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조용하다... 게다가 온 몸이 나른해. 여기가 어딘지는 몰라도, 내 몸을 감싸고 있는 이 부드럽고 따뜻한 기운... 절대 눈을 뜨고 싶지 않은 기분이야. 그런데, 어쩐지 익숙하고도 그리운 목소리가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것 같아.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인데?

 이 목소리, 설마...?

 

 

" 포푸니크... 포푸니크, 이제 그만 눈을 뜨세요. "

 

 

!!! 하... 할멈?! 진짜로 할멈이야?

 

 

" 네, 저예요 포푸니크,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당신의 새로운 캡틴은 찾으셨고요? "

 

 

... 찾았었지.

 

 

" 찾았'었'다 라... 그 말씀은? "

 

 

죽어버렸어, 그 녀석도.

 

 

" 저런..."

 

 

할멈... 나... 나도 이제 그만 하고싶어.

더 이상은 내 주변의 사람들과 포켓몬들이 내 곁을 떠나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

벌써 수도 없이 이별을 반복해왔어.

하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가 않아.

이제 견딜 수가 없어. 그러니 부탁이야, 할멈.

나도, 네가 있는 그곳으로 데려가줘.

거기에 가면... 그 녀석도 다시 볼 수 있을거야.

 

  

" 포푸니크... "

 

 

포푸니크가 할멈이라고 부르는 그 영혼은 주름진 손을 뻗어 눈물이 줄줄 흐르는 포푸니크의 뺨에 대고 살살 쓰다듬어 닦아주었다.

 

그러고는 아련한 목소리로 말했다.

 

 

" 포푸니크, 당신은 제가 감히 저쪽으로 모시고 갈 수 없는 존재랍니다. 그 정도는 당신도 잘 알고 있잖아요? 게다가 당신이 말씀하신 제 후임... 그분은 아직 저쪽 세계에 발을 들이지 않으셨답니다. 그분은 지금 당신이 깨어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니 어서 당신이 계셔야 할 곳으로 돌아가셔서 그분을 안심시켜 주세요. "

 

 

그게 무슨 소리야? 그 녀석이... 죽지 않았다고?

그럴리가... 내 두 눈으로, 내 두 팔로, 분명히 확인하고 왔는데? 농담하는거지, 할멈?!

 

 

" 제가 거의 80년 가까이 당신을 모시면서 그런 종류의 농담을 한 적이 있던가요, 포푸니크? 조금 섭섭해지려 하는군요. "

 


아... 아니야, 미안해 할멈. 네가 그런 농담을 하지 않는다는것 정도는 잘 알아. 그저... 그 녀석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지 못한 내 자신이 한심해서 도망칠 길을 찾으려고 했던 걸지도 모르겠네. 그러면 그 녀석, 지금 정말로 내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거야? 확실한거지, 할멈?

 

 

 

" 그럼요 포푸니크. 그러니 얼른 그쪽에서도 눈을 뜨세요. 당신과 다시 헤어져야 한다는게 아쉽긴 하지만 저 역시 아주 잠시동안 허락을 받아 당신을 만나러 제가 있을 곳에서 나올 수 있게 된 몸. 이제 각자가 있을 곳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포푸니크,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

 

 

할멈... 나도 반가웠어. 네 후임 녀석, 다시는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이번에야말로 내가 확실히 교육시킬테니까, 지켜봐줘!

 


노인의 영혼은 잔잔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멀어지는 포푸니크를 향해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다.

 

 

 

  


 

 

 

  

... 냐리-?

 

 

 

" 포푸니크! "

 

 

 

은하단 본부 건물에 있는 의료실의 침대에서 눈을 뜬 포푸니크의 옆에서 그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상행이 큰 소리로 포푸니크를 불렀다.

같은 방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던 다른 사람들과 포켓몬들이 깜짝 놀라곤 그 쪽을 향해 째려보는것도 모른 채 계속 포푸니크가 대답해줄 때까지 고막이 터질 것 같은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캡틴을 보고 포푸니크는 그만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그만 떠들라고 자신의 긴 팔을 들어서 상행의 등을 힘껏 내리쳤다.

 

 

" 아, 아야-! 포푸니크, 아파요! "

 

 

냐리잉~!

