리해 보이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다른 생각을 하면서 몸을 움직이면 나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네놈…!”

근데 하필 몸을 날린 곳이 하필이면 직속 상사가 있는 곳이었다.

‘……그냥 다른 배로 튈까.’

스팬담은 귀찮은 낯으로 목덜미를 매만지며 견문색을 펼쳐 주변의 상황을 살폈다.

이 세계에 와서 스스로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된 게 있다면, 스팬담, 자신은 생각보다 이타적인 성격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해군에 한해서는 자신이 꽤 시니컬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최근이었다.

‘사이퍼 폴에선 깨갱거리지도 못하겠더니….’

어쩌면 지쳐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이 세계의 사람들은 그가 무슨짓을 하든 높은 확률로 기억하지 못할 테니 많은 걸 놔버려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면…….

‘내가 강해져서 그런가?’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의외로 사람의 자존감을 올려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애초부터 이타적인 인간은 아니었지만….’

단지 손을 뻗을 수 있으면 뻗었을 뿐이다. 나 혼자서 해결이 불가능하다면 바로 놓았다.

그는 생각하며 날아오는 총알을 가볍게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서 피했다. 달려드는 적의 머리에 단검을 꽂아 열쇠를 돌리듯 돌려 뇌를 헤집었다.

타악, 땅을 박차고 해적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래, 이타적이라기엔 지독하게도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이 바로 자신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시민의 목숨 대신 크로커다일과 도플라밍고의 편을 들고 그들을 모른 척하지 않았나.

‘…저 녀석들은 날 강제하지는 않지.’

쉼없이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스팬담은 무장색을 두른 다리로 상대의 머리를 걷어차 바다에 빠뜨리고 앞에 있는 놈의 멱살을 붙잡아 눈을 찌르고 날을 세워 머리 위로 그어 올렸다.

피가 튀어 머리 위로 쏟아졌다. 무심하게 옆으로 밀어버리고 다음 목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해군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많은 사람을 상대하며 살아서 그런지 그들은 스팬담의 영역을 존중하고 스팬담의 의견을 존중하며 그의 의지를 인정했다. 손아귀에 두려는 대신, 같은 동기로서, 앞으로도 오랜 시간 함께 할 동료이자 동반자로서 대해주는 것이다.

필요할 땐 손을 뻗어주고 한 번씩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도 각자의 할 일과 목표가 있기 때문인지 스팬담의 시간을 존중했다.

확실히 그 녀석들이랑은 다르다.

‘날 잡아두려는 놈들이랑은 다르지….’

발을 세게 굴러 날아올라 무장색을 두른 발로 머리를 거세게 내리쳤다. 움푹 파인 머리에 휙 다음 상대를 찾아 몸을 돌렸다. 보이는 족족 머리를 부수고 심장을 꿰뚫고 목을 그어냈다.

그러나 때때로, 참을 수 없이 자기 파괴적인 욕구가 솟아오를 때, 가끔은 누군가가 숨통을 조여줬으면 할 때가 있었다. 장담하지만, 저 세 녀석은 결코 못 할 일이다.

이놈들에게 트라우마를 고백하면, 분명히 트라우마를 해결할 방법에 대해 조언해주겠지.

그 트라우마를 이용해서 내 목줄을 잡아두려는 로브 루치네와는 반대로.

생각에 잠긴 채 본능적으로 몸만 움직이고 있으니 견문색에 잡히던 살기와 적의를 비롯한 기척이 사라졌다.

“……하아.”

천천히 걸음을 멈추자 찰박거리는 소리가 났다. 시선을 내리니 피 웅덩이에 신발 밑창이 닿아 있다.

자신을 보는 해군들이 새하얗게 질린 채 뒤로 물러서 있고 맨날 뒤통수를 때렸던 직속 상사는 괴물이라도 본 표정으로 얼굴이 새하얗게 표백되어 있었다.

슬쩍 뺨을 닦자 피가 흥건하게 묻어났다.

‘아, 수첩 젖으면 안 되는데.’

가슴팍을 더듬거리자 다행히 안쪽 깊이 들어 있었다. 거치적거리는 코트를 바닥에 내던졌다. 피에 절어서 무겁기도 해서 움직이기 불편하기도 했고.

