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소드실드 플레이하면서 혼자 해소했던 욕망글 

*반 년 간 방치해놓았던 글

*DLC 발매 이전에 연성


[건조한 연인]

오래 사귀어서 건조하거나 담담해진 게 아니라, 처음부터 건조한 사랑을 해온 단델금랑. 그래서 숨기려 하지 않았는데도 다들 둘이 사귀는 걸 몰랐으면 좋겠다.

고백은 단델이 했는데, 고백한 이유도 건조했으면. 금랑이 자기한테 5번째 패배했을 때, 금랑을 라이벌로만 여기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 그렇지만 그래서 뭐? 라는 심정이었지. 금랑을 향한 사랑을 깨달았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을 거야. 심지어 맞사랑이라는 걸 알았는데도 말이지! 단델은 여전히 금랑의 라이벌이자, 챔피언이야. 금랑의 맞은편에서 누구보다 그를 오래 보고, 자세히 아는 사람. 여기서 좀 더 날조를 하자. 개연성은 중요하잖아.

베일에 쌓인 금랑의 과거와 그의 사생활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단델이면 어떨까. 의도했던 건 아니야. 아직 단델이 챌린저 시절, 너클 짐 배지만 남은 신성이었던 단델의 팬을 자처한 아이가 있었어. (생략) ... 사랑의 여부와 관계없이 단델은 금랑의 라이벌이자, 챔피언이고 그건 금랑도 마찬가지야. 푸키먼 승부 여부를 떠나도 둘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거야. 오프 때의 단델이나 금랑은 확실히 갭이 있겠지. 챔피언이 아닌 단델은 오너님처럼 차분하고 조용하지만, 금랑의 감상은 그게 다일 거야. 보여지는 모습이 어떻듯 단델이라는 건 달라지지 않아. 화려한 퍼포먼스롤 보이는 챔피언도 단델의 일부고, 길을 잘 찾지 못한다는 약점 빼고는 완벽한 단델도 챔피언의 일부겠지. 금랑이

 딱히 뭘 하고 싶은 건 아니었던 거지. 그래도 금랑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고백한 단델. 고백도 확신하지 못하는 어투로, 너가 좋은 거 같다. 사귀면서 뭘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놓치고 싶지는 않다. 라면서 솔직하게 말한 거고. 금랑은 나님도 그런 거 같다면서 그렇게 사귀게 된 거지.



[라이벌의 계보]

*초반 문어체

*과거 날조 주의

*소니아와 금랑 관계 날조

*날조 밖에 없음

라이벌이란 무엇인가.

우르 농장이 유명한 펄롱 마을 출신, 다이맥스 연구의 선구자 매그놀리아 박사의 유일무이한 손녀, 할머니의 추천장을 받은 챌린저… 그리고, 같은 챌린저이자 챔피언의 추천장을 받은 단델의 라이벌.

다섯 손가락을 채우지 않은 정보가 소니아의 전부였다. 좀 더 추가하면 엔진 스타디움의 순무님을 이기지 못하고 멈춘 그저 그런 챌린저? 음. 그건 좀 아니야. 그녀는 아직 승부를 포기하지 않았고, 아슬아슬하지만 체육관 미션도 클리어했다. 순무님이 무지막지 강하셔서 그렇지.

소꿉친구와 벌어진 격차에서 오는 열등감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단델은 어느새 포플러 님을 꺾었다고 한다. 와일드 에리어를 지나 너클시티를 통과하고도 두 체육관이나 건넌 거니, 엔진시티가 관리하는 와일드 에리어도 힘겨워한 소니아와는 차이는 더 멀어졌다.

좁힐 수 있을까. 상냥한 단델은 분명 이런 느림보라도 계속 라이벌이라고 말해줄 테지. 소니아는 그런 상냥한 배려를 하는 단델이 두려웠다. 혼자 쑥쑥 앞으로 나아가는 주제에, 뒤돌아볼 생각은 하지도 않으면서 상냥하기만 하다.

바우 마을에서 만난 야청도 순무님을 격파하고 시간이 좀 더 지났다. 챌린저 동기들 중 뒤처진 사람은 소니아 혼자만 남은 거 같아 우울했다.

그냥 포기할까.

소니아는 단델, 야청과 달리 목표가 없었다. 단델은 챔피언을 꺾기 위해서 달려갔지. 야청도 챌린저에서 높은 성적을 얻어 바우 스타디움 트레이너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언젠가 꼭 짐리더가 될 거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친구들 앞에서 소니아는 자신있게 목표를 말하지 못했다.

없는 걸 있다고 거짓말 할 수는 없잖아.

 

▶뒤처지는 느낌과 코앞까지 다가온 짧은 여행의 끝을 직감해 우는 소니아 앞에 금랑이 나타났으면 좋겠어. 금랑은 소니아처럼 아직 순무님에게 이기지 못한 챌린저인데, 이유가 트레이너와의 배틀에 익숙하지 않아서 였음 좋겠네. 금랑은 배지 2개를 딴 트레이너 답지 않게 두랄로돈 한 마리만 데리고 다녔어. 길가에 서서 우는 소니아를 달래서 금랑은 사람 눈을 피해, 엔진 시티에서 눈에 띄지 않는 낡은 카페에 데려가. 거기서 코코아를 사주고 소니아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 기다려주지. 소니아는 처음 보는 금랑에게 두서 없이 자신이 우울해하는 이유, 어려운 엔진 스타디움 도전을 토로해. 라이벌, 친구에 비해 뒤처지는 처지가 서럽고, 친구들과 달리 뚜렷한 목표 없는 자신이 싫다고 말이야. 금랑은 소니아의 이야기를 차분히 다 들어준 다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이몸도 너와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목표가 없는 건 마찬가지라면서 말이야.

 너클 시티 출신 금랑은 유력한 차기 짐 리더였어. 드래곤 타입 포켓몬이 유난히 잘 따르고, 배틀에 대한 감각이 탁월했지. 레인저 출신 부모를 두어서 아주 어릴 적부터 와일드 에리어를 제집처럼 드나들었고. 만약에 부모님이 와일드 에리어에서 불의에 사고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그대로 레인저가 될 수도 있었겠지.

 당시 너클 짐 리더는 고령의 귀족 출신으로, 포플러처럼 후계를 찾고 있었지. 너클 시티 짐 리더는 반드시 드래곤 타입 트레이너에 수석 관장을 도맡아야 하는 의무가 있었어. 드래곤 타입 트레이너는 곧잘 보이고, 육성이 까다로워도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 문제는 수석 관장급의 실력이었어. 수관은 당시 너클 짐 리더에 의견에 따르면, 애매한 직책이었어. 챔피언 바로 아래에 실력이면서, 결코 챔피언을 꺾어서는 안되지. 그러면서 자신 아래 7명의 관장보다 월등히 뛰어나야 해. 후자가 충족되는 경우는 종종 있어 왔지만, 전자의 조건을 충족하기란 무척 어려웠지. 챔피언과 비등하지만 그를 꺾어서는 안되다니. 무슨 개소리인지 참.

 뛰어난 인재는 언제나 부족했지. 챔피언의 재목은 많아도 수관의 재목은 많지 않았어. 실력이 너무 좋아도 문제였고 모자라서도 안되었으며, 너클 시티의 짐 리더는 가장 우선적으로 너클과 가라르를 생각해야 해서 온전히 배틀에만 사명을 다하기도 힘들었지. 역사에 관한 조예도 있고, 와일드 에리어로부터 약자를 지켜야 하며, 엔진시티와 마찬가지로 위험의 최전방에서 흉악한 자연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사령관 역할을 겸해야 했지. 덕분에 당시 수관은 무려 90살에도 은퇴하지 못하고 있던 실정이었어. 이제는 오래 서 있는 것도 힘들어. 앉아서 챌린저와 시합할 수도 없으니, 실적이 떨어지는 것도 눈에 훤했지. 요 몇 년간은 얼음 타입의 멜론이라는 처자에게 매번 지기만 했어. 늙은이가 갈 데까지 간 게지.

 여전히 많은 조건을 따져야 하지만, 늙은 수관은 시간이 없었어. 궁시렁 따지기만 하다가 은퇴 전에 목숨줄부터 놓아버릴 지경이었어. 그런 시기에 고아가 된 레인저의 아이가 눈에 들어온 거야. 아이, 금랑은 늙은이도 얼굴이 익은 너클 토박이였지. 위험하다는 말은 죽어도 안 듣고 꼭 와일드 에리어를 순찰하는 부모님을 배웅하거나, 걸음마를 뗐을 때부터 너클 시티 근처 와일드 에리어를 뛰어 놓은 간덩이 밖에 내어 놓은 맹랑한 꼬맹이.

 험악한 와일드 에리어 레인저는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전문직이었지. 그만큼 생명 수단도 높고, 너클 시티와 엔진 시티에서 남은 가족에 대한 복지도 잘 되어 있었어. 금랑은 그 복지에 따라서 원래라면 너클 관한 양육 시설에 맡겨질 예정이었어. 만약에 늙은 관장의 눈에 띄지 않았다면 말이야. 가족을 잃은 아이는 기운 없었지만, 와일드 에리어에 자주 드나들다 보니 예전부터 각오를 해왔었는지, 담담한 눈치였어. 너무 많이 슬퍼하지 않고, 부모님이 아이를 사랑한 딱 그만큼의 애도를 했어. 강인한 아이였지. 늙은이는 금랑이야말로 자신이 찾던 인재라는 걸 직감했어.

 그렇게 해서 금랑은 너클 짐 리더 추천 챌린저가 된 거야. 당연히 장래에 부모님처럼 레인저가 될 줄 알았던 아이는 다짜고짜 어머니의 포켓몬이던 두랄로돈 한 마리와 함께 배틀의 세계에 내던져졌지. 달콤한 코코아를 다 마신 금랑은 트레이너보다 레인저가 더 좋고, 계속 와일드 에리어를 여행하고 싶다는 얘기를 덧붙였지. 그래서 와일드 에리어를 떠나야 하는 이후에 체육관 도전은 하고 싶지 않다고.

