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에서 작성했던 그리스 신화 관련 타래들을 백업하는 글입니다. 오탈자 수정 등을 제외하고 글의 내용은 거의 그대로 유지했지만, 일부 인용문을 추가 및 수정했습니다.


2023.12.22. 〔아폴론의 연애가 실패하는 이유〕 타래

 아폴론은 연애를 못하는 신으로 유명합니다. 다프네, 캇산드라, 코로니스, 휘아킨토스 등등… 연애를 하기만 하면 버림받거나 배드엔딩으로 끝난다는 것이죠. 어째서 아폴론은 연애를 못할까요?

 근데 애초에 아폴론이 연애를 못하는게 맞긴할까요? 확증편향이진 않을까요? 아폴론을 연애 못하는 신 취급하기에는 사실 멀쩡하게 낳은 자식이 무척 많기는 합니다. 그리스 남신들이 늘 그렇듯이요. 다만 그런 경우에는 별다른 에피소드가 없는게 대부분입니다. 그냥 누구에게서 누구를 낳았다~라고만 언급되는 정도지요. 실질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연애 대상들은 대체로 불행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 어째서일까요?사실 다양한 연애 실패 사례를 한 가지 원인으로 묶는 게 맞을지도 의문스럽지만, 흔히 알려진 것처럼 '이성의 신'이기 때문일까요?

 솔직히 전 아폴론을 "이성의 신"이라고 칭하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의 신"이라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신화/숭배/호칭/도상 등에서 나타나는 신의 특성을 쉽게 설명하기 위한 현대적 표현일 뿐입니다. 아폴론을 "이성의 신"이라고 표현할 때 사람들이 의미하는 것은 아폴론의 어떤 특성일까요? 한 가지 언급하자면 아폴론의 예언이나 의술은 그다지 이성적인 분야는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사람들이 "이성의 신"이라는 표현을 쓸 때 그 이유를 깊게 생각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이성의 신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별로 적절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아폴론의 신성에서 원인을 찾는다는 접근법은 나쁘지 않겠죠. 아폴론은 다양한 분야를 관장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음악, 예언, 궁술, 역병, 의술 등등… 아폴론은 어쩌다 이런 다양한 역할을 가지게 되었고, 그중 어떤 역할이 아폴론을 연애 실패로 이끈 것일까요?

 잠시 눈을 돌려서 아폴론의 가족, 아르테미스를 봅시다. 아르테미스는 처녀 신입니다.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은 다르지만 어쨌든, 두 신 다 연애와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공통적입니다. 예전에 제가 아르테미스가 처녀신인 이유는 '혼전순결' 때문이라고 설명한 적 있습니다. 정확히는 아르테미스가 '결혼 전의 소녀'기 때문에 처녀신이라는 것이죠. 같은 설명을 아폴론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아르테미스가 여성을 성장시키는 신이듯이, 아폴론은 남성을 성장시키는 신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르테미스가 여성을 죽이는 신이라면, 아폴론은 남성을 죽이는 신입니다. 아폴론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은 신'입니다(『일리아스』 20.39). 고대 그리스의 청소년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지역 강에게 머리카락을 잘라서 바쳤기 때문에,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음'은 아폴론의 영원한 젊음을 나타냅니다. 『일리아스』에는 머리카락을 자르지않은 남자가 한 명 더 나오는데, 바로 아킬레우스입니다(23.240). 아킬레우스가 아폴론에 의해 죽으리라 예언되는 것은 물론 우연이 아니죠(22.359).

 아폴론의 기원은 오랫동안 논란거리였고,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워낙 다양한 성격을 가진 신이니까요. 학자들은 아폴론의 성격을 크게 세 가지 부분, 근동에서 유래한 면, 크레테에서 유래한 면, 도리스족에서 유래한 면으로 나누어 봅니다. 아폴론의 이름은 그리스인을 구성하는 주요 부족 중 하나인 도리스족 언어에서 유래했다고 생각되며, 이 이름은 남성의 성장이라는 아폴론의 역할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도리스족 방언에서 아폴론은 '아펠론'이라고 불립니다. 도리스족 국가들에선 공통적으로 '아펠라이'라는 행사가 존재했고, 이 행사는 남자 성인들의 모임이자 젊은이들이 사회에 통합되는 성인식의 역할을 겸했습니다. 아폴론은 바로 그 아펠라이에서 유래하여, 청소년의 성인식을 담당하는 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폴론은 자주 '뤼케이오스', 늑대의 신이라고 불립니다. 이 별명은 아르테미스가 야생동물의 신인 것과 일맥상통하며, 청소년 성장에 대한 맥락에서 중요합니다. 성인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청소년이 짐승을 가장하는 것이 고대 그리스 성인 입문의례의 일반적인 특징이었다고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아폴론은 음악의 신입니다. 아르테미스는 어떨까요? 의외일 수도 있지만, 아르테미스는 춤을 좋아하는 신이라고 자주 언급됩니다(「호메로스 찬송가」 5.20, 27.15, 「아르테미스에 대한 칼리마코스 찬송가」 등에서). 청소년의 성장을 담당하는 신들이 노래와 춤을 즐기는 것은 그것들-무시케(Mousike)가 고대 사회에서 청소년 교육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청소년들은 모여서 합창단을 이루어 시를 암송하고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전에 언급한 아르테미스를 위한 춤도 같은 맥락이죠.

