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gger warning

본 소설은 체벌 요소, 폭력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W. 편백







"남혜성 씨."

"예, 차장님."



사무실의 정적을 깨뜨리는 정환의 목소리에 혜성이 퍼뜩 놀라 대꾸했다. 도둑질 하다 들킨 놈처럼 몸을 번쩍 튀겼다. 인기척도 없이 다가와선 이름 석 자 부르니 안 놀라는 게 이상했다. 더군다나 장 주임도 아니고 류 차장의 목소리이니.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정신 없이 업무 처리 하던 장 주임도, 박 대리도, 바로 옆 가벽 너머 2팀 식구들도. 앉은 채로 눈 굴리던 혜성이 차게 식은 손을 쥐었다 폈다. 겁 없기론 으뜸인, 천하의 남혜성이 S도 아닌 차장 등판에.


말단 생활 중엔 장 주임 곁에나 껌딱지처럼 붙어 다녔지 같은 팀 차장인 정환과 소통할 일 드물었었다. 잔일 담당, 서포트 중심이었으니 작전 관련해 자료나 정리해 전달하는 게 교류라면 교류였다. 정환은 혜성에게 신경쓸 틈 없이 바빴고, 혜성은 대리급 이상인 상사에게 말 걸 일이 없었다. 얼마 전, 1팀이 주관하는 O#2022036에 어시로 발탁되고 나서야 겨우 류 차장과의 접점이 생겼다. 그가 해당 작전 총괄이라서. 장 주임과 달리 류 차장은 함께 프로젝트 진행 하는 데도 긴장벽이 허물어지지 않았다.


ND 내에서 가장 빡센 곳이 작전 팀이고 작전 팀 내에서 가장 엄숙한 팀이 1팀. 명성 답게 빡센 인간들만 소속 돼 있다. 주임-계장-대리-차장-과장 계급 올라갈 수록 풍겨내는 아우라도 차원이 달랐다. 그러니까, 제일 꼬붕인 혜성에게 세 계단 껑충 건너 뛰어있는 류 차장이 꽤 어려운 존재였다. 허나 단순 계급 차로 이리 쫄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 요소에 영향 받는 놈이라면 보스나 S 앞에서 진작 쫄았지. 혜성이 지금 입술 오므리며 눈 굴리는 이유는,



"...J 호텔 파티 참가자들, 세부 정보 조회 중 입니다."

"그러니까 그걸 왜 혜성 씨가 하고 있냐고."



찔리는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ND는 워낙 바쁜 동네라 어느 소속이고 할 것 없이 과다 업무에 치여 산다. Exi 엄호, ND 유지. 그리고 두 조직 모두의 발전. 크게 나누면 세 범주고 미시적으로 나열하자면 Exi 및 ND 보안 관리, 스파이 관리, 외부 조직 감시, 자회사 감시, 작전 진행 등등. 손 꼽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정보 팀한테 요청했는데,"



나야 담당하고 있는 일이 이 프로젝트 하나라 이것만 집중할 수 있지만, 다른 팀 요원들은 인당 서너개 씩 맡고 있으니. 정보 팀에 자료를 요청 해도 빠른 시일 내로 받기가 힘들었다. 빠른 건 바라지도 않는다, 제때 제대로 주기만 해도 땡큐였다.  1차 회의는 다가오는데 건너 오는 정보가 없으니 진행이 안 됐다. 개 막내라 선배 요원 쪼기에도 스트레스 받고, 사정도 알만 해 그냥 내가 하기로 결정한 거다. 물론 내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와도 관련이 있고 무엇보다 나도 할 수 있으니까.



"...아직이라고 하셔서 말입니다." 



차장님 인상이 파삭 구겨졌다. 생김새부터 차가운 인간이 정색하니 주변까지 서늘해졌다. 불난 집 구경하던 다른 팀원들은 분위기 읽고 시선 피했다. 혜성이 입술을 오므렸다. 어찌나 냉랭한지 고함 한 번 안 쳤는데도 기선 제압 당했다.



"언제까지 해달랬는데."

"어제까지 해달라고 했,"

"이 개새끼들이."



