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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드레이코는 아이다운 추억이 별로 없었다. 물론 루시우스가 일을 나간 사이 나시사가 몰래 놀아준 시간이나 숨어 타던 빗자루의 기억은 있었지만 온전하게 즐긴 적은 없었다.

대부분은 그러지 못했다. 그는 여느 소년들과 다르게 컸다. 그는 침착하고 냉담하도록 교육받았다. 하지만 이를 인식할 나이가 되자, 그의 마음은 반항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그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작은 속삭임이었지만 이제는 마음 속 가시처럼 그를 찔러댔다. 이게 드레이코가 우연히 발견한 어머니의 책을 열어본 이유였다. 책, 어머니의 졸업앨범에서 드레이코는 그녀의 사촌이 담긴 사진을 찾아냈다. 시리우스 블랙. 그가 마침내 이해하게 된 인물의 젊을 적 사진.

그의 어머니, 그러니까 나시사는 드레이코더러 어린 아이치고 너무 영리하고 통찰력 있다 말하곤 했다.

드레이코는 루시우스를 적당히 닮았고, 또 나시사를 적당히 닮았다. 다만 둘의 자식이라 여겨지기에 충분한 만큼일 뿐이었다. 루시우스의 얼굴형은 세모처럼 뾰족했지만 드레이코의 선은 부드러웠다. 턱으로부터 이어진 경계는 볼끝에서 좁아지는 곡선이었고, 콧대의 선도 부모 중 어느 쪽과도 조금씩 달랐다. 루시우스의 회색 눈을 가졌지만 훨씬 푸르고 은빛이었으며, 머리카락 또한 같은 백금발이되 그 위에 꿀을 덧바른 듯 금발에 가까운 가닥과 섞여 있어 루시우스의 것보다 두 단계쯤 어둡고 나시사의 금발과도 결이 달랐다. 이 부분은 그들 모두가 인식한 바였는지 루시우스와 나시사는 드레이코와 밖에 나갈 때면 완전한 플래티넘 블론드가 되도록 염색 주문을 걸어 주었다. 이 특별한 외출 준비는 드레이코가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철저히 이어졌고, 드레이코로 하여금 의구심을 가지게 했다.

한 마디로, 드레이코만의 외관은 어린 시절 내내 골똘히 고민해 온 그 이질감에 불을 지폈다. 

어머니가 미처 없애지 못한 유일무이한 시리우스 블랙의 사진을 발견한 순간, 드레이코의 이상한 세상이 제자리를 잡았다. 모두 여기 있었다. 이목구비의 특징, 그의 미묘한 금발의 색감, 그 모든 게 이 낯선 남자에게 있었다. 이 사진 한 장이 드레이코가 두드리던 진실에 확신을 부었다. 홀로 앓던 차이점이 비로소 이름을 갖췄다.

그리고 그것은, 살라자르의 지팡이를 걸고, 위험한 이름이었다.

시리우스 블랙. 한때 마법세계의 가장 유서 깊고 고결한 가문이던 블랙을 등지고 단죄된 인물.

드레이코는 일 중독자처럼 끝까지 파고들었다.

엘레나 말포이의 오래된 사진을 발견했을 때는 거의 주저앉을 뻔했다. 드레이코는 그날 밤의 테러를 기억했다. 정확히는 붉게 터지는 화염과 방 안을 가득 채운 검은 연기가 폐로 스며드는 꿈과 그 속의 여인을 기억한다. 드레이코는 알게 되었다. 그 악몽은 꿈이 아니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저택에 침입해 그의 가족을 불태운 실제 기억이었다. 그날 밤, 엘레나 말포이는 절박하게 포트키를 만들어 어린 외동아들과 빠져나가려 했지만 불명의 저주와 연기 흡입으로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뜨겁게 명랑한 어린 시절 이야기.

드레이코는 그날로 갈 길을 정했다. 그는 이 비극을 끝낼 것이다. 이제까지 얼굴도 몰랐던 친모와 오늘도 침묵의 테러 속에 버티는 그녀를 위해 싸울 것이다.