그 사이 제 동기 놈들은 배 하나씩을 아예 부숴서 가라앉혀버리고 다음 배로 넘어간 후였다.

“역시 무장색만으론 별 효율이 없네.”

배를 부술 능력은 안 되고 말이다. 발로 연신 차서 부술 수야 있겠지만 시간 낭비였다. 검사도 아닌 터라 단검으로 검기도 날릴 수가 없으니 조금 불편했다.

“저, 전부 죽인 거냐…?”

“해적만요. 준장님, 저는 다음 배로 가보겠습니다.”

“……마, 마음대로 해라.”

괴물이라도 보는, 공포에 질린, 끔찍한 것을 보는 듯한 시선. 콜로세움에서 자주 보던 눈빛이었다. 패배가 확정된, 혹은 죽음이 확정된 콜로세움 참가자들의 마지막 버둥거림과 같은 눈.

다음으로 넘어갔다.

사람의 목숨은 한없이 덧없다. 판의 몸을 뒤집어쓴 탓인지, 죽이고 있는 게 전부 해적인 탓인지, 목숨은 가볍고 가벼웠다. 넘쳐흐르는 살기에 오래전에 잊었던 기억이 하나둘 떠올라 다리부터 기어올라 뱀처럼 서서히 몸을 조여댔다.

숨통이 조이는 기분이 들면, 하는 수 없이 스팬담은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살아남았으며, 그렇게 해야만 호흡할 수 있음을 몸소 깨우쳤으니까.

‘정을 주면… 안 됐을 텐데.’

스팬담은 다른 배로 뛰어가며 생각했다.

하지만, 버틸 수가 없었다.

떠오르는 기억에 당장이라도 목을 긋고 싶은 충동을 참아낸 것은, 저 세 동물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계에 달할 때쯤 불쑥불쑥 찾아와 곁을 내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잠을 자주는 놈들 때문에.

해적을 베고 베고 또 베었다.

온몸이 피에 절고 검은 검날이 붉게 물들면 물들수록 상대의 전의가 떨어지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부러 한층 더 잔인하게 굴었다. 내장을 헤집고 자비 없이 죽음을 선사하고 뇌를 헤집어, 머리를 터뜨린다.

자신은 가지지 못한 안식을 선사한다.

겁에 질려 날카로움을 잃은 무기의 끝은 제게 닿지 않는다. 생각하기 싫으니 본능에만 몸을 맡기는 것이다. 피비린내조차 인식해버리면 콜로세움에 서는 것 같아질 테니까.

‘추워….’

뚝, 더는 생각할 수 없다는 듯 가열하게 돌아가던 머릿속이 멈췄다.

‘춥네….’

뜨거운 피가 식어가며 체온을 빼앗기 때문인가?

천천히 고개를 젖혔다. 폭풍우라도 몰아칠 것처럼 하늘은 시커멓고 우중충했다.

‘있잖아, 루치. 사실 난…….’

“으아아아악!!”

고개를 내리자 검을 쥔 채 달려드는 해적이 보였다. 나는 그를 물끄러미 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죽고 싶어.’

이렇게 밑바닥까지 까발려진 채로 너희를 만나기보다는, 그냥 이 세계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약하지도 않고, 무르지도 않은 채로.

기왕이면 너희를 지켜줄 수 있는 이대로.

“어이, 네놈! 대체 뭐 하는 거냐.”

콰앙-!

유황이 들끓는 냄새가 났다. 열기를 품은 거대한 것이 태산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달려들던 해적은 어느새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채였다.

“아, 사카즈키.”

“정신 차려라!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 거지? 어디 아픈가? 아니면 또 기억이라도 떠올랐나?”

스팬담은 한 차례 눈을 깜빡였다.

“응.”

괜찮다고 할 여러 대답이 떠올랐지만 흘러 나간 것은 솔직한 한 마디였다. 거짓말을 할 여력이 없었다. 문득 내 첫 살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먼저 죽인 건.’

손을 뻗어 사카즈키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어머니였구나.’

태어난 것만으로도 죄라서 그랬구나.

세상 모두가 비난을 할 정도로, 그 비난을 누구도 막아주지 않을 정도로, 죄인은 애초부터 자신이었다.

