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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도 기상이 늦은 편이지만 평소보다 더 늦은 시각에 눈을 뜬 여주.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나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음. 잠에 취한 건 아닌데 몽롱한 기운에 저절로 멍해졌음.



무슨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이 전혀 나질 않았음. 뿌옇게 흐려진 화면을 어떻게든 보기 위해 눈매를 잔뜩 찌푸린 채 집중해서 바라보는 느낌으로 꿈을 떠올려보려고 노력을 해봤지만 전혀 떠오르는 것이 없었음. 다른 때와 같이 그냥 기억이 안 나는 꿈인가 보다 하고 넘길 수 있을 법 한데 왜 이렇게 마음에 걸리는지 모르겠음.

너무 지나친 악몽에 저절로 기억을 지운 건가? 

어찌나 몸부림을 쳤는지 이불의 위아래가 뒤집어져 있었고 베개도 흩날려 있었음.


음. 악몽이 확실하군.


쉬 마렵넹. 화장실을 가기 위해 침대 위에서 내려와 한 발을 내딛으려 했는데 무엇인가가 발목에 휘감겨 있었음. 그 덕분에 미끄러워 넘어질 뻔했지만 재빠르게 균형을 잡아 몸을 바로 세웠음. 

아! 진짜 줜나 놀랐네. 자다 깨어났지만 순발력 아주 좋았어.

 원인 된 발목으로 시선을 옮기자 휘감겨 있는 것은 처음 보는 담요였음. 아무런 무늬가 없는 도톰한 회색빛 무지 담요. 나한테 이런 게 있었나..?


아. 근데 오줌 너무 마렵다; 일단 화장실.







"...아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고. 쫌 알아봐라."


"니가 모르는 걸 내가 우째 아는데. 그리고 내가 어떻게 알아 오노. 멍청한 소리 하지 마라."


"그럼 야 왜 이렇게 안 오냐고! 니가 자꾸 의심해서 애 도망가뿐거 아니가!"



"같이 그래 놓고 발 빼는 거 금지. 그래도 우리 이제 다 믿는데."



"...잠시만, 뭐가 이상하다."


"... 나는 오사무 니가 이상하다고 말 할 때마다 무섭다. 또 뭐가 이상한데?"


"내 진짜 도저히 그 애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나만 그러나?"


"뭔 그런 쓰잘떼기 없는 일로 분위기 잡고 난리고. 갸 이름...."


"어? 나도 모르겠는데? 어? 뭐지?"


"그러네... 나도. 기억 안 난다."


"이! 이 뭐시고! 와이라노! 뭐고! 뭔데! 이거!"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다. 걔 한테 무슨 일이 생겼거나... 아님,"


"이젠 이쪽으로 영원히 못 오거나."


"진짜냐고."


그 아이를 못 본 지 벌써 한 달이 넘어가고 있는 시점이었음. 

어제까진 분명 그 아이의 이름을 기억했던 것 같은데 왜 오늘은 도통 기억이 안 나는지 너무 이상했음. 그 기묘함에 이야기의 방향은 저절로 추측으로 이어졌고 그 아이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거나, 아님 이제 우리가 있는 이 곳으로 오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결론에 도달했음.



"아. 맞아. 지난번 걔가 내 휴대폰 썼을 때 이름도 남아 있을 거다. 번역기 썼잖아. 로그 찾아보면 아마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맞네! 스나린 니 쫌 똑똑하노. 궁금하다. 빨리 찾아봐라."


"나와?"


"아니. 안 나오네. 걔 이름만 일부러 지운 것 처럼. 이름 들어가 있는 부분만 없다. 공백임."



"그 아이의 흔적을 지우려고 모든 것들이 다 움직이는 것 같다. 우리도 조만간이란 소리가."



"그 신이라는 새끼 존나 취미 고약하네. 역시 그 애보단 신 쪽이 변태라는 말이 더 자알~ 어울리네."


