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 성우의 자취방에서 성운의 희안한 잠꼬대를 들은 다니엘은 성우가 마실거릴 사들고 들어오자마자 집으로 돌아갔다. 힘든데 그냥 자고 가지 번거롭게도 군다는 성우에게 술이 떡이 된 김재환이랑 같이 자다가 저한테 들러붙기라도 하면 발로 차버릴거 같아서 간다는 웃기지도 않은 핑계를 대며 나섰다.



덕분에 그들보다 잠을 덜 잘수 밖에 없었던 다니엘이 강의가 끝나 거의 사람이 없는 강의실에 엎드려 잠시 졸린 기운이라도 없애보고자 눈을 감을때였다. 

복도를 울리는 낯선 목소리가 제 이름을 불러대는데 처음엔 제 이름인지도 몰랐다. 강다니엘이라고 하질 않아서. 지금이 딱 잘 타이밍인데 대체 누가 저렇게 시끄럽게 이름을 불러대나 하다가 번뜩 눈이 떠진 건 어제 밤 술에 취해들었던 간지럽게 불린 제 이름이 생각나서였다.



- 니엘아아아~ 어딨니이이이. 혹시 니엘이 봤어?

- 니엘이가 누구야. 설마 다니엘?

- 응, 분명히 아까 지나가는 뒷모습을 보긴 봤는데. 어딨는지 모르겠네.

- 다니엘은 왜? 뭔일 있어?

- 그냥 좀. 부탁할게 있어서. 니엘아아. 들리면 대답좀 해봐아아.



계속해서 절 불러대는 성운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질즈음 때마침 강의실로 들어서려던 성우와 재환이 성운에게 먼저 알은체를 했다.



- 선배. 어제 대체 언제 가신거에요? 아침에 일어났는데 안계셔서 집에 가셨겠거니 하긴 했는데.

- 성우 안녕! 재환이도 안녕! 나 오늘 일이 좀 있어가지구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나와야 될거 같아서. 새벽에 깼는데 그냥 인사 못하고 갔어.

- 아아, 그러셨구나. 속은 좀 괜찮으세요?

- 응. 말짱해. 너네는 괜찮아?

- 저도 뭐 완전 괜찮죠. 얘만 아직 죽어있어요.

- 어? 재환이 속 안좋아?

- 으윽. 죽겠어요. 뭐하자고 술을 그렇게 퍼마셔가지고.. 참, 선배.. 그.. 제가 어제 너무 취해서.. 선배한테 이상한 소리나 지껄이고 죄송합니다.

- 응? 무슨 이상한 소리?

- 그.. 요정이니 뭐니.. 하면서..

- 아아~ 그거? 그게 뭐 어때서. 어? 설마 재환이 너... 사실 취해서 한말이다. 진심이 아니다. 뭐 그런거야?

- 아뇨! 아니 그럴리가요! 그건 전혀 아니고. 여전히 잘생기셨고 요정같으신건 맞는데.. 그 너무.. 저보다 어찌됐건 선배신데 좀 무례한 얘기였던거 같아서..

- 크하하하. 재환이는 역시 재밌어.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걱정마. 난 좋은데 요정소리. 

- 아..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리고..

- ..? ....!!!



재환에게 갑자기 훅 다가온 성운이 그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댔다. 그리고 뭐라 말하더니 세상 해맑은, 이른바 그 후광미소를 또 지었다. 재환은 그대로 얼어붙었고 순식간에 얼굴에 화르륵 열이 올랐다.

어느새 일어난 다니엘이 의자에 기대앉아 뒷문에 서서 그러고 있는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다 인상을 찡그렸다.


저.. 또 저런다.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꺄르르 거리며 성우와 재환과 좀더 대화를 나누던 성운이 갑자기 제가 왜 이러고 있는지 깨달은듯 아! 하곤 성우와 재환의 손을 한쪽씩 붙잡고 물었다. 그에 지켜보던 다니엘의 인상이 조금 더 찌푸려졌다.



- 맞다! 나 니엘이 찾고 있었는데.. 그러고보니 너네도 같이 안있네? 오늘 학교 안왔어?

- 니엘이요? 니엘이가..누.. 아아. 강다요?

- 응. 그래 니엘이.



재환의 되물음에도 굳이 니엘이라고 다시 대답한 성운이 그들에게 어딨냐며 다니엘의 행방을 물었다. 그에 성우가 열려있는 강의실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 니엘이라면 저어기서 아마 자고 있을텐데..