 두 신 모두 활을 다루는 신이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활은 전쟁터에서 정면으로 싸우는 전사를 위한 무기가 아닙니다. 더 '주변적인' 무기죠. 활은 더 야생에 가까운 무기이고, 앞서 말한대로 야생은 과도기의 청소년을 위한 무대입니다.

 정리하자면, 아폴론이 연애를 실패하는 이유는 아르테미스가 처녀인 이유와 같습니다. 아르테미스가 영원히 결혼하지 않는 소녀라면, 아폴론은 영원히 결혼하지 않는 소년입니다. 여자인 아르테미스와 달리 남자인 아폴론은 활발하게 만남을 가지지만, 결코 가정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는 없습니다. 이 두 신은 모두 가정을 만들기에 너무 젊습니다. 그렇기에 두 신은 직접 연애를 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기와 같은 젊은이들을 보호하고, 성장시키는 것이 남매 신의 역할이었습니다.

참고문헌
Walter Burkert 《Greek Religion》
Jan Bremmer 《Greek Religion》
Fritz Graf 《Apollo》


2024.1.5. 〔제우스와 헤라는 어떤 관계인가〕 타래

 그리스 신화를 조금이라도 읽었다면 제우스와 헤라가 부부라는 사실을 모를 수는 없습니다. 제우스가 바람피고, 헤라가 복수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니까요. 둘이 부부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정작 이 커플은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오히려 헤라를 제우스에게서 떨어트리는 연성도 종종 있었죠. 그러한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제우스가 남편으로서 별로기 때문이겠죠. 제우스의 바람기 때문에 둘의 부부관계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과연 실제로 제우스와 헤라는 사이가 나쁜 부부일까요?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제우스의 아내는 다른 누구도 아닌 헤라였습니다.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다른 여신은 도도네에서만 숭배된 작은 여신 디오네 정도였는데, 이 여신은 오래된 신화에서 제우스의 아내였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뮈케네 문명 시절에는 이미 헤라로 대체되었습니다.

 아무튼 신화에서 제우스의 헤라 이전 아내를 종종 언급하긴 하지만, 제우스가 최종적으로 정착한, 그리고 숭배에서 함께 언급될 수 있는 여신은 오직 헤라뿐이었습니다. 제우스는 헤라에게, 헤라는 제우스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일리아스』에는 제우스와 헤라가 자주 함께 등장하지만, 부부답게 사랑하는 모습은 별로 없습니다. 내내 티격태격하죠(1.540, 4.20, 15.35, 16.440). 중요한 지점은, 제우스와 이렇게 자주 싸우는 신은 헤라뿐이라는 사실입니다. 헤라는 제우스에게 대들고, 반박하고, 대항하는 유일한 신입니다. 하지만 둘의 싸움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일리아스』 1권의 끝에서 말싸움을 벌이던 제우스와 헤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싸움을 멈춥니다. 신들 사이에는 ‘그칠 줄 모르는 웃음’이 피어나고, 밤이 되자 둘은 한 침대에 잠듭니다.

 제우스와 헤라는 계속해서 싸웁니다. 그러나 싸움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입니다. 이것이 제우스와 헤라 부부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헤라는 제우스와 “이혼”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시대에 진짜 이혼은 아니었고, 헤라가 올륌포스에서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지만요. 그러자 제우스는 재혼한다는 소문을 퍼트려서 헤라가 돌아오게 만듭니다. 제우스와 헤라는 화해하고 재결합합니다(파우사니아스 9.3). 이 이야기는 단순히 한 번의 에피소드로 끝나는 신화가 아니었습니다. 보이오티아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제우스가 헤라를 끌어들이기 위해 했던 가짜 결혼식을 재현하는 의례를 진행했습니다. 제우스와 헤라의 다툼과 재결합은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 부부의 특징입니다.

 제우스와 헤라는 계속해서 싸우며 서로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합니다. 헤라는 제우스의 아내기 때문에 신들의 여왕입니다. 한편 제우스는, 물론 그는 헤라가 없어도 신들의 왕이겠지만, 그 자리를 공고하게 해주는 것은 아내인 헤라의 존재입니다. 물론 헤라는 제우스의 누이입니다. 즉, 제우스와 마찬가지로 왕실의 혈통을 잇는 여자입니다. 메넬라오스가 헬레네와 결혼해 스파르타의 왕이 되듯이, 제우스는 헤라와 결혼해서 신들의 왕일 수 있게 됩니다.