 -이몸, 한 번도 트레이너랑 배틀해본 적 없단 말이지. 바우 마을까지는 어떻게든 두랄로돈 덕분에 통과했는데 엔진 시티는 어떻게 깨야 할지 모르겠어.

-그래도 금랑군은 대단하네... 와일드 에리어를 통과하는 건 어렵지 않았을 거 아니야.

-으응... 그래도 힘들었지. 부모님도 그랬지만 와일드 에리어는 어제까지 알던 사실이 바로 내일 바뀌는 곳이어서. 거기다 난 너클 시티 주변만 좀 돌아봤는 걸. 엔진 쪽은 하나도 모르겠더라.

 금랑이 배틀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금랑과 두랄루돈을 포함한 그의 포켓몬들이 ‘적당히’ 배틀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었어. 와일드 에리어에서 논다고 했지만, 그곳은 절대 아이가 소풍 나오듯 노는 개념이 통하지 않았지. 금랑은 어머니의 포켓몬과 함께 매번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였겠지. 비교적 안전한 장소로만 다녔다고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위기가 있었을 테고, 금랑은 그때마다 내가 죽거나 상대를 죽이거나 하는 목숨을 건 싸움을 했을 거야.

 소니아는 챌린저가 되고 싶지 않았다는 금랑도, 강제적이긴 했어도, 뚜렷한 목표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어. 수석 관장님이 인정한 트레이너라면 조금 늦춰진 정도는 쉽게 따라잡겠지. 금랑이라면 이미 저 앞에 단델 곁에 서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야. 그런 가능성을 자각하니, 소니아는 한층 우울해졌어. 동기들이 너무나 강해. 배틀이 재미없어. 소중한 멍파치가 다치는 것도 이제는 지긋지긋해. 코코아로 진정했어도 한 번 터져나온 우울한 생각은 멈추지 않았지.

 금랑은 금랑대로 난감했어. 부모님을 따라다니느라 너클 시티에 있을 때도 또래와는 어울려 본 적 없어서 챌린저가 된 후로도 혼자 다녔지.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조금 불편했고, 애들은 어쩐지 잘 맞지 않았어. 마음에 드는 애(단델)가 있기는 했지만, 어떻게 친해지면 몰랐어서 계속 혼자였지. 그래서 자신이 다른 챌린저에 비해 뒤처진다는 건 알고 있었어도 신경쓰지 않았어. 이번에 떨어져도 내년이 있고, 할아버지에게 조금만 더 참아달라고 부탁하면 되니까. 짐 트레이너 누나에게 1년 정도는 리더가 부재해도 너클 짐은 문제 없이 운용된다는 말을 들은 덕분이야. 이 얘기는 할아버지에게 절대 비밀이라고 했지만.

 혼자 다니던 금랑이 소니아를 발견한 건 정말 우연이었겠지. 혼자여도 금랑은 바쁜 부모님 덕에 훌륭한 스마트로토무 중독자였기 때문에 종종 다른 챌린저들의 시합 중계를 보곤 했어. 가장 재미있는 시합은 펄롱 마을의 단델이었지만, 응원하는 사람은 같은 마을 출신에 소니아였지. 챌린저가 아니었으면 팬이 되었을 거야. 아니, 금랑은 사실 소니아의 엄청난 팬이었어. 뭐랄까... 금랑은 자신도 몰랐는데, 응원하고 싶어지는 사람. 노력하는 사람을 좋아하나봐. 소니아는 단델처럼 강력한 힘이나, 야청처럼 누구나 주목할 퍼포먼스를 보이지는 않지만, 매순간 필사적으로 시합하는 모습을 응원했어. 꼭 이겼으면 했고, 더 오래 보고 싶었어. 그래서 길에서 우는 소니아를 봤을 때, 금랑은 일단 달래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응원하는 선수가 그만두지 않기를 바랐지. 더해서 리그 카드를 교환하면 싶지만, 역시 이건 과한 욕심일 거야.

 금랑은 누군가를 위로해 본 적 없는 사람이었지. 어쩌다 보니 주변을 잘 본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사람 자체에 대한 경험이 너무 적어서 서툴렀어. 노력하는 사람이 좋아진 이유도 동질감 때문이 아닐까 싶어. 서툴고 사람이 어려운 금랑과 자신감이 부족한 소니아는 둘 다 느림보였지. 소니아는 썩 금랑이 마음에 들진 않았어. 자신을 위로해준 아이는 눈치는 빠른데, 뭔가 불편했기 때문이야. 어쩐지 행동을 따라하는 거 같기도 했고. 미래가 보장된 엘리트님이 쓸데없는 데 신경쓰는 모습도 짜증났어. 자기가 꼬여있는 걸 아는데. 알고 있지만, 소니아는 금랑을 왜곡해서 보는 걸 멈출 수 없었지.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진짜로 챌린저를 포기할 것만 같았고, 화 한 번 제대로 내지 않는 순한 금랑은 기꺼이 소니아의 짜증을 감내해주었지.

 둘은 함께 엔진 스타디움에 도전했어. 금랑이 트레이너와의 배틀에 익숙해지는 일은 시간의 문제였지. 몇 번 다른 사람과 겨루고 사람 사이에 섞여 들면 해결되었지만, 금랑은 굳이 자신의 성장을 소니아에게 티내지 않았어. 소니아가 먼저 엔진 스타디움에 통과하게 배려하고, 그녀가 자신을 기다려주는 사이에 후다닥 순무님을 쓰러트렸지. 소니아는 그 단델과는 다른 방식의 배려에 고마움과 짜증을 동시에 느꼈지만, 어린 아이는 자신의 비겁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 비정상적인 관계였고, 어쩌면 일방적으로도 보였지. 아마 두 아이는 자신들의 유대가 오래 가지 않을 거를 알고 있었을 거야.

 무사히 엔진 시티를 넘어 너클 시티에 가기 위해서는 다시 와일드에리어를 통과해야 했지. 그때까지 소니아와 금랑은 동행했어. 네 번째 배지는 레트로 마을에 있었고, 예술과 유적으로 유명한 곳이기에 박사의 손녀와 너클 시티 출신 소년은 기대감으로 넘쳤지.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금랑이 헤맬 리 없었지.


[여금랑 (1)]

 가라르 사귀고 싶은 여자 부동의 1위 수석 관장님 보고 싶다. 190cm 언저리의 모델 체형에 필라테스와 헬스로 다져진 근육질 언니 너무 좋아요. 투블럭으로 시원하게 밀었고, 테크웨어 좋아하는 반다나가 잘 어울리는 금랑 언니 압도적으로 여성 팬이 많았으면 한다. 일단 나부터 사랑해요.

안티들 여자들에게 인기 많은 금랑이 꼴보기 싫고, 화장도 안 하고 예쁜 옷도 입지 않으면서 백날천날 셀카나 찍는 금랑이 얼마나 아니꼬았을까. 자기들 비위에 맞춰주지도 않는 년이 수석 관장이라고 나대고 있어. 10년 동안 챔피언에게 지는 주제에 뭐가 좋다고 실실대고 말이야. 셀카도 그래. 악플이 들끓겠지.

 그리고 그런 미친 놈들은 사뿐히 즈려밟아 정기적으로 고소 파티 여는 금랑 언니 주세요. 미친놈들 말마따나 10년이나 단델에게 패배하고 있지. 어지간한 멘탈로는 버티지 못할 기간이야. 하고 싶은대로 행동해도 욕 먹고, 비위 맞춰주면서 얌전 떨어도 욕 먹었지 뭐야. 그럼 하고 싶은대로 하고 욕 먹는 게 훨씬 낫지 않겠어?

 사귀고 싶은 여자 1위라니, 웃기지도 않아. 포케스타그램에 악플을 다는 놈들이 매긴 앙케이트에 금랑은 관심도 가지고 싶지 않았어. 미친놈들은 이 결과를 또 지들끼리 돌려보면서 시시덕거리겠지. 정말 역겹단 말이야. 꼬박꼬박 PDF 따서 고소하고, 다시는 안티짓 하지 못할 벌금까지 매기는 데도 어디서 꼬박꼬박 기어나오는 걸까. 정말로 한 놈 잡아다 감옥 보내야 잠잠해지려나 사소한 고민하는 알파미 낭낭한 금랑님. 짜증나지만 스트레스가 심한 건 아니겠지. 어차피 한주먹도 안 되는 놈들이 태반이고,

 여금랑은 단델과 대면대면하겠지. 악플러 새끼들이 꼬이는 게 단델 때문은 아니지만, 스트레스의 원인이긴 하니까. 한 번을 져주지 않는 놈. 싫지는 않지만, 좋아하지도 않아. 사적으로는 연락 한 번 안하겠지. 라이벌 좋지. 근데 한 번 틈이라도 주면서 라이벌 타령 했으면 좋겠다고. 나님 지기만 하는 관계를 라이벌이라고 하고 싶지 않으니까.

