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자고 있는 로버트의 방을 열기엔 좀 그랬음으로, 아이든은 점수를 따기로 했다. 아침 운동을 하루이틀 쯤은 미룰 융통성이 있었기에, 아이든은 냉장고를 열었다.


'남의 집 냉장고를 뒤지는 건 서양에서도 실례일까?'


부락의 냉장고는 대부분 조리배식부가 관리하니까 잘 모르겠다. 아무렇지도 않게 계란을 꺼내며 아이든이 생각했다. 어제 확인한 달력이 맞다면 오늘은 토요일이겠지.


아이든 헌터는 시간을 배분하며 가볍게 생각했다. 일단 그 남편 이라는 사람에 대해선 로버트에게 물어보고, 도서관을 가서 정보를 모으자. 70년대면 개인 인터넷은 그지일게 분명하고.

인종차별은 더 심하려나. 이 근처 지리도 알아봐야겠는데. 여기에 한도 끝도 없이 머무르는 건 민폐니까..


'퀼네 집과는 명백하게 상황이 달라.'


그쪽은 형편도 중산층 이하였고, 메레디스가 일을 하는 집이어서 머무르는게 가능했던 거야. 정 뭣하다면 대공황 때처럼 대충 폐가에서 노숙하는 수밖에 없어.


"6월에 노숙이라니."


아이든은 얼굴을 찌푸렸다. 달갑지는 않았다.


"그래도 동상걸려 발가락 잘라낼 일은 없겠네."


당연한 것에 다행이라고 중얼거리며 아이든은 오믈렛을 만들었다. 대충 베이컨을 굽고, 채소들로 샐러드를 만들어낸 아이든은 레이더에 슬슬 잠에서 깨고 있는 레베카의 파장을 느끼며 식탁을 차렸다.

그리고 약 2분 뒤, 잠에서 깨어 아침준비를 하러나온 레베카는 깔끔하게 차려진 아침상에 놀라 아이든을 바라보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신문을 보면서 정세를 읽던 아이든이 레베카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 하시겠어요? 아침 차려놨는데."


멋지게 차려진 2인분의 식사에 레베카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아이든을 바라보았다.


"네가 한거니?"

"네. 밥값은 해야할것 같아서."

"..."

"혹시 냉장고를 멋대로 뒤진게 화나셨나요?"

"아냐, 그건 아니고.."


남편이 단 한번도 해준 적 없는 일이니까. 아이든에게 기대를 하지도 않은 일이니까. 레베카는 말을 삼킨다.


"고마워."

"아.."


아이든이 잠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느릿하게 숨을 내쉰다. 안도의 가장(假裝)이다.


"다행이다. 혹시 냉장고 막 만졌다고 화내실까봐 걱정했습니다."

"그런 걱정을 했니? 괜찮아."


레베카가 다정히 웃는다. 아이든은 가볍게 목례를 하며 물었다.


"로버트는 이 시간에 일어나나요? 혹시 몰라서 2인분으로 차렸는데."

"로버트는 한 한시간 쯤 뒤에 일어날거야. 아직 잘 시간이지."

"6살인데.. 장하네요."


아이든 헌터가 능숙하게 식탁 의자를 뒤로 빼내며 말한다. 어머, 고마워. 레베카가 그리 말하며 의자에 앉았다.


"그럼 로버트 몫은 나중에 따로 차려야겠네요."

"그럼 그 오믈렛은?"


레베카의 물음에 헌터가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가 먹어야죠, 뭐."


레베카가 옅게 웃었다. 기세를 몰아 아이든이 말을 이었다.


"허락만 해주신다면 앞으로 식사준비와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저도 그냥 머무르는 건 조금 그래서요."

"어머, 그래주겠니?"

"네, 나중에 냉장고랑 부엌에 뭐뭐 있는지 알려만 주세요."

"그러면 밥 다 먹고 설명 해줄게."


레베카는 조심히 오믈렛을 반으로 갈랐다. 따끈한 치즈가 안에서 쏟아졌다.


"어머나..."

"마음에 안드신가요?"

"아냐, 세상에."


레베카가 오믈렛을 입에 넣고 씹으며 말했다.