 둘의 관계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물론 제우스의 외도입니다. 헤라는 늘 제우스의 바람 상대와 자식들을 괴롭힙니다. …라는 것이 일반적인 이미지이지만, 정말로 그럴까요?

 헤라의 괴롭힘을 받는 사생아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호메로스 시에는 이미 헬레네, 디오스쿠로이, 미노스, 사르페돈, 암피온과 제토스 등이 제우스의 자식으로 등장하지만, 이들이 헤라의 괴롭힘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호메로스에서도, 후대 이야기에서도 전해지지 않습니다.

 더욱, 초기 신화에서 헤라의 괴롭힘은 바람 상대가 아닌 자식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유명한 사례인 칼리스토의 경우, 초기 버전에선 헤라가 등장하지 않고, 아르테미스만이 관여합니다(헤시오도스 단편 163).

 헤라가 바람 상대를 건드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식의 탄생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호메로스 찬송가」에서 레토는 출산 장소를 찾아 에게해를 떠돌지만, 여기에는 헤라가 관여하지 않습니다. 헤라는 출산의 신 에일레이튀이아를 붙잡아, 아폴론 탄생을 막을 뿐입니다. 『일리아스』에선 헤라클레스와 사촌 에우뤼스테우스의 출생 순서를 바꿔, 헤라클레스가 고단한 삶을 살게 합니다. 더불어, 헤라의 박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물론 디오뉘소스입니다. 디오뉘소스의 어머니 세멜레가 헤라에게 속아, 제우스의 본모습을 보고 타죽은 이야기는 유명하죠. 디오뉘소스는 올륌포스의 신이 될 때까지 갖은 고생을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헤라는 제우스의 ‘필멸의’ 자식들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헤라의 관심을 얻는 것은 불멸을 얻고, 올륌포스의 일원이 될 아들들이죠.

 사실, 헤라의 분노가 향하는 곳은 사생아만이 아닙니다. 직접 낳은 헤파이스토스를 내던지는 것 또한 헤라입니다(『일리아스』 18.395). 아테나의 탄생에도 헤라는 분노하지만, 분노의 이유는 아테나가 아닙니다. 제우스가 스스로 자식을 낳음으로써 침해된 아내의 권리입니다(『신들의 계보』 927). 헤라는 왜 ‘분노’할까요? 헤라의 분노는 어떻게 작용하나요?

 헤라는 임신 도중의 세멜레를 죽였습니다. 그 결과, 디오뉘소스는 필멸의 어머니가 아닌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자라나, 더욱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한 버전에서, 제우스는 디오뉘소스가 필멸의 어머니가 아닌 불멸의 몸에서 태어나도록, 의도적으로 세멜레를 죽입니다(디오도로스 5.52.2). 표면상의 동기는 다르지만, 둘은 같은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계략에 의해 늦게 태어나, 자기보다 못한 사촌 에우뤼스테우스에게 지배받게 되었습니다. 또 헤라는 헤라클레스가 쓰러트릴 괴물들을 직접 길러냅니다(『신들의 계보』 314). 그 결과 헤라클레스는 엄청난 위업을 달성하고, 가장 위대한 영웅이자 신이 됩니다. 물론, 그의 이름은 “헤라에 의한 영광”입니다(디오도로스 4.10.1).

 헤라는 아테나에 대한 대항으로, 혼자서 제우스에게 대적할 괴물 튀폰을 낳습니다(「호메로스 찬송가」 3.305). 제우스는 튀폰을 제압하고 세상의 확고한 지배자가 됩니다. 튀폰을 물리침으로써, 더 이상 제우스에게 대적할 적은 없습니다.

 헤라의 역할은 명확합니다. 올륌포스의 안주인으로서, 헤라는 ‘가족(oikos)’을 관리합니다. 헤라의 ‘분노’는 제우스의 아들들이 ‘가족’에 통합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입국심사입니다. 나아가 헤라가 일으키는 분열은, 그것이 봉합되는 과정을 통해서, 제우스의 통치를 더욱 공고하게 합니다. 아내이자 누이이자 적으로서, 헤라는 제우스와 계속해서 싸우고, 계속해서 함께 합니다. 그렇게 제우스와 헤라는 신들의 왕과 왕비로서 영원히 군림합니다.

참고문헌
Vinciane Pirenne-Delforge, Gabriella Pironti, Raymond Geuss 《The Hera of Zeus》


2024.1.16.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에 관해서〕 타래

성벽 모양 왕관을 쓴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상.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는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상.'제우스 라브라운도스' 봉헌 부조.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는 충격적인 비주얼로 유명합니다. 다산과 풍요의 신이라 수많은 가슴이 주렁주렁 달린 신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쉽게도 저 문장에는 맞는 말이 전혀 없습니다.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는 다산과 풍요의 신이 아니고, 저기 달려 있는 것들은 가슴도 아닙니다.