 개인 캐해로 금랑은 어쩐지 맺음과 끊음이 확실할 거 같아. 자신의 사람이 아니라면, 기본적인 친절 외에 상대에게 무엇도 주어지지 않아. 그 친절도 어디까지나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니까 악플러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얄짤 없겠지. 오히려 비위를 잘 맞추고 ‘챔피언 이미지’를 잘 활용하는 쪽은 단델일 거야. 10년 동안 해오는 짓이고, 그 로즈에게서 교육 받은 것도 있겠지. 반대로 금랑은 아부나 억지로 고개를 숙이는 짓은 하지 못할 거야. 두송처럼 완전히 질색해서 뻣뻣한 건 아니지만, 신념에 맞지 않으면 손해를 감수하고도 더러운 똥을 피할 거야. 다행히 금랑에게는 자잘한 기업들은 엄두도 못 낼 매크로코스모스에서 스폰이 있어. 가라르에서 유일하게 금랑만을 후원해주고 있지. 금랑 뒤에 매크로코스모스가 있는 이상, 다른 스폰서들은 금랑을 욕해도 실제로 어떤 타격도 주지 못하지. 뒤에 어떤 존재가 있냐 없냐의 차이가 두송과 금랑의 위치를 결정해주었어. 또, 각자의 마을이 가진 힘도 있었지. 너클 시티는 언제나 금랑과 역대 너클 스타디움 관장들을 100% 지지해주었고, 그들에게 광활한 역사로 쌓은 힘이 있는 이상, 금랑의 사소한 ‘언행’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

 금랑도 엔터테이너야. 최초의 여성 수석관장이자 챔피언의 라이벌이며, 보물고를 지키는 수문장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아주 잘 알고 있지. 싫어하는 놈들에게는 무례해도, 기본적으로 유한 성격에 자신의 사람들에게는 최고로 잘해주는 금랑을 싫어하는 사람보다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지. 금랑은 자신이 더 신경 쓰고 마땅히 감사해야 하는 쪽을 헷갈리지 않았어.

 가라르의 팬들도 이런 금랑의 모습을 좋아했어. 금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챔피언에게 지기만 하는 여자를 욕하지만, 금랑이 단델 말고도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 어떻게 수석 관장이 되었고, 왜 포기하지 않는지 아는 사람들은 모두 금랑을 응원했지. 모두가 반짝이고, 강하고, 사랑하는 승리자를 지지하지는 않아. 승리가 있으려면 한쪽은 반드시 패배해야 하지. 패배했고, 패배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금랑은 존재만으로 위안이었어.


[여금랑 (2)]

*단델여금랑

*미혼모 금랑, 취향 주의

*과거 날조 밖에 없음

*캐릭터 날조 주의, 금랑 캐붕 ㅈㅅ

 편의주의적으로 행복한 세계에서 여금랑이 사랑받는 게 보고 싶어.

 자존감 높고 멘탈 갑인데다 자기 자신을 너무나 사랑해서 나님의 상대로 타인이 전혀 눈에 차지 않는 고도의 나르시스트 수석 관장님. 10년 동안 짝사랑을 해왔지만, 상대가 포켓몬 배틀만 잘하고 조금 예쁠 뿐, 나님보다 대단하지 않은 걸 아니까(자기애 충만) 전혀 힘들지 않았겠지. 어떤 때든, 무엇과 비교해도 자기 자신이 1순위인 금랑 너무 좋아요.

나르시스트가 어떻게 타인을 사랑하느냐고 멍청한 질문을 해도 말이야. 금랑님이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해서 문제는 없었어. 금랑은 욕심쟁이여서 가장 소중한 나님의 사랑 말고도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싶었어. 사랑은 많을수록 기분이 좋잖아.

금랑 본투비 너클 토박이 출신을 밀고 있으니까 너클 시티에서 좀 높으신 분들인 부모님 있었으면 좋겠다. 본격 THE☆아가씨 금랑님 너무 좋아. 금랑이 안티들한테 욕먹는 이유로 부유한 출신도 있겠지. 그렇지만, 이쪽으로는 지나치게 유명 인사이고, 노출을 전혀 꺼리지 않는 부모님(금랑에게 관종 유전자 선사)에 의해 사전에 처단 당해서 모두가 금랑의 출신을 알지만 모르는 척 했으면 좋겠어. 능력 있는 관종임을 자처하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한 부모님은 천생연분으로, 자신들을 골고루 닮아 능력도 좋고 관종인 금랑에게 넘치는 사랑을 줬을 거야. 그렇지만 부모님의 관종 유전자가 과다 투입된 금랑은 그거로 만족하지 못했어.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원해. 어린 아가씨의 눈에 어느 자선 파티에 참가한 챔피언이 눈에 띄었지.

대놓고 재미없다는 표정이었지만, 로즈 위원장의 손에 이끌려 착실히 인사는 하는 어린 천재. 어린애여서 그런지 눈도 크고, 얼굴도 동글동글하고 귀여워! 이거 나님보다 더 예쁜 거 아니야? 인생의 굴곡 따위 하나도 모르던 천진난만한 아가씨였던 금랑은 부모님에게 대뜸 조르겠지.

*)엄마! 아빠! 나 챔피언이랑 놀고 싶어요!

*)우리 공주님! 파티가 지루했어요?

*)아아~니이~ 지루하지 않다구! 그치만 챔피언이 더 좋아요!

*)그렇군요. 아빠랑 엄마는 저쪽에서 놀고 있을 테니까, 우리 공주님이 원하는 대로 해요. 너무 멀리 가지는 말고 근처에서 놀아야 하는 거 알죠?

*)응! 고마워요, 엄마, 아빠!

어른들이 아이에게 존댓말 해주는 거 너무 좋아. 금랑 부모님은 언제나 금지옥엽 딸에게 말을 높였겠지. 금랑이 아주 어린 아기 때부터 그랬을 거고, 금랑도 존댓말을 쓰겠지만, 어려서 그런지 흥분하면 말이 짧아졌으면 좋겠어. 엄청 이상적인 가족이고, 절대 현실에는 없겠지만(ㅎ)

무사히 부모님의 허락을 받은 금랑에게 직진 말고 다른 길은 없었지. 금랑은 로즈 위원장에게 끌려 다니는 단델 앞에 나서. 금랑은 더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함께 여러 파티에 참여해 왔고, 어지간한 어른들에게 얼굴을 익혔겠지. 로즈도 금랑의 얼굴을 기억하는 한 사람이었고 말이야.

금랑의 부모는 너클 시티의 대부호이자 각 분야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이들이었어. 할아버지는 선선대 너클 체육관 관장인 명문가이기도 했지. 귀족 작위는 받지 않았지만, 조금만 더 권력욕이 있었으면 작위 승여도 무리는 아니었을 거야. 다행히 부모님은 관종력은 있어도 권력욕은 없는 사람들이었지. 눈에 띄고 싶지만, 그게 반드시 권력을 향한 욕심으로 나타나는 건 아니지. 금랑의 아버지는 가라르에서 유명한 탑배우였고, 어머니는 어린 시절에는 외할아버지의 뒤를 이을 챌린저였지만, 첫 챌린저 도전이 끝나자마자 진로를 바꿔서 지금은 세계적인 디자이너야. 정리하자면, 금랑의 부모님은 정계에는 크게 관심이 없지만, 가라르에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유명인이었지. 막 관종이라는 단어로 생각나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짊어진 사람들도 아니었어. 그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자신들이 만들어낸 성과물을 사랑하길 바랐지만, 그게 나쁜 쪽으로 왜곡되는 걸 싫어했지. 불의와 부패를 참지 못하기도 했어. 금랑의 아빠가 가장 선호하는 배역도 정의의 편을 맡는 거였고, 엄마도 자신이 디자인한 옷으로 번 돈을 상당수 기부하는 데 썼지. 여기까지 오면 관종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유명인인 거 같지만, 다른 사람의 나쁜 일로 자신들을 향한 스포라이트가 꺼지는 걸 극도로 싫어해서, 꼭 그 나쁜 일을 해결하려고 자기 일도 아닌데 나서서 스포라이트를 바꾸는 일이 번번하기 때문에 관종인 거야. 금랑도 그렇지만, 부모님들은 안티의 관심도 좋아했어. 안티의 관심을 실컷 즐겨 동정 여론으로 받은 욕구가 해결되면, 그때까지 싹싹 긁어모은 증거로 고소하기 때문에 금랑이 태어나고 나서는 자신들의 안티도 별로 없었지.

하여튼 관심 받는 걸 좋아하는 부모님은 어떤 파티에서도 자신들의 작품과 성과, 기부 등 사연을 자랑하는 걸 좋아했고, 그 곁에서 매번 가장 큰 호응을 해주는 아가씨를 로즈는 기억하고 있었어.

처음으로 비즈니스적인 자리에 선보이는 챔피언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도 했지. 머스타드를 꺾고 새롭게 챔피언이 된 아이는 시골 마을 출신 답게 순박했지만, 단델의 어리숙함과 어느 장소에도 숨겨지지 않는 특별함(a.k.a 반짝임)은 어려서부터 고급진 것만 접하고 자랐을 너클 시티의 금지옥엽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매력이었지.

*)안녕하세요, 로즈 위원장님. 저번 파티에서 보고 오랜만이에요.

*)이거이거, 금랑 아가씨 아니십니까? 오랜만이군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로즈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얘기를 나누지만, 금랑은 로즈 옆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단델에게서 눈을 못 뗄 거야. 불만에 찬 표정도 예뻐. 꾹 다문 입술이 엄청 부드러워 보이고, 가까이서 본 얼굴은 생각 이상으로 작았어. 미쳤다. 이게 사람 외모야?

어려서부터 디자이너인 어머니와 가라르 모두가 사랑하는 명문 배우인 아버지를 보고 자라 눈만 더럽게 높던 금랑에게 어린 단델(10살)은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자극이었어.

역시 아름다움은 오지에서 나오는 건가. 너클 밖, 모험을 떠나본 적 없는 너클 토박이는 엄마의 말버릇으로 세상에 잣대를 세웠지.

어릴 적, 너클 시티와 부모님라는 작은 세계밖에 모르던 금랑은 노빠꾸 직진만 알았지. 금랑의 세계는 선의로 가득하고 아픔과 절망은 없었어. 그런 아이에게 단델의 첫 거부이자, 무관심이었을 거야.

단델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금랑의 눈빛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고집스럽게 눈앞의 아가씨를 보지 않았어. 배틀하고 싶은데 로즈가 억지로 끌고 온 파티는 시끄러울 뿐이었지.

