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소재 기록용으로 쓰는 가벼운 글 제목도 미정




 딱히 선생에 지대한 꿈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교육과 가고 어쩌다 보니 임용고시 초시에 덜컥 합격해버린 여주. 취업란에 감사한 줄 알라는 취준생 친구들의 장난 섞인 타박에 딱히 내키진 않지만 우선 출근하기로 한다. 맡은 반은 남자반. 존나… 쉽지 않겠구나 싶긴 했는데 부임 첫날에 교실 열고 들어가자 보이는 바글바글한 징그러운 남자놈들 보고 한숨 몰래 삼킨다. 칠판 가득 이름 세 글자 적어놓고 심드렁한 자기 소개 후 형식상 애들 출석 한번 불러보는데 한 명이 없음. 바로바로… 동혁이. 뭐야 얘는 왜 없어? 애들한테 물어보는데 지들끼리 시시덕대느라 대답도 제대로 안 해줌. 지우개 던지면서 장난치고 난리 났음. 아 ㅅㅂ 존나 집가고 싶다… 차라리 여자반이면 훨 좋았을 텐데… 어질어질한 머리 부여잡고 우선 잘 지내보자고 인사 마치고 얼른 조례 끝내려는데 뒤늦게 드르륵 문 열려서 보면 당당하게 입장하는 지각생 이동혁. 헉 쌤 안녕하세요. 제가 쫌 늦었죠. 죄송죄송. 언제 봤다고 넉살 좋게 입장하는데 여주는 별로 유쾌하진 않을 듯. 저게 지금 나 어린 여자라고 무시하나 싶지만… 응응 그래그래. 참자 참아. 고시 준비한다고 노량진에서 찌들어가는 대학 동기가 자길 부러워하던 얼굴 떠올리며 인내심 발휘해서 적당히 넘김.


 근데 동혁이가 참… 쉽지 않은 학생이겠지. 지각은 문제 축에도 못 낌. 맨날 수업 시간에 엎어져 자고 학교 안 나올 궁리에 하루를 알차게 쏟아붓는 학생일 듯. 그나마 다행인 건 술담배나 싸움질하는 애는 아니란 건데, 그 외의 모든 방면에서 여주 골치를 썩이면서 매일매일 참을 인 새기게 만든다. 뭐하는 놈인지 저래서 커서 뭐가 될 건지… 동혁이 보는 여주는 착잡하기만 한데 동혁이는 매사 해맑아서 더 미쳐버리겠음. 교사에 대한 열정도 꿈도 없는 여주는 적당히 모르는 척 흐린 눈하고 넘기고 싶은데 이제… 담임이라 그럴 수도 없음. 교감쌤 맨날 처음인 건 알지만 애들 지도 좀 잘 하라고 잔소리하고 학부모들도 초임에 담임 맡은 여주한테 은근히 불신 드러내서 여주 대가리 깨질 듯. 담임 그거 괜히 한다 해가지고. 담임 수당은 쥐꼬리인데 할 일은 육천오억사백십만개일 듯. 군복학 마치고 대학 졸업반 된 동기 도영이 붙잡고 맨날 술 마시면서 한탄한다. 도영이는 술 마시자고 불러낸 여주 상대해주면서도 노트북 켜놓고 과제 동시에 하는 멀티플레이어일 듯. 하루는 또 도영이 불러서 편의점에서 노상 까려는데 도영이 팀플 급하게 잡혀서 약속 파토. 여주 다른 동기들한테도 연락 돌려보는데 너무 번개라 당장 되는 사람 못 찾음. 걍 혼자 마셔야겠다 싶어서 소주랑 오다리 사서 공원으로. 집에는 부모님 계셔서 혼자 마시기 쫌… 쫌 그럼 하여튼. 큰 공원 중에서 어둑한 벤치에 혼자 후드에 손 찔러넣고 자작하는데 노래소리 들림. 아 여기 주변에서 버스킹 자주하는데. 고개 이리저리 빼보지만 열댓명이 저멀리서 둘러싼 곳이 버스킹하는 곳이구나 싶기만 하고 보이진 않음. 노래 한번 기깔나게 부르네. 밴드 연주에 맞춰서 노래하는 보컬 목소리 안주 삼아 홀짝홀짝. 한 병 다 비우고도 뭔가 허전해서 두번째 병 땄는데 어느새 박수소리 짝짝짝 나고 공연 끝남. 떼잉… 그냥 나도 집에 가야겠다 싶어서 주섬주섬 봉지에 오다리 쓰레기 먼저 주워담는데


…엥. 선생님?