“나 추워.”

“…….”

설핏 인상을 찡그린 사카즈키가 달려드는 놈들에게 마그마로 된 주먹을 날리곤 한쪽 팔로 내 어깨를 꾹 붙잡았다.

“판.”

“왜.”

“전투가 끝나면 안아줄 테니, 일단 지금은 싸워라. 포기한 것 같은 낯짝하지 말고 싸워. 싸우지 않고 포기하면 전부 끝난다. 네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네 그 얘기는 우리가 질리도록 들어줄 테니까 말이다.”

그가 판의 몸을 가볍게 돌렸다. 또 다른 해적이 달려들고 있었다.

“검을 쥐어라.”

뒤에서 들려오는 단단한 목소리에 단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대로 땅을 박차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베라.”

상대의 목을 향해 검을 횡으로 내리그었다.

“그래. 적은 베고 죽이는 거다. 잊지 마라. 지금 널 죽이는 건 너다. 싸워. 네놈은 약하지 않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것도 위로랍시고 하고 앉은 서툰 놈에게 어이가 없기도 했고, 그 말을 듣고 또 해적의 목을 벤 자신이 우습기도 했기 때문이다.

“처음이네.”

“뭐가 말이지?”

“약하지 않다는 얘기 들은 거.”

사카즈키는 미묘한 낯을 하곤 눈을 가늘게 뜨더니 코웃음을 치곤 몸을 돌렸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네놈은 강하다.”

“…그것도 처음이고.”

이 세계에선 말이다.

판은 그대로 다음 배를 향해 몸을 날렸다. 사카즈키는, 따라오지 않았다. 믿는다는 듯이.

‘…아, 큰일났다. 존나 정들어서.’

멀거니 생각한 판은 갑판에 내려앉아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누군가의 피가 하늘로 솟구쳤다.

‘말해볼까, 좀 도와달라고.’

발작할 것 같으니까 시간이 되면 리버 원이 있는 곳에 함께 가 달라고 말이다.

“어이어이, 어느 애송이가 감히 여기까지 쳐들어왔냐!!”

한창 생각하며 해적을 죽이는 도중, 등 뒤에서 묵직하고 사나운 위압감이 내려앉았다. 메케한 시가 냄새와 함께.

“좆됐네.”

생각나는 인물이 하나뿐이었던 탓에 반사적으로 욕을 짓씹으며 고개를 돌리자, 저보다 두 배 가까이는 더 커 보이는 사자처럼 덥수룩한 금발의 남자가 찡그린 낯으로 스팬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아버지가 크게 다쳐서 입원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 묻지마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 아이가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소식을 듣고 학교를 뛰쳐나와 곧장 입원한 아버지에게 향한 것이 얼마 전의 일이었다.

 

<그녀가 아니라, 네가 죽었어야 했는데……. 왜 네가 살아서…. 애초에 왜 태어나서…. 너만 아니었어도…… 그래, 애초에 너만 아니었어도 죽었을 일은 없을 텐데…!!>

 

이단은 다친 아버지가 화를 쏟아낼 곳을 찾지 못하고 제게 쏘아붙인 말을 떠올리곤 공원에 멀거니 앉아서 얼굴을 문질렀다. 꼴 보기 싫다고 병원에서 쫓겨났다.

매일 하루에 한 번은 방문하고 있지만, 매번 날 선 말만 듣고 되돌아오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고환 쪽이 크게 다쳐서 회복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아이는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를 오랜만에 꺼내 손에 쥐었다. 어릴 때는 자주 손에 쥐고 있던 것이다. 신님은 뭐든지 들어준다고 했으니까, 아이는 기댈 곳이 없을 때마다 낡은 십자가를 쥔 채 소원을 빌었다.

한 번도 들어준 적은 없지만, 신님은 아주 많은 사람의 기도를 듣고 있으니까 꾸준히 기도하다 보면 언젠가는 한 번쯤은 닿지 않을까 싶어서.

“이런, 이렇게 추운데 여기 앉아서 뭐 하고 있는 겐가.”

“아, 아저씨.”

생기 없는 낯으로 멍하니 아래를 보고 있던 시선은 게르니카를 보자마자 활짝 피어올랐다. 쿡 찌르면 자연스레 꽃을 피우는 잘 길든 무언가를 보는 기분이었다.

