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석증 때문에 낸 병가는 곧 끝납니다.

실은 5월에 낸 병가였거든요.

『지배하는 자』가 끝나고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글을 하나도 못 쓰기는 했지만, 그래도 3화 정도는 쓸 줄 알았는데.......


2.

새로 쓰는 글은 마음에 드는 구석도 있고 들지 않는 구석도 있습니다. 저 나름대로는 타협을 했는데 바로 그 때문에 마음에 드는 구석과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공존합니다.

(쓸데없는 오해를 막기 위해 첨언하자면,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늘 감사하고 전 늘 최선을 다해 쓰고 있습니다. 다만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더라도 마음에 드는 구석과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은 늘 있어요. 『마왕X용사』도 그랬고 『지배하는 자』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자면, 저의 참 나쁜 버릇으로는 설명이 너무 세세하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그 부분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고쳐지지 않아요. 지금도 주절주절 설명을 늘어놓고 있죠. 그런 의미에서 드린 말씀이니 '나는 이 작품을 좋아하는데 작가는 자기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오해는 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가상의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나 지배하는 자 외전은 현재 자료조사를 할 형편이 아니라 아마 한참 시간이 지나야 보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병가가 곧 끝나니까 아마 『반짝이는 것은 모두 별』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완결을 못 보지 않으실까요? 10월 정도에 단체전에 나가야 해서 앞으로 토요일에는 꼬박꼬박 작업실에 나가야 하고 일요일에는 밀린 집안일을 해야 하고.... 와 어쩌다 글을 썼을까요? 종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굉장히 행복하기는 했는데, 이게 바로 책임 못 질 일은 시작하지 말라는 소리 아닐까요?


3.

병가를 내니까 책을 읽을 시간이 많아져서 좋아요.

요새 도서관에서 하는 독서 모임 때문에 김훈의 『하얼빈』을 읽고 있습니다. 원래라면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글을 읽게 되어서 재미있기도 합니다. 비록 아 이래서 나는 김훈이라는 작가의 글을 읽다 말았고 그 후로도 안 읽었구나 깨닫는 경험이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요.

최근에는 로저 젤라즈니의 『드림 마스터』와 마쓰모토 세이초의 『짐승의 길』 같은 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어슐러 K. 르귄의 『서부 해안 연대기』는 마지막 「파워」만 남겨두고 반납했고요. 어차피 집에 있으니까 전자책으로 읽으려고 합니다.

메도루마 슌의 『물방울』도 표제작을 읽었는데, 병가 내기 전에 회사 점심 시간을 이용해 서둘러 읽어서 그런가 아무런 감흥이 없었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한 제가 초등학교 5~6학년일 때)에 읽은 하이타니 겐지로의 『태양의 아이』는 정말 울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똑같은 오키나와 이야기인데 말이에요.

닐 게이먼이 참여한 앤솔로지인 『이야기들』은 절반 정도 읽었습니다.

여기다가 굳이 늘어놓지는 않겠지만 웹소설도 이것저것 읽었습니다. BL 포함해서요.

너무나도 행복한데, 이 행복은 다음주 월요일로 마지막이지요.


4.

고백하자면 그동안 글을 전혀 못 쓰게 된, 심지어 글을 그만 써야만 하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기는 있었습니다. 『지배하는 자』 마무리를 짓고 나서부터 제 상태가 참 나빴습니다. 외전을 쓰기 전부터 안 좋았고, 그 상태로 외전을 쓰고 나서는 정말로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그 글에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완성도를 내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상태가 나빠졌지만요. 자신의 글에 확신을 품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 의미로 그런 글은 다시 못 쓸 것 같았어요. 계속해서 그런 글을 쓰면 내가 정말 빨리 죽을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실 뭐 제 기준에서 완성도가 높은 거지 모든 독자에게 그 글이 완성도가 높을 수는 없으니까요. 무엇보다 저는 떠벌떠벌 시간을 들여가며 설명하기를 매우 좋아한다는 치명적인 단점(ㅋㅋㅋ 독자의 수준을 뭘로 보고!)이 있고요. 많은 사람이 좋아하기에는 지나치게 무겁고 어두운 글이기도 했고요. 그런 점을 빨리 받아들이고 완성도의 기준을 낮춘 뒤 편안해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지금 쓰는 글을 타협했다고 말한 이유는 완성도의 기준을 낮추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다시는 그런 글은 못 쓸 것 같고, 지금 상태로는 못 쓰는 게 맞아서요. 매일 세 시간을 왕복하면서 일 끝나면 머리가 하얗게 빈 채로 지하철에 몸을 싣는데, 어떻게 제가 저 자신에게 설정한 그 높은 기준을 맞추겠다고 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새로운 기분이 듭니다. 예전에는 절대 이 상태로는 글을 쓰지 않았을 텐데.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느낄 때 글을 쓰기 시작했을 테고, 글을 쓰기 전에 더 많이 읽었을 테고 (저는 남의 글을 전혀 읽지 않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표절과는 무관한 이야기로, 사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낼 수 없고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그렇기에 더 많이 읽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입니다.) 종일 글 생각만 할 수 있을 때 꾸준히 글을 썼을 텐데.

저는 지금 쓰는 글을 통해서 제가 보다 편안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래도 된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1화를 여섯 번 갈아엎기는 했지만.... 2화를 세 번 썼지만. 3화도 세 번 썼는데 제가 사람들에게 보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원하는 퀄리티가 나오지 않아서 매우 불만이기는 하지만. 연재되는 웹소설을 더 많이 읽어서 타이밍 감각을 익혔다면 좋았을 텐데요. 아쉽네요.

뭐, 어쨌거나 제가 글만으로 평생 생계를 이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건 매우 어려운 일이고 대부분의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죽하면 글이 좀 팔렸다고 직장을 때려치우는 게 가장 어리석은 일이라고 하겠어요. 

그러면 글을 쓰기 위해 일을 해야 하고, 일을 하면서 글을 계속 쓰려면 필연적으로 전 기준을 낮추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죠. 글과 일을 양립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요.

기분이 좋지는 않아요. 저는 모든 창작은 차선이 아니라 최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저는 천재가 아니라서 제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지배하는 자』를 쓰기 전에는 원하는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 몇 개월 동안 중국 고전 산문과 시만 읽었었죠.

그렇지만 그런 기준에 몰입하다가 아예 글을 못 쓰게 되면, 그 기준이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5.

이 글이 잘못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무엇보다 '내가 글을 못 쓰게 된 이유는 내 글 칭찬 안 해주고 안 사준 너희 독자 탓이야!' 따위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읽히기 위해 쓴 글도 아니니 그렇게 읽힌다면 참 슬플 것입니다. 무엇보다 사실도 아니고요.

그저 지금은 글을 쓰고 싶어요. 제 안에 있는 벽을 깨고 싶고요. 아주 하찮고 남부끄럽고 이건 아니다 싶은 것일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평가받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장르소설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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