그는 계획하고, 읽고, 단련했다. 그리고 최후의 승리를 위한 결정적인 무기를 골랐다.

그들은 소년을 과소평가했다. 그 가족의 힘도 간과했다. 그가 아는 한 가장 강한 사람, 그녀는 누가 뭐래도 그의 어머니였다. 소년은 주어진 폭풍 속에서 끝없이 자신을 연단하며 숨을 죽였다. 그가 기다리는 기회, 시리우스 블랙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그리고, ―


시리우스 블랙이 탈옥했다.


온실의 하늘이 무너지고 질긴 파편이 가슴에 박혀 둥지를 틀었다.

드레이코가 받은 건 편지 한 장이었다. 기억 하나 없는 미지의 생부는 탈옥한 지 몇 달이 지나서야 그를 찾아왔다. 파란만장한 3학년의 끝무렵이었다.

드레이코는 그리몰드 광장 12번지의 어느 화실에 미동도 없이 섰다. 호리호리한 남자가 그와 마주 보고 있었다. 이 사람을 만나면 쏟아내려 했던 모든 분노, 항변, 생각들이 혀끝에 걸려 녹아내렸다. 말할 수 없었다. 단어 하나도 뱉을 수 없었다.

시리우스는 경외에 가까운 눈빛으로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살폈다. 그는 몇 번씩이나 입을 열었다 다물었다를 반복하다가 턱을 힘주어 닫았다. 그 또한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 했으나, 드레이코만큼이나 말을 잃었다.

시리우스는 깊은 한숨과 함께 소파에 허물어지듯 앉았고, 몇 년의 세월을 증명하듯 켜켜이 쌓인 먼지가 공기중으로 피어올랐다. 드레이코는 경계하며 뒤로 물러나 코를 찌푸렸다. “완전히 쓰레기장인데요.”

드레이코의 조심스러운 우스개에 시리우스가 씨익 웃으며 시시콜콜한 농담을 던졌다. 둘 사이의 긴장감이 많이 해소된 게 느껴졌다. 다는 아니지만 적어도 어색함과 이해심 중간의 어드메는 되었고, 시리우스는 이 정도는 무시하고 나가기로 했다.

드레이코의 마음은 불편한 균형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자신을 버린 시리우스에게 실망감과 화를 표출할 작정이었는데, 자신을 보는 순간 그의 눈동자에서 너무나 맑게 빛나는 행복감이 떠오른 순간 뿌리 깊은 적의는 일개 작은 웅덩이에 지나지 않게 되어 버렸다. 드레이코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대화를 이을 힘이 생겼다. 그가 루시우스에게 배운 게 있다면 아직 친하지 않은 상대와의 마음의 거리를 손쉽게 줄이는 요령뿐이었다.

리무스, 생부의 측근인 그는 적어도 훨씬 사려깊었다. 그는 이 가족상봉이 이상적인 무언가라고 포장하며 부추기지도, 시리우스의 실망스러운 행동을 미화하려 하지도 않았다. 드레이코는 진심으로 그에 감사했다. 리무스의 말은 거짓의 터널 끝에서 만난 유일한 신선함이었다.

실로 거짓된 삶. 거짓으로 태어나 거짓으로 지속된 삶.

스스로 지은 계획을 착실히 밟아나갔으나, 막상 탑 꼭대기에 섰을 때 드레이코는 동요했다. 오래도록 정보를 제공해 온 남자를 마주할 차례였다.

드레이코는 할 수 없었다. 정확히는, 이로써 볼드모트에게 가까워지리란 분기점에서 그는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교장을 겨눈 지팡이 끝이 볼썽사납게 떨리는 손 안에 천천히 내려갔다. 저지르는 순간 지저분한 복수와 분노의 반복으로 돌아간다. 어린 날의 자신에게 찾아온 그 자들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다. 드레이코는 제 손으로 이 짓을 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드레이코는 충분히 배웠다. 제 안에 남은 일말의 순수함을 지키면서 악의를 누르는 법을 알았다.