 저것이 가슴이라는 인식이 최근에 생긴 것은 아닙니다. 고대인들도 저것을 가슴으로 인식했습니다. 이교에 적대적인 기독교 작가들에 의해 (아마도 의도적으로) 말이죠.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는 유명하여 고대 기록에서 자주 언급되지만, 아르테미스의 “가슴”을 언급하는 것은 기독교 작가들뿐입니다. 물론 이것만으론 가슴이 아니라는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것이 가슴이 아니라는 증거는 그 외에도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아르테미스 “가슴”의 묘사는 다른 여성상들의 가슴 묘사와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거의 대부분 유두도 없으며, 일부는 흉부가 아닌 배 부분에 달려 있습니다.
  2. 일부 작품은 아르테미스의 피부(얼굴, 손, 발)를 검게 묘사했는데, “가슴”은 피부가 아닌 옷과 같은 색입니다.
  3. 아르테미스 “가슴”과 유사한 묘사가 남신인 ‘제우스 라브라운도스’의 묘사에서도 나타납니다.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오늘날 남아있는 신상들이 헬레니즘~로마 시기의 복제품이라는 사실입니다. 본래 에페소스 신전의 신상은 탈부착 장신구로 치장된 나무 신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2에서 아르테미스의 검은 피부는 나무 신상을, 흰 옷은 탈부착 장신구를 구분해 나타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가슴"이 장신구라면 3에서처럼 남신에게 나타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죠.

 문제는 저게 가슴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아쉽게도 여기에는 가설만 존재하고, 마땅한 정설은 없습니다. 한 가지 가설은 대추야자라는 것인데, 야자수가 아르테미스의 탄생 신화에 등장할 뿐더러, 에페소스 동전에도 야자수가 종종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최근의, 널리 퍼진 다른 가설은 소의 고환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널리 퍼졌을 뿐 그다지 설득력 있는 가설은 아닌 것 같습니다. 더 최근의, Morris라는 학자는 이것이 힛타이트 전통에서 유래한 가죽 주머니라는 가설을 내놓았습니다(자세한 이야기는 참고문헌 참고).

 어쨌든 저것이 가슴이 아니기 때문에, 이 아르테미스가 다산과 풍요의 신이라는 생각도 중요한(혹은 유일한) 근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오히려 에페소스 숭배에 대한 근거들은 다산과 풍요라는 인식과 반대됩니다. 이곳 사제들은 내시와 처녀로 구성되었기 때문입니다(스트라본 14.1.23, 파우사니아스 8.13.1). 그리스 종교에서 사제의 순결은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사제의 순결은 이 신이 생산성과는 인연이 없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아르테미스의 기능은 무엇이었을까요?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는 자주 성벽 모양 왕관을 쓴 것으로 묘사됩니다. 성벽 모양 왕관은 튀케처럼, 도시를 수호해주는 신의 상징입니다. 실제로 에페소스가 뤼디아 왕 크로이소스에게 공격받았을 때, 사람들은 도시 자체를 아르테미스에게 봉헌함으로써 안전을 기원하려고 했습니다(헤로도토스 1.26, 아엘리안 『바리아 히스토리아』 3.26).

 즉,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는 많은 가슴을 단 다산과 풍요의 신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테나이의 아테나와 유사하게, 도시의 안전과 번영을 가져다주는 신이었습니다.

참고문헌
Robert Fleischer 《Artemis Von Ephesos》
Jennifer Larson 《Ancient Greek Cults》
Lynn R. LiDonnici 〈The Images of Artemis Ephesia and Greco-Roman Worship〉
Sarah P Morris 〈The Prehistoric Background of Artemis Ephesia〉


2024.2.19. 신화란 무엇일까요?

 신화란 무엇일까요? 한 가지 설명은 "집단에게 중요성을 가진 것에 관한 전통 이야기"입니다. 완벽한 정의는 아니지만, 대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정의입니다. 저는 신화의 정의가 단군 신화의 예시로 잘 설명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우리랑 가까운 이야기다 보니 잘 와닿기도 하고요.

 단군 신화는 한민족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한국인은 '단군의 후손'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이야기죠. 민족의 기원은 신화에서 매우 자주 다뤄지는 주제입니다. 그리스에도 비슷한 것들이 많습니다. 대홍수 생존자가 던진 돌이나 개미떼, 혹은 파종된 용의 이빨에서 태어난 사람들 같은 것이죠.

 신화는 집단을 통해 계속해서 이야기됩니다. 계속해서 재생산되죠. 한국인들은 모두 공교육 과정에서 단군 신화를 듣게됩니다. 혹은 그 전에 보호자나 아동용 같은데서 읽을 수도 있겠죠. 고대 그리스에서도 그랬습니다. 신화는 양육자에 의해 아이에게 이야기되었고, 교육 과정에서 위대한 문학 작품을 통해 가르쳐졌고, 공적인 사회행사에서 노래되었습니다.