 

 

불이 일어나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지는 등 쪽으로 반사적으로 손을 가져가 위아래로 박박 쓸면서 아프다고 칭얼대는 상행을, 포푸니크는 두 손으로 콱 붙잡아서 자신의 품으로 확 끌어당겼다.

 폭신한 포푸니크의 품에 안긴 상행은 순간 당황했지만 언제나 그랬듯 자신을 꼭 끌어안아 쓰다듬으면서 제 얼굴을 자신의 머리에 부비며 고롱고롱 소리를 내는 포푸니크를 보고 상행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렇게 침묵하다가 자신 또한 포푸니크를 두 팔로 안아 쓰다듬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자신이 포푸니크에게 저질렀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

 

 

" 포푸니크... 정말로 죄송합니다.

한 발짝 물러서서 찬찬히 둘러보면 언젠가는 보일 답이었는데, 조급함에 시야가 좁아질대로 좁아져서는 정작 무엇이 중요한지를 판단하지 못하고 저를 가장 소중히 여겨주는 당신에게 그렇게나 못된 말과 행동을 하고 말았어요.

그리고... 빛나 님께 들었습니다. 제가 한 번 목숨을 잃은 뒤에 당신이 제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서 지금까지 쭉 정신을 잃은 상태로 있었단걸요.

당신에게 이렇게나 큰 걱정을 끼쳐드린것도,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

 

 

냐리이- 냥, 냐!!!

 

 

포푸니크는 상행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몸을 옆으로 확 틀어 울고 있는 상행의 얼굴을 사정없이 핥아댔다.

 

그리고 평소에 천관산에서 자신의 캡틴에게 치던 가장 짖궂은 장난!

 

간 지 르 기!

 

 

냥냥냥냥냥냥냥냥 냥 냐히히히히-

 

 

" 우, 우햐-?! 포, 포푸니크!!! 그, 그만해요! 간지럽다구요!

제, 제발 그마, 그만- 으햐 하- 우하하 핫-!!! "

 

  

장난끼 가득한 얼굴을 하고 킥킥거리며 상행을 간지럽히는 포푸니크와 몇 번을 당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그의 장난에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저항하는 상행의 실랑이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결국-

 

 

" 상행 씨! 포푸니크! 좀 조용히 하지 못하겠어요?!

 다른 환자분들이 편히 휴식을 취하실 수가 없잖아요! "

 

" 앗- 죄, 죄송합니다, 공이 님! "

 

" 어휴... 뭐, 어쨌든 포푸니크가 깨어나서 다행이네요. 보아하니 기운도 넘치는 것 같은데 이만 퇴원해도 괜찮겠어요. "

 

" 네, 공이 님. 지금까지 포푸니크를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상행은 은하단의 의료인인 공이에게 꾸벅 허리를 숙여 감사를 전하고 포푸니크와 함께 의료실을 나섰다.

 

 

 

  


 

  

 

 

곧장 은하단 건물 밖으로 나간 상행은 자신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한 소녀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소녀 역시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어왔다.

 

 

" 상행 님! 포푸니크는 괜찮은거에요? "

 

" 네, 빛나 님. 다만 포푸니크가 며칠간 굶어서 얼른 먹을것을 마련해 주어야겠어요. "

 

" 하아- 정말 다행이에요. 상행 님과 포푸니크 둘 다 무사히 깨어나셔서... "

 

" 전부 빛나 님 덕분입니다. 빛나 님이 아니었다면 저도 후회만 가득했던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그대로 절벽에서 떨어져 사라지고 말았겠죠...

그리고 포푸니크도 동굴에서 구해서 빠른 치료를 받게 해주시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상태가 좋지 못했을 거라고 공이 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빛나 님, 다시 한 번 이 모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

 

 

상행은 소녀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고자 큰절을 하려고 했으나 소녀는 바로 그것을 알아채고 부끄러운 마음에 상행의 어깨를 잡아 저지했다.