이런 데 얼굴을 들이미는 의미를 어린 챔피언은 아직 모를 거야. 이 시기의 단델은 막 소니아가 라이벌을 그만둔 후로, 배틀은 재미있지만 호적수가 없어서 조금 삐딱선 타고 있었을 거야. 갠적으로 가라르 리그가 엔터테이먼트적 성향이 강하지만, 어린 배틀 바보는 그 엔터테이먼트를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할 거야. 왜 즐겁지 않은 배틀을 해야 해? 쇼맨십은 귀찮을 뿐이야. 망토는 거치적거리고, 망토 뒤에 새긴 스폰서의 로고도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어. 로즈는 단델의 불편함을 인식하고 있었지. 그래서 그의 기준으로 늦게 비즈니스 데뷔를 시킨 거고.

이번 자선 파티는 정치, 사업과 거리가 먼 행사였어. 자선 파티의 개최자부터가 정치 혐오로 유명한 스파이크 마을 출신의 뮤지션이야. 금랑의 부모님은 워낙 다양한 장소에 출몰하지만, 질 나쁜 곳에는 억대의 금액을 제시해도 오지 않는 거로 유명했지. 이 정도라면 단델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우리의 새로운 챔피언의 결백은 상상했던 것보다 허들이 높았어. 도통 마음을 풀 생각을 하지 않아 곤란하던 차에 금랑의 관심은 로즈에게 반가웠지.

금랑은 선선대 너클 스타디움 짐 리더가 가장 아끼는 보물로도 유명했지. 날조가 너무 좋으니, 선선대 짐리더이자, 금랑의 외할아버지는 은퇴 후에 콜렉터가 되었으면 좋겠어. 일평생을 보물고를 지키다 보니 은퇴하고도 보물을 모으는 취미를 가졌으면. 그런 그가 가장 아끼는 보물은 금랑이었지. 머스타드와 겨루고, 로즈가 한창 현역일 때 너클 스타디움을 지킨 노장이기에 로즈도 금랑의 외할아버지를 잘 알았어. 한때, 챌린저였던 금랑의 어머니와는 위원장과 챌린저로 만났지만, 사적인 친분도 쌓았지.

로즈는 금랑의 관심이 기꺼울 거야. 금랑은 부모를 쏙 빼닮았지. 그 말은 이런 파티에 익숙하다는 뜻이기도 했어. 이대로 금랑이 단델에게 푹 빠져서 트레이너가 되면 골치아픈 너클 짐 리더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책이 열리는 거였어. 금랑의 부모는 아이를 트레이너로 키울 생각이 없어서, 여행을 허락하지 않겠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보다 아이의 고집에 약했지. 아이의 고집에 휘말려 외할아버지가 아이의 10살 생일로 톱치를 선물로 준 것도 막지 못했으니까. 로즈는 자신 있었어.

그는 남들이 보기에 기분 나쁜 미소를 머금고, 금랑에게 단델을 소개했어.

*)이쪽은 작년에 머스타드 씨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챔피언이 된 단델입니다. 단델군, 여기 아가씨는 너클 시티의 금랑이라네. 두 사람은 서로 동갑내기지요?

*)……단델입니다.

*)바, 반가워! 금랑이야! 말 편하게 해줘! 로즈 위원장님도 아가씨라고 부르지 마요!

첫 인사에서 금랑은 삑사리 내겠지. 아 어떡해, 금랑한테 아가씨 거리니까 머리에서 자꾸 새침데기 아가씨가 떠올라... 알지요... 금랑이 새침데기일 리 없다는 거... 근데 아가씨라는 호칭이 주는 어감이 그래.......

단델은 금랑에게 관심이 하나도 없었겠지. 오히려 이런 시끄럽고 짜증나는 장소에서 멀쩡한 금랑이 이상해 무시하려고 들겠지. 그런데 어른들은 자선 파티의 유이한 아이들을 붙여두지 못해 안달이었어. 마침 두 사람 다 선남선녀고, 금랑은 그 파티에 온 어른들 모두에게 ‘금랑 아가씨’였어서 가라르의 새로운 챔피언과 붙여두려고 하겠지. 우리 금랑 아가씨가 좋다잖아, 꼬마! 챔피언이어도 어리니까 애 취급도 많이 당하고, 무시도 많이 당하겠지. 단델은 챔피언이 되고 나서 이런 꺼림칙한 의도를 읽는 눈치만 자랐어.

그래서 더 금랑이 마음에 안 들었겠지. 뭐, 소니아와 챌린저 시절 만난 야청만큼 예쁜 건 인정할게. 파티에 입고 올 마땅한 옷이 없어 챔피언 복장으로 온 단델과 달리, 이런 파티가 익숙한 금랑은 엄마가 만든 드레스를 멋들어지게 차려 입은 상태야. 짧은 머리카락은 보라색 보석 핀을 꽂았고, 머리핀은 옷에 맞춘 건지, 은은한 보라색 드레스는 아이에게 아주 잘 어울렸어. 웃는 얼굴이 미끄메라를 닮았지. 웃는 얼굴을 한 채, 금랑은 로즈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단델을 파티장 바깥으로 데리고 나와. 파티 분위기를 불편해 하는 단델을 위한 배려였지.

파티장은 슛시티 호텔에서 열렸지만, 아이 둘이 식장을 빠져나오는 일은 어렵지 않았어. 우선, 금랑이 이 호텔의 단골인 점도 있었고, 금랑은 부모님께 근처에 있겠다고 한 약속을 착실히 지켜서 식장에서 나와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복도 구석에서 움직이지 않았거든. 금랑은 복도로 오기 전에 만난 서빙하는 언니에게 케이크랑 음료수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어. 음. 이런 사소한 배려까지 완벽한 나님이네!

단델은 금랑이 불편했어. 챔피언이 된 후로, 새롭게 접하는 세계는 단델에게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했지만, 금랑이라는 애는 동갑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분명 눈앞에 있는데도 어디 먼 나라에 사는 애처럼 이질적이었어. 친해지길 바라는 어른들에게 미안하지만, 정말 거북했어. 단델은 감정을 숨기지 않았어. 벽에 등을 대고 팔짱을 낀 채, 자신보다 약간 키가 큰 소녀를 올다 보며 물었지.

*)무슨 할 말이 있어서 날 여기까지 끌고 온 거야?

*)아! 아니이~ 단델은 저기 좀 불편해 하잖아. 로즈 위원장님도 애들끼리 놀라고 했고... 혹시 불편했어?

*)어. 만나자마자 이러는 건 불쾌해.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으응... 미안... 그럼 다시 들어갈까?

풀 죽은 모습은 또 멍파치 같네. 귀가 달려있는 거 같아.

금랑은 로즈를 비교적 편하게 대하던 방금과 다르게 단델에게 쩔쩔맸지. 단델은 그 모습이 썩 신기했지만, 챔피언이 된 후로 자신을 대한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어. 포켓몬 배틀이 좋았을 뿐인데 어째서 사람들은 나를 불편하게만 대할까?

*)됐어. 케이크 부탁했다며? 그건 먹어야지.

*)그래! 고마워!

금방 표정이 밝아져서 웃는 모습은 또 파쬬옥 같다. 웃는 표정은 하나인데 매번 느낌이 달라져서 신기했어. 금랑의 옷차림과 이런 파티에 익숙해 보인 모습, 로즈나 다른 어른들이 금랑을 대하는 태도로 생긴 편견을 무참히 깨부순 금랑은 아무리 카펫이 깔려 있어도 깨끗하지 못한 복도에 옷을 신경쓰지 않고 주저 앉았지.

*)너도 계속 서 있어서 다리 아프지 않아? 나님은 엄마가 만든 구두가 엄청 불편해! 나중에 크면 맨날 운동화만 신고 다닐 거야.

*)너... 그렇게 앉으면 옷이 더러워지잖아.

*)그치만 옷 신경쓰다가는 계속 다리 아픈 걸? 단델은 뭘 좋아해? 챔피언이니까 역시 포켓몬?

단델의 뭐로 금랑이 긴장을 풀었는지는 몰라. 금랑은 거리낌없이 단델의 손목을 잡아 끌어서 억지로 옆에 앉혔어. 긴 드레스가 제멋대로 흩어져서 살짝 보이는 금랑의 무릎은 고생 한 번 한 적 없이 깨끗했지. 확실히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인 금랑이 어째서 단델에게 관심을 가지는지 이해가 안 돼. 파티에 단 둘뿐인 또래여서 이러는 걸까?

웨이터가 가져온 케이크 두 조각이 담긴 접시를 사이에 내려놓고, 아이들이 먹기 편하게 손잡이 달린 컵에 담겨 온 음료수를 마시면서, 금랑은 남몰래 단델을 엿봤어. 옆모습도 엄청 예뻐. 한 번 말을 튼 단델은 아까부터 계속 포켓몬과 배틀 얘기만 했지. 금랑은 파티장에서와는 다르게 눈을 반짝거리는 아이가 너무 예쁘고 아이가 사랑하는 세계가 궁금했어. 외할아버지가 준 톱치는 사랑스럽고, 금랑에게 충실했지만, 금랑은 배틀에 딱히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 부모님이 포켓몬 배틀을 멀리했기 때문이야.

과거, 챌린저였던 금랑의 어머니는 포켓몬을 사랑했던 만큼의 좌절을 경험했어. 노장을 꺾지 못한 채 끝나버린 챌린저 생활과 의무만 가득한 정해진 길을 걷다가, 결국 사랑했던 파트너들을 원망하게 되었을 때, 금랑의 엄마는 절대 아이에게 같은 고통을 겪게 하지 않을 거라는 결심을 했어. 금랑의 아빠도 마찬가지였지. 그는 트레이너는 아니었지만, 오랜 방송 생활을 하면서 가라르 리그의 특이한 엔터네이먼트적인 성격을 꾀고 있었지. 챌린저와 관장들의 생활은 연예인보다 더 피곤했지. 그들은 트레이너의 본분을 하면서도 꾸준한 방송 출현과 팬 관리 등의 방송 생활도 겸해야 했어. 그건 9살 아역으로 일찍 연예계에 데뷔한 금랑 아빠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최악이었다고 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거야.

