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의 기본 히루마모 설정은 안 사귀지만 스킨십은 하는 사이...입니다. 언제나처럼 퇴고없음~



이른 아침, 마모리는 회의실의 자물쇠를 따고 문을 열었다. 미식축구부 부실과 별개로 마련된 이 공간은 히루마가 총장과 아주 유익한 대화 - 아무도 그것이 제대로 된 대화였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 끝에 사용 허가를 받아낸 곳이었다. 명목상으로는 운동부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회의실이었지만, 실제로는 미식축구부 전용으로 쓰이고 있었다. 마모리가 들고 있는 회의실 열쇠부터가 시설관리실이 아니라 미식축구부실에 걸려 있었으니까.

그런 것을 생각하고서 마모리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히루마가 온갖 편법과 불법을 자행하며 얻어내는 편의에 너무 익숙해진 스스로에 위기감을 느낀 탓이었다. 데빌배츠 시절 매니저가 되고 난 초반에는 나름대로 막아 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히루마가 사용하는 협박과 매수, 기타등등의 방법이 많은 어려운 일들을 쉽게 하고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실감한 다음부터, 마모리의 행동 방식은 최대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뒷수습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아무튼 목표로 향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정신이 마모리에게도 단단히 옮아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양심의 찔림은 어쩌지 못했기에 마모리는 다시 작게 한숨을 쉬며 가방에 든 것을 꺼냈다. 약 한 시간 뒤에 시작될 회의 시작 전에 다시 한번 분석한 자료를 정리하고, 오늘 들어갈 수업 프린트도 미리 한번 훑어보고.......

할 일은 늘 많았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늘 할 일이 많은 히루마를 위한 아침 커피와 마모리 자신의 커피, 무설탕 민트껌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곳저곳 들렀다 오는 일이 많은 히루마 대신 마모리가 아침의 카페인 및 간식거리를 담당하게 된 것도 이미 오래된 일이다. 덕분에 히루마의 카드는 마모리의 지갑 안에서 벌써 몇 년째 상주 중이었다.

자리에 앉은 마모리는 자료를 들춰 보며 제 몫의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보면 히루마에게 옮은 것이 또 있었다. 원래는 설탕과 우유를 잔뜩 넣은 커피가 취향이었던 마모리는 어느샌가부터 블랙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우유가 든 것을 마시니 유당불내증이 없는데도 속이 편치 않았고, 또 아침부터 단 것을 섭취하면 혈당이 너무 높아져 당뇨병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는 기사를 신문의 건강정보 란에서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카페인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학교 공부며 미축부 활동이며 참여하고 있는 각종 대외활동도 하다 보면 밤 늦게 끝나게 마련이었고, 아침 연습이며 회의 때문에 늦잠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라 마모리는 늘 잠이 모자랐다. 카페인이 없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스케줄이었다.

그래서 마모리는 큰 맘 먹고 블랙 커피에 도전했다. 처음에는 쓴 커피를 마시는 게 너무 어려워 샷을 하나 빼고 설탕을 약간 넣어 마셨지만, 점차 그 깔끔한 맛에 매력을 느껴 이제는 기본 더블샷 아메리카노도 설탕 없이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나름대로 자랑스러운 성취라서 히루마에게 이야기했더니, 이제야 겨우 어린애 입맛을 벗어난 거냐며 킬킬거리는 놀림이나 들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입이 심심해졌다. 그러고보니 회의실에 있는 미니 냉장고에는 어제 간식으로 먹고 남은 카리야 슈크림이 들어 있었다. 딱 하나만 먹는 건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마모리는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가, 주먹을 꾹 쥐고 다시 앉았다. 기껏 건강을 생각해서 아침의 단것을 포기했는데 슈크림을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민하던 마모리의 눈에 히루마 몫으로 사 온 무설탕 민트껌이 보였다. 뭔가를 씹으면 군것질 생각이 사라질 것이다. 포장도 뜯지 않은 새것이라 마모리가 먹으면 바로 티가 나겠지만....... 잠깐 고민하던 마모리는 이내 껌을 집어들었다. 히루마 카드로 산 것이지만 심부름값이란 것도 있으니까! 하나 정도는 먹어도 괜찮겠지.

