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폈는지도 모를 벚꽃은 금세 다 떨어져 바닥에 더럽게 짓눌러 붙었다. 날씨가 제법 따뜻해졌나 싶다가도 이따금 쌀쌀맞은 바람이 불어오는 교실에서 아이들의 소음으로 가득 찼다.


-아, 쌤- 저희 고삼이에요

-그래 인마. 나도 선생이다.

-아니 체육 시간에도 체육을 안 하는데 체육대회는 왜 해요!


"조용! 체육대회 준비를 하든 자습을 하든 니네 맘대로 해. 체육대회는 중간고사 끝나고 그다음 주에 바로 하는데 체교과 생기부는 1등 반에만 써준다니까 그렇게 알아."


- 그게 뭐예요--


온갖 야유가 쏟아지자 귀를 틀어 막으며 귀찮다는 듯 담임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1등 반은 상금 50만원"





*     *     *


- 그래서 우리 반은 체육대회에 진심이라 점심 때 연습하재, 그래서 밥은 당분간 따로 먹어야 될 것 같아ㅜㅜ

- 하교는?

- 당연히 같이. 나 보고 싶어도 참아주라 ㅜㅜ


생기부도 그렇고 상금도 그렇고 우리 반은 평소 단합도 그럭저럭 되는 편이라, 점심 때 조금 더 연습하고 같이 밥 먹으러 가기로 합의 했다. 김도영을 점심 때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워 책상에 엎어졌다. 항상 그랬듯이 내가 보낸 플러팅 카톡에는 일일이 대답하진 않는다. 그래도 다 알아, 너 나 사랑하지?


"아, 김도영 보고 싶다"

"김도영?"


책상에 엎어져서 혼잣말로 중얼거리는데 어디서 나타난 지 모를 김정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있어, 내 남자친구. 넌 몰라도 돼"

"너 남자친구 있어?"

"지금은 아니고, 곧"


웃긴다, 너. 남자친구라며.

곧 남자친구라니까

야아 그런 게 어딨어


킥킥대는 김정우를 노려보다 그냥 다시 엎드려버렸다. 김도영 없이 시작하는 하루, 지루하고 재미없다. 별안간 이것저것 핑계 대며 김도영 앓이를 하다 금세 잠들어 버렸다.



점심시간 종이 땡 치면 바로 체육관으로 반 전체가 이동해서 체육대회 연습을 먼저 하고, 모두 다 같이 급식을 먹으러 가기로 합의했다. 게 중 나 처럼 다 같이 급식을 먹으러 가는 등의 행동에 사알짝 불만이 있는 사람들도 있을테지만 굳이굳이 싸우기 싫고 귀찮아서 그냥 하라는 대로 네- 하고 움직이는 이들도 여럿일 테지. 배가 등가죽에 붙었다며 내 손을 가져다가 지 배를 살살 문지르며 울상 짓는 김정우에 차마 뿌리칠 여력도 없이 입술만 삐죽거리며 뒤늦게 급식실에 들어섰다.


늦게 와서 그런지 배식줄에는 우리 반 아이들밖에 없었다. 다른 이들은 이미 한창 밥을 먹는 중이었고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무의식적으로 눈알은 김도영을 찾고 있었음. 근데 쟤 왜 저렇게 웃어?



뭐가 재밌는지 사랑스럽게 웃는데 그 앞을 보니까 무뚝뚝한 표정으로 밥 먹고 있는 도영이네 반 반장이 보인다.

아,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나 없는데서 왜 그렇게 잘생기게 웃고 난린데. 괜히 또 반장이랑 더 친해져서 저렇게 웃는 거 보니까 왠지 모르게 속에서 심술이 부글부글 끓었다. 점심 나랑 같이 못 먹는 게 서운하지도 않은 가보지? 근데 김도영은 반에 친구도 없나 왜 맨날 반장이랑만 놀아.


"아 짜증나 짜증나아......악! 뭐야!"


입술이 댓 발 나와서 김도영만 노려보고 있었는데 얼핏 느껴지는 손에 감촉에 진짜 깜짝 놀라서 소리를 꽥 지르고 김정우를 봤다. 넋 놓고 계속 김정우 배를 만지고 있었던 거였다. 와 근데


"너 배가 왜 이렇게 딱딱해? 우리 도영이 배랑 똑같네."

"아 이제 치워."

"왜애? 부끄러워?"

"넌 무슨 여자애가 남자 배를 그렇게......"

"지가 먼저 갖다 댔으면서"


체육복 위에 갖다 댄 손에 힘을 줘서 조물조물 만지니까 귀까지 벌게진 김정우가 손을 밀어냈다. 한껏 부끄러워서 손을 막 밀어내는 김정우의 모습에 장난기가 막 솟구쳤다. 그래서 그냥 손을 체육복 셔츠 밑으로 넣어버렸다.


"야아! 변태야"


기겁하며 냅다 소리를 지른 김정우의 목소리가 급식실 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밥을 먹던 학우들은 '변태'라는 단어에 토끼 눈을 하고 우리를 쳐다 봤다. 당황한 김정우는 입을 벌리고 날 쳐다봤다. 나도 벙쪄서 슬며시 손을 뺐고 그 순간에 볼에 밥 한 숟갈 와앙 입에 넣던 김도영이랑 눈이 마주쳤다. 동그랗게 뜬 눈에서 얼핏 경멸이 스치는 듯했다. 김망고 너랑 다신 안 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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