 

 

" 상행 님, 여기서 이러시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도 다 지켜보고 있는데 부끄럽단 말이에요! 게다가 이미 감사 인사는 충분히 들었으니 이제 그만 하셔도 괜찮아요. "

 

" 하지만... ... 그러면 빛나 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만, 들어주시겠습니까? "

 

" 네, 상행 님! 뭔가요? "

 

" 내일, 동이 트기 직전 즈음에 흑요들판 고지기지 뒤쪽에 있는 높은 봉우리로 와주시겠습니까? 빛나 님께 따로 드리고 싶은것이 있어서요. "

 

" 그렇게나 일찍이요? 음... 조금 졸리겠지만 알겠어요, 상행 님! 그럼 푹 쉬시고 내일 뵈요! "

 

" 네, 빛나 님! 빛나 님도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 "

 

 

상행은 소녀와 인사를 한 뒤 포푸니크와 함께 훈련장 건물로 향했다. 그러나 이제 막 깨어난 포푸니크는 왜 상행이 자신들의 거주지인 천관산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쪽으로 왔는지 궁금해했다. 상행은 갸웃거리는 포푸니크를 보고 그에 대한 대답을 해주었다.

 

 

" 포푸니크, 앞으로는 저, 이곳 축복마을에서 쭉 살면서 좀 더 많은 시간을 사람들과 포켓몬들을 위해 쓰기로 했답니다. 천관산에서 지내는게 물론 가장 좋지만, 아무래도 거리가 있다보니 왕복하는 시간이 꽤 들잖아요? 그래서 전목 단장님과 페릴라 대장님께 이 건물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허가받았어요. "

 

 

포푸니크는 캡틴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최소한 자신의 캡틴이 잘못된 결정을 하지 않고 다시 올바른 길을 가려 이전처럼 꾸준히 노력할 것이라는 걸 확인한 포푸니크는 뭉클해지는 마음에 제 얼굴을 상행의 가슴에 파묻고 살살 부비며 애교를 부렸다.

상행은 포푸니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런 그의 모습에서 예전의 자신에게 똑같이 어리광을 피우던 소중한 누군가를 떠올렸다.

 

 

하행... 당신에게는 언제나 죄송합니다.

그 때 당신에게로 돌아갈 아주 작은 희망이 보여 당신께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부탁했지만 그것은 결코 희망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인간으로서 저지를 수 있는 행동 중 가장 최악의 길이었어요.

빛나 님 덕분에 겨우 그곳에서 빠져나왔지만 이제는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도 할 수 없을만큼 더 막연한 상태가 되어버렸어요.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몇 년이 지나도, 몇 십 년이 지나도... 언젠가는 반드시 당신에게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정말로 이기적인 부탁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저를 끝까지 잊지 말아주세요.

제 동생, 하행.

사랑합니다.

 

 

상행은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려고 했으나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제 품에 안겨있는 포푸니크의 머리 위로 뚝뚝 흘렸다.

포푸니크는 상행의 품에서 떨어져 나와 고개를 푸르르- 털고는 또 왜 우냐고 한 마디 하려 했으나 그랬다가는 상행의 상처를 더 건드릴까봐 차마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상행은 곧 울음을 그치고 소매로 흐르는 눈물을 슥슥 닦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미소를 지으며 포푸니크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그를 안심시켰다.

 


" 포푸니크. 한 번 큰 폭풍을 겪었음에도 저는 여전히 나약한 인간인지라 또다시 좌절하는 순간이 분명히 올 것입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는 분명히 약속드리겠습니다.

다시는, 삶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버티며 저의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다고요. "

 

 

 

냐리이~~~!!!

 

 

 

포푸니크는 기쁨에 겨워 이가 드러나도록 환한 웃을을 지으며 상행을 꽉 끌어안았다. 상행도 두 팔을 들어 포푸니크의 등을 끌어안고 한 손으로 살살 쓰다듬었다.

한동안 그렇게 꼭 안고 있다가 상행은 문득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 자, 그럼... 얼른 함께 저녁밥을 먹고 빛나 님을 위한 선물을 마무리 지어볼까요? "

 

 

 

 

  


 


 

 

 

 

늦은 밤, 뇌문시티 24시간 카페의 야외 테라스에서 하행과 카밀레가 함께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시고 있는 것은 카밀레 뿐이었다.

하행은 제 앞에 놓인지 한참 지나서 다 식어버린 음료를 그저 빤히 쳐다보며 멍하니 있을 뿐.

어색한 공기를 참다못한 카밀레가 하행의 얼굴 앞에 제 손을 휘휘 흔들며 그를 불렀다.