자기합리화를 마친 마모리는 포장을 뜯고 껌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매울 정도로 강한 민트맛에 콧속이 찡 울렸다. 마모리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는 맛이 빠지도록 껌을 열심히 씹었다. 한참을 씹은 후에야 겨우 인상을 펼 수 있었다. 강한 민트맛이라는 걸 맛보아 알고는 있었지만 껌을 직접 씹은 적은 없어서, 이 정도로 센 것인 줄은 몰랐다. 다음부터는 자기 몫의 달지 않은 간식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하며 마모리는 무심코 히루마를 흉내내어 풍선껌을 불려고 했다.


"......."


잘 되지 않았다. 기실 마모리는 풍선껌을 잘 불지 못하는 편이었다. 풍선껌용으로 나온 껌이 아니다 보니 더 어려웠다. 저도 모르게 풍선껌 불기에 열중한 마모리는 어느새 히루마가 회의실 문틀에 기대어 서서 저를 지켜보고 있는 것을 조금 늦게 깨달았다.


"혀를 더 내밀어야지, 빌어먹을 매니저."

"......깜짝이야! 인기척 좀 내, 히루마 군!"

"남탓이 많이 느셨군요, 아네자키 씨? 네가 정신빼고 있던 탓이잖아."


그렇게 말하며 히루마는 천천히 문을 닫고 걸어들어와 마모리의 옆자리에 앉았다. 노트북을 꺼내고 마모리가 이미 세팅해 놓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그 다음 절차로 껌을 집어들다가, 이미 포장이 뜯기고 껌이 하나 없는 걸 보고는 히죽 웃었다.


"그놈의 몰래 집어먹는 버릇 또 나왔냐? 빌어먹을 전직 선도부원 주제에 말야."

"하나 정도는 먹어도 괜찮잖아? 모자라면 이따 새거 사다 줄게."


너무 오랫동안 같은 걸로 놀림받은 탓에 마모리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쳤다. 그 와중에 풍선껌을 불려고 계속 시도하고 있었지만, 번번이 풍선에 구멍이 나거나 제대로 부풀어오르지 않아 실패했다. 지치지도 않고 계속 도전하는 마모리를 가만히 지켜보던 히루마가 껌을 입에 넣고 몇 번 씹더니, 쉽게 커다란 풍선을 불었다. 놀리듯 점점 크기를 키우는 히루마의 풍선을 본 마모리가 물었다.


"히루마 군은 어떻게 그렇게 크게 부는 거야? 팁이라도 있어?"


커다란 풍선을 미련도 없이 팡 터뜨린 히루마가 껌을 다시 입 안으로 갈무리하더니 킬킬거리며 웃었다.


"알고 싶냐? 알려주면 뭘 해줄 건데?"

"하나라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구나, 히루마 군은?"

"기브 앤 테이크는 확실해야지. 그래서, 보답은?"

"일단 방법을 알려줘. 내가 시도해서 성공하면 내 승리. 실패하면 히루마 군 승리. 진 쪽이 부탁 들어주기. 그렇게 하는 건 어때?"


내기, 좋아하잖아? 그렇게 말하며 다소 도발적으로 미소짓는 마모리를 보며 히루마는 다시 풍선을 불었다. 가만 보면 이 녀석도 많이 변했다. 그것도 그에게 맞춰진 방향으로. 정의롭고 올곧은 선도부원에게 나쁜 물이 들었구만. 제법 잔머리도 굴리는 걸 보면. 뭐, 아직도 멀었지만. 사악하게 즐거워하며 히루마는 내기를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입을 살짝 벌려 시범을 보였다.


"먼저 껌을 평평하게 펴라."

"......응, 했어. 그 다음은?"


껌을 입에 물고 말하느라 약간 뭉개진 발음으로 마모리가 물었다. 히루마는 몸을 마모리 쪽으로 기울이고 그 다음 단계를 말했다.


"편 껌 한가운데로 혀를 내밀어."

"......해허.(했어.)"

"좀 더."