‘파블로프의 개였나?’

딱 그런 느낌이군.

‘스팬담이 안타깝다는 생각은 별로 든 적이 없는데….’

때때로 게르니카는 아이를 동정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더 어린아이를 임무로 인해 죽일 때도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없는데 말이다.

이 작은 아이는 스팬담이 저쪽 세계에서 위험한 일을 겪기 전의 모습이기 때문인지 훨씬 더 순수하고 솔직하게 그들을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감정을 숨기는 것엔 익숙했다. 스팬담과 똑같이.

“오늘은 야간 당직이어서 지금 끝났다네. 돌아가는 길에 이단이 보여서 아는 척을 한 거고. 무슨 일이 있었나?”

“……으음, 별로요? 아! 아버지가 조금 아파서 속상하기는 해요.”

“저런.”

게르니카가 안타까움을 가장한 낯으로 혀를 찼다.

비단 그렇게 만든 것은 그의 동료들이었고 이미 경과에 대해서도 보고를 들었으니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차라리 밖으로 꺼내두니 평소 아이가 어떤 폭언을 듣고 사는지 알 수 있었다.

“손에 쥔 건 뭔가?”

“아, 신님이요!”

“신?”

“네, 신님한테 기도하면 소원을 이뤄주실까 해서요. 지금은 바빠서 제대로 못 들으시겠지만, 언젠가는…… 한 번쯤은 들어주지 않으실까요?”

자그마한 속삭임에 손을 뻗은 게르니카가 아이의 머리를 느리게 쓰다듬었다. 커다란 손이 내어주는 온기가 마음에 드는지 아이가 눈을 감곤 몸을 가볍게 흔들었다. 뺨에 손을 올리면 자연스레 비비적거리는 것이 퍽 스팬담을 떠올리게 했다.

“무슨 소원을 빌고 싶은지 물어봐도 되나?”

“아빠가 저를 사랑해주시면, 그래서 같이 행복해지면 좋겠어요.”

“…그렇군, 다른 소원은 없나?”

“어, 엄청 강해지고 싶어요! 아빠가 화를 내도 다 받아줄 수 있게요. 제가 너무 약해서 다 못 받아주거든요.”

“……아빠랑 연관되지 않는 건 없나? 이단 군만을 위한 소원 말이다.”

“…으음. 저만의 소원이요? 아빠가 행복해지는 게 제가 행복한 건데….”

작게 중얼거린 아이는 툭, 고개를 기울이더니 느리게 눈을 끔뻑였다.

“아! 엄마가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엄마의 아픔까지 전부 받아주고 싶어요. 이제는 둘 다 받아줄 수 있는데….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해줄 수 있어요. 태어나서, 엄마를 불행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도 하고 싶고….”

“그것도 결국 이단군이 아니라 어머니의 행복을 위한 소원이군.”

게르니카의 말에 이단은 그러냐면서 으음, 어렵다고 작게 중얼거렸다. 소원, 소원, 하면서 중얼거리던 아이가 이내 모르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죽이지 못한 게 안타깝군.’

세계가 보호하고 있는 것인지, 그를 죽이려고 한 시도는 실패했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것이 가로막고 있었으니까. 마치, 외부인은 절대로 끼어들 수 없음을 알리듯이.

게르니카는 말없이 아이를 동글동글한 머리통을 내려다보았다.

“아저씨는 추운데 안 들어가세요? 잠도 못 주무셨죠?”

“아버지가 퇴원할 때까진 우리랑 같이 지내는 건 어떤가? 이단 군.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있을 테고….”

“네? 아니에요. 저 혼자서도 잘하고… 아버지가 주신 카드도 있어요!”

“맨날 편의점 라면과 삼각김밥으로 때우는 걸 혼자서 잘한다고 하진 않는다네.”

“학교에서 점심도 나오는데….”

“블루노의 식사를 그것과 비교하다니 실망하겠군.”

“……어, 어. 아니 그게 아닌데!”

“그러기로 하세. 걱정이 돼서 그러니 말일세. 아버지가 퇴원한다고 하면 돌려보내주겠네.”