 가로등 아래, 어깨에 기타 야무지게 걸친 이동혁이 놀란 얼굴로 여주 쳐다보고 있음. 다음에 봐. 연습실 예약해뒀으니까 늦지 마라. 주변에 같이 있던 밴드 무리들 홀홀 흩어지고 혼자 남은 이동혁 터벅터벅 걸어서 여주 옆으로 다가온다. 여주는 취해서 풀린 눈 껌뻑껌뻑. 뭐야. 지금 노래한 거 쟤야? 동혁이가 노래 한다는 건 아예 몰랐던 사실이라 놀랍고 취한 모습을 자기 학생한테 보였다는 당혹감에 그대로 굳어버림. 얼레. 쌤 취했어요? 혼자 마신 거예요? 이동혁 실실 웃으면서 넉살 좋게 여주 옆자리 앉아버린다. 


 너… 너 노래해?

 헐 쌤 들었구나? 네 저 노래해요. 방금 마지막곡 들었어요? 그거 제가 쓴 노랜데.

 …아.


 어색한 정적 속에서 여주 뒷목 벅벅 긁는데 동혁이 마치 일행인 양 자연스럽게 소주병 들어서 코에 가져다 댐. 알콜 냄새 킁킁대다가 인상 확 찌푸린다. 어우, 이거 완전 과학실에 그 알콜램프 냄샌데. 혼잣말 하면서도 마셔볼 것처럼 잔 드는 행동에 여주 후다닥 종이잔 뺏어서 구겨버린다. 


 미쳤어? 나 네 선생님이거든?

 학생 앞에서 눈 풀릴 때까지 마시는 건 괜찮고요?


 킥킥 웃으면서 대꾸하는데 여주 헛기침으로 목 가다듬고 소주병 뚜껑 닫아버린다. 그리고 괜히 동혁이 한번 물끄러미 바라봄. 얘가 그렇게 보충수업이니 자습이니 빠지려고 안달을 했던 게 다 밴드 때문이구나. 성적 개판 나도 눈 깜빡 안 했던 게 다 이유가 있었구나. 노래를 저렇게 잘하는데 뭐 어때. 동혁이 볼 때마다 티는 안 냈어도 내심 문제아라고 생각했던 게 좀 미안해짐. 늦었으니까 얼른 집에 들어가라고 훈계 아닌 훈계하고 여주 일어난다. 우선 그 날은 그렇게 어색하게 끝.


 이후로 동혁이가 학교 빠지고 자습 빠지고 하는데 예전이랑 다르게 토 안 달고 조용히 보내줄 듯. 어차피 손꼽히는 명문고도 아니고… 자기 먹고 살 길 확실한 애 붙잡아 앉혀두고 공부 시키는 게 별로 의미 없다고 생각해서. (선생이란 직업에 사명감이 없어서도 한 37.5%는 맞음) 그럼 동혁이는 의아할 듯. 1학년 때 담임은 노래할 거라고 하니까 제발 쓸 데 없는 데에 시간 낭비 말고 공부나 하라고 해서 상처 받기도 했음. 그래서 2학년 올라와서부턴 노래 안 하는 척 숨긴 건데, 이 쌤은 왜 보고도 별 말 안 하지 싶을 듯. 사실 공원에서 마주쳤던 날도 들켰단 생각에 너무 당황해서 일부러 더 태연한 척 뻔뻔한 척 굴었던 거였고. 근데 이 쌤은… 어째서인지 돌아오는 훈계가 없음. 지난 담임 같았으면 부모님 불러다 상담하고 혼내고 난리가 났을 텐데. 이래라 저래라 공부해라 대학 가라 지겨운 소리 한번 안 하고 평소처럼 무심한 태도가 고맙기도 하고… 그냥 이상하게 자꾸 생각 나고… 그러다 수업 들어와서 판서하는 여주를 보는데…… 


(건너뛰기)