 


" 하행, 하행! 언제까지 그렇게 멍때리고만 있을거야?! "

 

" 아, 으응?! 아... 미안해 카밀레! 잠깐 다른 생각 좀 하느라... "

 

" '잠깐'이 아니었잖아! 네가 먼저 내게 전화를 걸어서 커피 한 잔 하자고 불러놓고는 왜 그렇게 죽상인거야? 혹시 무슨 고민거리라도 있어? 말해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와줄게! "

 


그러나 하행은 또다시 조그마한 커피잔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하기를 꺼려했다. 카밀레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그녀의 두 손을 하행의 양 어깨에 살포시 올리고 다시 한 번 묻자 그제서야 하행이 무거운 입을 뗐다.

 

 

" 있잖아 카밀레, 상행은... 살아 있는거겠지? "

 

" ... 왜 이제와서 그런 걸 묻는거야, 하행? "

 

" 며칠 전 간부 회의 중에, 갑자기 가슴에 큰 통증이 왔어. 그리고... 그 때 머릿속에서 상행의 목소리가 들렸어. 난 내가 분명히 몸에 이상이 생기고 상행에 대한 그리움이랑 겹쳐 헛것을 들은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다음날 병원에 가보니 아무 이상이 없다더라. 심장도, 머리도.

하지만 똑똑히 들었는데... 그렇게 뚫린 듯이 아팠는데...! 혹시... 상행에게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닐까...? 만약 그런 거라면... 난... 나는...! "

 

 

순간, 하행은 자신의 얼굴이 카밀레의 품 속에 폭 파묻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 카밀레...? "

 

" 괜찮아, 하행. 상행은 분명히 살아 있을거야.

 당연하잖아? 네가 그토록 온 마음을 바쳐 고생하며 찾으려고 노력한 너의 하나뿐인 형제인데, 그런 상행이 네 마음을 배신하고 먼저 세상을 떠날리가 없어! "

 

" ... ! "

 

" 그러니까 너무 불안해 하지마, 하행.

상행은 분명히 살아서 언젠가 반드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거야. "

 

 

하행은 고개를 들었다.

카밀레는 하행의 얼굴을 보며 생긋 미소지었다.

하행은 잠시 카밀레의 얼굴을 조용히 올려다보다가 이내 다시 제 얼굴을 카밀레의 품에 묻고 그녀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콩닥, 콩닥- 하는 규칙적인 심장박동이 하행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하행은 빙그레 웃으며 카밀레의 품에서 빠져나와 이번에는 자신의 품에 그녀를 안았다.

 

 

" 고마워, 카밀레. 너는 언제나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구나. 그래... 네 말이 맞아! 상행은 분명히 살아 있을거야! 그리고 나는 반드시 상행을 찾아낼거야!

또, 그날이 와서 상행이 다시 이곳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게 되면... 너에게도 지금껏 하지 못했던 말을 해줘야겠네! "

 

" 응? 무슨 말? 지금 해 줄 수는 없는거야? "

 

" 으응, 아직까지는 비~밀! "

 

" ... 치잇-! "

 

 

카밀레는 토라진 듯 잔뜩 입술을 삐죽였으나 그가 하려는 말이 무언인지를 대충 짐작하고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이내 하행에게 보이지 않을 각도로 고개를 돌리고 헤죽 웃었다.

 

하지만 하행은 카밀레의 그 웃음을 아주 똑똑히 보았다.


순간, 그는 제 품에 안겨있는 이 사랑스러운 여자친구에게 장난 아닌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짖궂은 얼굴을 하고선 검지손가락으로 카밀레의 턱 아래를 살살 간지럽히며-

 

 

" 흐흥~ 우리 이쁜이 카밀레~ 무슨 생각을 하느라 얼굴이 이토록 새빨개지셨을까~~~? "

 

" 노... 놀리지마! 애초에 날 이렇게 만든건 바로 너잖- "

 

 

하행은 카밀레를 간지럽히던 손으로 그녀의 턱을 살포시 잡아 자신의 얼굴 바로 앞으로 가져와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눈빛으로 무언가 원하는 듯한 신호를 보내자,

 

 

" ... 응, 하행. "

 

 

카밀레의 허락이 떨어지고, 둘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졌다.

 

 

 

 

... ... ... ... ... ... ...