게르니카의 말에 이단이 입술을 뻐끔거렸다. 거절하고 싶은데 어떤 방법으로 거절하면 좋을지 모르겠는 표정이었기에 그는 아예 아이의 손을 잡아 가볍게 당겼다.

“가지.”

“그, 정말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아서 그렇네. 자네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일세.”

게르니카의 말에 이단이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렸다. 어색하게 웃은 아이가 결국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밀짚모자 짜증나는구먼.”

드러누워 원피스 만화책을 보고 있던 카쿠가 내키지 않는 얼굴로 툭, 아이패드를 내려놨다. 뭔 놈의 운이 저렇게 다 몰빵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앗, 형아는 루피네 싫어요?”

“이단은 좋은감? 너무 운이 좋다고 생각하진 않고?”

“으음, 주인공이잖아요. 부러지지 않는 신념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흐음……, 근데 여기선… 흰 수염 해적단이 전부 와해되고 흰 수염과 불주먹도 죽고 도플라밍고도 임펠다운에 갇히는구먼.”

카쿠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가 아는 미래는 그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들이 여기에 오기 직전에 흰 수염이 발견됐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불주먹도 멀쩡히 살아있었고 흰 수염 해적단은 와해되지 않고 그냥 조용히 수면 아래로 사라졌을 뿐이다.

‘천야차는 말할 것도 없고.’

달라진 미래는 전부 이 작은 아이가 자란 스팬담이 손을 댄 것인가? 지금은 물어볼 수 없는 일이긴 했다.

“맞아요. 도플라밍고 죽어서 슬퍼요…. 도플라밍고도 불쌍한데. 어릴 때 그런 일을 당했잖아요. 왜 저는 맨날 악당을 좋아하는 걸까요?”

카쿠와 함께 소파에 누워서 뒹굴거리던 이단이 퉁명스레 말했다.

한 달째 같이 생활하며 퍽 편안해진 아이를 힐긋 본 카쿠가 입술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을 꾹 눌렀다. 이 아이는 스팬담이 아니었으니까 짜증을 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니던가.

“다른 좋아하는 캐릭터는 없는감?”

“음. 으음, 미호크요? 아, 스모커도 좋고… 또, 아! 파울리도 좋았어요. 아이스버그도!”

아이의 해맑은 목소리에 각자 일을 하던 이들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책을 읽던 로브 루치의 시선이 힐긋 이단에게 닿았다. 해맑은 얼굴에는 악의라곤 한 점도 없다. 식사 준비를 하던 블루노의 칼질 소리가 멎었다. 재브라가 뚝 굳고 스튜시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 메리 죽을 때 저도 엄청나게 울었어요…. 에이스 죽을 때도요…. 흰 수염 아저씨도…. 그래서 해군 대장들이랑 사이퍼폴은 별로 안 좋아해요…….”

물론 나름의 정의가 있는 건 아는데…….

아이가 재잘재잘 떠들었다. 주르륵 나오는 좋아하는 인물은 전부 해적이고 심지어는 루키인 캡틴 키드에 트라팔가 로우에 베포니 뭐니, 끊임이 없다.

이윽고는 아예 사황인 샹크스랑 그 부선장인 벤베크만까지 나왔다. 어떤 점이 좋은지를 줄줄 말하는 이단의 표정이 퍽 신나보여서 누구도 끊지를 못했다.

“아, 그리고 그 검은 수염 해적단 된 임펠다운 부간수장이었던 비의 시류도 좋아해요.”

“……그놈은 왜 좋아하는감?”

“강하고…! 멋져요! 시가도 멋있고…!”

이어지는 눈을 반짝이는 이단의 말에 로브 루치는 드물게 두통이 이는 느낌에 책을 덮었다. 그놈의 해적 사랑이 어디에서부터 이어졌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후후, 사이퍼 폴은 왜 싫은데?”

“어, 그냥요?”

“……야야, 그냥이 어딨냐 그냥이! 꼬맹아!”

“그렇지만, 누가 시키는 대로만 하잖아요. 자유롭지도 않고… 전 자유롭지 않은 사람은 별로…….”

이단이 설핏 어색하게 웃는 낯으로 살짝 고개를 저었다. 따지던 재브라가 팔짱을 낀 채 인상을 찡그렸다.