"......어히허 허?(여기서 더?)"


한껏 혀를 내민 채 말하느라 살짝 미간을 찌푸린 마모리가 히루마를 바라보았다. 그 다음 순간, 뒷목에 차가운 손이 닿더니 확 당겨졌다. 미처 집어넣지 못한 혀가 그대로 삼켜졌다. 풍선껌을 불기 위해 둘 다 입을 벌리고 있던 탓에 타액은 약간 미지근했다. 놀란 듯 살짝 굳었다가 이내 스르르 풀어지는 목덜미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히루마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더 깊이 키스했다. 블랙 커피와 무설탕 민트껌. 그 자신의 맛이 났다. 좋아하는 맛이니 불만은 없어야 할 텐데, 무언가 모자랐다.

속으로 혀를 찬 히루마가 마모리의 입 안에서 껌을 가져오며 입을 뗐다. 그러고선 껌 두 개를 합쳐 거대한 풍선을 불었다. 뺨이 약간 상기된 마모리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뭐 하는 거야, 히루마 군?"

"팁 전수다. 껌을 크게 불려면 여러 개를 씹으면 그만이야."

"정말이지, 말로 하면 되잖아!"

"말로 하겠냐? 네가 성공하면 내가 내기에서 지는데? 아무튼, 네가 실패했으니 내 승리다."


다시 풍선을 터뜨려 없앤 히루마가 약올리듯 킬킬 웃어댔다. 마모리는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더 따져 묻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그 히루마 군이니까, 내기 자체를 뒤엎는 짓 정도는 할 거라고 예상했어야 했다. 대단히 불공평한 전제였지만 아무튼 두 사람에겐 이미 익숙해진 것이다.

입술을 조금 삐죽이던 마모리는 풍선껌 불기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자료로 눈을 돌렸다. 히루마 또한 노트북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노트북 자판을 몇 번 두드리다가, 지나가듯 묻는다.


"그래서. 내기에서 이기면 뭘 부탁할 속셈이었냐."

"음...... 별 건 아닌데."

"뭔데? 말해봐라."

"이 회의실 말이야. 엄밀히 말하면 미축부 전용은 아니니까, 다른 동아리한테도 빌려주자고 하려고 했어."

"허? 넌 미축부 매니저잖아. 미축부 생각이나 하라고."

"그건 그렇지만."


마모리는 자료에서 눈을 떼고 히루마를 바라보았다. 자석에 이끌리듯, 히루마 또한 마모리를 바라보았다. 아, 정말 오랜만에 보는 눈빛이 거기에 있었다. 고등학교 일학년 시절, 제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딴지를 걸고 맞서던 그 눈이다. 올곧고, 외면하지 않는 눈. 그 후 몇 년간 같은 팀으로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왔기에 잘 보지 못했던.


"우리가 이 회의실을 계속 쓰는 건 아니니까. 미축부가 안 쓸 때만이라도 제공하는 건 어때? 부실 자체가 없는 동아리도 많은데 미축부 편의만 봐준다고 불만의 목소리가 있는 걸로 알아. 평소에 히루마군이 일처리하는 방식은 알고 있지만, 굳이 반감 살 필요는 없잖아?"


그가 물들였어도, 아네자키 마모리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물든 만큼 그를 다루는 일에 더욱 능숙해졌다. 그 깨달음에 약간의 짜증스러움과, 그보다 더 진한 즐거움을 느끼며, 히루마는 몇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노동력이야 많을수록 좋다. 회의실을 빌려 주는 대가로 이런저런 걸 받아낼 수 있겠지. 가령 회의실 뒷정리라든가. 쓸데없이 책임감이 강한 이 녀석이 매번 뒷정리가 잘 되어 있는지 체크하느라 늦게 귀가하는 것을 히루마는 알고 있었다. 뒷정리 따위의 사소한 일로 수면부족 상태를 유발해서 명료한 두뇌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알았다. 검토해 보지."


그러면서 뭔가 꾸미는 듯 수상쩍게 웃는 히루마를 보며 마모리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굳이 따져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히루마 군."