...방금 뭐가 지나간 거지. 혜성은 휑하니 비어버린 자리를 응시하며 눈만 끔뻑였다. 차장님이 낮게 읊조린 욕설이 메아리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벌떡 일어난 박 대리님과 장 주임님은 멍하니 사무실 문 바라보다 미간을 짚었다. 일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저들의 오묘한 표정이 그의 행선지를 말해준다. 류 차장의 목적지는 정보팀 사무실이고,



맞짱 뜨러 갔다고.






-






메일 확인 바랍니다.



그가 떠난지 20분 만에 담당 요원에게서 확인 메시지가 날아왔다. 내가 부추길 땐 씨알도 안 먹히더니 차장님 출동하자마자 가뿐히 해결 됐다. 이걸 어이 없다 해야 할지 경이롭다 해야 할지 모르겠다. 황당한 건가. 그 미묘한 감정을 특정하던 중 차장님이 돌아왔다. 맞짱 뜨고 온 사람의 모습이라니엔 무척이나 멀쩡했다. 욕이라도 씹으며 들어올 줄 알았는데 화장실 다녀온 사람처럼 태연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설렁 설렁 걸어 와선 2팀 임태훈 차장님이랑 업무 얘기 나누고 있다.


그냥 바람 쐬고 온 거 아냐? 그렇다기엔 메시지 날아온 타이밍과 차장님 귀환 시간이 절묘한데. 혜성이 류 차장을 향해 의구심 들어 찬 눈빛을 한 아름 담아 보냈다. 시선이 맞닿았다. 황급히 눈 깔고 메일 확인하는 척 했다. 으음. 똑같네, 내가 찾은 자료랑... 다른 건 없나아. 대강 훑는데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점점 가까워진다. 백 퍼 차장님이다. 기척이 커질 수록 심장도 빨리 뛰었다. 씹, 사냥꾼 피하는 것도 이렇게 스릴 넘치진 않겠다. 나한테 오는 거 아니겠지. 지나치겠지, 지나치겠지.


탁,


제길. 귀 옆에서 멈췄다. 혜성이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래도 차장님이 나한테 할 말 있나보다. 있겠지. 그럼 없겠냐. 속으로 씨발 외치곤 하는 수 없이 눈깔 들어올렸다. 바로 앞에서 내려다 보고 있다. 호러였다. 하필 눈동자 색도 옅은 갈색이라 날 향한 동공이 선명해 더 부담스러웠다. ...왜 말도 안 하고 그러고 계세요. 존나 무섭게. 꿀릴 거 없었으면 나도 맞서 꼬라보겠는데,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입술 잘게 깨물며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확신까진 아니지만 내가 뭔갈 잘못한 것 '같다'는 직감 만큼은 확실했기 때문이다.



"따라와."



세 음절 남기고 또 홀연히 떠났다.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장 주임님이 보내는 불안한 시선에 응답할 새도 없었다. 당장 안 튀어 가면 잃어버릴 기세라 서둘러 튀어나갔다. 다행히 안 놓쳤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있었던 덕분이다. 차장님 뒤에 서서 얌전히 기다렸다. 엘베 타고 옥상까지 오를 동안 말 한 마디 일절 오가지 않았다. 적막에 숨통 조이는 기분도 오랜만이다. 정보 팀장님한테 처 맞기 전이 딱 이런 분위기인데.


문이 열리고, 차장님이 먼저 내렸다. 보폭 맞춰 계단을 세 개씩 올라 옥상에 도착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무도 없다. 다행인 쪽이 맞는 것 같다.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질 진 모르겠지만, 혹 누가 엿 들어 작전 팀장님 귀에 들어가면 운명 달리할 지도 모르니까. 테라스 난간까지 뒤 한 번 안 돌아보고 걸어 간 차장님은 담배갑 꺼내 연초부터 꼬나물었다. 난 그의 세 발자국 뒤에서 모기향 타듯 공중에 선 그으며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나 봤다.


할 말 있어 부른 듯한 차장님은 내게 시선 한 톨 안 주고 옥상 아래를 구경한다. 적막이 소음처럼 귓가를 가득 메웠다. 그저 기다렸다. 먼저 말 건네는 것도 이상했고, 달리 꺼낼 말도 없었다. 왜 보자고 해놓고 말이 없냐 따질 수도, 채근할 입장도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켓이라도 챙겨 올 걸. 안 그래도 쌀쌀한데 같이 있는 사람마저 냉랭하니 몸이 으슬으슬 떨린다.