“사이퍼 폴은… 그냥 좀 불쌍한 거 같아요. 어릴 때부터 갇혀서 그렇게만 살아야 한다고 배운 거잖아요. 분명 평생 우는 법도 모를 테고 사랑을 받은 적이 없을 테니 사랑을 주는 법도 모를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좀 속상하기도 하고.”

“불쌍하다고.”

이단을 내려다보던 로브 루치가 나직하게 읊조렸다.

“루피를 보면 뭔가 지킬 게 있을 때마다 강해지잖아요. 그런 사람이 멋지잖아요. 크로커다일도 흰 수염 지키겠다고 거기서 루피 도와줬고 도플라밍고도 자기 패밀리 지키려고 애썼고…. 늘 어떤 이야기를 봐도 마지막에 이기는 건 사랑을 아는, 더 간절한 사람이니까요.”

이단이 제게 시선이 고정된 걸 느끼고 부르르 몸을 떨며 벌떡 일어났다. 머리를 긁적인 아이가 손을 휘휘 저었다.

“만화책 같은 거에 제가 너무 진지해졌죠. 어차피 다 종이 속 이야긴데요 뭐. 결말은 정해졌고 달라질 것도 없겠죠. 죄송해요.”

혹시 사이퍼 폴이 최애였냐고 묻는 목소리에 카쿠가 한숨을 내쉬곤 아이를 제쪽으로 끌어당겨 배 위에 툭, 올렸다.

“최애라네.”

“어, 죄송해요.”

“아니, 딱히 죄송할 건 없는 게야. 나중엔 자네도 사이퍼 폴이 제일 좋아질 수도 있으니까 말일세.”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가 그의 말이 옳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불쌍한 사이퍼 폴에게도 언젠가 자유로워지라고 나타나서 온몸을 부딪쳐가며 알려줄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사이퍼 폴에게 사랑해서 지키고 싶은 사람이 생길 수도 있지 않겠남.”

카쿠의 배 위에 안긴 아이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카쿠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곤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앞으로 얘기는 모르는 거니까요!”

“그런걸세.”

재브라가 불만스럽게 이단을 바라보다가 차마 한 마디를 더 못 붙이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불만은 나중에 스팬담에게 말해야지 아이에게 따질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아, 꼬맹아. 형 춥다. 그놈 품에 그만 안겨있고 이리 와라.”

“웃기는 소리 말게, 재브라. 내가 먼저 찜했다네.”

“찜 같은 소리하고 있네. 그만 끼고 돌아! 나도 좀 그 말랑거리는 거 끼고 있자!”

“싫구먼.”

코웃음을 친 카쿠가 고개를 휙 돌렸다. 아이가 웃음을 터뜨리는 걸 보며 카쿠도 낮게 웃음을 흘렸다.

이렇게 여유를 가지는 것도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새 친구를 사귀었다고 하지 않았었나?”

푸딩을 가져와 테이블에 올려주며 블루노가 물었다. 이단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엄청… 신기한 친구에요. 절 엄청 좋아해서 가끔 좀 놀라요.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였거든요. 중학교도 같은 데 갔어요. 신기하죠?”

“후후, 그건 꽤 신기하네. 이단이 엄청 마음에 들었나봐.”

“어떤 친구지?”

블루노의 질문에 카쿠의 위에 엎드려있던 이단이 고개를 갸웃했다.

“마하라는 이름의 재미교포…, 그러니까 미국계 한국인이에요.”

“……이름이 뭐라고?”

“마하요.”

로브 루치의 질문에 이단이 다시 한 번 대답했다.

“……미친 새끼.”

언제 돌아왔는지 외투를 입고 있던 지스몬다가 질린 낯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지스몬다의 말에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

 

시간은 흐르고 흘렀다.

어느새 고등학생이 된 이단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들과 만날 시간은 훨씬 줄어들었고 한층 더 속을 모르는 아이가 되어갔다.

그의 아버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고 이단의 삶은 그리 바뀌지 않았다. 대단히 짜증 나게도 그가 무사히 회복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그 이후로는 더 공격하거나 해를 입힐 수도 없게 됐다.

그래, 더는 그들은 아이의 신변을 비롯한 것에 개입할 수 없게 됐다.