그리고 금랑은 이런 부모 아래에서 자라 아주 훌륭하게 부모의 가슴에 큰 못을 박아 버렸지.

그 날의 파티에서 금랑은 끝내 단델과 친구가 되지는 못했을 거야. 금랑은 포켓몬을 몰랐고, 단델은 자기 얘기에 지루한 반응(좋다고만 하고 구체적인 의견은 제시하지 않은 것)에 질렸어. 단델은 적어도 금랑이 불편하거나 싫지는 않았지만, 다시 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지. 그건 단델의 착각이었어. 금랑은 다음 날, 파티의 여훈으로 넓은 거실에서 널부러진 채 주말을 보내는 부모님에게 선전포고 해.

 *)나님 챌린저 할래요!

금랑은 여전히 포켓몬 배틀을 잘 몰랐고, 중계 방송은 물론이고, 예전 할아버지의 경기조차 본 적 없었어. 너클 스타디움의 트레이너는 이미 한차례 물갈이를 해서 할아버지의 지인이라고는 현 수석 관장 밖에 없었지. 톱치만 조촐하게 키우는 삶은 나쁘지 않아. 금랑의 원래 장래희망은 아빠처럼 멋있는 배우가 되는 거였지. 그랬던 아이가 어제 처음 만난 남자애 때문에 트레이너가 되겠다는 거야. 부모님이 졸도하기 충분했지. 하필이면 로즈 씨는 챔피언을 데려와서는! 금랑 엄마는 아득한 정신으로 욕지거리를 삼키며 아이를 타일렀어. 우리 공주님, 챌린저가 되려는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그 복도에서 단델은 오랫동아 포켓몬 얘기를 했어. 금랑은 여전히 배틀에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지만, 예쁜 애가 좋아하는 걸 말하니까 더 예뻐 보인다고 생각했지. 아무리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아. 오히려 더 보고 싶어져. 그렇지만, 단델은 금랑의 친구가 되지 않을 거야. 이번 파티가 끝나면,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겠지. 금랑은 순진한 아가씨였지만, 갓난아기일 적부터 사람들 앞에 나섰고, 주목받는 삶을 즐기기 위해서 기른 눈치는 예리했어.

단델을 더 많이 보고 싶어. 단델이 나님을 계속 봐줬으면 좋겠어 어쩌지... 이거, 나님이 단델 좋아하는 거 같네.

뛰어난 눈치와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자기 자신인 금랑은 자신을 향하지 않는 설렘의 원인을 빠르게 파악했어.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금랑은 자신의 사랑에도 민감했지. 첫사랑이 챔피언이라니, 나님 역시 굉장하네. 스케일 엄청나잖아. 금랑은 챔피언을 만나기 위해서 챌린저가 되는 길이 가장 정직하고 빠르다는 걸 알았지. 할아버지는 하나뿐인 손녀에게 부모님 몰래 배틀 얘기를 자주 해주었고, 관장을 은퇴하고 콜렉터 겸 너클 유니버시티의 종신 교수가 된 할아버지의 입담은 굉장히 좋았지. 금랑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단델의 배틀도 할아버지의 경험을 바탕 삼아 손쉽게 상상해볼 수 있었어.

정말 그게 신나는 일인지는 모르지만, 배틀하면서 파트너와 함께 느끼는 흥분과 열망, 승리와 패배는 분명 금랑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달콤한 것이겠지. 금랑은 크게 욕심을 가지는 삶을 살지 않았지만(고자 10살이 할 말은 아니지만) 단델을 쫓아 트레이너가 되어도 후회하지는 않을 거 같았어.

파티가 마무리 되고, 아이들을 찾으러 온 어른들에 의해 헤어지기 직전, 금랑은 단델에 소원이 뭐냐고 물었어. 그건 그냥 충동적인 거야. 태어나면서 전통 있는 마을의 명문가 영애로 모자람 없이 자란 어린 금랑은 그녀가 가진 돈이 있다면, 단델의 소원도 들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단델의 대답은 무지한 그녀의 뒤통수를 대차게 갈겼어.

*)나는 가라르의 모두가 강해졌으면 좋겠어!

다시는 누구도 자신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것. 강하지 못해서 라이벌을 잃은 어린 챔피언의 소원이었어. 금랑은 첫사랑의 소원은 지금의 자신이 이뤄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지.

 

금랑의 부모님은 한 번도 소중한 공주님의 고집을 꺾지 못했지. 갓난아기일 적부터 금랑은 한 번 마음먹으면 도통 마음을 바꾸지 않았어. 잘못된 선택이어도, 후회할 지언정 꺾이지 않는 아이였지. 그건 아주 훌륭한 트레이너의 자질이었어. 금랑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자신들 몰래 아이에게 배틀에 대한 바람을 불어넣는 걸 알아. 망할 아버지는 은퇴하고도 그 놈의 배틀을 잊지 못해 안달이었어. 배틀 생각하기 전에 건강부터 생각하면 좋을 텐데.

금랑의 외할아버지가 아이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 금랑 엄마가 어릴 적에 부렸던 쓸데없는 아집이 남아서가 아니었지. 할아버지는 자신의 딸, 금랑 엄마의 선택을 인정했고 존중했어. 그는 현장에 있던 사람이니 어중간한 재능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지도 알았지. 그가 금랑을 포기하지 못한 이유는, 아이가 어중간한 재능이 아닌 알이 꽉 찬 진짜배기였기 때문이야.

천재는 아니었지만, 아이는 지나치게 똑똑했고, 다양한 부분에서 월등한 재능을 가졌어. 아비를 닮아 연기에도 소질이 있고, 어미에게서 뛰어난 패션 감각과 센스도 물려 받았어. 할애비의 현명한 머리도 제대로 전해진 듯 하고, 이제는 세상에 없는 할머니의 상냥함도 있었어. 우리 손주는 못난 부분을 찾는 게 더 어려웠지. 누구 손녀이어서 이렇게 귀여운지! 뛰어난 배경에 상냥한 성격과 기민한 눈치, 두루두루 갖춘 재능과 그것을 전부 포용하는 현명함. 그 중 아이가 보이는 가장 뛰어난 자질이 포켓몬이었지. 톱치를 물려받은 아이는 지금의 파트너 로만 너클 스타디움의 웬만한 트레이너는 이길 실력이 있었지. 이게 따로 훈련이나 여행을 떠나지 않은 수준이었어.

아이가 여행을 시작해 다양한 경험과 위기를 겪고, 제대로 훈련시킨 톱치는 어떨까? 지금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강하고 매력적인 포켓몬이 플라이곤이 된다면? 할아버지는 한 명의 트레이너로써 흥분을 쉬이 가라앉히지 못했지. 할아버지에게 이번의 만남은 극적인 행운이었을 거야. 손녀의 마음을 훔쳐간 못되처먹은 챔피언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로 인해 손녀가 트레이너가 되겠다는데, 두손 두 발 다 흔들어 재꼈지.

금랑은 3일 간의 단식투쟁과 10살 답지 않은 논리적인 설득, 든든한 할아버지 찬스를 이용해서 결국 해를 넘긴 트레이너가 될 준비를 모두 끝마친 11살 생일 선물로 허락을 받아내. 그대로 할아버지는 챌린저 추천장을 써줬고, 가족들은 떠나는 아이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해줘.

이때의 조언들은 앞으로 금랑이 선택을 할때마다 아주 좋은 지표가 되주었지.

*)첫째, 억지로 하지 않는다. 공주님, 포켓몬 배틀 뿐만이 아니에요. 엄마는 우리 공주님이 뭘 하든 즐기면서 했으면 좋겠어요. 좋아하는 일도 지치고 힘들 때가 있어. 즐기지 못할 때가 되면 끝이에요. 그러니 배틀이 마냥 힘들기만 하고 지치면, 바로 돌아오세요. 공주님의 자리는 언제든지 비어있으니까요.

*)아빠도 엄마 말에 동의해요. 두 번째 조언은 공주님의 선택에 책임지라는 거예요. 트레이너들은 여행을 떠나는 순간부터 어른이라고 하죠. 아빠는 한 번도 트레이너였던 적이 없으니 동의하지 못하지만, 트레이너 세계에는 그만의 룰이 있으니 어쩔 수 없죠. 아빠는 너무 이르게 어른이 되어야 하는 공주님이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지 못해서 후회하고, 슬퍼하는 일이 없었으면 해요. 이 앞에는 많은 선택이 있을 거예요. 거기에는 분명 기쁜 일도, 좋은 일도 가득하겠지만 그보다 더 많은 슬프고 아픈 일이 있어요. 그럴 때마다 아빠는 공주님이 지는 책임을 떠올리며 견디길 바래요. 책임을 지는 사람은 강하고, 쉽게 쓰러지지 않죠. 아빠는 우리 공주님이 여행을 통해서 강한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아빠가 너무 큰 욕심을 부리는 건 알고 있어요. 아빠의 말이 아직은 이해되지 않을 거예요. 공주님이 아빠처럼 키가 커지면 알게 되겠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말이에요. 대신, 혼자 감당하기 힘든 문제는 반드시 주변에 도움을 청하세요. 공주님의 곁에는 아빠와 엄마, 외할아버지 말고도 공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언제든지 도와줄게요. 함께 책임질테니 책임을 두려워하지 말아요.

*)마지막은 이 할애비구나. 아가. 나는 네 아빠처럼 긴 말은 하지 않겠다. 오랫동안 트레이너였던 입장에서 유난을 떨고 싶지는 않아. 아가, 더 큰 세상을 보고 오거라. 많은 걸 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네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도 내려 보거라. 트레이너로써 누군가의 라이벌이 되어 보거라. 동등한 호적수와 마주보고 정정당당하게 하는 승부는 아가의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보물이 될 거란다.