연초가 꽁초 될 무렵에야 차장님이 얼굴을 내보였다. 새 담배에 불 붙이느라 낮게 내리깔았어도 눈매는 여직 날카로웠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어."



높낮이 없이 일정한 어조였다. 세상 무심하고도 고요한 표정이었다. 어느 감정선에 서 있는지 갈피가 안 잡혔다. 아니, 그는 정말 별 감정 없어 보였다. 물론 그의 신경이 날 섰든 무덤덤하든 내 대답이나 태도가 달라질 건 없었다. 시선 둘 곳 없어 바람에 바닥 뒹구는 모래알에 얹어놨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건 아까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차장님 나간 동안 애도 좀 탔었다. 자료 안 넘겨준 정보 팀원의 책임이 크다 해서 이 사태에 내 책임이 없는 건 아니니까. 허나 기다릴 바엔 내가 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 여긴 건 이변이 없었다. 어차피 넘어 오는 자료가 내 마음에 들 리도 만무했다.



"제출은 해야 하는데 자료는 안 오고, 기약 없이 기다리자니 진행만 점점 늦어지는 것 같아서... 그래서, 제가 했습니다."



더 보태면 변명이고 덜 보태면 성의 없으니 있는 그대로 사실만 말했다. 연초 끝 타들어 가는 것이나 보던 차장님이 눈을 치켜떴다. 자외선 받으니 눈동자가 더 밝게 빛났다. 레이저로 지져지는 기분이라 눈 깔았다.



"안 주면 줄 때까지 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맞습니다."

"근데."



언제 됩니까, 이 날까지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알겠어. 그 말만 오간다면 독촉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모든 자료를 한 번에 주고 받을 수만 있다면, 내가 직접하지도 않았다. 하나 받으면 부수적으로 알아봐야 할 것들이 또 생기고, 그러면 또 요청해야 하고. 업무에 찌든 정보 팀 상사들은 아무렴 제 일이라도 흔쾌히 받아 주는 기색이 없다. 귀찮은 일 거리 하나 더 늘어난 것처럼 피곤한 티 냈다. 말단이라서, 하대해도 지랄 못 하니까. 그게 더 스트레스 받아서 몇 번 독촉하다 말았다. 복잡한 거 몇 개만 넘기고 작전 팀 업무 아닐 지라도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건 알아서 꽁쳐서 했다. 그러다 차장님 눈에 딱 띈 거고.



"제 말엔 별로 힘이 없어서..."

"윗선에다 말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이런 일로 말씀 드리기가 좀, 그랬습니다."



찬 바람이 분다. 옥상 뿐 아니라, 차장님에게서도. 표정만으로 어느 포인트를 짚고 있는지 정확히 가늠 됐다. 윗선에다 고하지 않은 것. 대수롭게 여긴 부분도 아니었고, 말할까 말까 오래 고민하지도 않았었다.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할 일 내가 할 수 있으면 내가 하면 되지 굳이 그래야 하나 싶었다. 헌데, 굳이 그리 했어야 했나보다.



"일에도 책임이란 게 있어. 남의 일 네가 대신 했다가 잘못 되면. 그 책임 누가 지는데."

"제가..."

"너만 져?"



아. 혜성이 낮게 탄식했다. 너만 지냐, 그 짧은 한 마디가 가슴을 뚫었다. 그걸 생각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안 한 걸지도 모르겠다. 자괴감이 봇물 터진 듯 밀려왔다.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범위였음에도 도달하지 못한 건, 내가 안일했다는 것 말고는 설명할 게 없었다.



"팀원 제대로 관리 안 한 네 상사들은. 장 주임, 박 대리, 나, 과장님."



아래 부터 차례로 호명되는 상사들이 눈 앞을 스쳐갔다. 나 하나 때문에 팀장님에게 쓴 소리 듣는 그들이, 어쩌면 그보다도 더한 곤혹을 치를지도 모르는 그들의 모습이 선연했다.



"너 가르친 팀장님은." 



무려 팀장님까지. 작전 팀 대장으로서가 아닌, 나를 직접 지도한 사람으로서의 책임을. 보스 뿐만 아니라 다른 부하 요원들에게도 쪽팔았을 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진심으로 아찔했다. 더불어 쪽팔렸다. 얇은 셔츠 하나 걸친 채 바람 맞고 있는 데도 더웠다. 수치심에 얼굴이 터질 듯이 뜨거웠다. 또다. 또 나 혼자 해결하려다 남한테 민폐 끼쳤다. 지난 날, 작전 팀장님 집에서 몸살 났을 때도 비슷한 이유로 크게 화상 입고도 개선이 안 됐나 보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네 소임은 받을 거 제때 받는 거야. 혼자 힘으로 안 되면 상사 힘 빌리는 게 맞고, 그게 네가 해야 할 일인 거야. 상사들 허수아비 취급하고 헛짓거리나 하는 게 아니라."



