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란 무엇일까. 여느 때의 지루한 수업 도중 나온 질문이었다. 선천적으로 감정에 대한 공감력이 떨어지는 고죠에게는 그다지 감흥 없는 질문이었기에 한 귀로 듣고 흘렸었다. 하긴 너랑은 안 어울리네. 쇼코가 성격처럼 목소리의 고저 변화 없이 말했고, 옆에 있던 스구루는 글쎄, 웃었나? 장난기 많았던 사람이었으니 웃었던 것 같았다.


‘보통 사람이나 물건, 시간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걸 그리움이라고 하지.


그렇다면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그리움이 아닐까. 사전적인 의미를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




이타도리 유지는 주술고전에 대한 모든 것이 궁금했다. 저주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학교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굳건히 믿고 있지만, 이제는 그냥 제 성격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고전에 들어온 첫 주에는 마치 말을 처음 배운 네 살배기 마냥 온갖 것을 물어본 탓에, 메구미와 노바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다.


이타도리의 다음 타깃은 영 믿음직스럽지 못한 고죠 사토루였다. 주술고전 출신으로 가장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을 사람이었지만, 썩 내키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선생님이 됐을까? 우스갯소리로 나온 이야기였는데, 사실 그만큼 능력이 출중하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은 없다는 걸 온몸으로 느낀 이타도리는 결국 자신이 정한 타깃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에 바빴다.


의외로 고죠 사토루는 뺀질거리는 성격―선생님에게 쓰기에는 불경하지만,―과는 다르게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가며 궁금증을 해결해주었다. 장난도 쳐가며 재미있게 알려주는 덕분에 이타도리는 항상 그를 찾아가 고전에 대한 궁금증 해결하곤 했다.


“그럼, 왜 이 방은 비어 있지?”


가볍게 장난치던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됨을 느끼고 이타도리는 아차 싶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면서 주변 눈치에는 꽤 빠삭한 편인 이타도리는 자신이 고죠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다가 물어보면 안 될 걸 물어보면 어떡하려고 그래. 얼마 전, 고죠를 뒤 따라다니던 이타도리의 모습을 보던 노바라의 걱정이 현실화한 것이다.


“하하, 그러게. 기가 안 좋나?”


아, 그런가 보네요. 하하. 저주를 없애는 주술고전에서 가장 터무니없을 변명이었지만, 이타도리는 그저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자리를 피했다.


“안 어울리게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그게…. 왠지 잘못 건드린 것 같아서요.”


제 방으로 가는 도중, 우연히 만난 이에이리 쇼코에게 어물쩍대던 이타도리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방금 전 일을 토했다. 처음에는 정이 없다고 생각했던 이에이리 선생님은 잘잘못을 적나라하게 말해주는 것이 의외로 고민 상담하기에 알맞은 상대였다. 그러고 보면 주술고전에는 의외인 사람이 참 많았다.


“아, 뭐… 그 녀석, 고죠 문제니까 신경 쓰지 마.”

“왜 그러신 건지 알고 계신 거예요?”

“응. 하지만 말 그대로 걔 문제니까 말은 못 하고. 고질적인 버릇이니까.”


그럼. 정말로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건지 이에이리는 제 갈 길을 향했다. 복도에 홀로 남은 이타도리는 눈을 깜빡이다 제 기숙사 방으로 들어갔다.




*




“고죠.”

“… 어, 쇼코. 웬일로 먼저 찾아왔대.”

“이러고 있을 것 같아서.”


이에이리는 담배를 건넸지만, 고죠는 고개를 젓고는 그 담배를 튕겨냈다. 


“하여튼 재미없다니까. 그 범죄자가 뭐라고 아직도 그래? 너 때문에 의기소침해하는 학생을 내가 구제하고 왔잖아.”

“그래? 그래도 역시 나 쇼코의 이런 모습, 싫어하지 않아.”


알아. 쇼코는 짧은 대답과 함께 이럴 때만 피우는 담배 연기를 내뱉고는 자리를 비켰다. 부러 못된 말을 하며 답지 않게 위로라니. 말로 하는 위로는 하지 않았지만, 저를 보러 온 행동 자체가 그만의 위로라는 것을 고죠는 알고 있었다. 정말 그다운 위로법이다.


그나저나 스승이 돼서 제자가 눈치 보게 만들었군. 고죠는 머리를 긁적였다.


기가 안 좋다니. 제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지만, 그것 외에 떠오르는 이야기가 없었다. 스구루의 흔적이 담긴 방을 내어주기 싫어서? 버리지 못할 것들을 갖고 있을 만큼 그가 그리워서? 어느 무엇도 제 입으로 내뱉기에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고, 저도 이해 못 할 이야기를 학생에게 설명할 자신은 없었다.


아무튼 제게 ‘인간’적인 무언가를 갖게 하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게토 스구루 하나뿐이다. 지금도 그러고 있고.