 신화는 '과거'를 구성합니다. 우리가 배우는 단군 신화는 고려 시대의 기록이지만, 단군 신화는 항상 고조선 파트에서 소개되지요 '한국인'이라는 균일집단을 형성하기 위해, 단군이라는 단일 시조에서 시작된 단일 민족이라는 '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것이 신화가 사회에서 하는 기능입니다.

 신화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시대나 장소에 무관하게 누구나 재밌게 읽을 수 있죠. 하지만 신화는 집단, 사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신화는 그 사회의 일부이고, 그럴 때 비로소 다른 어떤 이야기도 아닌 "신화"로서 동작합니다.

참고문헌
Jan Bremmer 〈What is a Greek Myth?〉 《Interpretations of Greek Mythology》
Fritz Graf 《Greek mythology: an introduction》
Richard Buxton 《Imaginary Greece》


2024.2.20. 『텔레고네이아』에 대한 타래

1. 『텔레고네이아』는 무엇인가요?

 『텔레고네이아』는 '서사시권'에 속하는 서사시 중 하나입니다. '텔레고노스 이야기'라는 뜻이죠. 텔레고노스는 오뒷세우스와 키르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서사시권의 다른 시들과 마찬가지로, 『텔레고네이아』는 소실되었습니다. 하지만 "프로클로스"의 요약을 통해 그 줄거리가 전해집니다. 전반부는 오뒷세우스의 내륙 모험을, 후반부는 텔레고노스의 실수로 인한 오뒷세우스 살해를 다룹니다. 오뒷세우스의 죽음 이후, 텔레고노스는 페넬로페와 텔레마코스를 어머니 키르케에게 데려갑니다. 키르케는 이들 모두를 축복받은 자들의 섬에 보냅니다. 그리고 문제의 내용: 키르케는 텔레마코스와 결혼하고, 페넬로페는 텔레고노스와 결혼합니다.

2. 네?

 『텔레고네이아』는 여러모로 논란이 많은 시입니다. 아무래도 마지막 부분 때문인 것 같습니다. 딱히 근친상간은 아니지만(부부 사이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요)… 계보도 선이 꼬이는 것은 사실이죠. 『텔레고네이아』를 트위터에 검색해서 어떤 인식이 있는지 살짝 둘러봤습니다. "개적폐 2차창작" "개씹망작" "정사는 아님" "인정 안하는 학자도 많다"… 등이 있네요. 이런 인식에는 『오뒷세이아』와의 충돌이 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오뒷세이아』에는 텔레고노스가 언급도 되지 않고, 오뒷세우스와 페넬로페의 결혼은 견고해보이니까요.

3. 『텔레고네이아』는 어떻게 탄생했나

 『텔레고네이아』의 작가는 일반적으로 '퀴레네의 에우감몬'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쓰인 시기는 대략 기원전 6세기 중반이라고 생각됩니다. 에우감몬은 아마도 『오뒷세이아』를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초반부 내용과 오뒷세우스의 죽음이 『오뒷세이아』에 나오는 예언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의 궁전에서 구혼자들을 죽인 뒤에 손에 맞는 노 하나를 들고 바다를 전혀 모를뿐더러 소금 친 음식은 먹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길을 가시오. (중략) 또한 그대에게는 더없이 부드러운 죽음이 바다 밖으로부터 와서 안락한 노령에 제압된 그대를 데려갈 것이고, 백성들은 그대를 둘러싸고 행복하게 살게 될 것이오."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11.120-137

 그렇다면 에우감몬은 『오뒷세이아』의 후속편을 쓴 것일까요? 그것에 대해 뭐라고 말하기 전에, 호메로스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호메로스는 자신의 시를 '어떻게' 썼나요?

 한때 학자들은 호메로스를 그리스 신화의 '시초'로 보는 것에 별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호메로스는 존재하는 신화를 그대로 옮겨적었으며, 호메로스가 언급하지 않는 신화는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여겼죠. 이런 인식은 더이상 인정받지 않습니다. 호메로스는 (다른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필요에 따라 전승을 취사선택하고 변형한 작가였습니다. 그는 멜레아그로스의 유명한 장작 이야기를 삭제하고, 니오베의 금식같은 정보를 필요에 따라 추가했습니다. 전에 쓴 글에서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만, 호메로스는 그보다 앞써 존재했던 방대한 구전 신화 전통에 속해 있습니다. 그는 다양한 전승들 사이에서 자기에게 맞는 이야기를 선택했습니다.