성운이 부르는 애칭을 그대로 따르며 대답하는 성우의 손짓에 바로 홱 하고 고개가 돌아간 성운이 다니엘을 발견하고는 꼭 보물찾기에서 보물이라도 찾은 듯 온 얼굴에 행복한 표정을 지어댔다. 

잠이 한방에 달아나는 비타민 같은 미소에 잠시 멍때렸던 다니엘이 이내 정신을 차리곤 목례로 인사 했더니 성운이 니엘아아하며 도도도 달려가 그 앞에 섰다. 그런 성운을 내려다보며 모르는 척, 저 찾으셨어요? 라고 묻는데 성운이 다니엘의 손을 덥썩 잡고는 어젯밤일은 절대 잠꼬대가 아니라는 듯 말했다.



- 니엘아. 오늘 너 내 애인 좀 해주라.

- 네? 뭐요?

- 애인. 하성운 애인.

- 허..헐..



너무 놀라 버벅대며 뱉은 감탄사 뒤로 성우가 어느 포인트에 꽂힌건지 웃음이 터져 깔깔 거렸고 재환은 숙취해결을 위해 먹고 있던 이온음료를 푸우- 하고 그대로 뱉어낸채 켁켁거렸다.

갑작스런 성운의 행동에 강의실에 남아있던 몇 안되던사람들도,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들조차 제 귀를 의심하며 다시 돌아와 그들을 지켜봤다. 하지만 그런 시선쯤은 제게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성운이 여전히 다니엘의 손을 꼭 붙들고 다시 확인사살을 했다.



- 내 애인하는거 싫어?

- 아니.. 그.. 선배. 지금 장난치시는거죠?

- 아니? 장난아닌데. 우리학교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너가 제일 잘난거 같아서 하는말이야.

- 예??? 아니. 근데.. 그러니까요. 선배. 전 여자를 좋아해요.

- 알아. 그래서 더 좋았지. 내 애인하기에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 예?????? 아니 선배. 지금 무슨 얘길 하고 계시는 거에요? 제가 지금 이해가 잘 안되서 그러는데..

- 아! 내가 너무 대뜸 말했구나. 크하하하항. 미안미안.진짜 애인 하라는게 아니라 애인 행세 좀 해달라구우.

- ..........



성운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당황해 어쩔줄 모르던 다니엘이 딩- 하고 머릴 한대 얻어맞은냥 입을 벌리곤 초점없이 성운을 내려다봤다. 

그런 다니엘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톰한 입술을 오물조물 거리며 제 얘기를 늘어놓는 성운의 말은 그거였다.

절 쫓아다니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아무리 별짓을 다해도 안떨어진다고. 애인이 있다는데도 없는거 다 안다며 거짓말하지말라더니 아주 더 붙어댄다고. 그래서 진짜있다고 학교로 찾아오면 당장 보여주겠다고 으름장을 놨는데 진짜로 어제 연락이 와서는 오늘 오겠다고 했다며 그러니 원일대에서 제일 잘난 너가 좀 같이가서 기 확 죽이고 애인인 척 한번만 해주면 안되겠냐고.

가만히 그의 얘기를 들으며 정신을 챙긴 다니엘이 좀 곤란한 상황은 맞는거 같아서 정말 한번 해볼까 싶은 얼굴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에 기대감이 부푼 성운은 앞에서 눈을 반짝이며 장화신은 고양이 마냥 다니엘의 대답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저를 제일 잘났다고 하면서 이렇게까지 선배가 부탁을 하는데..뭐 한번쯤은 괜찮겠지. 고민을 끝낸 다니엘이 그럴게요. 하고 흔쾌히 대답했다.

그에 성운이 그를 끌어안고는(정확히는 품에 안겨서는) 아 고마워진짜. 정말 너무너무 고마워 니엘아아. 하며다니엘의 넓은 가슴팍에 얼굴을 부빗거렸다. 품에 안겨든 성운의 작은 몸이 부산스럽게 고마움을 표하는데 그게 퍽이나 귀엽게 느껴져 다니엘이 슬쩍 웃었다. 

그순간 눈이 마주친 성우가 제게 미묘한 얼굴을 띄는데 왜 그런 얼굴로 봐 입모양으로만 묻자 고개를 주억대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야. 싱거운 놈.

