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긴 눈 위로 빛이 쏟아졌다. 하얀 빛은 얇은 눈꺼풀을 뚫고 눈에 들어왔다. 빛은 멀리 있는 것 같기도, 가까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얀 빛이 넓게 퍼져서 얼굴을 감싸는 듯했다. 시야가 하야니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이미 아득해졌을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무미건조한 빛은 내 속눈썹 하나하나를 어루만졌다. 가느다란 속눈썹이 일렁이는 걸 상상했다.

  몸이 무거웠다. 온몸에 족쇄를 채운 듯, 손가락 마디도 움직일 수 없었다. 바람에 쉽게 날리던 머리카락마저 무거워진 것 같았다. 손끝과 발끝에서부터 한기가 올라왔다. 아니, 한기는 이미 몸 전체에 퍼져 있었다. 입을 열면 뿌연 입김이 나올지도 모른다. 꽃잎 위에 누운 듯 등이 간지러웠다. 실제로 꽃잎 위에 누워있는 건 아닐까. 눈을 떠서 꽃이 맞는지, 무슨 꽃인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시든 꽃향기가 코끝에서 머물렀다. 꽃잎에 맺힌 물 냄새 같기도 했다. 온몸을 감싼 꽃이 주변의 산소를 앗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산소가 필요 없으니 괜찮지 않을까.

  나의 마지막 순간에는 누가 올까. 부모님은 당연히 오시겠지. 아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살면서 잘해준 것도 없는데 올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좋은 기억이라곤 남기지 않은 자식 얼굴을 보러 오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았다. 친구들은 올까. 애초에 장례식까지 올 친구가 나에게 있었던가. 알고 보면 장례식장에 온 사람들 모두 병원 직원일지도 모른다. 혼자 죽는 내가 불쌍해서 마지막 자리를 채워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풍 뒤로 사람들의 옷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중간 중간 코를 훌쩍이는 소리도 들렸다. 마른 양말과 바닥이 맞닿아 비벼졌다. 누구일까. 나와 관련된 사람이기를 바랐다. 무릎이 바닥에 닿는 소리. 내 무릎이 딱딱한 바닥에 닿는 기분이 들었다. 목을 긁는 기침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목이 메는 걸까 아니면 단지 감기에 걸린 걸까. 괜찮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텁텁한 냄새가 올라왔다. 담배 냄새 같았지만 그것보다는 답답하지 않았다. 모기향일까. 냄새 사이로 누군가의 발걸음이 병풍 쪽으로 가까워졌다가 멈췄다. 그리고 무언가를 조용히 올려두는 소리가 났다. 종이일까 아니면 천일까. 나를 감싸고 있는 꽃일지도 모른다.

  사망 선고가 내려졌을 때 내 위로 하얀 천이 씌워졌다. 얇은 천은 강한 형광등 불빛을 막지 못했다. 인공적인 빛이 내 눈꺼풀을 뚫고 동공으로 들어왔다. 의사가 뭐라고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내가 아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무거워진 내 몸을 흔들고 침대를 흔들고 소리를 질렀다. 병원이 떠나가라, 목청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차가워진 내 손을 붙잡고 자신들의 온기를 불어넣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차가움밖에 보내줄 수 없었다.

  내가 죽는 순간 기억은 이미 아득해졌다. 교통 사고였던 것 같은데 정확히 어떤 상황이었는지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뇌가 완전히 죽어서 그런 걸까. 하지만 심장이 멎는 순간은 아직 생생하다. 지금도 멎어 있어서 그런가. 가슴 가운데 부분에서 쿵쿵거리던 감각이 사라지니 허전하면서도 오싹했다.

  사람들의 옷이 스치는 소리가 줄어들었다. 흐느낌도, 훌쩍이는 콧물 소리도 사라졌다. 이내 눈 위로 쏟아지던 빛이 꺼졌다. 나사가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나무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빛은 사라지고 나는 어두운 공간과 함께 남았다. 고요하면서도 답답한 공기가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차가운 습기가 얼굴을 매만졌다. 빛이 만지던 속눈썹을 이젠 어둠이 어루만졌다. 시야는 끝없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내 몸은 어떻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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