심지어 차장님이 직접적으로 일러주기 전까진 내가 뭘 잘못했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작전 팀이란 놈이 다른 팀과 제대로된 의사소통도 못한 게 내 죄라면 죄라고 생각했다. 정보 팀 일 대신 한 게 문제가 될 거란 인식이 없었다.



"네 일이 뭔지 제대로 분간 해. 더 이상 민폐 끼치기 싫으면."



쓰리다. 차라리 처 맞는 게 덜 아플 만큼.


진짜 싫다.


알겠다는 대답 조차 듣지 않고 떠나버린 차장님도, 이 사태의 원흉인 정보 팀원도, 연대 책임 당연치사인 ND의 구조도 아닌 내가. 내가 너무 싫어서 돌아버릴 것만 같아. 병신. 머저리. 한심한 새끼. 오만방자한 새끼.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내가 내 뺨을 후려치고 싶었다. 





-






"하아..."



영점 존나 안 맞네.


오늘따라 손이 문젠지 눈깔이 문젠지 사격판 중앙을 못 맞힌다. 아무래도 수전증이 의심된다. 이거 백퍼 금단현상이다. 눈 밑이 떨려서 조준점을 제대로 못 보는 건 백퍼 마그네슘 부족이다. 사실 그거 둘 다 근본 원인이 아니란 거 알고 있다. 어시 일 하느라 훈련 소홀히 한 탓이다. 완벽히 내 거 된 줄 알았던 실력은 다 거품이었다. 이래서 자만하면 안 된다.


씨발, 또 자만 자만. 그 놈의 자만. 사격판에 영역표시 못한 데엔 분명 기분 잡친 탓도 있을 것이다.


혜성이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훈련장 도느라 다 적신 옷깃도 어느덧 메말랐다. 평정심 유지하려 총구 당긴 지만 벌써 두 시간 째였기 때문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붐볐던 사격장엔 다들 가고 혜성만 남아 있었다.


평정심은 개뿔, 신경질만 더 난다. 근래 머리 쓰는 일 많아 그런가. 총알 나가는 방향과 조준점, 과녁 움직이는 거리, 바람의 방향까지. 계산 때리는 속도도 감도 영 뒤졌다. 그새 근육도 빠진 건지 권총 무게에 손목이 뻐근하기도 했다. 존나, 불쾌한 감각이다. 가슴 깊은 곳에서 내려 앉은 한숨을 끌어 모아 한 번에 내 뱉었다. 성질 못 버티곤 손에 든 총을 바닥에다 집어 던졌다간 묘비석에 '사격 연습하다 지 대가리 쏨'이라 새겨질 지도 모르니까.


["죽이고 싶은 사람 생각하니까 잘 맞더라."]


문득 김준수가 한 말이 떠올랐다. 터무니 없는 소리라 여겼다. 눈 똑바로 뜨고 집중하면 될 일 아니냐고 답했다가 헤드락도 당했다. 마음처럼 안 풀리니 눈길 한 번 준 적 없는 방식에도 귀가 솔깃했다. 목적만 달성할 수 있다면 뭔들 못할까. 김준수 말 뇌리에 박고 일정 간격으로 점점 멀어지게 배치되어 있는 사격판을 노려봤다. 조롱하듯 좌우로 움직이는 표적들이 다 나로 보였다.


부동자세로 선 혜성에게서 잔잔하고도 강렬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인기척도 안 내고 들어와 있던 S는 멀찍이서 혜성을 가만히 응시했다. 납신 이유야 단순했다. 평소 이 시간이라면 내 사무실 침략했을 놈이 10시가 넘어도 감감무소식이길래 직접 찾으러 온 것이었다. 사무실 아니면 훈련장이겠지. 사무실부터 훑었다. 없었다. 야근하던 놈들이 벌떡 일어나 긴장하는 꼴이 퍽 불쾌해 인사도 무시하고 나왔다. 훈련장에 갔다. 찾는 놈 대신 김준수가 있었다. 남혜성은 없었다. 어디 있냐 물어보니 모른댄다. 그것도 모르냐며 정강이 걷어 차고 나왔다. 드문 드문 들려오는 총성따라 사격장까지 당도했다. 여기 있었다.