성우에게서 고개를 돌린 다니엘이 아직도 제 품에서 부빗대던 작은 머리통을 슬쩍 손을 들어 쓰다듬자 성운이 빼꼼 고개만 들어올려 그런 다니엘을 올려다봤다.

와씨. 블랙홀은 블랙홀이다. 남자 눈망울이 뭐 이렇게 생겼어.

바로 시선을 떨군 다니엘에게 한번 더 고맙다 말한 성운이 곧 품에서 떨어졌다. 자꾸 고맙다고 하는게 민망해진 다니엘이 뭘요. 세상 뭐 서로 돕고 사는거죠. 농담을 섞어 대답했다.


한번일줄 알았던 이 도움이, 원일대 블랙홀 하성운의 애인대행 고정게스트가 될 줄 알았더라면.. 다니엘은 이 농담을 뱉지 못했을 것이다.



그 뒤로 성운은 번번히 다니엘을 찾아왔다. 잊을만 하면 한번씩 찾아와 니엘아아아 하며 애교섞인 부탁을 하는데 다니엘도 그게 두번정도 될때까진 그래도 그냥 괜찮았더랬다. 그 두번이 세번이 되고, 세번이 네번이 되는 순간 결국 안하겠다 선언한 다니엘에게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성운이 또 그 장화신은 고양이같은 눈망울로 부탁해왔다. 그에 맘이 약해져 다섯번까지 딱 손가락을 다 채운게 바로 전 주의 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이라던 성운이 다시금 제게.. 여섯번째 애인대행을 부탁했다.


사실 다니엘이 맘이 약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 있었다. 애교를 부리고 졸라대는 성운때문이 아니라 성운을 쫓아다니다는 놈들의 상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서였다. 지나다봤다면 외모는 반반하네 했을지 몰라도, 제가 애인이라고 다가서기전까진 서슬퍼런 눈으로 넌 나 아닌 다른 놈을 만나선 안돼 수준의 반협박 혹은 거의 스토킹 수준의 행동을 하는 놈들이였기에 안한다고 하면서도 번번히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게 중 어떤놈은, 강의가 끝나고 갑자기 부른 교수님 때문에 조금 늦게 약속장소로 갔더니만 거의 성운을 질질 끌어다 차에 억지로 집어넣으려 하고 있었다. 거기에 한대 맞은 듯 붉어진 볼의 성운을 알아챈 다니엘은 결국 그날 주먹까지 날렸었다.

그러니 이건 무시하고 싶어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블랙홀이라면서 어째서 들이대는 놈들마다 하나같이 그 모양인지.. 걱정이 되서 안갈수가 없었다.


결국 이번에도 자신의 패배임을 인정한 다니엘이 어느새 끝마친 마지막 강의에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익숙하게 성운의 번호를 누르곤 어디로 가야하나 묻는 다니엘에 교문앞에서 보자고 한 성운이 급히 전화를 끊었다.

뭔일있나. 갑자기 끊어진 전화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며 이번엔 또 어떤놈인가 생각하던 다니엘이 교문을바로 앞에 두고는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정문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이 문을 나서자마자 어머어머. 하며 호들갑을 떨기에 아 뭔일이 났구나 싶어 가다듬던 행동을 멈추고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성운의 뒷모습이 보이고 그 앞에 남자가 하나 서있었다. 잘빠진 중형 외제차 앞에서 성운에게 꽃을 안겨주며 웃고있는 남자.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들어오는 이목구비가 지금까지중에 단연 제일 잘생겼다. 키는 저와 비슷해보였고 그래서인지 받쳐입은 셔츠와 슬랙스가 모델처럼 잘어울렸다.

이번엔 꽤 괜찮은데 왜.. 굳이..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가는데 성운의 꺄르르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심지어 둘 사이의 분위기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화기애애했다. 그 모습에 또 습관처럼 미간을 구긴 다니엘이 제 눈썹을 긁적이며 형.. 하고 불렀다.

그에 휙 뒤를 돌아본 성운이 다니엘에게 쪼르르 다가가 팔짱을 꼈다. 그리곤 그 남자 앞으로 이끌었다.




- 민현아. 여긴 내 애인 니엘이.

- 처음뵙겠습니다. 황민현입니다.

- 아.. 아, 네. 강다니엘입니다.