 

금랑은 따뜻한 응원을 해주는 어른들을 등지고, 파트너인 톱치와 함께 여행을 떠났어. 엔진시티에서 챌린저 신청을 하고 개회식을 치룰 때, 금랑을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애초에 너클에서 벗어난 적 없는 토박이야. 금랑이 아무리 너클시티에서 유명해도 마을 밖까지 얼굴이 알려지지는 않았지. 금랑은 어리기도 했고 금랑의 부모님은 아이가 딱 행복할 만큼의 관심만 받길 원했기 때문이야. 원래대로라면 금랑은 이렇게 갑자기가 아닌 많은 대비를 한 후, 마을 밖에 얼굴을 내보일 예정이었어.

개회식에서 금랑을 알아본 사람은 일이 의도대로 풀려서 기쁜 로즈와 단델 뿐이야. 처음에 단델은 스타디움에서 챌린저복을 입고 금랑을 봤지만, 좀 자란 머리카락을 질끈 묶고, 투블럭을 쳐서 밑둥이 사라진 머리카락에, 처음 보는 반다나를 눈썹이 안 보일 정도로 깊게 눌러 쓴 챌린저가 첫 파티에서의 그 소녀인지 알아보지 못했어. 귀여웠던 인상은 어디에 가고 긴장 때문인지 표정이 굳어 거칠어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지. 파티장에서처럼 꾸미지 않은 아이는 쉽게 성별을 가늠할 수 없었어. 금랑이 개회식이 끝나고 인터뷰를 끝낸 후, 다음 일정을 위해 리자몽을 타고 떠나려는 단델을 잡지 않았더라면 단델은 왜 초면인 사람이 익숙한지 알지 못한 채 찝찝한 마음을 토너먼트까지 간직했겠지.

앞서 말했지만, 금랑은 저돌적으로, 목표를 향해 한 치의 망설임도 가지지 않았어. 챌린저복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 달려온 듯 거친 숨을 토해낸 금랑은 붙잡은 단델의 손목을 놓지 않았어. 아이의 악력은 생각보다 셌지. 단델은 의문을 간직한 눈으로 금랑과 마주했어.

반다나로 눈썹이 가려진 금랑의 눈매는 첫인상과 달리 날카롭고 강렬했어. 단델은 그 눈에서 예전 소꿉친구에게 있었던 의지와 열기를 느꼈어. 조금씩, 심장 박동이 빨라졌어.

*)나님 기억하지?

기억할 게 분명하다는 확신을 담은 질문이었어. 단델은 그때까지도 금랑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홀린 듯 멍하게 고개를 끄덕였지. 그에 금랑은 안심한 듯 길게 숨을 내쉬고, 강하게 잡았던 손목을 놔주었어. 비행 준비를 하던 소중한 파트너는 등에 타지 않은 단델이 의아한 듯 –리자? 귀여운 소리를 냈지.

*)네가 저번에 말했잖아. 가라르의 모두가 강해졌으면 한다고.

그 말을 기억해줄지 몰랐지. 단델도 금랑과 이런 얘기까지 했다는 걸 잊고 있었을 정도니까 말이야. 단델은 정말로, 오늘 전까지는 금랑을 잊었었어. 정확히는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스쳐 지나간 인연이라고만 생각했지. 그런데 금랑은 아니었나봐.

*)나님, 정말 많이 고민했어. 단 한 번도 너처럼 생각해 본 적 없거든. 포켓몬은 소중한 친구 정도로만 생각해서 그때는 네 소원을 이해하지 못했어. 도 소중한 친구 정도로만 생각했어. 그래서 네 소원이 잘 이해되지 않았어. 가라르의 모두가 강해질 수 있을까? 애초에 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한쪽이 약자라는 전제가 붙잖아? 강자와 약자를 가르는 기준은 한쪽의 억압의 성공유무니까. ......그런데 말이야.

금랑은 중간에 긴장한 듯 말을 멈추었어. 짧게 숨을 들이마셨고, 단델을 똑바로 직시했지. 비취색 눈동자가 드래곤 포켓몬처럼 예리하게 빛났어. 그건 언젠가 단델이 마주한 반짝임이면서, 단델의 잘못으로 한 번 잃어버린 것이었지. 단델의 심장은 이제 귓가에 그 소리가 울릴 정도로 빠르고 크게 울렸어.

*)그런 생각은 일단 뭐라도 해보고 나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야, 나님. 배틀도 해본 적 없고, 나님의 파트너를 제대로 마주한 적도 없으면서 무작정 안된다고 말하는 거는 비겁하잖아. 그래서 왔어. 단델, 나님은 네가 바라는 세상이 궁금하고, 파티장 밖의 세계가 보고 싶어. 모두가 강한 가라르는 나같은 초짜가 널 이기면 이루어지는 거잖아? 그러니까 나님은 너를 이겨서 네가 바라는 소원을 이루어볼래.

그렇게 말한 금랑은 자신 있는 미소를 지었어. 단델은 이 뒤에 금랑이 할 말, 혹은 그 비슷한 말이 무엇인지 손쉽게 떠올렸어.그건 단델이 그렇게나 기다리던 말이었지.

*)목 씻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챔피언!

호기로운 금랑의 외침에 단델은 더는 버티지 못할 것만 같았어. 호승심과 흥분, 기쁨이 뒤섞여서 참을 수 없어. 이제는 얼굴까지 달아올랐지. 단델은 금랑이 챔피언컵에서 제 앞에 설 거라는 데 의심하지 않았지. 금랑은 반드시 내가 있는 곳까지 올 거야.

어떻게 해. 너무 좋아. 금랑의 도전이 너무너무 기대 돼.

*)...기다리고 있을게, 반드시!

단델의 대답에 금랑은 만족한 듯 환하게 웃었어. 재회한 후에 처음 본 웃음은 이전까지의 느긋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 대신, 상대의 흥분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었지. 흥분이 주체되지 않아.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어. 마치 포켓몬 배틀을 하는 것만 같아.

운명이었어. 단델은 운명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금랑이 저의 새로운 라이벌이 될 것을, 앞으로 그녀를 오래 볼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지. 이제 단델의 라이벌은 금랑 밖에 없을 거라는, 운명이었어.

그 날, 금랑과 단델은 서로 리그 카드를 주고 받았을 거야. 금랑은 그대로 첫 번째 체육관이 있는 마을로 향했고, 착실히 챌린지를 진행했어. 와일드 에리어 초입에서 길을 헤매기도 하고, 엔진시티에서 세 명의 관장들에게 배웅도 받았겠지. 그러다가 다시 와일드 에리어에서 훈련도 하고, 이븐곰에게 쫓기기도 하고, 그곳에서 에이스 포켓몬인 두랄로돈도 잡고 말이야. 금랑은 처음에는 첫사랑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선택한 포켓몬 챌린지가 생각 이상으로 체질에 맞고, 즐겁다는 걸 인정했어. 아빠를 따라 연기를 하거나, 엄마의 옷을 입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즐거움이야. 금랑은 진심으로 포켓몬 배틀을 사랑하게 되었지. 이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가족에게 사랑받으며, 단델을 사랑하는 감정과는 또 다른 사랑이었어.

금랑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익힌 시기는 여러 드래곤 타입을 잡아 스타일을 확립한 네 번째 체육관 이후일 거야. 떠오르는 신예는 드래곤을 연상시키는 퍼포먼스와 강함으로 무장했지. 그때쯤 트레이너가 되었어도 관종 유전자를 어디에 보내지 못한 금랑은 부모님처럼 SNS계정을 만들고, 스마트로토무를 애용하기 시작했을 거야. 금랑에게 많은 팬이 생기고, 그녀를 응원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이유 없이 인기 많은 금랑을 미워하는 안티도 생겼겠지. 하지만 금랑은 안티에는 신경쓰지 않을 거야. 부모님이 그들을 어떻게 대처해는지(고소빵) 옆에서 보고 자란 금랑은 타격을 전혀 받지 않겠지.

나님은 무엇을 해도 사랑스럽고 멋지지. 대단한 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고, 금랑이 어떤 짓을 해도 반드시 곁을 지켜줄 가족이 있는데 구태여 나님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신경 쓸 필요가 없어. 금랑의 챌린지는 그 기간이 길어지고, 금랑이 체육관을 통과할수록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거야. 1년만에 나타난 챌린지 시절 챔피언에 버금가는 실력자였어. 사람들은 신입이 머스타드를 무너뜨린 신 챔피언을 무너뜨릴지 지켜보았지.

그리고 대망의 챔피언컵. 키르쿠스 마을의 멜론 앞에서 주춤했고, 드래곤 타입의 엔트리로 드래곤 타입 체육관 관장을 깬 금랑은 할아버지의 제자로, 안면이 익은 현 너클스타디움 관장에게 인정 받은 후, 또 몇 번의 배틀 끝에 결승전을 앞두고 있었지.

금랑에게는 많은 동료들이 생겼고, 톱치 때부터 재능이 충출했던 첫 파트너는 이제 훌륭한 플라이곤이 되었지. 완벽하지는 않아도, 금랑이 사랑하는 포켓몬과 함께하는 첫 도전이야. 금랑이 이게 마지막이 될지, 아니면 새로운 시작이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었어.

오랜 여정 끝에 도달한 챔피언전. 금랑은 단델을 한계까지 아슬아슬하게 몰아세웠지만, 딱 한 발, 경험의 차이로 그를 꺾지 못했어. 격렬했던 전투는 대결이 끝났어도, 사람들이 바로 반응하지 못할 정도였고, 뒤늦게 울려퍼진 함성에 금랑은 참지 못하고 울분을 터트리면서, 이 도전을 아주 오래 계속할 거라는 다짐을 했지.

이 흥분. 쾌감. 열망. 단델은 어떻게 이 모든 감정을 매순간 견뎠을까?

*)금랑.

*)절대 이대로 끝이 아니니까!

흐어엉. 금랑은 큰소리로 우는 걸 멈추지 않으면서도 다음을 약속했지. 내년에도 도전할 거야! 내년에도! 단델은 시상식도 준비하지 않은 채, 금랑의 앞에 서서 라이벌의 결심을 들어주었어.

