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은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N가 헌터에게 암살을 당할 뻔해서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L은 솔직히 다치든 말든 상관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녀가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은 남달랐다. 가볍게 다친 것도 아니었고 병원에 들어갔어야 할 정도의 중상이라는 소식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부모님이 자신에게 의뢰를 했을 때부터 의문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N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 때마다 의문이 들었다. 헌터의 능력으로 알아낸 N에게 부상을 입혔던 다른 헌터를 찾는 것은 앉아서 밥 먹는 수준보다 더 쉬웠다. 얇은 종이 자락에 적혀있는 아직 마르지 않은 잉크 펜을 바라보던 L은 대충 훑어보더니 그대로 종이를 손으로 구겼다.



" 망할 개 주제에, 제 먹이를 건드리는군요. "



L은 구겨진 종이를 쓰레기통에 던져넣으며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두꺼운 손으로 앞머리를 쓸어넘겼다가 다시 원위치시킨 L은 그녀에게 부상을 입힌 헌터에게 배가 되는 고통을 선사해 줄지, 아니면 그 헌터를 고용한 그녀의 부모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선사해 줄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L은 결국 둘 다 처리한 뒤 N를 보러 가기로 결정 내리고 말았다. 어두운 밤보다 더 어두컴컴한 골목길. 그 골목길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둡게 차려입은 헌터 한 명이 두려움에 떨며 황급한 발걸음을 이끌고 더더욱 안으로 들어갔다. 새까만 어둠 속에서 금빛이 반짝거리자 황급한 발걸음으로 도망만 가던 헌터의 몸에 하나둘씩 상처가 그어가기 시작했다. 피가 터져가는 소리가 들리며 헌터는 비틀거렸다.



" 어둠 속에 숨으세요. 저만 찾을 수 있도록... "



평소와 같은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그의 목소리 톤에서 살짝 격양되어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마치 일부로 단번에 죽지 않는 급소를 피해 가는 듯한 칼부림은 두려움에서 도망치는 헌터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이었다. 차라리 죽여달라 빌고 싶어질 정도로 숨통이 조여오는 것을 느꼈다. 헌터는 LW가 자신을 왜 공격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길이 없었다.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의뢰 같은 건 진즉에 전부 없애버렸을 텐데, 헌터의 생각은 그리 오래갈 수 없었다. 생각을 하려고 하면 치고 들어오는 칼부림에 생각이 끊길 뿐이었다. 아슬아슬한 경계선처럼 겨우 숨만 붙어있는 헌터를 어두운 골목길에서 지켜보며 서 있던 L은 조심스레 다가가 쓰러진 헌터의 발목을 지긋이 내리눌렀다. 그러자 골목 안에서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낮고 멀리 퍼져갔다. 발목을 눌러대던 L은 그대로 발을 위로 올려 헌터의 목을 꾹 눌렀다.



" 끄아아...!! "

" 이제 두 번 다시는, 제 먹이에 손 대지 마세요. "



사나운 듯한 L의 목소리가 낮고 서늘하게 골목길에서 울렸다. 얼굴에는 눈물범벅, 몸에는 피범벅이 된 헌터가 거세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L은 그 모습에 만족한 듯 발길을 치웠고, 빠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L이 다시 나타난 것은 헌터의 일로부터 멀지 않은 날이었다. L은 그녀의 부모님을 찾아뵙기 전, N가 복수를 원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듣고자 그녀가 입원해있다는 병원에 도착했다. 비록 이른 새벽의 시간이었지만 L은 소리소문없이 조용히 N의 병실까지 흘러 들어갔다. 아직 그 누구도 일어나지 않을 이른 새벽 시간에 L은 한평생 올 리 없다고 생각했던 병실에 들어와 침대에 누워있는 N를 바라보았다. 부러졌다고 하던 팔은 깁스를 하고 있었고, 도망치면서 접질린 발목에는 붕대가 감겨있었다. 물론 얼굴과 팔다리 할 것 없이 여기저기 성하지 않은 몸 상태를 보자니 마냥 측은한 사람으로만 여기기도 그런 상태였다.



“일어나세요, N.”

“으음...”



L은 발걸음 소리조차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다가섰다. 깊게 잠들어있는 N의 모습을 보던 L이 그녀의 곁에서 머리카락을 살포시 쓸어주었다. 그러자 N가 앓는 소리를 내며 잠에서 깨어나려고 하자 L은 흠칫 놀라다가 조용히 사라졌다. L이 사라지고 나서 잠에서 깨어났던 N가 조용한 병실을 둘러보더니 열려있는 창문과 바람으로 인패 펄럭거리는 커튼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낸 후 졸린 눈을 비비며 누군가의 이름을 읊조렸다. 창문 밖에서 듣고 있던 L은 피식 바람 새어 나가는 소리로 가볍게 웃은 후 빠르게 사라졌다. N는 다시 그 이름을 읊조리다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다시 베개에 머리를 뉘인 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L...?”