 그렇게 여주한테 스며들어서 진심이 되어버린 동혁이가 막무가내로 귀엽게 들이대는 게 보고 싶다. 맨날 여주한테 자기 마음 어필하느라 바쁘실 듯. 대놓고 좋아한다고 하는데도 여주는 동태눈깔 뜨고 먹금. 끊임없이 플러팅해서 하루는 '야 내 나이에 널 만나면...' 하고 대꾸 해주다가 스스로도 웃겨서 헛웃음 픽 치는데 동혁이가 눈 동그랗게 뜨고 똑바로 바라보면서 '개꿀이죠' 할듯. (저 밈 알죠 그거 함 써보고 싶었음 너무도 이동혁 재질) 그리고 다가온 기말고사. 여주는 공부 강요 1도 안했고 걍 니들 인생이니 성적을 죽 쓰던 미음을 만들던 니들이 알아서 해라 주의인데 동혁이 혼자서 사제지간 로맨스 만들려고 애를 쓸 듯


 저 이번 시험에서 등수 30등 올릴 테니까 소원 들어주세요

 네 성적 오르는데 왜 내가 소원을 들어줘…

 저 우리반 꼴찌잖아요. 제 성적 오르면 쌤도 좋은 거 아니에요?

 그닥…

 아아 쌤. 제발. 한번만 소원 내기 해요, 응?

 응은 반말이고…

 네? 제발요


 무심하고 심드렁한 태도에도 동혁이는 지치지 않음. 그럼 소원 내기 한 거예요? 알았죠? 대답 없이 고개 절레절레 저으면서 퇴근하는 여주 뒤꽁무니에 대고 크게 말하는 동혁이. 그렇게 자기 맘대로…ㅋ 시작한 내기에서 이기려고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한다. 여주는 안 그래도 할 일 많은데 동혁이 떨쳐낼 궁리까지 하느라 대가리가 깨져나갈 듯. 그리고 치뤄진 기말고사에서 동혁이 등수 대폭 상승한다 (그래도 nnn등…)


 쌤 저 이번에 41등이나 올랐어요 대박이죠

 어어 그래 잘했네

 소원 들어주기로 한 거 안 잊었죠?

 뭔 소리야 내가 언제

 저번에 대답 안 하고 가셨잖아요. 원래 침묵은 긍정인데. 선생님이 그런 것도 몰라요?

 야 이... 너 입맛 대로 말 갖다 붙이지 마라.


 상대하기 귀찮다는 듯 손 휘휘 젓고 가는데 동혁이 끈질기게 따라붙어서 소원소원 아주 노래를 불러댈 듯. 아주 귀에서 피를 낼 작정으로 들러붙어서 괴롭히다 못해 여주가 안 들어주니까 바닥에 드러누워버림. 아따맘마 단비랑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꼬장에 여주 결국 두손 두발 다 들어버린다.


안 일어나냐?

아아앙

 와 너 진짜...

 어어어엉

 후... 소원이 뭔데… (시발…)


 앙탈 떨던 동혁이 그 말만 기다렸다는 듯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서 눈 초롱초롱하게 빛 냄. 과하게 반짝이는 눈빛에 여주 위험 감지하고 먼저 선수친다.


 데이트 한번만 해요 금지, 밥 사주세요 금지, 2년만 기다렸다가 저랑 만나주세요 금지, 밤에 연락해도 되냐고 묻는 것도 금지, 기타 등등 선생과 제자의 선을 넘어가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소원 전부 다 금지.


 또박또박 말하는 금지 리스트에 동혁이 입맛 한번 쩝 다신다.


 너무하시네. 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거 지금 한방에 다 말했어요. 내 맘 읽은 줄.

 그건 반말이고.

 제.맘.읽.으.신.줄.알.았.어.요. 됐죠?

 어 그래. 그래서 소원이 뭐야. 저 중에 있으면 나 그냥 간다?

 아 쫌, 있어봐요.



 피곤한 기색 역력해서 어깨 축 늘어트린 여주 얼굴 보면서 동혁이 입꼬리 씩 끌어올린다. 그리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 괜히 두리번대다가 여주 귓가 가까이 다가가서 말함.


 제 소원이 뭐냐면요,



 …

 …






 뭐게용 ㅣㅋ키키키.. 나중에 정말 만약 연재한다면 그때 확인하실 수 있ㅅㅡㅂ니다 

별의 별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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