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민은 오후수업을 전부 빠지고 대학안 카페에 계속 앉아있었다.


 이제는 머릿속의 남자가 된 물속의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게 없다.


 '나라서 안 되는 건가.'


 차라리 그가 원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으면 지금쯤 그와 함께 물속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바로 옆자리에 처음보는 남자가 친한척을 하며 앉았다.


 청바지에 셔츠만 입고 있는 노민과는 다르게 얼굴 이곳저곳에 뚫린 피어싱과 노랗게 염색한 머리. 목늘어난 티셔츠 사이로 마른 몸이 훤히 보였다. 바람이 불때마다 가녀린 몸이 도드라져 보였다.


 "형님! 부탁하실거 없어?"

 "..."

 "그렇게 보지 말고. 나 놀고 싶은데 용돈이 모잘라서. 심부름하면서 용돈벌이 중이야. 이상한 사람 아니니까 놀라지마!"


 싱글벙글 웃고있는 남자는 노민보다 한 참 작았지만 노민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이미 산전수전 다 겪어본 터라 노민의 분노없는 무표정은 금세 간파했다.


 '호구 잡을수도 있겠네.'


 "..."

 "나 프린트도 금방 해오고, 커피 심부름도 잘 하는데? 어때 시킬일 있어?"

 "..."


 남자는 적막이 길어지자 점점 얼굴이 무너졌다.


 '아씨. 공쳤네.'


 "그럼 다음에 불러줘~."


 금세 얼굴에 웃는 얼굴을 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능성 없는 놈한테 쓸 시간은 없다.


 "잠깐만."


 남자가 몸을 돌리는 순간 손목이 잡혔다. 순식간에 다시 의자 위로 앉쳐졌다.

 잡힌 손목은 금방 풀렸지만 손자국을 남겼다.


 "내가 안 되니까."

 "응?"

 "너면 될거야."


 태양을 등지고 있는 노민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분명 땀이 날정도 더운 날씨였다. 하지만 남자는 노민의 얼굴을 보고 몸이 굳었다.

 정상적인 사람의 눈이 아닌것 같았다.


 "아... 미안! 지금 좀 일이 있어서."

 "삼십 만원."

 "어?"

 "삼십 만원이면 해줄레?"

 "아니. 그게."

 "오십."

 "하겠습니다."


**


 노민은 그길로 나람을 대리고 다시 캠핑장으로 향했다.

 출발이 늦었기 때문에 캠핑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밤이었다.


 둘은 산을 타고 올라 폐가 앞에 섰다.


 "뒤로 돌아가면 인공호수가 있어. 거기 가만히 앉아있으면 되."

 "정말 앉아 있기만 하면 되요?"

 "응."

 "저 설마 장기 털리거나 그러는건 아니죠?"

 "..."


 노민은 나람에게 간식거리가 든 봉지를 쥐어줬다.


 "어디가요?"

 "저기서 보고 있을께."


 노민이 가리킨 곳은 폐가였다.


 나람은 점점더 이해할 수 없었다. 무서운 곳에 와서 혼자만 들어가고 자신은 호수에 앉아있다니. 무슨 계획인지 추측조차 못하겠다.


 "끝나면 오십 만원 바로 계좌로 받을거에요."

 "응."


 노민과 나람은 각자 걷기 시작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온 노민은 언제든지 튀어 나갈 수 있게 건물 계단에서 밖을 주시했다.

 금세 나람이 나타났다. 주춤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노민이 말한 대로 호수 주변에 자리를 틀고 앉았다. 손으로 팔을 비비던 나람은 금세 심심해졌는지 봉지안에 들어있는 과자를 먹기 시작했다.

 그다음에 할일은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


 '무서워.'


 이상한 알바지만 들어올 돈을 생각하면 참아야한다. 오십 만원! 그거면 한 달은 수업만 듣고 놀아도 된다.

 폐가에서 노민이 이쪽을 쳐다보는걸 확인했으니 혼자 있으건 아니다.

 고작 혼자가 아니란걸 알아차린 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진다.


 노민이 준 봉투에는 과자와 젤리 같이 간식만 가득하다.


 '자지 말라는 소린가?'


 과자봉지를 뜯어 일부로 소리내며 먹었다.


 인공호수라 해도 꽤 잘 만들어 놨다. 일렁이는 호수면과 물소리가 잠이 올것 같다.