 

 

 

 

 

 

" ... 달콤하다. "

 

" ... 그야, 방금까지 내가 마시던게 핫초코니까. "

 

" 너무해! 난 네가 건강 챙기라고 해서 단 음료 끊은지 오래 되었는데 이렇게 배신 때리기 있기야?! "

 

" 누가 아예 끊으라고 했어? 아주 가끔씩 마시면 되잖아! 나도 거의 3개월만에 마신거란 말이야! "

 

" 쳇... 뭐, 아무튼 카밀레, 나 너한테 부탁이 있어. "

 

" 음? "

 

" 나, 며칠 후에 얼마간 신오지방에 다녀올 거거든.

정말 막연하긴 하지만 나, 왠지 그곳에서 상행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몇 달 전에 신오의 체육관 관장이자 그곳의 광산 담당이신 두 분을 만나게 해달라고 야콘 님께 부탁드렸었어. 그런데 나도 내 일이 있고 그분들도 바쁘시다보니 이제서야 만날 약속을 잡았거든! "

 

" 아... 맞아, 얼핏 들은 것 같네. "

 

" 그래서 말인데, 내가 신오지방에 다녀오는 동안 내 포켓몬들과 상행의 포켓몬들 좀 돌봐줄 수 있을까 해서. "

 

" 그래,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그런데 그러면 아무도 안 데리고 갈려고? "

 

" 음, 내 애들 중에선 저리더프랑 전툴라, 그리고 상행의 애들 중에선 샹델라만 데리고 가려고. "

 

" 응, 알았어. 거기서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네! "

 

" 나도 그래. 자, 그럼 슬슬 돌아가볼까! 내일 아침도 힘차게 출발진행해야 하니까 말이야! "

 

" 그래서, 결국 네 커피는 안 마시는거야? "

 

" 솔직히 에스프레소, 너무 쓰단 말이야! "

 

" 그럴거면 뭐하러 시켰어, 돈 아깝게! "

 

 

카밀레는 손바닥으로 하행의 등을 팡팡 치면서 질책했다. 하행은 약간 심통났지만 조금은 복잡한 얼굴을 하고 카밀레의 시선을 피하며 들릴랑말랑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그야... 상행이 가장 좋아하던 커피니까... "

 

 

 

 

 


 

 

 

 

 

" 후아암- 상행 님, 저 왔어요! "

 

" 어서오세요 빛나 님! 이렇게 일찍 일어나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꼭 개인적으로 드리고 싶었던것도 있고... 여쭤보고 싶은것도 있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부탁드리게 되었어요. "

 

" 아니에요 상행 님! 저는 괜찮으니 편히 말씀하세요! "

 

 

상행은 잠시 뜸을 들이다 소녀에게 잠시만 눈을 감아달라고 부탁했다. 소녀가 눈을 감자, 뭔가 차가운 것이 목 주변에 닿는게 느껴졌다.

 

 

" 빛나 님, 이제 눈을 떠보시겠습니까? "

 

 

소녀가 다시 눈을 뜨자 자신의 목에 작고 귀여운 꽃 모양의 목걸이가 걸려있는것이 보였다.

 

 



" 상행 님, 이건...? "

 

 

상행은 소녀의 두 손을 모아 잡고 한 쪽 무릎을 꿇고는 몸을 낮추어 소녀를 올려다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 제가 직접 만든 그라시데아꽃 목걸이입니다.

빛나 님, 그거 아시나요? 신오지방이라는 곳에서는 누군가에게 감사를 전할 때, 그라시데아라는 꽃을 주는 관습이 있다는 것을요.

저는 신오지방 출신이 아니지만 그 얘기를 듣고 왠지 참 낭만적이라고 생각하여 제가 진심으로 큰 감사를 전할 분이 생긴다면 그라시데아꽃을 구해 건네드리자고 생각했었답니다. 게다가 우리가 지금 밟고 있는 이 땅, 히스이지방... 이곳에서 모셔지는 신오님... 필시, 이 히스이지방이 먼 훗날 제가 알고있는 그 신오지방이 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빛나 님께 그라시데아꽃을 드리기 위해 꽃밭을 찾아갔었답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꽃은 언젠가 시들어버리고 오래도록 간직하고자 한 제 감사의 마음도 사그라들어 버릴거라고 생각하니 조금 슬퍼지더군요. 해서 저는 그라시데아꽃 모양의 펜던트를 만들어 드리자고 마음을 바꾸었답니다.