 그게 벌써 10년이 넘은 일이야. 금랑은 긴 시간 동안 단델과 싸워왔고, 비공식까지 도합 10연패를 달성했지. 그 사이에 금랑은 드래곤 연구를 위해 타지방으로 떠나는 선대 너클 관장을 이어서 수석 관장이 되었고, 할아버지의 염원을 이루어 주었어. 할아버지는 여전히 정정하게 보물을 거래하고, 교단에서 강의를 하시지. 포켓몬 배틀도 좋고, 관장 일도 재미있지만, 포켓몬 배틀을 하다 보니 가라르의 역사와 유물 등에도 관심이 생긴 금랑은 챌린지 시즌이 아닐 때, 대학에 다니면서 학위도 땄어. 할아버지 못지않게 정정한 부모님을 따라서 드라마에 도전하거나, 모델 일도 잠시 했었지. 그런 경험에서 금랑은 야청과도 친해져. 금랑의 파카는 자신이 직접 디자인해 엄마의 브랜드를 통해 드래곤스톰 공식 굿즈로까지 출고했었지. 다양한 일을 하고, 수많은 실패와 성공을 겪으면서, 2n살의 금랑은 누구보다 자기애로 가득한 사람이 되었어.

가끔 야청이나 두송, 아킬 등 또래의 친한 관장들과 사적으로 만날 때면, 나님이 너무 유능해서 무섭다고 농담할 정도였지. 그럴 때마다 짓는 친구들의 표정이 가관이야. 너 지금 개소리한다는 표정과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 한다는 표정이 뒤섞였지. 나님의 인간관계는 정말 흥미로웠어.

단델과의 관계는 새로운 종착점을 맞이했지. 아마 6번째 패배였을 거야. 금랑은 첫 패배 이후로 꾸준히 패배 셀카를 찍었고, 해소되지 않는 열기를 눈물 대신에 다른 쪽으로 푸는 방법을 찾았어. 하필이면 그 방식에 자신을 패배시킨 남자가 포함된다는 것만 빼면 완벽했지.

단델과 금랑은 라이벌의 관계를 빼고도 둘만 아는 은밀한 관계를 맺었어. 금랑은 단델과 서로의 욕구를 풀어주는 관계가 된 게 기쁘면서도 기쁘지 않았어. 어째서 고백도 전에 이렇게 된 거야?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확실히 나님을 만족시킬 사람은 단델 정도로 예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지. 단델 정도로 예쁜 사람이라고 했지만, 금랑은 단델 이상으로 예쁜 사람을 본 적 없으니, 어쨌든 금랑의 남자는 단델 하나뿐이었어.

확실한 건 그들은 은밀했지만, 동시에 깔끔하기도 했다는 거야. 금랑은 4년째 이어지는 관계에서 한 번도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고, 단델은 연애 쪽 세포를 전혀 탑재하지 못했지. 라이벌 관계가 계속 유지해 단델의 소원에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금랑은 관계가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안하도 괜찮다고 생각했어. 나님이 충분히 멋진데 거기에 예쁜 건 확실해도, 길치에 눈치도 없고, 배틀 바보여서 그렇게까지 멋지지 않은 남자를 끼워 팔 이유는 없었지. 단델은 가라르와 배틀 말고 타인을 우선하지 못하는 남자였기 때문에 금랑은 굳이 그녀를 가장 사랑해주지 않을 사람의 연인이 되어서 손해를 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어. 적어도 몇 년은 단델도 새로운 사람을 찾지 않을 거 같으니까, 금랑은 지금 관계로 충분히 만족했지. 단델을 사랑하는 마음과 별개로 금랑은 자기 자신처럼 그녀를 첫 번째로 사랑해줄 사람을 원했어.

두 사람은 관계를 비밀로 부쳤고, 둘 모두 서로를 섹스 파트너라고만 생각했지만, 둘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그들의 관계를 크게 오해했어. 사람들은 챔피언과 라이벌을 공공연하게 연인으로 취급했지. 매 휴일마다 붙어 있는 모습이 금랑의 계정이나 목격담으로 전해지고(둘은 휴일이 겹칠 때마다 만난다는 걸 자각하지 못한다), 파파라치는 툭하면 호텔이나 서로의 집에 들르는 그들로 디*패* 1면을 장식하는데, 어떻게 오해하지 않겠어? 익명의 지인은 둘이 서로에게 가지는 감정이 끔찍하게 무겁다고 증언했지. 저걸 단순히 라이벌 관계라고 하고 싶다면 전 세계의 모든 라이벌에게 사과하라고도 덧붙였지.

서로만 모르는 공공연한 관계를 유지한 두 사람이, 확실하지 않은 관계를 언제까지 이어나갈까 고민하는 날들이 이어졌어. 변환점은 단델 군림 10년째의 리그가 개최되기 직전에 일어났지, 금랑은 평소처럼 시즌 전에 건강 상태 체크를 위해 들른 병원에서 청천벽력을 들었어. 분명 서로 피임을 확실하게 지켰고, 금랑은 가임기일 때는 아무리 상대가 유혹해도 철저히 피했는데 말이야. 어디서 실수했나 몰라.

저번 휴일에 단델의 집에서(금랑은 독립하지 않아서 둘은 주로 단델의 자취집에서 시간을 보냈어. 한창 때의 남녀가 한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부터 논란이 될 여지가 있었지만, 단델은 워낙 그런 쪽을 알려하지 않는 인사였고, 금랑은 알고는 있어도 그런 관심도 좋아서 방치하는 쪽이었지.) 선물 받은 술을 왕창 개봉한 날인가? 그렇지만, 그때 과음한 건 나님뿐이 아니었어? 금랑의 마지막 기억은 원래부터 주량이 세서 쉽게 만취하지 않는 단델이 그때도 알딸딸하게 취해 있던 거로 기억해. 설마 나님이 덮쳤나? 오... 자제력을 완전히 빼앗아 버리는 술이란 무서워. 확실히 그 날의 단델은 어쩐 일인지 휴일에도 챔피언을 부르는 긴급 호출이 없어서 금랑에게만 온전히 시간을 쏟아줬지. 전날에 일정 때문에 비공식 대결을 왕창 했으므로, 배틀도 하지 않았어. 생각해보니까 그렇게 단델이 배틀과 가라르를 신경 쓰지 않고 금랑 하나만을 봐준 시간은 처음이었던 거 같아. 음. 풀어질 만 했네. 나님의 머리에 나사는 원래부터 좀 헐거웠던 모양이야.

어쨌든 아직 임신 초기 증세만 있으니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사의 말과 함께 추천받은 산부의과의 명함을 들고 금랑은 스타디움 사무실로 돌아왔어. 검진 잘 받았냐고 묻는 트레이너들에게 이제는 전매특허가 된 미끄메라 웃음을 지어주고는 집무실 책상에 앉아 고뇌했지.

이럴 때, 떠오르는 건 금랑이 여행을 처음 시작할 때 해준 부모님의 조언이었어. 억지로 하지 말고, 나님의 선택에 책임지랬지? 필름이 끊겨서 앞뒤가 잘 떠오르지 않지만, 금랑은 자신이 그 다음날, 침대에서 단델과 알몸으로 붙어 있던 걸 기억해. 얼마나 해댔는지 허리가 미친 듯이 아팠던 것도 물론 떠올릴 수 있지. 가끔 무리를 하면 그때의 허리 통증이 떠오른다니까.

그러니까 이 결과는 금랑의 책임이야. 만취한 상대가 아무리 유혹했어도 그렇게 덮쳐서 확정 지은 단델의 책임도 있지만, 금랑은 바쁜 챔피언이 자기한테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을 거라고 제멋대로 확정지었지. 단델의 속마음은 하나도 모른 채 말이야.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고 따지면, 법정이나 변호사로 적당히 합의해야지. 나님이 배 아파서 나은 아이인데 염치가 있지, 단델이 양육권을 주장하지는 않을 거 아니야? 만약에 한다면... 나님이 아이 아빠한테 임신 사실을 밝히지 않았을 때, 겪는 불이익을 미리 대비해두는 쪽이 낫겠어. 금랑은 단델에게 이 사실을 밝히는 데 회의적이었지. 단델은 좋은 사람이었고, 다정했고, 의외로 세심해서 가라르와 배틀에 정신이 팔리지 않는 한에서 주변인에게 신경을 많이 썼지만, 아이가 있어도 자식을 1순위로 돌보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어. 금랑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기를 바라는 만큼, 자신의 아이도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하길 바랐어. 언제나 뒤로 미뤄지는 관심은 줘도 안 먹을 거였지.

금랑도 알고 있을 거야. 이런 결정이 모순적이고, 말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그렇지만, 정말로 금랑은 단델에게 기대하지 않았어. 기대하고 싶지 않았어. 자신 때문에 단델의 꿈이 멈춰서는 걸 원하지 않았지. 단델은 지금 그대로 꿈을 위해 달려가는 편이 나아. 사랑에 빠진 계기는 외모였지만, 그 사랑을 10년이나 유지한 비결은 단델의 올곧은 꿈이나, 고집스러운 면에도 반했기 때문이야.

보물고를 지키고, 너클스타디움 관장으로써 금랑은 무언가를 지키고 기다리는 일에는 자신 있었지만, 그건 반드시 돌아올 것을 전제한 기다림에서만 가능했지. 단델은 그 전제가 불가능한 사람이야.

한 번 떠나면 뒤돌아보지 않겠지. 또한, 단델은 금랑과는 다른 의미로 지키는 사람이었어. 가라르와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단델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주변을 완전히 배척할 수도 있었지. 금랑은 자신의 아이가 그 주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했어.