눈 앞의 현자는 그 마음을 안다는 듯 드레이코에게 작은 격려의 미소를 보냈다.

입 안에 맴도는 말이 썼다.

드레이코의 입이 열리기 직전, 죽음을 먹는 자 무리가 탑에 밀려들어왔다. 몇 초 후, 덤블도어와 나시사가 애원한 대로 스네이프가 지팡이를 대신 겨눴고, 드레이코는 사람들에게 붙들려 말포이 저택으로 끌려갔다.

드레이코는 어머니를 내버려둘 수 없었다. 그간의 모든 행동은 어머니 생각에서 나왔다. 드레이코가 더 이상 연루되지 않길 원하는 스네이프의 호소에 가까운 충고에도 그가 더 속절없이 말려들 수밖에 없는 강렬한 원동록이 여기 있었다.

현자의 죽음을 목도한 정신은 그 원동력에 기름을 부었고, 정신을 차렸을 때 드레이코는 볼드모트의 앞에 서 있었다. 한 시간에 달하는 크루시오* 저주 뒤에 찾아온 불타는 감각. 시야가 허물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팔의 극심한 통증이었다.

어머니의 삶을 위한 삶.

나시사를 위한 헌정.

나의 전부.

흐릿한 눈꺼풀 사이로 두 형상이 어른거리는 걸 인식할 무렵, 드레이코의 입이 억지로 벌려져 약물이 콸콸 부어졌다.

“건방진 녀석.” 스네이프가 드레이코의 귀 근처에서 낮게 꾸짖었다.

“그만해요 세베루스, 그만. 그 애는 아직 어린애예요. 어려본 적이 없는 어린애요.” 다가오는 죽음을 막으려 사투를 벌이는 스네이프의 맞은편으로 나시사가 어린 아들의 얼굴을 매만지며 말했다. 눈물 젖은 입맞춤이 쉴 새 없이 내려앉았다. “나의 작은 용, 잠시 작별인사해야 할 시간이야. 곧 올테니―” 뭉개진 정신 사이로 그녀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제발 살으렴, 내 아가.”

“엄마.” 쥐어짠 목소리가 보이지 않는 그녀의 얼굴을 찾아 헤맸다.

나시사의 미소가 그의 손목 안쪽에 입맞추어졌다. 손바닥에 마지막 입맞춤을 남기고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나시사의 고갯짓을 확인한 스네이프는 드레이코의 몸을 일으켜 두 팔로 안고 그리몰드 광장 12번지의 익숙한 정문 앞으로 이동했다.

그날 드레이코를 본 시리우스는 거의 제정신을 잃을 만큼 화냈다.

3주 동안 시리우스는 화장실도 혼자 못 가게 했다. 한 달이 되어갈 무렵 드레이코는 갑갑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결국 드레이코는 갈레온을 바리바리 챙겨서 옆 동네로 가 일주일을 보냈다.

저택에 돌아온 날, 밤새도록 이어진 허기는 무방비한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워주는 탁월한 행운이었다. 한달음에 달려와 그를 꽉 끌어안은 시리우스의 따뜻한 품 안에서, 지나치게 생생한 환각을 탓하며 드레이코는 의식을 잃었다. 그날 밤 드레이코는 흐느끼지 않았다. 대신 그에게 주어진 모든 망가진 것들로 몸부림치며 잘게 떨었다. 시리우스는 조용히 드레이코를 건져올려 침대에 눕히고 다음 날 아침 따뜻한 팬케이크와 함께 그를 맞아주었다.

그 후로 드레이코는 줄곧 이곳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리몰드 광장에 나타난 세 사람으로 인해, 드레이코는 진지하게 이 결정을 재고하게 되었다.

빛과 싸우길 내려놓은 건 자신의 작은 계획을 마무리짓기 위해서였지, 결코 ‘해리-빌어먹을-포터’와 룸메이트가 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슬픈 머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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