"그나저나 내기에 이긴 건 난데 왜 네 부탁이나 들어주게 된 거냐?"

"뭐야, 히루마 군이 먼저 물어봤잖아!"


마모리의 항의를 히루마는 익숙하게 못 들은 척 했다. 정말이지, 언제나 이렇게 된다니까. 금세 체념한 마모리가 물었다.


"그래서 히루마 군 부탁은 뭔데? 또 한참 뒤에 말할 거면 안 들어줄 거야."

"안심해라, 빌어먹을 매니저. 지금 말할 거니까."


히루마의 말에 마모리가 약간 긴장했다. 그 모습을 보며 킬킬 웃은 히루마가 껌을 뱉어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미니 냉장고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왔다. 아까 마모리가 꾹 참았던 카리야 슈크림 상자였다.


"하나 먹어라."


상자를 보고 잠깐 흐물흐물 표정이 풀어졌던 마모리가, 히루마의 말에 얼른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요새 아침에 군것질 참고 있단 말이야. 당뇨 위험이 높아진다고."

"너 정도 활동량이면 이거 하나 먹는다고 큰일 안 나. 그리고 너 쿼터잖아. 동북아시아인 기준으로 한 조사 결과를 너한테 적용하면 안 되지."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 그리고! 이건 히루마군이 내게 하는 부탁이라기엔 이상한 걸?"

"내가 이걸로 한다는데 네가 왜 딴지거는 거냐? 빨리 먹기나 해라."


약간 짜증스러워하는 히루마의 표정을 보고 마모리는 머뭇거리며 상자를 잡았다가, 이내 활짝 열었다. 달달하고 사랑스러운 슈크림 냄새가 났다. 히루마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 이미 황홀한 표정이 된 마모리는 본능적으로 상자 안에서 가장 큰 슈크림을 집어들었다. 마모리가 슈크림을 꺼내자, 히루마가 잽싸게 상자를 닫아 단 냄새를 차단했다. 그러고서는 턱을 괴더니, 마모리가 슈크림을 음미하고, 입술에 묻은 크림까지 꼼꼼히 핥아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행복하게 입 안의 달고 부드러운 맛을 즐기면서도 마모리는 의아해했다. 히루마는 대체 왜 이런 부탁을 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히루마에게 득이라곤 되지 않는데. 그냥 마모리가 맛있는 슈크림을 먹고 기분이 좋아질 뿐. 그러나 더 생각하기도 전에 히루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먹었냐?"

"응!"

"입 안에 빌어먹을 크림 같은 게 남진 않았겠지."

"깨끗하게 다 먹었어."


그런 건 왜 묻는 거야, 라고 말하려고 입을 벌렸는데, 이번에는 당겨지는 게 아니라 그쪽에서 다가왔다. 준비할 시간이 있었기에 마모리는 일단 눈을 감았다. 불쑥 들어온 혀가 입 안을 핥았다. 입 안 가득 남은 단맛에 히루마의 어깨가 치를 떨듯 딱딱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싫어하면서 왜? 마모리는 몸을 뒤로 물려 입을 떼려고 했지만, 히루마가 뒤쫓아왔다. 그의 입에서는 쌉쌀한 커피와 화한 민트의 맛이 났다.

아, 알았다.

속으로 조금 웃고서, 마모리는 히루마의 혀를 빨아당겼다. 단 맛과 쓴 맛. 서로의 맛이 섞이고, 넘어가, 배어들었다. 익숙한 맛이다. 여전히 히루마이고, 마모리인, 두 사람의 맛.

머리가 멍해질 정도로 긴 키스가 끝나고, 겨우 입술이 떨어졌다. 약간 모자랐던 숨을 보충하느라 심호흡을 하는 마모리의 입술을 낼름 핥은 히루마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빌어먹게 역겨운 단맛 같으니."

"정말이지, 그럴 거면, 후우, 왜 먹으라고 했는데?"

"말했잖아."


얄밉게 히루마를 흘기는 마모리를 보며, 새 껌을 입에 문 히루마가 씨익 웃었다.


"알면서 몇 번이고 다시 묻지 마, 빌어먹을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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