빛나 님,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디 항상 이 목걸이를 걸고 다니시면서 제가 빛나 님께 차마 말로는 다 하지 못할 무한한 감사를 지니고 있다는것을, 종종 떠올려주세요. 그리고 만약 제가 저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게 되어서 빛나 님의 곁을 떠나는 날이 온다고 해도, 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세요. "

 

" 상행 님! "

 

 

 

소녀는 상행의 품에 와락 안겼다. 순간 상행은 뒤로 넘어갈뻔 했으나 겨우 버티고는 자신도 두 팔로 소녀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렇게 얼떨결에 소녀를 안기는 했으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쩔쩔매다가 제 품 안에서 훌쩍이는 소녀를 눈치채고는 왜 그러냐고 다급히 물었다.

 

소녀는 고개를 들어 상행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 상행 님... 상행 님이 정성을 다해 만들어주신 이 목걸이, 영원히 간직할게요! 상행 님이 하나지방으로 돌아가셔도, 절대로 잊지 않을게요! 이렇게 상냥하시고 제게 소중한 인연이 되어주신 상행 님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요! "

 

" 빛나 님... 고맙습니다. 빛나 님께서 그리 말씀해주시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저 또한 제가 아끼는 수많은 분들 중에 빛나 님이 있어주셔서 정말 감사할 따름이에요! "

 

 

상행은 소녀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며 감격한 목소리로 소녀의 대답에 다시 한 번 응답했다.


마음을 추스른 둘은 어느덧 떠오르는 해를 보러 봉우리 끝자락에 함께 앉았다. 상행은 넓게 펼쳐진 흑요들판의 풍경을 보며 잠시 멍하니 있다가 제 옆의 소녀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 빛나 님, 저, 궁금한것이 있습니다. 그때 저의 의식 속에서는 워낙 상황이 다급해서 눈치채지 못했습니다만, 제가 하나지방에 있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아신 건가요? 그리고 실례가 안된다면... 빛나 님께서 쭉 히스이지방에 남아 살기로 결심하신 이유도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

 

 

소녀는 자신의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주 어릴적, 한 잡지에서 한창 서브웨이마스터로 이름을 날리던 상행을 봤던 기억. 그러나 그때는 다른 주제에 정신이 팔려 제대로 보지 못한탓에 히스이에서 상행과 처음 만났을 때 그 사실을 떠올리지 못했다는 것. 그러나 상행의 방황 속에서 그를 돕기위해 머리를 짜내다 보니 그에 대한 정보가 겨우 떠올랐었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포켓몬 트레이너가 되어 마음을 부정하는 어떤자와 대립하여 승리했었지만 그 이후 자신 역시 세상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얼룩에 크게 실망하여 그와 똑같이 될 뻔했다는, 다른 이에게는 끝끝내 숨기고 싶었던 자신의 좋지 않은 면까지.


그래서 소녀는 비록 자신의 고향이지만 그대로 있었다가는 언젠가는 타락했을지 모를 그곳에 돌아가기보다는 비록 살아가는데 있어서 많은 불편함이 있지만 세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새로운 기회를 얻은 이 히스이 땅에서 생을 마무리하겠다고 말을 끝맺었다.

 

소녀의 길고 긴 이야기를 들은 상행은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또다시 저 멀고 먼 들판의, 아침햇살에 반짝이며 일렁이는 강과 호수의 물결을 보며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다가, 문득 뭔가가 떠오른 듯 소녀의 얼굴을 보며 입을 뗐다.

 


" 빛나 님, 그렇다면... 앞으로도 쭉 이곳에서 살아가실 빛나 님을 위해, 더 특변한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만... 이것은 저보다도 빛나 님을 소중히 생각하시는 어떤 분의 마음을 무시하는 일이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빛나 님께서 허락해주신다면 반드시 전해드리고 싶은 것입니다만, 괜찮을까요? "

 

" 무슨... 선물이기에 그러세요? "

 

" 제가 지어드리는, 당신의 새로운 이름.

