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 없이 책상을 바라보고 있는 다원에 최 대표는 눈을 꾹 감았다. 괜찮은 줄 알았지. 살이 빠진다 해도 그냥 활동 중이라 체중 조절한다고 생각했다. 컨셉을 막판에 엎어서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으니까. 4시간이나 자면 많이 잔 스케줄이 몇 주는 이어졌으니까. 몇 번이나 링겔을 맞아서 팔에는 주사자국이 선명했다. 겨울이 아니었다면 곤란할 정도로. 그러나 중요한 건 몸이 아니었다. 

'속까지 곪아있을 줄은 몰랐지'

데뷔 이래, 물론 전 회사와 관련해서 떠들썩한 트러블이 있었지만, 이렇다 할 스캔들조차 없었던 다원이었다. 민재와도 케미가 좋다는 기사만 났을 뿐 대중들도 팬들도 두 사람이 정말 막역한 사이일 뿐이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었으니. 

그러나 올해만 두 건이었다. 짜기라도 한 듯이. 

소속사에 일언반구, 어떤 언질도 없이 공개된 허위 스캔들이며, 소셜 미디어를 통해 유포된 담배 사진까지. 모두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흘러나왔다. 


그러나 과연 그게 우연일까. 정말. 

일련의 사건을 전해 들은 이 팀장의 표정은 심상치가 않았다. 최 대표는 직감했다. 그저 운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무언가 뒤가 구렸다. 

SNS에 처음 다원의 흡연 사진이 공개된 계정은 이미 폐쇄되어 작성자를 특정할 수 없었다. 개인이 한 일치고는 지나치게 뒤가 깔끔했다. 기이할 정도로. 그렇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사진 속 다원이 입고 있던 옷이며 배경까지. 

Away 촬영장이었다. 

촬영장은 보통 민간인의 촐입이 엄밀하게 제한되곤 한다. 그말은 즉, 사진을 찍은 사람은 제작진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최 대표 역시 처음엔 장 PD를 비롯한 제작진들을 의심했었다. 그러나 성철이나 스타일 팀의 말에 따르면 제작진들 모두 다원에게 굉장히 호의적이라고 했다. 그럴 만한 성품의 사람이 없다고. 장 PD 또한 사람 잘 골라 쓰기로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거기에 불현듯 생각이 스친 첫 번째 스캔들. 

사진은 류아람을 만나러 갔다가 찍힌 사진이었다. 그리고 류아람과 다시 촬영을 갔을 때 스캔들이 터졌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기이했다. B 엔터테인먼트가 정말 이 일련의 사건과 무관한가. B 엔터가 굴지의 광고회사이자 언론 최대 광고주 중 하나인 WB를 뒷배로 두고 있다는 것은 업계에선 유명한 사실이었다. 


"다원아."

"네. 대표님."

"좀 괜찮아?"

"…네. 죄송해요."

"…."


그리고 자신의 소중한 연예인은, 류아람과, 아마도. 


"어떤 사이인지, 물어 봐도 괜찮아?"

"……무슨 소리세요."

"그냥 전 멤버, 친한 언니야?"

"…그럼 달리 뭐가 있는데요."

"윤다원."

"할 얘기 없으시면 저 나갈……."

"연기는 여전히 엉망이구나."

"…."


이 팀장의 말에 다원은 미간을 좁혔다. 그러나 눈은 여전히 마주치지 못한 채 이해가 안 가는 소리를 한다며 역정을 냈다. 최 대표는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성철 역시 제 추측을 듣고 이제야 다원의 이상 행동이 이해간다며 납득했다. 

'동성인 것도 문제지만….'

애초에 아무리 인기 아이돌이 출연한다 한들, 처음 시작하는 OTT 예능인 Away의 협찬이 그렇게 빵빵할 리 없었다. 모두 다 B엔터와 WB, 김원혁 대표라는 배경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엇이 됐든, 비단 스캔들 문제만이 아니었다. 

물론 스캔들도 나빴지만, 

상대가 여자인 건 더 나빴고,

그게 과거에 같은 그룹에 몸을 담았지만 거지같이 헤어진 전 멤버인 건 더더욱 나빴고,

재벌을 스폰서로 가진 류아람인 건 최악이었다. 


지금 이 모든 게 류아람과 함께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 최 대표가 내릴 수 있는 정답은 명백했다. 류아람과 떼어놔야 했다.  


"정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뭐를요."

"관계."

"…제 사생활이에요."

"인정한 거네."

"……."

"윤다원. 원아. 그건 정말 안 돼."

"더 얘기 안 할래요."