 에우감몬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오뒷세이아』의 내용을 반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전적으로 호메로스의 뒤를 따랐다는 것은 호메로스에 대한 과대평가의 결과입니다. 호메로스가 시기상 조금 더 빨랐을 수는 있지만, 호메로스나 에우감몬이나 더 거대한 '그리스 신화'의 전통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텔레고네이아』는 『오뒷세이아』와 별반 다르지 않은 독립적인 작품입니다.

4. 『텔레고네이아』의 작품성

 앞서 말했듯이, 『텔레고네이아』는 소실된 시입니다. 그런데 어째 『텔레고네이아』의 '작품성'에 대한 평가가 많이 박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전체 『텔레고네이아』 중에 단 한 구절만을 알고 있습니다. 

풍부한 고기와 단 포도주를 마음껏 먹었다.
-『텔레고네이아』 단편 1 West = 아테나이오스 『철학자들의 연회』 412d

 헉! 저 한 문장을 보니 『텔레고네이아』는 망작임이 확실해요!!

 작품성은 둘째치고, 나무위키에 이런 평가도 있습니다. "당대 그리스 관점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윤리적 관념." 그러니까 친부 살인자인 텔레고노스가 행복하게 산다니, 당대의 윤리적 관점에서도 말이 안된다는 것이죠.

 친부 살해가 큰 죄는 맞지만, 텔레고노스의 해피엔딩을 가로막을 정도는 아닙니다. 사실 신화 속 살인은 망명하여 정화 받으면 문제될 게 없는 죄입니다(물론 정화 받을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지만요).

 친부 살인의 대표주자 오이디푸스를 봅시다. 소포클레스 극에서 마지막 장면 덕에 그가 불행해진 것 같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이었습니다. 오이디푸스의 죽음은 테세우스의 인도 하에 영예롭게 이루어집니다. 나무위키가 말하듯 "비참하고 외롭게 객사"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는 어디까지나 소포클레스 비극의 이야기입니다. 서사시 전통들에선 일관적으로 오이디푸스가 멀쩡히 테바이를 다스리다가 죽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오이디푸스가 텔레고노스와 달랐던 점은 신 인맥이 없었다는 점 정도네요. 오레스테스는 어떤가요? 오레스테이아 삼부작은 결국 오레스테스가 무죄를 받고 끝납니다. 클뤼타이메스트라의 원한이 담긴 복수의 여신들은 아테나에 의해 친절하고 위대한 여신들이 됩니다.

 『텔레고네이아』가 인기 없어서 소실된게 아니냐고 한다면, 물론 그것은 사실입니다. 인기 없는 작품은 2000년의 세월동안 보존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살아남은 고대 텍스트가 알려진 전체 텍스트의 반의 반도 안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5. 무엇이 '정사'인가?

 신화에 '정사'라는 단어를 쓰는 건 별로 바람직하진 않겠지만, 사실 전에도 말했듯이 고대인들이 받아들인 '표준적인' 버전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텔레고네이아』의 내용은 상당히 '표준적'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아폴로도로스와 휘기누스의 신화집에서 『텔레고네이아』의 줄거리 요약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텔레고네이아』가 유일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른 몇 가지 이야기를 봅시다. 뤼코프론 『알렉산드라』 807과 그에 대한 주석이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텔레마코스의 아내는 키르케의 딸 캇시포네였습니다. 텔레마코스는 키르케를 죽였고, 캇시포네는 그 복수로 텔레마코스를 죽였습니다.

 아폴로도로스의 이본에 따르면, 페넬로페는 구혼자 중 하나와 관계를 가졌습니다. 이를 안 오뒷세우스는 페넬로페를 처형하거나, 혹은 추방했습니다. 페넬로페는 아르카디아에서 헤르메스를 만나 판을 낳았습니다. 파우사니아스(8.12.5)는 실제로 아르카디아에 페넬로페의 무덤이 있다고 전합니다.

6. 결론

 우리는 호메로스를 그리스 신화 전반의 견고한 나무줄기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텔레고네이아』는 분명 '적폐'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호메로스는 그리스 신화라는 나무의 많은 가지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에우감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보든 간에, 『텔레고네이아』는 분명히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하고 받아들인 신화의 일부를 구성했습니다.

 신화는 고대인들의 이야기기 때문에 '신화'입니다. 그렇기에 그 전통에 속하지 않은 우리가 특정한 전통을 '적폐'나 '2차창작'으로 묘사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문헌
Martin L. West 《Greek Epic Fragments》
Timothy Gantz 《Early Greek Myth》


2024.2.29.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어쩌다 태양과 달의 신이 되었나〕 타래

뤼라를 든 아폴론, 횃불을 든 아르테미스, 레토 부조.아테나이 적화식 크라테르의 태양 마차를 끄는 헬리오스.

 아폴론/아르테미스 남매는 흔히 태양/달의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헬리오스/셀레네는 뭐죠? 아폴론/아르테미스는 정말 태양/달의 신인가요? 에 관해서 이야기해봅시다.