"요리 정말 잘 하는 구나?"

"그냥저냥해요."


자신의 포크를 집어들며 아이든이 말했다. 혹시 제가 알아야 할 정보나 필수사항 같은게 있나요. 남편 분 성함이나, 이 동네 이름 같은거요.


"..그러고보니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구나."

"아무래도."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일단 네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해 줄래?"


레베카는 조금 설레는 기분이었다.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 사실 이 단어 자체가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시키지 않는가? 뭐랄까, 자신이 특별해지는 기분.


그리고 아이든 헌터는 그 감정을 잘 알았다.


대부분의 인류는 '개구리 왕자' 동화가 나온 이래 유구하게 자신이 데려온(또는 도와준!) 소동물이나 어린 아이, 또는 낯선 누군가가 사실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진 마법적 존재이거나 귀한 신분이서, 그 능력으로 자신에게 막대한 금은보화나 마법, 또는 진정한 사랑으로 은혜에 보은해주는 것을 꿈꾸었다.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기원인 개구리 왕자부터 시작하여 장화신은 고양이, 황금 물고기, 잭과 콩나무, 은혜갚은 제비, 개와 고양이의 구슬다툼, 은혜갚은 두루미...


이 감정은 자신을 아주 유리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아이든은 자신을 어떻게 포장할까 고민했다. 너무 가엾게 말하면 부담스럽고, 또한 너무 가볍게 말하면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다.

진실을 말하기도 싫었고, 또한 거짓을 말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아이든은 잠시 머리를 굴리는 척 입을 열었다.


"제 세상은, 일종의 평행세계에요. 단 한 끝 차이로 미래가 갈라져버린."

"평행세계?"

"네, 평행세계."


평행 세계 이론, 그리고 다중우주론.

평행 세계이자 평행 우조론은 다중우주론의 하위장르. 이 가설의 창시자는 휴 에버렛 3세, 그는 양자적 다중우주와 슈뢰됭거의 고양이 학설에 관련된 우주론을 내놓았으며, 당시에는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이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 일침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이 가설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을 것이다.


"이 우주는 굉장히 넓습니다. 끝도 없고 넓고 지금도 팽창하고 있죠. 우리는 그 속에 작은 먼지만도 못한 작은 존재들이죠. 그 속엔 무수한 많은 우주가 있고 그 중엔 우리 세계와 흡사한 존재들 역시 가득하겠죠."


아이든 헌터가 느릿하게 말했다. 오믈렛을 오물오물 씹으며 레베카가 그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제가 사는 세계와 레베카, 당신께서 사는 세계도 그렇죠. 이론상 저희의 세계는 아주 멀리 떨어져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얻은 능력이 그 거리를 무시하고 이동하는 능력이고요. 컨트롤은 불가능하지만."


레베카는 그 말을 흥미롭게 경청했다. 재밌다.


"이야기가 좀 샜지만 각설하고, 제가 사는 세계도 이곳과 굉장히 흡사해요. 단지 미래일 뿐이죠."

"너희 세상에도 미국이 있다는 소리니?"

"미국 있죠. 러시아, 아니지 소련도 있고, 중국, 일본, 프랑스, 영국.. 나치와 로마군과 십자군 원정도 존재했던 세계입니다."

"흐음.."


레베카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든이 물을 한모금 마시고 이야기를 이었다.


"제가 살던 시대는 2014년이에요. 이곳과는 거의, 40년 정도 차이가 나네요."

"그래서 페기 카터에 대해 물었구나? 하지만 왜 캡틴 아메리카에 대해 묻지 않고."

"그건 나중에요."


아아.. 레베카가 샐러드를 쿡 찔러 아삭아삭 씹었다.


"그리고 제가 살던 세계는.. 2010년도에 꽤 큰.."


아이든 헌터가 혀를 굴렸다. 캡틴 아메리카가 실존하는 이 세게에서 과연 자신의 세계와 같은 일이 일어날까? 영화에서나 존재했을 세상이지만 이곳은 현실, 자신이 이곳에 있으니 제 세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이유도 없지만..

단어를 고른다. 아이가 입을 열었다.


"전쟁이 일어납니다. 전 세계적으로."

"...전쟁?"