 '바람도 없는데 원래 움직이나?'


 눈을 깜빡였다. 누구나 눈은 깜빡인다. 자연스럽게 한 번. 찰나의 순간인데.


 호수안에서 무언가 날 쳐다보는게 느껴진다.


 이젠 호수면이 조용하다.

 근대 왜 자꾸 물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다시 한 번 눈을 깜빡.


 사람이 물안에서 머리를 빼고 이쪽을 쳐다본다.

 섬뜩한 웃음이다.

 괴기하게 찢어진 입, 흰자가 반인 눈동자.


 '다리가. 안 움직여.'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움직여지지 않는다.


 '노민 그새끼도 귀신이였던 거야?'


 귀신한테 홀렸다.

 어떡해.

 무서워.

 다리가 안 움직여.

 죽기 싫어.


 끊임없이 생각하는 와중에서 물속의 남자가 점점더 다가온다.

 분명 처음 봤을 땐 발목까지도 안 올거 같았는데 남자의 몸이 점점 물에서 빠져나온다.


 자신도 모르게 또 눈을 깜빡이고 말았다.


 탁!


 분명 호수 저편에 있던 남자가 오는세 내 발 바로 아래 있다.

 발목이 잡혔다.


 몸이 굳은체로 물안으로 끌려들어간다. 발목부터 차가워진다.

 최소 얼굴이라도 돌려 남자의 섬뜩한 얼굴을 보지 않고 싶다. 하지만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


 노민이 급하게 계단을 뛰어내려간다.

 방금전까지 감식을 먹고 있던 가람이 호수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몇 초후면 스스로 머리를 물 속으로 쳐박을 것이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그건 내꺼야!'


 순식간에 건물 뒷편으로 달려온 노민은 호수에 코를 박기 직전인 나람의 어깨를 힘껏 잡아 끌었다.

 나람이 뒤로 넘어가는 순간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홀린게 풀렸다.

 노민은 나람대신 얼굴을 물안으로 쳐박았다.


 물속에 들어가자마자 눈을 떴다.

 코앞에 얼굴이 있었다.


 그날 본 물속의 남자다.


 '찾았다.'


 노민이 웃었다.

 물속의 남자가 물속으로 가라앉으려고 했다.


 '가지마.'


 노민은 남자가 도망치지 못하게 양손으로 목덜미와 뒤통수를 감싸고 입을 맞췄다.

 남자의 몸이 경직되는게 느껴졌다.


 '도망 가지마. 나랑 있어.'


 노민은 그대로 남자를 물 밖으로 끌고나왔다.


 '응?'


 "딱딱해."

 "혀.. 형. 그거!"


 정신을 차린건지 나람이 노민에게 급히 달려왔다.

 물을 닥아내고 눈을 뜨자 손안에 들려있는건 물속의 남자가 아닌 다 썩어 뼈 밖에 남지 않은 사람의 머리였다.


 "... 백 줄께."


 노민이 해골을 양손으로 감싸며 나람을 차갑게 노려봤다.


 "지금 이 상황에 무슨 소릴・・・"

 "그러니까 입 다물어."

 "무슨."

 "이건 내꺼야. 그러니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 미쳤어."


 나람이 비틀거리며 바닦에서 일어나 캠핑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나람이 말하지 않을거란 약속을 받아내지 못했지만 상관없다. 지금은 이 사람을 찾은게 가장 중요했으니까.


**


 며칠동안 해골과 같이 지냈지만 아무 변화도 없었다.

 혹시 밤에 나타날까 싶어 잠도 안 자고 기다렸지만 아무일도 없었다. 

 그날부터 물속의 남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노민은 이젠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좋아하는 감정인지, 두려워하는 감정이 흔들다리 효과로 인해 나타난건지 아니면 자신이 미친건지.

 모르겠다.


 하얀치야와 눈동자가 있었어야 할 자리에 작게나마 물곰팡이가 피어있다. 머리가 둥그렀고 얼굴은 작았다.


 "보고싶어."


 가만히 손 안에 들고있던 머리를 품안에 껴안았다. 너무 쎄게 안으면 부서질것 같아 몸만 대고 있었다.


 띠링


 핸드폰이 울렸다.


 [왜 안 와?]


 그러고보니 학교를 안 간지 일주일이 넘었다. 그날부터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하며 다시금 물속의 남자를 보려고 노력했지만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 건지 걱정됐다.