 호메로스나 헤시오도스 같은 상고기 문학들은 아폴론/아르테미스와 태양/달을 연관 짓지 않습니다. 태양/달 마차를 끄는 헬리오스/셀레네는 분명히 둘과 전혀 다른 신입니다. 아폴론 아르테미스 남매는 언제부터 태양/달과 연관되었을까요?

아폴론부터 살펴봅시다. 태양의 신으로서 아폴론의 가장 오래된, 그리고 불확실한 근거는 아이스퀼로스 비극입니다.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군』 856행은 아폴론을 지하 세계에 발을 들이면 안 되는 신이라고 언급합니다. 암시적이긴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아폴론이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되는, 햇빛이 들지 않는 그러나 만인을 다 받는, 어둠의 나라
-아이스퀼로스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군』 858-860

 『탄원자들』 212행에선 구원을 가져다주는 햇빛과 정결한 아폴론 신을 연결짓습니다(아폴론은 태양빛의 신이라는 인터넷 설명이 아마도 여기서 비롯된 듯). 하지만 이 부분도 여전히 모호한 연관성을 드러낼 뿐, 동일시하는 것은 아닙니다(그리고 사실 이 부분은 행수도 좀 혼란스럽습니다).

다나오스 “너희들은 지금 여기 제우스의 독수리에게도 인사드려라.
코로스장 “구원을 가져다주는 햇빛도 부르도록 해요!
다나오스 “하늘에서 추방된 적이 있는 정결하신 신 아폴론도 불러라!
코로스장 “그분은 그런 운명을 당하셨으니 인간들의 운명도 동정하실 거예요.
-아이스퀼로스 『탄원자들』 212-215

※ 이 부분에 관해서 부연 설명이 필요할 듯합니다. 우선 이 부근의 텍스트는 필사본에서 온전하지 않은 듯하며, 실제로 207-211행의 순서는 학자 별로 의견 차이가 있습니다. 212행, 천병희 역에서 “제우스의 독수리”로 쓰인 부분은 원문에서 “Zenos ornis(제우스의 새)”라고 씁니다. 이렇게 읽는다면 햇빛은 독수리를 뜻하고, 아폴론과는 관련이 없어집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부분을 “Zenos inis(제우스의 자식)”라고 수정하며, 이렇게 되면 아폴론이 햇빛입니다. 하지만 천병희 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최근의 학자들은 모두 전자의 읽기를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아폴론과 태양 연관성을 나타낸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덧붙여서, 아이스퀼로스에 속하는 근거가 하나 더 있습니다. 에라토스테네스 『별자리』 24에 따르면, 오르페우스는 저승을 다녀온 뒤 태양-아폴론을 숭배하고, 디오뉘소스를 무시했다고 합니다. 오르페우스는 그로 인해 디오뉘소스 신도들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이것이 아이스퀼로스 『밧사리데스』의 이야기라고 전합니다. 문제는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밧사리데스』의 내용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오르페우스의 태양-아폴론 숭배가 『밧사리데스』의 내용이었다면 태양-아폴론의 이른 근거가 되겠지만, 에라토스테네스가 아이스퀼로스의 이야기와 후대의 동일시를 결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모호한 근거들을 제외하고, 확실한 첫 근거는 에우리피데스의 소실된 비극 『파에톤』의 단편입니다. 파에톤이 죽은 뒤, 파에톤의 어머니 클뤼메네는 헬리오스가 ‘아폴론’이라고 불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며 원망합니다. 여기서 아폴론은 민간어원인 ‘파괴자’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아름답게 빛나는 헬리오스여, 그대는 나와 파에톤을 파괴했습니다(apolesas). 신들 이름의 암묵적 의미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대는 합당하게 ‘아폴론’이라고 불립니다.
-에우리피데스 단편 781.224-226

 이러한 증거는 아폴론-태양 동일시가 고전기에 존재했음을 보여주지만, 얼마나 널리 퍼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둘의 역할은 신화에서 항상 구분됩니다. 오비디우스의 시에서도 하늘을 달리는 건 헬리오스(라틴어 솔)고, 다프네를 쫓는 것은 아폴론입니다. 아폴론은 인수인계 받지 않습니다.

 사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태양, 달, 대지와 같은 자연물 숭배를 수준 낮은 야만족의 문화라고 여겼습니다(예를 들어, 아리스토파네스 『평화』 410). 헬리오스는 코린토스나 로도스 등에선 중요한 신이었지만, 결코 널리 숭배받지 않았습니다. 아폴론-헬리오스 숭배도 그리스 본토보단 소아시아에서 유행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신화와 숭배 밖에서 아폴론-태양 동일시가 널리 퍼진 분야가 있었으니, 바로 철학입니다. 일찍이 파르메니데스와 엠페도클레스는 아폴론을 태양과 동일시했다고 합니다. 일부 철학자들, 특히 스토아 학파는 신화를 우화로 해석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예를 들어 헤라는 하늘의 여성적 측면인 공기이며, 그 이름은 공기(aer)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이러한 우화적 해석이었습니다. 아폴론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일리아스』에서 아폴론과 포세이돈의 대립은 불과 물의 대립이고, 아폴론은 ‘많지 않은(a+polla)’, 즉 단 하나뿐인 불의 발현이니 태양이다… 같은 것들이죠.