"넵."


레베카의 얼굴에 미미한, 경악으로 물들었다. 아이든 헌터는 그 모습에 납득했다. 하기야, 20세기에 일어난 세계대전만 2번이다. 그 상처는 깊으며 21세기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21세기에 또 전쟁? 장난치나 싶겠지. 그렇지만 외계인이 침입했다고 하기엔 너무 과한 설정이야.


"전 전쟁 난민이에요."


아이든 헌터가 단어를 골라 말했다. 거짓과 진실을 섞자. 너무 큰 동정은 독이다.


"다행히도 전쟁은 끝났지만, 대부분의 국가정부가 회생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무너졌죠. 전 꽤 큰 세력에 소속되어.. 교육받고 있고요."

"-그래서 총을 가지고 있었던 거니?"

"네, 총기가 금지인 다른 나라들은 몰라도, 최소한 아메리카 대륙에서 총은 흔해요. 무너진 도시 바닥에 널린게 빈 총기입니다."


아이든 헌터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래도 지금은 나름대로 체계가 잡혔고, 병원도 있어요. 학교도 있고. 뭐, 다행인 이야기죠. 참고로 페기 카터의 후손이 저희를 이끌었죠."

"..그렇구나. 그래서 어제... 그럼 혹시 거기 사람들이 하늘을 날고, 그러는 건 흔해?"


아이든은 여기서 구라를(이미 쳤지만 또) 치기로 했다.


"그건 아니었죠. 그런데 전쟁이 터진 후에 각종 생화학무기들이 세상을 덥치면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그 덕에 많은 사람들의 신체능력이 변했어요. 핵폭탄 비슷한 거."

"...!"


레베카가 놀라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이든은 조금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아이든 헌터는 깊은 색의 눈을 내리깔았다. 여기에 약간의 동정을 추가하자.


"그래도, 지금보다 환경이 훨씬 열악합니다. 그래서 처음에 이 세계에 왔을 땐 놀랐죠. ..제가 행운아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남들과는 다르게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충분한 곳에 왔으니."

"..저런.."

"이곳에서 공으로 얻어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전 집안일은 물론이고 일도 할 수 있어요. 돈을 벌어다 드릴 수도 있고요."


아이든 헌터가 머리카락을 살짝 뒤로 넘기고 양손을 깍지 껴 식탁 위에 올렸다.


"레베카,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궁금한 점이라면..?"


아이든 헌터는 밤늦게 생각했다. 1970년대 미국, 동양인 차별, 그리고 부유한 레베카와 로버트의 집.. 무엇이 득이고 무엇이 실일까. 신분이 없는 자신은 틀림없이 어두운 골목에서 생활해야 할 것이다.


"제가 이 집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 수 있는지에 대해, 입니다."


그렇다면 확실히 하자. 내가 머물 시기를.


"전 분명 다시 돌아가겠지만, 분명 다시 돌아오겠죠. 그때마다 새로운 거처를 찾는 건 성가신 일 일거에요. 전 확실히 하고 싶어요."


"제가 이 집에 머무는게 곤란하시다면 바로 떠나드릴 수 있습니다. 이 세계에 영원히 있는게 아니니 충분히 밖에서도 살 수 있어요."


전 이곳에서 얼마나 머무를 수 있나요. 당신이 수용할 수 있는 날짜는 언제까지죠?


"..."


레베카는 다 먹은 접시를 옆으로 살짝 밀었다.


"난 확신할 수 없구나, 아이든. 브라이언, 그러니까 내 남편은 네가 우리 집에 있는 걸 못마땅해 할거야."

"하지만 제가 다시 돌아간다 한들 언젠가 다시 돌아올 거에요. 그때 남편분과 만난다면 어떻게 설명하실 생각이세요?"

"...."


레베카는 침묵했다. 아이든은 의아하다 생각했다. 최소한 이런 경우라면 아무리 사이가 나쁘다 한들 사정을 말하는게 정상이지 않나?

아이든 헌터가 혀를 굴렸다. 물을까, 아님 말까. 너무 직접적이지 않나? 겨우 하루만에 가정사를 묻는 건 실례야. 상대방이 곤란해 할테지. 하지만...