윤슬 님, 어떠신가요? "

 

" 윤슬...? "

 

"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빛나 님께서는 저에게, 그리고 히스이지방의 사람들과 포켓몬들에게 반짝이는 물결의 파동처럼 마음속에 잔잔한 듯 강하게 일렁이는 변화를 가져다주셨죠. 언제나 따뜻하고 긍정적인 미소로 모두에게 행복을 전달해주시는 당신에게, 이 이름을 드리고 싶습니다. "

 

 

소녀는 동그랗게 뜬 커다란 눈으로 상행을 바라보았다.

 

상행은 다시 한 마디를 덧붙였다.

 

 

" 어디까지나, 빛나 님께서 허락해주신다면요. "

 

 

 

... ... ... ... ...

 

 

 

" 고마워요, 상행 님! 저 윤슬이를, 앞으로도 쭉 잘부탁드려요! "

  

" 윤슬 님...! "

 

 

상행은 또 한 번 윤슬의 등을 꼭 끌어안았다.

윤슬 역시 상행의 품 안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작은 두 손으로 상행의 옷깃을 꼭 붙잡았다.

 

산등성이에 가려져 아직 옅게 흑요들판을 비추던 햇빛이, 태양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찬란하게 넓은 들판 전체를 따스히 감쌌다.

 

 

 

 

 

 

 

 

 

 


 

 

 

 

 

 

 

 

 

 

오랜만이구나, 코기토.
내 아내여.
 
허나 이곳은 아무리 당신이라 할지언정
이렇게 무례하게 함부로 들어와서는-

 


" 이제 딱히 의미도 없는 격식 차리기 놀이는 그만 하시지요, 아르세우스. 벌써 몇 천 년을 단 하나뿐인 아내를 이렇게도 쓸쓸하게 방치해놓고는 티끌만큼의 양심도 없으신겁니까? "

 


... ... ... ... ...


 

샛노란 빛을 발산해내던 존재는 조용히 모습을 바꾸었다.

인간의 형상으로 변신한 그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천천히 자신에게로 걸어와 앞에 서서 양 어깨 너머로 손을 뻗어 자신을 껴안는 한 여인을 그저 가만히 받아들였다.

 

 

" 그래서,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오셨소, 부인. 왠지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얼굴입니다만. "

 

 

여인은 기가 차다는 한숨을 내쉬고 자신이 끌어안고 있는 존재에게서 떨어져나와 그의 어깨를 한 손으로 밀쳐냈다.

그러고는 지금껏 그녀가 보인적 없었던, 매서운 눈빛을 하고는 그를 쏘아보며 다그쳤다.

 

 

" 다 아시면서 시치미를 떼십니까. 아무리 새로운 일을 진행하고 계시느라 힘이 약해진 상태라고는 하나, 당신이 제1순위로 신경써야 할 시공의 신들과 당신 스스로가 만들어낸 분신의 관리를 그리도 허술하게 한 덕에, 당신과 저의 아이가 또다시 큰 상처를 받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마음의 신들의 힘과 작은 소녀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최악의 사태는 막았습니다만...

당신이 우리의 아이들에게 했었던 그 약속을 깨뜨리고 서로를 생이별하도록 만들고는, 본인이 끝내 해결할 수 없었던 일을 대신하도록 시켰으면 이제는 그만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힘써줘야 하시는게 도리가 아니냔 말입니다! "

 

" ... "

 

" 아르세우스, 제발 이제는 자기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그 고집을 버리시고 뭔가 이루고자 하려는 바가 있으면 일단 자신을 낮춰서 적극적으로 누군가에게 정중히 부탁이라는 것을 하십시오.

신이라고 해서 그 힘과 권위를 이런 식으로 남용하지 마시란 말입니다! 당신의 그 그릇된 생각 때문에 벌써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큰 고통을 받았는지 아시잖습니까?! "

 

 

그는 시선을 아래로 떨군 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조용히 제 앞의 여인의 얼굴을 들여다보고는-

 


" 알겠소. 내, 곧 그 아이와 마주하여 지금까지 고생하게 한 것에 대한 사죄를 하겠소.

그리고, 아니지... 이것은 그 아이만이 아니라 저쪽에서 그 아이를 기다리고 있을 또다른 아이에게도 함께 해야 할 말이겠구려. "

 

" 그렇다는 것은... "

 

 

그는 여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 조만간, 두 아이를 만나게 해야겠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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