이른 새벽의 날카롭도록 차가운 공기가 L의 폐 안쪽까지 들어갔다. 숨을 내뱉던 L은 창문 밖에서 다시 잠드는 N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잠이 들었던 줄 알았던 N가 어느새 다시 일어나서는 L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창가에 고개만 내민 채로 L을 바라보며 말간 웃음을 보여주던 N의 모습에 L은 절로 움찔 몸을 떨어냈다. 놀란 티를 내지 않았지만, 그는 실상 조금 놀란 정도였다. 뒤늦게서야 L은 자신의 몸에서 피 향이 짙게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금세 벗어날 생각을 했지만 다급하게 자신의 가명을 부르는 그 목소리에 옮겼던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떨리는 그 목소리에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 L...!! "

" ... 무슨 일입니까, N. "

" ... 내 곁에 있어 주면 안 돼요? "



슬그머니 옮기려던 발걸음도 멈추고 말았다. 곁에 있어 달라는 그 작은 떨림에 L은 평소처럼 무시할 수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없었다. L은 자신의 발치에 묻어난 핏자국에 짧은 한숨을 내뱉고는 난간에 신발을 직직 문질러대며 묻었던 피를 닦아냈다. 깨끗하게 닦이지 않는 핏자국에 짜증을 부리던 L이 조금 더 떨어진 후에 N를 바라보며 말했다.



" ... 지금의 저는 위험합니다. "

" 당신이라면 괜찮아요. "



지금 제 상태를 알고도 괜찮다고 말하는 N의 말에 L은 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정확히는 말을 이어갈 수 없었던 것이었지만. L은 자신이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바닥에 버리고는 N에게 손을 저어댔다. 안으로 들어가라는 제스처였다. 그걸 알아들은 N는 L을 향해 빙긋 웃어주더니 빼꼼하니 내밀었던 고개를 도로 창문 안으로 넣었다. N의 얼굴이 완전히 창문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L 역시 따라 들어갔다. 병원복을 입고서 해맑게 웃고 있는 그 얼굴이 어쩐지 L에게는 그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한들 깁스를 한쪽 팔과 다리로 누가 누굴 걱정한다는 것인지, 얼굴에 상처만 잔뜩 달고서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L의 기분을 건드렸다. 못마땅한 표정이 표면에 드리웠지만, 부러 티를 내지 않았다.



" 잠은 다 잤답니까? "

" L의 향이 났는걸. "



L은 향이라는 말에 의문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나는 것이라고는 피 향뿐일 테데, 어째서 그녀에게는 자신의 향이 난다고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절뚝거리며 아픈 다리를 이끌고 침대에 눕는 모습을 바라보고는 곁에 서서 부축해주었다. 조심하라는 듯이 팔을 잡아주는 것에 N 역시 그가 속으로는 자신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달빛에 반사되어 은은하게 빛이 나는 금발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무언가 몽환적인 느낌까지 들었다. N는 자신을 침대에 눕혀주는 L의 손을 붙잡았고, L은 금방이라도 떠날 채비를 하려다가 멈추고서 결국 병실에서 구비해두는 일회용 의자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자리에 앉은 L은 습관처럼 다리를 꼬아내며 앉았고, N는 그 모습에 익숙한 듯이 쿡쿡 소리 내 웃었다. 깁스하지 않은 팔 쪽으로 L에게 손을 내밀었다.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훈련이 잘된 강아지처럼 L의 손이 N의 손바닥 위로 올려졌다.



" 오늘만 여기 있어 줘요. "

" ... 그러게 누가 아프랍니까? "

" 그렇지만... 처음엔 아픈 사람인 줄 알았는걸요. "

" 하... 다음부턴 혼자 다니지나 마세요. "



L은 자신의 손을 잡아주는 N의 손을 꽉 잡으며 걱정되지만, 어딘가 건방져 보이는 듯한 말투로 말을 꺼냈다. 다치지 말라는 말을 참 어렵게도 돌려서 말하지만, 그 속내를 속이 깊은 N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L은 N의 어깨를 잡고서 조심스럽게 눕혀주며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렸다. 그러고는 가슴께를 토닥여주며 마치 어린 동생을 돌보는 듯 재우려하는 모습에 N는 못마땅할 뿐이었다. 아직 좀 더 그와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L은 자꾸만 N를 재우려고 하니 할 말은 없었다. N가 누워서 L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 전치 4주래요. "

" ...허이구, 식사를 제대로 안 챙겨서 그런 겁니다. "

" 푸흐, 식사는 L도 안 챙기잖아요. "



L은 N의 말에 꼬투리를 잡을 수 없었다. 헌터의 일이 복잡하고 힘겨운 일들이 대다수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굶는 현장이나 가끔, 아니 조금 자주 일어났는데. 그걸 N가 알고서 말한 것 같았다. 맞는 말이니 반박할 수 없었던 L은 그저 조용히 입술을 꾹 다무는 것이 전부였다. L은 마른기침을 두어 번 하고 나서는 제 두껍고 큰 손으로 N의 두 눈가를 가려냈다. 그녀가 보았으면 하는 건 좋은 것이었고 좋은 향만 맡았으면 했다. 헌터인 자신이 줄 수 있는 게 몸 고생으로 받아서 모아둔 돈뿐이라는 것을 그녀가 좋아할 리 만무하다. L이 깊은 한숨을 내 몰아쉬자 N는 자신의 눈을 가린 L을 걱정했다. 걱정이 한가득 묻어나오는 그 목소리에 L은 이 감정이 무어라 확정지을 순 없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잘 알 수 있던 건 이 감정 중 하나는 소유욕이었다. 사랑과 애정보다 이 감정을 먼저 알아버린 지금, N에게 대하는 행동이 조금이나마 달라지겠지만 그 행동으로 그녀가 행복해질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L은 자신의 손을 잡으며 제 행동에 대해 의문을 가진 N의 반응을 바라보지만 이내 눈을 돌리며 N의 눈을 가려냈던 손을 치워주었다.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N는 그저 저에게 웃어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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