"..엄마.."


그리고 타이밍 좋게, 로버트가 방에서 나왔다.


"어머, 로버트. 벌써 일어났어?"

"시끄러워서.."

"으응, 그래. 엄마가 미안해. 깨워버렸네."

"아냐.."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소년을 보며 아이든이 조금 웃었다. 금새 사라졌지만 말이다.


"아침 식사는 제가 만들게요. 그릇 주세요. 겸사겸사 설거지도 할테니."

"그래줄래?"

"네. 로버트, 아침 뭐 먹고 싶어? 핫케이크?"

"...응.."


아짐 잠이 덜 깬 얼굴로 소년이 중얼거린다. 크게 하품을 하고 소년이 말했다.


"좋은 아침, 아이든."

"..그래, 꼬맹이."


아이든 헌터는 언제나 아이들에게 관대하였으니. 레베카가 물었다.


"나중에 뭘 할 생각이니?"

"일단 상식부터 알아야죠. 이 근처 지리를 알아볼 생각입니다."

"그렇구나."


레베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든 헌터는 접시를 치워 개수대에 넣고 레베카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거, 부엌에 물건 어디어디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럼, 물론이지."




능숙하게 핫케이크를 만들어 로버트의 앞에 놓아준 아이든은 레베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든이 지낼 방과 사용할 물건, 의복에 관해서였다.


결국 문제는 돈이었다.


허리가방만 들고 왔어도 이런 걱정은 없었을텐데. 아이든 헌터는 혼자 생각했다. 아이든의 허리가방에는 혹시 '이상한 나라'로 떨어질 때를 대비한 금전, 그러니까 보석이나 금조각이 약간 있었다.


[에이씨..]


근데 지금은 없잖아. 이렇게 받다가는 결국 발목 잡힐 텐데, 레베카 역시 자신에게 물건을 막 사주기란 좀 그럴 것이다. 애가 있고 남편이 있다. 최소한 어느 정도의 지출은 상의하고 쓰는 게 맞는데다 옷이라는게 또 작정하고 사면 상당한 지출을 감행해야 하지 않는가.


허리가방만 가져왔더라면..


이 '이상한 나라' 로 오기 전, 아이든은 부락의 집무실에 있었다. 쎄한 감이 들어 준비를 하러 가던 와중에 떨어졌으니 누굴 탓하랴. 아이든 헌터는 한숨을 쉬었다.


"혹시 근처에 벼룩시장이 있다면 제가 나름대로 골라 올 수도 있긴 합니다. 신발은 지금 있는 거 하나로 충분하고..."


아이든 헌터는 조금 얼굴을 굳혔다.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나? 아, 난 신분이 없지, 제길.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한숨을 내뱉지 않는 것에 도가 튼 아이든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이 주변부터 돌아보고 올게요."

"혼자 갈 수 있겠니?"

"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참고로, 아이든 헌터의 얼굴은 외관상 어려보이는 모습이다. 특히 유럽인들에게. 처음 보는 사람들은 백이면 백, 아이든이 12살 정도라고 생각했다. 심하면 10살.


그리고 레베카도 그 중 하나였다.


"같이 가줄수 있단다."

"괜찮은데요.."

"아냐, 아무리 그래도 어린앨 혼자 보낼 순 없지."


레베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요즘은 동양인 혐오 범죄가 일어나기도 하니까.."

"..."


아, 아직도.. 는 아닌가. 피터 때에는 1980년대고 지금은 1970년대니까. 그때 친절히 조각내준 강도놈을 상기하며 아이든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럼 같이 가주실 수 있나요."

"그래. 잠시만, 로버트도 데리고 가자."

"로버트도요?"


아이든이 되물었다. 하기야, 애를 혼자두는 건 좀 그럴 거야.


"응."


레베카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나가는 김에 마트라도 들르자."

"예, 알겠습니다."



나간다는 말에 로버트 브루스 배너는 꽤 설렌 모양이었다. 아이든이 물었다.


"나가는 거 좋아?"

"응, 좋아."

"왜 좋은데?"


아이든의 여상한 물음에 어린 소년이 잠깐 눈을 굴리다가 수줍게 말했다.


"집은 별로 안 좋아해.."