쇼코가 자신을 찾아온 방은 이타도리가 물었던 방으로, 오래전 스구루와 자신이 함께 시간을 보낸 곳이기도 했다. 고죠는 침대 위에 누워, 베개 옆에 놓인 교복을 괜히 두어 번 털어냈다. 매일같이 청소하기에 쌓일 리 없는 먼지를 턴다는 핑계를 대고, 또 그리움도 함께 날아가길 바라며.


누구도 이기지 못할 최강을 가져 항상 제멋대로 사는 고죠에게도 버릇은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생겼다. 이 방에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것. ‘버릇’이란 자고로 무의식중에 나오는 행동으로, 모든 것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고죠는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었지만, 언젠가부터 생겼다.

 

언제였더라. 이 방의 존재를 잊고 있던 오래전의 날 중 하나, 방을 비워야 하니 네가 도맡으라 했던 선생의 말에 마지못해 방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딱히 치울 만한 게 없어서 대충 훑어보다가 옷장 속 깊은 곳에서 교복 하나를 발견했다.


교복을 봐도 추억 따위 간직할 만한 성정이 아니었기에, 졸업하면 쓸모없을 교복을 버리기 위해 망설임 없이 꺼냈더니 그 아래서 또 하나의 교복이 나타났다. 고죠는 이 날 처음으로 숨이 막힌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들도 그랬고, 지금의 제자들도 입고 있는 교복과 똑같은 디자인이었지만, 고죠는 그것이 스구루가 입었던 교복임을 알아챘다. 물론 그 방이 자신과 스구루가 함께 보냈던 방이었기에 당연한 말이었지만, 교복에서 나는 알싸한 담배향은 스구루를 생각나게 만들었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던 것 같았다. 교복을 보는 지금도 생생하게 재생되는 스구루와의 기억이었으니 그때는 얼마나 실감이 났었을까.


덕분에 미련도, 욕심도 없어 제 교복이나 옷들은 버린 지 오래였지만, 스구루의 교복은 여전히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스구루와 함께 자기도 했던 침대도 선생과의 고집 싸움에서 이긴 고죠가 지켜낸 그리움의 산물 중 하나였다.


교복을 쓸어내다 보면 꼭 잡히는 것이 있는데, 안 주머니에 들어 있는 오래전 게토가 사용했던 핸드폰과 담뱃갑이었다. 성격이 맞지 않은 듯 맞았던 스구루와 저, 그리고 쇼코는 종종 나가 놀곤 했는데, 시답잖게 사진을 찍은 적이 꽤 여럿 있었다. 뭐든 간직하는 법이 없는 자신과는 달리 그때의 스구루는 모든 것을 소중히 생각했다.


‘사진은 왜 찍어?’

‘지금을 간직하기 위해서?’

‘왜?’

‘나중에 보면 다 기억해낼 수 있잖아’


솔직히 말하자면 과거를 기억할 필요도, 마음도 없었던 자신은 스구루의 이야기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찍자고 하니 군말 없이 찍혀줬었고, 핸드폰을 열면 쉽게 그 사진들을 찾을 수 있었다. 스구루가 말했던 이유를 스구루가 없는 그때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아이러니에, 자조하기도 했다.


물론 교복에서 꺼낸 핸드폰은 지나온 세월 탓에 이제는 수명을 다해 전원이 켜지질 않는다. 안에 있는 사진은 볼 수 없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는데도 고죠는 버릴 수가 없었다. 이거야말로 미련 덩어리다.


켜지지도 않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이번에는 담뱃갑으로 손을 옮겼다. 스구루와 쇼코는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골초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골초라는 이유로 그들을 혼내기에는 저가 더 골칫덩어리였으므로.


여전히 담뱃갑 안에는 담배가 몇 까치 남아있었지만, 이 역시 피우지도, 버리지도 못했다. 피워볼까 잠깐 시도해봤지만 담배 연기를 핑계로 나올 눈물이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손 끝으로 게토의 향을 느끼는 것이 다였다.




일탈도 정도껏 해야지. 침대에서 일어나, 밖을 나가기 위해 문 쪽으로 다가가면, 냉장고에 붙어 있는 빛바랜 그때 그 시절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보기 싫어 찢어버리고 싶었던 적도 많았지만, 결국 사진은 끈질기게 붙어 있었다.


아마 안에는 함께 마시기 위해 가져왔다가 끝내 마시지 못한 캔맥주가 들어 있겠지. 안 봐도 뻔했지만 괜히 냉장고 문을 열어 확인했다. 갑자기 사라져버린 스구루처럼 이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제게 ‘인간’적인 감정을 갖게 한 게토 스구루란 남자를 고죠 사토루는 잊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고죠 사토루가 생각하는 게토 스구루란 사람은, 이제 제 상상력이 점철되어 만들어낸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굳이 정정할 생각은 없었다. 이것이 게토가 말했던 그리움이라면 온몸으로 맞이해볼 생각에.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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