처음보는 사람에 대한 예를 갖추며 젠틀하게 제게 인사를 건넨 민현을 다니엘은 저도 모르게 위아래로 훑었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묘한 미소를 지은 그가 다니엘을 향해 다시 말을 걸어왔다.




- 말씀 많이 들었어요. 실제로 보니 더 멋있으시네요. 인정 안하고 싶은데 인정할 수 밖에 없겠어요. 운이랑 잘 어울리기도 하고.

- 아, 네.. 

- 그치? 멋있지? 이제 그러니까 나 쫓아다니는거 그만하고 너도 니 갈길가.

- 에이, 그래도 너가 내 첫사랑인데 할때까진 끝까지 해봐야지.

- 뭐래. 지금 이 투샷을 보고도 그말이 나와?

- 크큭, 농담이야. 운이 너만 행복하다면야. 기꺼이 물러나야지.

- 그래. 잘생각했어. 이제 다 봤으면 그만가. 나 니엘이랑 데이트 할거야.

- 알았다알았어. 그럼 갈게. 가볼게요. 다니엘씨.

- 네네. 들어가세요.

- 잘가아아.



지난 다섯번 중에 이런적이 있던가. 질척댐은 1그램도없이 쿨하게 인정하고 뒤돌아선 민현에 오히려 다니엘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돌아본 민현을 향해 성운이 손을 흔들더니 빨리 가라고 재촉하자, 민현이 일단 자리에 앉아 시동을 걸고는 다시 창문을 내렸다.



- 운아. 그래도 연락은 해도 되지?

- 연락? 

- 우리 친구잖아. 감정이 좀 변해서 그렇지, 원래 우리 친구가 먼저였는데? 안돼?

- 음.. 니엘이가 된다고 하면.

- 다니엘씨, 그래도 될까요? 저희 고등학교때부터 친구거든요. 친구로써 연락하는것도 안될까요?

- 니엘아. 안된다그래.



제게 넘어온 질문에 다니엘이 머뭇댔다. 하지 말라고 하기엔 진짜 애인도 아닌데다, 실제 그렇다 하더라도 친구사이라는 둘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건 아니라고 생각해 다니엘도 쿨하게 대답했다.



- 하세요, 친구로 하시는 거라면.

- 와아. 민현아 우리 니엘이 맘 넓은것 좀 봐. 어깨도 태평양인데 마음도 태평양이야.

- 푸하하.. 그래. 정말 좋은 분 같다. 다행이야. 애인있다길래 또 어디서 이상한 놈 만나는건 아닌가 걱정했는데말야.

- 야!! 내가 무슨 이상한놈만..

- 그럼 간다아- 연락할게.

- 얼른가!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구우.

- 다니엘씨. 혹시 다음이 있다면 또 만나요.

- 네. 조심히 가세요.



다니엘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한 민현이 성운에게도 손을 흔들 하고는 곧 학교를 떠났다. 여전히 이런 상황이 적응되지않은 다니엘이 떠나는 차를 멍하게 바라보다 제 팔을 끌어당기는 성운에 의해 고개를 돌렸다. 




- 고마워, 니엘아. 이제는 진짜 이런부탁 안할게.

- 네..뭐. 근데 선배. 저분은 괜찮은 사람같던데 왜...

- 아아, 민현이 괜찮지. 잘생기고 친절하고 다정하고..

- .......하하..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는데 성운이 망설임없이 다니엘의 말에 동의하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에 약간 빈정이 상한 다니엘이 어색하게 웃는데 그 뒤로 붙은 성운의 말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 근데.. 내가 요새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가지구..민현이는 옛날부터 친구이기도 하구... 그래서 감정이 안생겨.

- .........

- .. 니엘아? 

- 네? 아.. 네네. 선배한테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지 몰랐어요.

- 아아. 좋아한지는 얼마 안되서 나도 사실 잘 모르겠어. 그리고 그 사람이랑 만나기엔... 음.. 걸리는 것도 좀 많구..

- 아...

- 쨌든!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니엘아. 우리 나중에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

- 아니 뭐.. 그런거 받으려고 한 것도 아닌..

- 성우랑 재환이도 다같이. 

- 아아..... 네. 그래요.

- 그럼 먼저 가볼게! 내일 학교에서 보자!

- 네. 들어가세요.

- 응. 자기 안녕! 이제 마지막일거 같아서..

