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시즌 앨범인 [This Christmas – Winter is Coming]부터, 태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폭발하는 고음과 화려한 기교를 버리고 서늘한 감성의 곡들을 계속해서 발표하고 있다. 'Something New'와 뮤직 비디오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시니컬한 태도는 더욱 전면적으로 드러난다. 청량하고 시원한 목소리가 메아리조차 남지 않고 사라진 자리에는 날카롭고 차분한 태연만이 남아있다.

첫 곡인 'Blue'부터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문법과 태도가 눈에 띈다. 보컬과 피아노만을 바탕으로 사운드를 믹싱한 이 곡은 태연이 지금까지 발매했던 곡 중 가장 미니멀한 구성이다. 어딘지 탁하면서도 호흡을 가다듬지 않은 듯 한 그의 보컬은 흡인력이 있으면서도 절절한 감정은 남기지 않는다. 폭발할 듯 한 지점에서도 태연은 가라앉은 보컬로 곡의 다음을 향해 조용하게 나아간다. 폐색적일 정도로 보컬에 따라붙는 에코는 오히려 곡 전체에 공감각적인 여유를 만든다. 드라마틱한 슬픔도 폭발하는 분노도 없는 이별 노래인 'Blue'에는 말 그대로 우울함만이 적당한 정도로 남아있다.

이 깔끔하면서도 시니컬한 태도는 '사계(Four Seasons)'에서 톤을 달리 한 채 이어진다. 리드미컬하고 레트로한 리프 사운드와 신스 사운드는 현악기 연주들과 맞물리며 드라마틱하게 풍성해지다가 자조적이고 근원적인 질문인 "정말 너를 사랑했을까"에서 감정을 내려놓고 다시 일관된 리듬으로 돌아간다. 'Blue'에서 남아있던 우울함과 일말의 미련마저 사라지고 사계-일상을 살아가는 태연의 보컬과 리듬은 마치 모든 것을 털어버린 여성의 발걸음처럼 시원하고 깔끔하다. "And I want something new"라는 뮤직 비디오의 문구는 전작인 [Something New]를 연상시키며 의미심장하게 떠올랐다 사라진다. 

스스로 가사를 쓰는 싱어송라이터는 아니지만, 태연은 지난해를 전환점으로 새로운 이미지와 서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사랑을 염원하는 소녀도, 자유로움을 추구했던 여정도 지나간 후 극적인 드라마를 내려놓은 태연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것과는 전혀 다른 에디튜드의 이야기를 새롭게 보여줬다. 특히 자유로워 '보이는' 것에서 탈피해, 온전히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타이트하지 않은 호흡으로 서서히 이어가는 그의 행보는 다른 어떤 아티스트들보다 인상적이다. 당연히 새로운 것들을 보여주고 공감과 몰입을 이끌어내는 태연의 기술과 실력 역시 점점 무르익었다. 좋은 디스코그래피를 만드는 것과 독자적인 컨셉과 이미지를 만드는 것, 그리고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것 세 가지를 모두 성취한 아티스트는 흔치 않고 특히 여성 아티스트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태연은 그 몇 안 되는 경우 안에서도 가장 앞에서 전진하고 있다. 슬픔도 미련도 남기지 않고.

자신의 음악에 스스로의 이야기를 담아 발표한 선미, 아이유, 백예린 등의 여성 솔로 아티스트들과 마찬가지로 태연은 여성 아티스트가 표현하고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2017년 겨울 앨범 이후로 그는 이번 신보까지 세 개의 작업물을 선보이며 태연은 자신의 영역 밖에 또 다른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냈다. 태연의 데뷔 이후 12년이 지났다. 태연은 다음의 12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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