“좆같네.”

한층 거칠어진 재브라가 혀를 찼다.

잘만 다니던 아르바이트를 얼마 전에 잘렸다고 하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그냥 사장님이 여력이 안 된다고 했다는 말만 했다. 웃는 얼굴로 그렇게 전하더라.

“하, 시발 저 새끼 거짓말 안하게 어떻게 하지?”

같이 있는 시간이 훨씬 적으니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좀 말랑말랑하게 만들어두면 볼 때마다 선을 긋는 게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뭐라고…?”

“귀가 막혔나요? 친구라는 놈들 사이에 이단의 아버지에 대한 범죄 이력 소문이 쫙 퍼져서 왕따라는 걸 당하고 있고 그걸 알바처에도 알린 놈들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거예요.”

“미친 새끼들인가, 씨발 전부 조져서…….”

재브라가 거칠게 머리를 쓸어올리다 멈칫했다. 여기선 그런 보복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저번에도 CCTV에 잘못 걸려서 큰일 날 뻔 했었다.

“아오, 좆같은 세계!”

재브라가 이마를 소파에 퍽 부딪쳤다.

“너는 애 안돌보고 뭐했냐?! 마하!”

스팬담의 곁에서 몇 년이나 지내면서도 연락 한 번 안 하던 놈이 혀를 찼다. 질린 얼굴 보기 싫어서 스팬담 독차지나 하려고 연락 안 했다고 뻔뻔스럽게 말하는 꼴에 말문이 얼마나 막히던지.

“씹, 나도 돌봤거든? 근데 나한테도 괜찮대. 피해 오니까 근처에 오지 말라고. 다른 새끼들 다 조져도 지랄이야. 내가 싸고 돌 때마다 나한테 몸 팔았냐는 소문까지 나더라.”

그가 대단히 불만스러운 낯으로 혀를 찼다.

“존나 해보지도 못했는데 소문만 무성해. 해봤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시발, 차라리 기정사실로 만들어서….”

“미친 새끼. 애한테 트라우마 만들 거냐?”

“부탁이네만, 자네들 싸우지 말게.”

게르니카의 말에 어린 마하가 혀를 차곤 고개를 휙 돌렸다. 지스몬다가 인상을 찡그렸다.

마하는 현재 고등학생으로 다른 부모의 밑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그 탓에 굳이 그들의 집에 합류하지 않았다. 지금 생활을 좀 더 즐기고 싶다나 뭐라나.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나마 오래 함께 활동하며 마하의 사정을 좀 자세히 알고 있는 게르니카가 그러라고 했다.

“아무튼, 몰라. 내가 수습할 수가 없어. 선생들까지 대놓고 무시하는데 뭘…. 일단 다구리 까는 거 볼 때마다 가서 막아주고 있긴 한데….”

애새끼들이 교묘해서 잘도 숨어서 괴롭힌다고 덧붙이며 마하가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혀를 찬 그가 얼굴을 문질렀다. 진심으로 때리면 죽을 게 뻔하니 그러지도 못하고.

“불쌍한 내 스팬담.”

마하가 소파에 얼굴을 박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도 뭐, 얼마 안 남았지? 그놈 말에 따르면 아마도 이단이는 20대… 초반에 죽었을 확률이 높으니까.”

뺨을 기댄 그의 중얼거림에 지스몬다를 비롯한 이들이 조용해졌다.

처음에는 스팬담을 위한 거래라고 생각하고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했으나, 그 아이와 정이 들지 않았다면 우스운 이야기다. 아이가 죽는 것을 태연하게 보는 것이 썩 쉽지 않을 정도로.

“네놈들이 선택한 길이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서슬퍼런 로브 루치의 냉정한 말에 그들이 인상을 찡그렸다.

“저 피도 눈물도 없는 괭이 새끼….”

재브라가 짜증스럽게 중얼거렸지만 웬일로 로브 루치에게선 반박이 들려오지 않았다. 팔짱을 낀 재브라가 천천히 고개를 젖혔다.

여러모로 참 찝찝했다.



<후기>

슬슬 과거편도 끝...나려나..

일단, 이제 판 세계의 진도를 팍팍 빼야겠네요.

시쟌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