- 하하.. 네. 그럼, 저도.. 조심히 들어가요 형.

- 앞으로도 형이라고 불러줘어! 간다!!



뽈뽈대는 발걸음으로 작은 손을 팔랑대며 인사한 성운이 금새 저만치 멀어졌다. 방금전까지 제 팔에 닿았던 성운의 온기가 아직 남아있는거 같아 다니엘이 슬그머니 제 팔뚝을 쓸다가, 아 나 지금 뭐하는거지 하며 돌아섰다. 이젠 정말로 애인행세는 끝인 듯한 성운의 인사에 다니엘은 이상하게도 아쉬운 맘이 먼저 들었다. 분명 여섯번째 부탁을 받을때까지만해도 제발 그만하고 싶었는데.. 복잡미묘, 시원섭섭한 감정에 혼란스러움을 느끼던 다니엘이 그런 감정을 떨쳐내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 야 옹성우.

- 왜?

- 대체 뭐냐 이감정은.

- 뭐긴뭐야. 블랙홀에 빠진거지.

- 에?? 내가? 

- 응. 너가. 

- 웃기지마. 내가 성운선배를 좋아하는거라고 지금?

- 응. 얼마나 깊은지는 모르겠다만 확실히 좋아하는건 맞아. 

- 에이... 설마.




혼란스러운 감정이 정리되지 않아 다니엘은 결국 그 밤 성우의 자취방으로 쳐들어갔다.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기울이며 슬그머니 제 얘길 꺼내놓았는데 이미 알고있다는 듯 성우는 태연하게도 말했다. 넌 이미 블랙홀에 빠져있다고.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 다니엘은 성우의 그 확신어린 대답에 더 혼란스러워졌다. 말도 안된다 생각하면서도 그 말을 듣는 순간 불규칙하게 뛰어대는제 심장에 스스로 더 놀랐다. 그런 제 모습을 웃으며 지켜보던 성우가 제 잔에 술을 채우며 다시 물었다.



- 오늘 선배 찾아온 사람은 엄청 괜찮았다며.

- 어? ..어어.

- 근데도 그 옆에 안서고 니 옆에 선 성운선배 보면서 어깨 으쓱했고.

- .. 어.

- 다신 안볼것처럼 멀어지는 뒷모습에 아쉬웠고.

- ...... 어.

- 그전에 봤던 놈들중에 선배 막 대하는 놈 한번 줘팼던적도 있지 않냐. 근데도 아니라고? 

- ........

- 너가 선배 볼때마다 어떤 얼굴인지 모르지?

- 어떤 얼굴인데..

- 사랑스러운 생명체를 보고 있는 얼굴. 너 좋아하는 고양이를 지나다봐도 그정도 표정은 아니야.

- ... 하..?

- 진짜 아니야? 아니라고 믿고 싶은건 아니고?

- ..말도 안돼.




인정을 하라는 듯 날카로운 성우의 질문에 곧이곧대로 대답하던 다니엘이 결국 뛰어대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미쳤다 강다니엘. 미친거야.

지금이라도 밖에 나가 아무여자에게 작업을 해도넘어오게 할만큼 다니엘은 연애경험이 없는 편은 아니였다. 다만 대학을 들어오고나서 맘 맞는 친구들과 술한잔 기울이며 노는 것이 좋아져 연애를 안하고 있었을뿐인데 연애세포가 그새 죽어버려 엉뚱한 곳에서 뛰어댄다고 부정하고 싶었다. 그 맘을 알아챈듯 성우가 쐐기를 박는 말을 더 했다.




- 그래도 아니라고 하고 싶은거면 한번 생각해봐. 지금부터 내가 선배한테 진지하게 들이대도 괜찮겠냐. 

- 뭐??? 



절로 찌푸려지는 인상과 더불어 저도 모르게 꾹 주먹을 말아쥐자 성우가 풉- 하고 웃음이 터지더니 깔깔대며 웃어댔다.

결국 인정할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며 목이 탄 다니엘이 소주를 병째로 들고 벌컥댔다. 계속 웃어대던 성우가 찔끔 나온 눈물을 쓱 닦아내고는 다니엘의 어깨를 토닥였다.




- 안들이대, 임마. 걱정하지마.

- 야이씨! 놀리지마라.

- 푸핫, 아 진짜 재밌네.

- 야!!!!