 문자를 봐서 '1'이라는 숫자가 사라졌다.

 대답하기 싫어 화면을 껐다.


 그러자 이번엔 전화가 왔다.


 "..."


 해골을 조심스럽게 새 둥지처럼 만들어 놓은 수건 더미에 놀려놓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왜 안 나와? 어디 아파?"


 문자를 씹었단느 것보다 노민이 괜찮은지 더 걱정이 됐던건지 상대방의 목소리엔 화난 티가 전혀 없었다.


 "... 안 아파."

 "그럼 왜 안 와?"

 "...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어떻게 하면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방법을 찾는 중이야."

 "너 설마 그 살인자랑 다시 만났어?!"

 "... 응."


 '지금 같이 있어.'


 "아니. 그게 무슨. 너 괜찮은거 맞아? 감금 당하거나 그러진 않았어?"

 "내가 감금하고 있어."


 노민의 말이 끝나자 마자 질문폭격이 날라왔다. 노민은 어디서 부터 대답할까 고민했지만.


 싫어졌다.


 처음부터 어떻게 만났는지 왜 저 해골을 좋아하게 됐는지 설명하고 싶지 않다.

 걱정스런 목소리가 들려오는 핸드폰을 끄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은 얼마 안 가 검은 화면으로 바뀌었다.

 문자도, 전화도 오지 못한다.


 땀방울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추웠다 더웠다 비왔다 쨍했다 하는 날씨 덕에 에어컨을 키기도 끄기도 애매한 날씨였다.

 하지만 갑자기 해가 뜬 지금. 몇 시간 동안 같은 자세로 앉아있는 노민이 땀을 흘릴만 했다.


 물이 그리웠다.


 '수영하고 싶다.'


 하지만 학교도 안 갔는데 수영장에 갔다간 자신을 가르치는 교수님을 만날 가능성이 컸다.

 조용한 노민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생긴게 무서운 것도 한 몫 했지만, 간혹 그의 외모에 호감을 느껴 친한척 다가와서 대화를 나눠도, 한 마디도 제대로 대답해 주지 않는 노민에게 질려 금방 떠났다.


 노민은 허물벋듯 옷을 벗고 속옷 차림으로 욕실로 향했다.


 노민에게는 너무 작은 욕조가 있었다. 에초에 욕실이 너무 작아 노민이 손을 길게 뻣으면 손끝에 아슬아슬하게 닿을 정도다.

 욕실은 노민이 쓰기엔 작았다.


 날씨가 더워 오늘은 뜨거운물 대신 차가운 물로 욕조를 체웠다.

 물이 점점 차오르자 물속의 남자가 다시 떠올랐다.

 물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던 모습과 자신을 타고 올라오던 악력을 알 수 없는 손힘.

 점점 끌려들어가는 몸과 막혀오는 숨.


 심장이 저려온다. 밧줄로 심장을 묵은것처럼 찡겨온다.


 촤악


 물이 넘쳐 욕실 바닥을 적셨다.


 "...!"


 욕조라면.


 노민은 마룻바닥이 젖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욕실을 나가 해골을 들고 다시 욕실로 돌아왔다.

 아기처럼 수건에 쌓여있는 해골을 조심스럽게 수건과 함께 욕조 안 에 넣었다.


 귀신을 불러낼때는 모든지 준비를 완벽하게 해야한다고 검색한 오컬트 사이트에 써있었다.

 인공호수는 욕조. 호수물은 샤워기로 나오는 물로. 이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노민은 기다렸다.

 해가 지고 달이 뜰때까지 기다렸다.

 자기 집이여도 밤에 욕실에서 불도 키지 않고 해골과 함께 있는건 큰 용기가 필요하다.

 노민에겐 해당되지 않는 얘기였다.


 노민은 어서 물속의 남자와 마주하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묻고 싶은 건 없다.

 듣고 싶은 말도 없다.

 하고 싶은 것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가 허락하지 않으면 이젠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자신이 만진것 때문에 나오지 않는 것이라면 손을 묵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이젠 그냥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체워 답답함에 익사할 것 같다.


 하지만 새벽이 오고 아침 이슬이 태양의 열기에 증발할 때까지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노민은 새 수건을 가져와 욕조 안에 있는 해골을 꺼내 다시 감쌌다.


 닭비까지 사와 벽에 칠한 것보단 괜찮았다.


 이번엔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

 낙담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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