헌데, 어쩐지 낌새가 묘했다. 황야처럼 드넓은 사격장에 우두커니 홀로 서 있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발 소리 들었을 법도 한데 뒤도 안 돌아 보고 방아쇠만 당겨댔다. 제대로 맞는 게 없었다. 얼굴 보이는 곳까지 에둘러 걸어갔다. 그런데도 내가 왔다는 걸 눈치 못 챘다. 마치 다른 차원에 있는 놈처럼. 얼굴엔 예민함이 까득 묻어 있다.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총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사념에 깊이 잠겨 있다는 것을. 자세한 정황은 모르겠다. 훈련이 마음처럼 되지 않아 빡친 건가. 혹은 열 받는 일이 있었나.


연유를 캐 묻고 싶었으나 부르지 않았다. 그저 지켜봤다. 총 쏘는 꼴 보면 볼 수록 마음에 안 드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결코 나서지 않았다. 저 놈 수준이 얼마나 덜 떨어지는 지 한 번 보자. 그런 마음은 아니었다. 단지,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굳이 관여하지 않아도 내비두면 알아서 방법을 찾을 거란 근거 없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녀석의 집념을 관망하고 싶었다.


헌데 한 시간 째 진전이 없었다. 남혜성은 아까보다도 더 심기가 불편해졌다. 한숨에 분노가 묻어나왔다. 성질머리 봐라. 그러니까 안 되지 모자란 놈. 와중에 독기가 달라 붙은 눈은 또 까리했다. 재수 없는 새끼.


이쯤 하면 포기하겠거니, 나갈 준비하는데 남혜성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안광 다 죽어 있던 눈빛이 또렷하게 빛났다. 움직일 수 없었다. 바닥이 발목을 휘감는 듯한 기분이었다. 총기를 들어올린다. 숨 가다듬고, 기 모은다. 짧은 정적, 완벽한 평정을 찾은 다음 손을 올렸다. 눈 부릅 뜨고 동결. 숨 죽이고,


탕.


탕. 탕. 탕. 탕. 텀 두고 울리는 총성의 리듬은 '신중함' 그 자체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셋에 둘은 어긋나던 명중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한 발 한 발, 부동자세로 집중력을 유지하는 모습은 지켜보는 이마저 엄숙해지는 광경이었다.


죄 명중이었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편백입니다. 좋은 주말 보내셨나요? 저는 좋은 주말 보냈답니다.

ND는 왜 대기업일까요. 인물들이 하나 둘 늘어날 때마다 제가 참 큰 판에 뛰어들었구나, 실감 합니다. 분명 시작은 다섯명이었습니다. S, 개별이, C, J, Medi. 이후 보스 나오고 친구가 생기질 않나 후배가 생기질 않나 주인공 부모님 등판에 Exi 회장에 아들에 영 테드 윌리 데미안 22기 배대리 장 주임 박 대리 류 차장........ 등등 나열하니 되게 많네요. 한 사람 인생 푸는 데 참 많은 사람이 등장하네요. 이렇게 또 인생을 깨닫습니다...^^ (갑자기?)

그동안 가운데 계급 건너 뛰고 바로 팀장-개막내 포지션만 쓰느라 잘 실감이 안 되었는데 새삼 S 고위직이네요.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남혜성이 S한테 식판 던졌을 때 지켜보던 이들이 얼마나 놀랐을까요...ㅋㅋㅋㅋㅋㅋㅋ.

사회초년생 우리 개별이 ㅠㅠ. 차장님한테 혼나고 혼자 훈련하는 모습 보니 안쓰럽네요. S가 부디 잘 다독여줬으면 합니다.

QnA 이벤트는 항시 진행 중입니다! ask 주소는 관련 공지에 있으며, 소정의 상품이 있으오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질문 시, 이메일이나 트위터 계정 기재해주시는 거 잊지 마세요! 벌써 월요일(개쓰레기요일)이 돌아왔습니다. 주말의 마지막이 뜨겁게 불 타길 희망합니다. 믿고 응원해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트위터: @PB202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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