"그래? 그러냐."


순간 당황한 기색의 레베카의 기척을 느끼며 아이든은 고개를 끄덕였다. 집을 별로 안 좋아한다고? 왤까?









로버트 배너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걸었고, 레베카는 로버트의 잡고서는 아이든에게 주변에 무엇무엇이 있는지 알려주었다.

저 앞으로 가면 학교가 있고,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마트가 있단다. 아이든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 말을 경청했다. 중간중간 로버트가 끼어들어 설명했다.


"나도 알아, 저기에 가면 고등학교가 있어. 나도 나중에 저기 갈거야."

"그래, 갈 수 있어."


아이든은 어린 소년의 수다를 꽤 즐겁게 받아들여 대답을 해주었다. 아주 먼 과거부터, 아이든은 어린애들과 참 잘 놀아주었었다. 그래서인지 어느새 레베카와 아이든의 대화는 로버트와 아이든의 대화로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저 쪽으로 가면 강이 있는데 저기서 배타고 놀 수도 있어."

"흐음. 로버트는 타 본적 있어?"


아이든이 잔잔하게 묻는다. 로버트는 잠깐 멈칫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한번도 없어."

"없어?"


나름 이 근처고 뱃놀이도 즐길 수 있는 곳인데? 어릴 때부터 해수욕장에서 자주 놀았던 아이든은 조금 의아해졌다. 보통 부모들이라면 그런 체험학습 장소가 근처에 있는데 참가하지도 않나?


"왜?"


아이든이 무심코 물었다. 로버트가 웅얼거렸다.


"아빠가 싫어해.."

"아빠가?"


아이든이 순간 인상을 팍 썼다. 아이든 헌터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쓰레기같은 부모가 지나가고 있었다. 레베카가 조용히 로버트의 이름을 불렀다.


"로버트."

"..."


아이든은 순간 어색해진 분위기를 상쇄하고자 화제를 돌렸다.


"근처에 식당은 있어?"

"으응, 인도 음식점."

"인도 요리라.. 인도 요리 좋아하는구나?"

"응! 나 인도음식 좋아해."


금방 텐션을 되찾은 로버트가 웃었다. 그러던 로버트는 아이든을 잠깐 보더니 물었다.


"아이든도 인도 출신이야?"

"...?"


정말 뜬금없는 소리에 잠깐 머리가 띵해졌던 아이든 헌터는, 유럽인들은 아시아가 다 비슷한 줄 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한국 출신."

"그럼 같은 말 써?"

"아니, 다른 말 써."

"왜?"


로버트가 순수하게 묻는다. 아이든은 이런 류를 많이 겪어보았다. 어른들이라면 무식하다 통탄하겠지만 로버트는 어리다. 진짜 모르는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관대한 아이든이 부드럽게 말해주었다.


"왜냐하면 인도랑 한국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거든."

"하지만.. 같은 아시아잖아?"

"로버트, 영국과 프랑스도 다른 말을 쓰잖아."

"으응."

"같은 유럽이지만 다른 말을 쓰지?"

"응."

"아시아도 똑같아. 유럽도 그렇지만 아시아도 지역에 따라 나뉘어.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북아시아,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그리고 서아시아. 같은 대륙이라고 무조건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건 아니야."

"아하-."

"그리고 아시아는 지구에서 가장 넓은 대륙이거든."

"으음."


로버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몰랐어."

"괜찮아. 배워가면 되지."

"으응."


그리고 로버트의 질문은 다시 아이사에 관련된 것으로 이어졌다. 보통 일본에 관련된 질문이 대부분이다.


"일본에 진짜 로봇이 말도 하고 그래?"

"아니, 그거 다 영화야. 안에 사람이 들어가서 연기하는 거야."

"!!!"

'젠장, 아직 산타를 믿는 나이였지.'


예를 들면 이런거. 1970년도의 일본은 아직까지 빠른 성장을 하고 있는 중이다. 거품경제가 도래하기도 전인데 뭐.


두 사람이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었다. 로버트는 아직 어렸기에 자연스레 아이든의 손을 꼭 붙들었고, 아이든은 자연스레 그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레베카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지구가 망해도 밥은 먹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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