문을 닫고 나가는 다원의 뒷모습을 보며 최 대표는 시름 가득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 옆의 이 팀장 역시 안경을 벗고 마른 세수를 연거푸 했다. 라율에 이어서 다원까지. 평소에 전혀 속을 썩이지 않던 이들이었기에 대책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최 대표는 다시금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라율아. 너 힘든 거 아는데, 이런 부탁 해서 정말 미안해."

"아냐. 언니. 다원이 일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래도 너도 많이 힘들 텐데."

"저번에도 말했잖아. 괜찮다니까? 조금 일렀을 뿐이야."


주희는 촬영 때문에 다원의 곁을 지키지 못하는 자신 대신 라율에게 다원의 케어를 부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본인도 회사에 연애 사실이 알려져, 원치 않은 타이밍에 이별을 해야 했던 라율에게 미안했다. 


"그래도…."

"대표님도 헤어지라고 막 그러신 건 아니니까. 그 양반 성격이 어딜 그래? 그냥 내가 정리한 거라니까? 자주적인 어뭬리칸! 차라율!"

"으이구. 그래."

"그렇다고 촬영 끝나고 사주기로 한 위스키는 어디 안 가지만."

"알아. 알아."

"근데 왜 이백조한테 안 말하고? 걔 요새 바쁘긴 하지만."

"뮤지컬 때문만은 아니고, 아람 언니 관련된 일 같아서. 수완이는 그냥 바로 헤어지라고 난리칠 것 같아서."

"아. 언니 멤잘알이네."

"눈에 선하지?"

"응. 알았어. 그렇지 않아도 우리 막내강아지 요새 애정을 안 줬어서. 마음 쓰였는데."

"응. 나도 너도 수완이도, 각자 너무 정신 없어서 못 챙겼지만……. 알잖아. 다원이 아직 스물둘이야."

"어휴. 네. 스물다섯 님."

"또 그러지. 아, 나 촬영 들어가. 부탁해!"

"응~ 촬영 잘하고. 리다~ 사랑해~~ 힘내애~"


오버스럽게 쮸왑 뽀뽀 소리까지 낸 라율은 전화를 끊고 기지개를 폈다. 장PD와의 이별을 감내하고 내색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많은 에너지를 쏟았기에 평소보다 주위를 잘 살피지 못했던 라율이었다. 그 사이 막내가 이런저런 역경을 겪었지만, 윤다원이니까, 그 황금막내 다이아멘탈 ONE이니까 괜찮으리라 짐작했었다. 그러나 주희의 말이 맞았다. 다원은 아직 자신보다도 2살이나 어린, 아직 애였다. 

때마침 삑삑삑 소리를 내며 눌리는 도어락에 라율은 버선발로 현관으로 뛰어갔다. 우리 죽상일 똥강아지 꼭 껴안아서 위로해 줘야지. 맛있는 거 먹이고 재워야지. 그렇게, 어쩌면 가볍게 생각했었다. 


"원아~~! 우리 귀염둥이 똥강…."

"……."

"원아. 윤다원. 너, 괜찮아?"


울음으로 엉망진창이 된 얼굴, 게다가 안 본 사이 반쪽이 된 그 모습에 라율은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라율은 다원이 이렇게도 처참하게, 엉망진창이 된 것을 본 일이 없었다. 아람이 나갔을 때도, 회사에서 빈털터리로 쫓겨 났을 때도, 많이 울었지만 그 굳은 심지는 그대로였던 다원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22살짜리 여자 아이는 마음 속 무언가가 뚝하고 꺾인 것만 같았다. 


"…나 어떡해."

"왜 그래. 다원아. 뚝. 에고."

"대표님이, 만나지, 말래."

"아. 뭐? 걸렸어?"

"……나 어떡해."

"아니. 어쩌다가."

"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언니."

"허어."

"……혼자는 싫어. 이제 와서 어떻게 내가."


작은 몸을 안고 라율은 생각했다. 자신 역시 장PD와의 관계를 회사에 들키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정리하기까지 많은 눈물을 흘렸다. 한 사람이 차지하고 있던 공간이 마음속에서 사라진 것뿐인데도 무척 외로웠다. 라율은 다원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을 거야. 얘기가 아예 안 통하는 사람도 아니잖아."

"…."

"……. 단호했어? 헤어지래…?"

"………응."

"아니. 뭐…. 사람 마음이란 게 쉽나. 어이 없는 양반이네?!"

"…흑. 모르겠어. 정리하라고…. 일단 어디든 매니저 통해서 다니라고."

"언니가 대표님 설득해 줄게! 언니만 믿어. 울지 말고~ 뭐 당장 헤어진 것도 아닌데."