어떻게 이렇게 황당할 수가 있냐 말임. 하필 우리 앞에 그 아이를 데려와 놓곤. 이제 좀 친해져서 정이 들려고 하는 찰나였건만 그 우주를 만든 신의 의지는 참 티슈보다 더 가벼운 모양이었음. 줘놓고 뺏는 거 진짜 치사한 거 모르나? 신이면서?

어디서 그런 말을 본 적이 있었음. 신은 '개미농장'을 관찰하는 아이이다. 신은 전지전능하지만 인간사에 관여하지 않는 게 암묵적인 룰 같은 게 아니었나? 


그러나 한낱 인간에 불과한 우리가 어떻게 신의 의지를 이기겠음. 이렇게 어이없게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을 하나 둘 씩 빼앗기곤 결국 그 아이가 있었는 것 조차 잊어버리겠지. 잊어버리겠지. 잊어버리겠지...



"좀. 짜증나노. 나 그 애 잊어버리기 싫다."


"... 뭔가.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그 애는 우릴 알고 있는 상태였다. 우리도 그 애를 알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겠나? 전혀 없을라나..."


"근데 우리가 걔에 대해서 아는게 너무 없다. 이름 말곤 없었는데 그 이름을 잊어서..."


"일단 생각나는 거라도 메모 해 놓을까? 그럼 이건 안 지워지겠지. 이런거 가진 사람이 수천 수만 명일 텐데 이거까지 지우겠나. 그 양아치가."


아츠무에겐 이제 그 '신'이 란 존재는 취미가 고약한 변태이자 양아치가 된 모양이였음.

그리고 저건 아츠무가 내놓은 것 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생각이였음. 이름은 몰라도 외적인 것 이라던지 좋아하던 것, 말투나 목소리, 자주 입던 복장. 어떻게 보면 겹치는 사람이 없을 수가 없는 부분이긴 했음.



"영화보면서 먹던 팀탐을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패키지를 유심히 보더라고."



"이건 내 추측인데 연상인 것 같드라. 뭔가 말하는 늬앙스도 그렇고. 성인 인 것 같음. 갓 20살 일 수도 있고."


 

"의사표현은 좀 솔직한 편인 것 같지? 좋으면 얼굴에 확 들어나는 편이긴 하드라. 볼도 잘 붉어지고."


셋은 열심히 자신의 기억을 끄집어내기 시작했음. 걔는 사실 이걸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아니다 저거다. 아까까진 짜증이 치솟았는데 이름 모를 그 아이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하니 분위기가 풀어졌음.


"잊어버린 건 어쩔 수 없지. 이건 불가항력이니까. 우린 앞으로의 그 아이를 찾아내면 된다." 


"일단 한국인 이란 건 기억에 남아 있어서 다행이면서도 찾기 어렵다는게 문제네. 아무래도 외국이니까."


"요즘 번역기 좋으니까 찾을 수 있을 수도 있다. 다만 어디서 부터 찾아야 되냐 가 문제겠지. 서치가 안 될 가능성도 높고."


잊어버린 것 은 어쩔 수 없었음. 우리가 원하지 않았건만 그렇게 되어버렸으니까. 그리고 지금이 아니라도 결국엔 그렇게 되어버릴 테니까. 망할 신 때문이겠지만. 여튼 지나간 것에 매여 있을 순 없었음. 우린 지금 당장이 급했고, 앞으로 가 문제였음.

그렇게 셋은 어떻게든 잊어버린 그 아이를 찾기 위해 남은 시간을 쓰기로 정했음. 왜 남은 시간이냐고? 오늘은 이름이지만 또 언제일지 모르는 다음에는 목소리, 또 어느 날 갑작스럽게 함께 나누었던 대화 내용을. 

언제 즈음 일지 지정 할 수 조차 없는 갑작스러울 그 마지막 날은 그 아이 존재 자체가 될 테니까. 우리의 이 불안정한 기억은 시한부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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