좋은 사람이지만, 좋은 남자는 아니야. 금랑은 자신을 태어나게 해준 좋은 남자면서 좋은 아빠이기도 한 사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단델이 마음에 차지 않았어. 금랑이 현재 가진 부와 권력, 너클 시티의 복지 제도는 미혼모가 직장에서 일하면서 아이를 키워도 크게 힘들지 않은 환경을 제공했지. 아이를 위해서 사람과 포켓몬을 고용할 돈과 의지는 충분하고. 그전까지 임신부가 체육관 관장을 하면서 생기는 문제들을 케어할 사람과 포켓몬을 구할 돈도 충분히 있어. 여차하면 부모님께 도움을 청해도 되니까.

아. 임신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는 문제도 남아 있었어. 부모님이라면, 아이 아빠에게 소식을 알리지 않는다는 금랑의 결정을 지지해주시겠지만(안 그러면 금랑은 11살 이후로 써먹지 않은 방법으로 고집을 부릴 생각이었지. 원래 자식은 얼마나 자라도 부모에게는 어린 아이라고 하잖아. 금랑은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미혼모와 육아 관련 공부를 철저히 하기로 결심했어.) 단델을 어떻게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없었지. 나님의 엄마 아빠라면, 단델을 남몰래 묻어 버리는 일도 가능할 거야. 분명히.

그건 곤란했어. 일단, 단델은 가라르의 챔피언으로, 챔피언의 갑작스러운 실종은 가라르 전역에 충격을 줄 거야. 챔피언이 실종된 파급을 견디는 일은 무척 귀찮고 힘들겠지. 다음으로, 단델은 어쨌든 금랑이 사랑하는 사람이야. 사랑하는 사람을 부모님이 죽인다면 무척 가슴이 아플 거야. 한 3년 정도 슬퍼하겠지. 금랑은 3년씩이나 부모님을 원망하고 싶지 않았어. 그리고 슬퍼하면서 흘려보낼 시간도 아까워. 이 문제는 좀 더 고민해보자.

대충 정리된 사항에 금랑의 결정을 누구보다 지지하고 도와줄 트레이너들에게 금랑은 임신 소식을 알렸어. 아무리 나님이 대단해도 이건 혼자 해결할 문제가 아니잖아? 같이 책임지라는 말은 못해도 금랑은 소중한 트레이너들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 

트레이너는 당황→혼란→흥분→분노→침착→인정의 6단계를 거친 끝에야 금랑의 결정을 받아들였지. 어째서 단델에게 알리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상사의 사적인 문제를 함부로 파고들지는 않았어. 두 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다고만 짐작했지.

그렇게 금랑은 임신한 몸으로 리그 시즌을 보냈어. 혼란을 대비해 대중이나 다른 관계자들에게 알리지 않는 조건으로 로즈 위원장에게만 임신 사실을 알렸고, (어째서인지 드디어! 라는 반응과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받았지만) 산부인과에 다시 들려서 임신 확정 소식과 임산부가 하는 포켓몬 배틀 주의 사항도 확실히 주입 당했지. 바쁜 리그 일정 틈틈이 미혼모와 육아에 관련된 공부도 했고, 굳은 결심을 하고 가족에게도 사실을 알렸어.

가족들의 반응은 당연히 험악했지. 금랑 아빠가 한 조언은 결단코 이런 일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 아니었어. 10년 전에 여행을 떠나겠다는 딸이 결혼도 전에 사고를 칠 줄을 상상이나 했겠어? 금랑의 가족은 자신의 딸과 망할 놈(임신 사실을 듣자마자 가족 안에서 단델은 챔피언이나 딸의 라이벌이 아닌 그저 망할 놈으로 격하 당했어.)이 세간에서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 금랑 엄마는 당장 단델이 있는 슛시티로 쳐들어가려고 했고, 금랑 아빠는 마침 직전에 찍은 영화에서 살인마 역할을 맡았었지. 금랑 할아버지는 뒷목을 잡으셨어. 금랑은 예상보다 더 극심한 반응과, 논리와 설득이 전혀 먹히지 않은 채 단델을 향한 분노를 불태우는 가족을 말리기 위해 진땀을 뺐지.

*)나님 임신했어! 큰 충격 받으면 안 되니까 아직 단델 죽이면 안 돼요!

죽여도 아기는 낳은 다음 죽이라는 말에, 가족들은 가까스로 진정했고, 금랑은 가족의 닦달에 혼자 아이를 낳는 대신, 딱 이번 리그까지만 하고, 이른 육아 휴직을 제출하기로 타협 봤어. 휴직 중 금랑이 극성 가족에 의해 제 손으로 할 일이 별로 없을 거라는 건 확실했지. 애초부터 금랑도 사람과 포켓몬을 고용해 생활에 문제가 없게 할 예정이었기에 별 불만은 없었어.

책임과 별개로 금랑은 임신 때문에 출산 외에 문제로 고생하고 힘든 일은 없어야 한다는 쪽이었어. 나님이 엄청 소중하고, 나님의 아이도 귀한데 이 문제로 욕먹으면 짜증나잖아?

가족에게 알린 뒤에야 금랑은 친한 관장들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어. 이번에도 이유 모를 축하부터 받았고, 금랑의 결정에 큰 반응을 보였지. 대부분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응이었어. 금랑은 관장들 중에서 가장 친한 야청을 통해 가라르가 자신과 단델을 어떤 관계로 보는지 알게 되었지.

*)나님 아직 고백도 안했는데 무슨 소리야?

*)사랑이 꼭 고백으로 성사되는 건 아니잖아. 너희 둘이 진짜 평범한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설마?

*)아니아니! 임신한 건 나님인데 왜 야청이 예민한 거야? 애초에 단델은 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야청은 방금 들은 개소리가 정녕 사람 입에서 나왔는지 의심했어. 사랑하지 않는다고? 금랑은 평소에 단델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진심으로 모르는 눈치야. 다른 문제에, 심지어 자신을 향한 여러 시선에도 민감한 금랑이 어째서 단델 한정으로 눈치를 갖다 버렸는지 모르겠네.

단델의 사랑은 리그 관계자 사이에서는 유명했지. 금랑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10년 전부터, 단델은 금랑의 문제에서만 유난을 떨었어. 처음에는 새로운 챔피언의 모습에 라이벌의 등장에 기뻐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지. 같은 시기에 챌린지였던 동기 입장에서, 야청도 친구의 선택을 존중하면서,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으니 말이야. 소니아와 여행 시작부터 함께했던 단델은 그 부재를 더 심하게 느꼈으니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지. 그 유난이 금랑에게 악의를 드러내는 안티를 ‘절대 챔피언이 지어서는 안 되는 표정’으로 응징했을 때부터 의심했어. 

금랑은 가라르에서 유명한 부모님을 보고 자랐기 때문인지 안티 제재에 능숙했지만, 법적 대응으로도 멈추지 않는 미친놈들은 어디에나 있었지. 금랑은 무시로 일관했고, 그에 대처할 능력도 충분했지만, 운 나쁘게도 그들이 금랑의 눈에 띄기 전에 먼저 단델이 알아버렸지. 단델은 평소에 가라르를 사랑하는 모습은 멀리 갔다 버렸어. 그가 안티를 무찌른 경과는 생각하기도 싫어. 금랑은 그 사건에서 단델의 새로운 면모를 봤다고 좋아했지만, 소니아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들은 야청은 챔피언이 배틀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드디어 미쳤다고 생각했지. 대체 어느 라이벌이 상대의 모욕에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한다는 거야? 아무리 각별해도 라이벌 관계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

9년 순애보 금랑은 한눈팔지 않았지만, 애가 너무 단델에게 맹목적이다 보니 주변 사람 미치게 하는 둔탱이였지. 제발 패션 센스 반만이라도 연애에 쏟았으면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 텐데... 야청은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분명 해야 할 말도 있겠지만, 헤실거리는 금랑을 두고 말을 꺼내지는 못했어. 네가 그렇게 걱정하고, 숨기려 하는 상대가 임신 사실을 나중에 알았을 때, 후폭풍을 또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래... 야청은 190cm를 넘는 거구에, 거친 이미지 메이킹과 중성적인 매력으로 얕보는 사람이 많지 않은 직장 동료를 걱정했어. 차라리 금랑이 완전히 순진해서 어디 도망이라도 가거나 했으면 이 답답함이 좀 풀렸을까? 아이를 밴 현실이 두려워 도망이라고 갔다면 일은 더 쉬웠겠지.

금랑은 자기애가 강했고, 현실에 정정당당히 맞설 수 있는 사람이었지. 겉과 속 모두 단단한 사람. 야청은 금랑의 강함이 부럽다가도, 너무 올곧기만 해서 부러질까봐 걱정했지. 금랑 같은 성격은 딱 손해보기 쉬운 타입이야. 관장들 사이에 공인 호구이기도 한 애가 단델에게 인생 저당 답힐 위기에 처했어. 그러게 왜 단둘이 술을 마셨어... 아니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호심탐탐 널 노리는 짐승을 앞두고 혼자 만취하면 위험하잖아. 야청은 답 없는 상황에 한숨을 내쉬고, 부디 단델에게 아주 늦게 들키기를 바랐지.

……얼마 안 갈 거 같지만. 곧 가라르 최고 셀럽들의 결혼 소식이 밝혀질 거 같지.

야청과 헤어진 금랑은 곧 시작할 챌린지 시즌에 대비해서 스타디움으로 복귀했어. 최고로 멋지고 소중한 리더가 외근 끝나고 바로 퇴근하라는 권유를 무시하고 돌아온 상황에 트레이너들은 아우성을 쳤지. 홀몸도 아닌데 무리하지 말라며, 아직 챌린지가 시작되지 않았으니까 좀 쉬라고 말이야. 금랑은 그런 트레이너들의 걱정에 집에 가다가 들렸다고 개뻥을 쳤지.

임신 사실을 알린 주변의 과보호를 받으며, (실상은 금랑이 임산부답지 않게 너무 열심히 움직이는 것) 챌린지(생략)


느긋하게 쓰고 싶은 걸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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