 아폴론-태양 해석은 고대 그리스 지식인들 사이에서, 다른 해석들보다도 더 널리 퍼지고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 과정에는 아폴론의 별명 “포이보스(‘빛나는 자’라고 해석됨)”나 이집트 신 호루스와의 동일시도 영향을 끼쳤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헬레니즘기~로마 시대에는 아폴론을 태양신으로 여기는 것이 일반적으로 되었습니다. 비록 신화 상에서 아폴론이 태양 마차를 몰지는 않더라도요.

 이후 유럽 사람들에게 익숙한 그리스 신화는 아폴론-태양 동일시가 일반적으로 된 라틴어 문헌들이었습니다. 이는 19세기 학계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시기 학자들은 여전히 신화를 자연 우화로 이해했습니다. 학자들은 아폴론의 본질을 태양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학자들은 이런 해석에 더 이상 동의하지 않습니다. 태양 측면은 결코 아폴론의 본질이 아니고, 뒤늦은 발전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아폴론은 이쯤 보고, 아르테미스로 넘어갑시다. 아르테미스-달 동일시의 가장 이른 예시는 아이스퀼로스의 소실된 비극 『크산트리아이』 단편입니다. 여기서 달은 아르테미스의 눈이라고 묘사됩니다.

태양의 구도, 레토의 따님의 별과 같은 눈도 보지 못하는
-아이스퀼로스 단편 170

 아르테미스가 달과 동일시된 데에는 아르테미스가 출산의 신이라는 점도 영향을 끼쳤을 수 있습니다. 출산은 (아이에게) 빛을 가져오는 일로 인식됐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로마 출산의 여신 루키나(빛lux에서 파생)의 이름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헬레니즘기~로마 시대에는 아폴론-태양과 마찬가지로 아르테미스-달의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됩니다. 하지만 아폴론과 마찬가지로, 신화 안에서 아르테미스가 묘사되는 방식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달 마차를 운전하는 건 여전히 셀레네입니다.

 그런데 아르테미스-달 관계에서는 아폴론과 다른 측면이 개입합니다. 아르테미스의 사촌인 헤카테입니다. 아르테미스와 헤카테는 아이스퀼로스 『탄원자들』 674에서 이미 동일시되어 있습니다. ‘헤카테’ 자체가 아르테미스의 별명이기도 하고요(예를 들어, 에우리피데스 『페니키아 여인들』 110).

 헤카테는 언제부터 달과 동일시되었나요? 「호메로스 찬송가」에서 헤카테는 헬리오스와 함께, 데메테르에게 페르세포네의 정보를 제공하는 신입니다. 헤카테와 헬리오스의 동등한 역할은 헤카테-달을 암시할 수도 있습니다. 헤카테가 전통적으로 밤과 관련된 신인 것도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달은 또한 마법적 힘과도 자주 연결됐기 때문에, 마법의 신 헤카테와도 밀접합니다. 실제로 발견된 마법 파피루스에선 헤카테-셀레네 동일시가 나타납니다. 문학에서 헤카테-달 동일시는 로마 시대에서야 명시적으로 나타납니다.

 정확한 시기가 언제든 간에, 결과적으로 중요한 식이 도출됩니다. 아르테미스는 헤카테와 동일시됩니다. 아르테미스는 셀레네와 동일시됩니다. 헤카테는 셀레네와 동일시됩니다. 즉, 아르테미스=셀레네=헤카테입니다. 이전부터 헤카테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던 삼중의 몸은 이제, 아르테미스-셀레네-헤카테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오비디우스는 아르테미스-셀레네-헤카테를 구분하지 않고, 디아나, 트리비아, 티탄, 태양의 누이 등으로 부릅니다(물론 신화 내용적으로는 여전히 구분됨).

 정리하자면, 아폴론-태양과 아르테미스-달은 고전기 그리스에서 처음 나타났습니다(이게 꼭 헬리오스/셀레네와의 동일시를 말하지는 않습니다). 신화 안에서 아폴론/아르테미스가 하늘을 달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신화 밖 사람들은 점차 그들을 태양/달의 신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로마 시대에 더욱 널리 퍼지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대중적인 해석이 되었습니다.

참고문헌
이진성 《그리스 신화의 이해》
Timothy Gantz 《Early Greek Myth》
Joseph Fontenrose 〈Apollo and the Sun-God in Ovid〉


그림그리는 오타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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