버럭댄 다니엘이 다시금 소주를 들이키는데 성우가 야야 물처럼 마시지마- 하며 만류했다. 

그 순간, 성우의 방문을 두드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별아아아아, 나 와써어.


성우를 별이라고 부르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분명 성운이었다. 취한 듯 한껏 올라간 목소리로 계속 별아별아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뭐? 별아? 멀쩡한 이름 놔두고 무슨 별이야. 그리고 언제부터 여길 제집처럼 드나들었길래 뭐 저렇게 자연스러워. 

그런 다니엘을 보며 성우가, 니가 생각하는 그런거 아니니까 표정 풀어라. 하더니 일어나 문을 열었다. 문이열리자 성운이 그대로 폭삭 성우에게 안겨들었다.




- 별아아아아, 내가 오늘 좀 속이 상해가주구 술을 마셨는데에에 집에 가기가 너무 멀어서 와써어.

- 잘하셨어요. 들어와요 형.

- 웅웅, 고마워어 별아.



형? 방금전까지도 내 앞에선 선배라 하더니 형? 그리고 그런거 아니라더니 들어오자마자 안기는 건 또 뭐야.

불타오르는 질투심에 표정이 굳어진 다니엘이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신발을 벗고 들어오던 성운이뒤늦게 다니엘을 발견하곤 우뚝 멈춰섰다.




- 어.. 니엘이도 있었네.

- 또 보네요 선배. 아, 맞다! 이제 형이라고 불러야죠. 또 보네요 형.

- 응. 성우랑 둘이 한잔 하고 있던거야? 내가 방해된건가.

- 아뇨. 타이밍 딱 좋았어요. 앉으세요.

- 야. 강다, 니 집이야? 왜 주인행세를 하고 있어.

- 넌!! 일단... 있어봐.. 나중에 얘기하자.



으르렁 대며 성우에게 이빨을 드러내던 다니엘이 겨우겨우 이성을 찾아 눌렀다. 그에 웃음이 터지려는 걸 간신히 참은 성우가 이 참에 제대로 좀 깨우쳐줄까 싶어 눈을 빛냈다. 

자리에 앉는 성운에게 제 겉옷을 벗어 건네준 성우가,

그냥 앉으면 엉덩이 베겨요. 깔고 앉아요. 하며 웃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던 성운이,

 옷이잖아. 나 이거말고 저번이 줬던거 줘. 저깄다. 쿠션!!

일어나 성운이 가리킨 쿠션을 건네준 성우가 부들거리며 참고있는 다니엘을 보며 결국 풉, 하고 웃음이 터졌다. 영문을 모르는 성운이 동그란 눈으로 성우에게 물었다.




- 응? 왜 웃어? 

-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한잔 더 하실거죠?

- 아니, 안마시고 그냥 너네 노는거 구경할래.

- 그럼 이거라도 드세요. 

- 아! 고마워, 별아!



콜라를 한잔 따라 건네준 성우에게 고맙다하는 성운이후광미소를 지으며 눈을 찡긋했다. 그에 속이 점점 뒤틀리는 다니엘이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 근데 형. 별은 뭐예요? 멀쩡한 이름 놔두고.



꽤 까칠하게 나간 다니엘의 말투에 성운이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우물거리며 성우의 볼에 찍힌 점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고 대답하던 성운이 도와달라는 듯 성우를 바라봤다. 그에 또 미간을 찌푸린 다니엘이 아까보다 한층 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 형, 형은 정말 모르고 그러는거에요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거에요?

- 응? 뭐가?

- 그렇게 순진한 표정 지으면서 사람 홀리는거요. 

- 뭐...?

- 표정보면 모르고 그러는거 같긴한데.. 그러기엔 또 너무 대놓고 흘리니까.. 뭐가 진짠지 모르겠어.

- 야, 강다. 너 지금 뭐하는거야. 취했냐.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성우가 다니엘을 막았다. 그 손을 뿌리친 다니엘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벙져있는 성운에게 기다리라 하며 다니엘을 따라 성우가 뒤쫓아 나갔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 

남의 집에 혼자 덩그러니 남은 성운이 눈만 도르륵 굴려대며 상황파악을 하려고 했다. 적대인지 질투인지 모를 감정을 던져받은 성운은 그들이 빨리 돌아오길 기다리며 앞에 놓인 소주를 들었다.










상,하 로 올릴라했는데 분량실패..

읽어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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