"미, 안해. 언니도 힘, 훌쩍."


라율은 배려에 몸을 떼어내는 다원을 다시 안고서 울음이 그칠 때까지 한참을 안아 주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여러 생각이 스쳤다. 자신에게도 최 대표는 관계에 대해 말하긴 했지만, 그 조언의 방향은 일방향이 아니었다. 회사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선을 제시하고, 선택권을 줬다. 그 선택지와 결과를 보고 이별을 선택한 건 라율과 장PD 본인들이었다.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게다가 발각되고 바로 정리부터 말하는 건 최 대표나 이 팀장답지 않았다. 설득하겠노라 말했지만 쉽지 않을 것임을 라율은 직감했다.




"내 입장은 변하지 않아. 류아람과 함께 있는 건 다원이에게 좋을 게 없어."


아니나 다를까 최 대표는 답지 않게 완강한 입장을 내비췄다. 회사와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건 리더인 주희였고, 그나마 솔로 활동을 많이 한 다원이었다.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라율로서는 대화에 한계가 있었다. 온정에 호소해 봐도 돌아오는 답은 똑같았다. 아람은 안 된다는 것. 


"다원이 멘탈에도 안 좋아요. 지금 애가 얼마나 불안해하는데요."

"그 불안의 근원적인 원인을 만든 게, 류아람이라고."

"아니. 그니까 그건…. 모르는 일이잖아요.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구요."

"확실한 증거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다원이는 더 망가질 수도 있어."

"……."

"스캔들 때문이 아니야. 거기는…. 거긴 정말 아니야."

"B 엔터요?"


말을 아끼는 최 대표에 라율은 직감했다. 최 대표는 다원에게 일어난 크고 작은 트러블의 불씨가 B 엔터에서 시발된 것이라 믿고 있음을. 이전 회사의 잔인한 면은 라율 역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윗대가리가 백 사장에서 지나로 바뀌었다 한들 변하지 않는 건가. 라율은 아랫입술을 꾹 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무엇도 해결하지 못한 라율이 숙소로 돌아왔을 때, 다원은 방에서 통화 중이었다. 상대는 누구인지 분명했다.


"응. 밥은 잘 먹었어요? 다행이다.

나? 나는 잘 있죠. 다친 것도 아닌데…. 

내일부터 바로 촬영이라면서요. 힘들어서 어떡해요."

"허어."


죽상을 하고서 눈가는 새빨간 주제에 목소리는 한껏 밝았다. 라율은 미간을 좁힌 채 방문에 서서 다원을 지켜보았다. 회사에 들켰다는 것을, 교제를 끝내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을 아람에게 말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어째서. 


"언니, 제가 이따 다시 전화할게요. 쉬고 있어요. 아하하. 응. 나두요."


자신을 발견하고 전화를 끊은 다원을 라율은 복잡한 감정이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안쓰럽고 안타깝고, 한편으로 미련했다. 


"왜 말을 안 해. 언니한테."

"…말 한다고 달라질 거 없으니까."

"왜 없어. 같이 고민해야지.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얘기해 봤자…. 언니까지 불안해질 뿐이야."

"너 혼자서 어쩌려고 그래."


라율은 울어서 빨갛게 짓무른 눈가를 손끝으로 살살 쓸어 주었다. 더 흘릴 눈물이 남지 않았을 것 같았는데도 금세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다. 그렇지만 다원은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괜찮아."

"뭐가 괜찮아?!"

"잠시 못 보는 거니까…. 어차피 언니 드라마 때문에 못 보는 거고. 그 사이에…. 대표님이나 팀장님이나 내가 설득하면 되니까."

"다원아."

"…나 괜찮아. 괜찮아. 정말로."


라율은 입꼬리를 올리는 다원을 보고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완벽한 아이돌 스마일이었지만 입꼬리를 덜덜 떨리고 있었다. 다원은 18살, 아람과 회사에서 버려졌을 때도 괜찮다며 우리는 더 잘할 거라며 언니들을 다독였었다. 스캔들 때도, 담배 사건 때도 다원은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도. 라율은 비로소 깨달았다. 다이아몬드 멘탈, 황금막내. 온갖 수식어 뒤에 가려져 있던 다원의 진짜 모습을. 


"다원아."

"진짜야 나 괜…."

"너 한 번도 괜찮은 적이 없었구나."


모르는 척하고 다른 무언가에 집중해서 주의를 분산시켰을 뿐. 윤다원은 단 한 번도 괜찮은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 말에 다원은 아니라는 대답도 그렇다는 대답도 건네지 못했다. 

백식빵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