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방언으로 말하기


원작: natsinator

번역: zebi


열람 등급:

  • Teen And Up Audiences(만 13세 이상 이용가)

주의 사항:

  • 주의 사항 없음

카테고리:

  • M/M(남/남)

관계성:

  • 오스카 폰 로이엔탈/양 웬리
  • 볼프강 미터마이어/오스카 폰 로이엔탈
  • 오스카 폰 로이엔탈 & 양 웬리

등장인물:

  • 양 웬리, 오스카 폰 로이엔탈, 볼프강 미터마이어,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슈타덴,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 프란츠 폰 마린도르프, 에른스트 폰 아이제나흐, 양 타이롱, 보리스 코네프, 에반젤린 미터마이어

추가 태그:

  • 대체 우주 - if 전개
  • 역할 교환
  • 비밀스러운 신원
  • 본편 이전 시점
  • 동물의 죽음
  • 대학(College)
  • 커버 아트
  • 은하제국 양 웬리(Imperial!Yang)
  • 대체 우주 - 역할 반전
  • 길이: 소설
  • 시리즈: 바퀴 안의 바퀴


요약:


뜬금없이 로이엔탈이 말했다. “너는 좀 더 야심을 가져야 해.” 그는 테이블 건너편에서 양을 바라보았다. “너에게 역사 외에도 관심사가 있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네게 더 호감을 가지게 될 테니.”

양은 찻잔을 들고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나도 야심이 있어.”

“흐음, 어떤 야심인데?”

양은 찻잔 뒤로 작은 미소를 숨겼다. “잘못된 종류.”

로이엔탈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양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로이엔탈이 그를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동안 조용히 바라보던 로이엔탈이 말했다. “나도 잘못된 종류의 야심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양은 고개를 들어 로이엔탈과 시선을 마주하지는 않았지만,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역할 반전 AU. 이 글은 장편으로 기획된 작품의 1부입니다. 이번 파트는 우주력 782~787년의 시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명백한 것 외에도, OVA 설정에 추가적으로 약간의 자유로운 설정을 가미했습니다. 등장인물 이름의 철자는 제가 원하는 대로입니다. 이 이야기는 로이양과 로이미터 지지자 모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동시에 만족시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니, 가능한 만큼 받아들이세요. 이 작품은 royalroad에 중복 게시되고 있습니다.]


노트: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 고린도전서 13:1




Chapter 1: 잘못된 관점에서 

텍스트 심문하기




우주력 782년 6월, 페잔 자치령


페잔에 있는 양 타이롱의 저택은 그다지 큰 편이 아니었지만, 상인이 여행 중에 얻은 섬세하고 값비싼 물건들로 천장부터 바닥까지 꽉 차 있었다. 그들이 행성에 머무는 동안 열다섯 살 난 아들이 침대 위에서 잘 공간조차 없을 정도였다.

양 웬리가 이 상황에 대해 물었을 때, 아버지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음과 비슷하게 말했다. “집이라는 건 말이야, 다  딸려 나오는 주민등록증 때문에 필요한 거란다. 잘 곳이 필요하다면 네 친구네 집에 가서 지내거라. 그 이름이 뭐더라, 코네프인가 하는 녀석 말이다……” 

양 타이롱이 페잔에 오래 머무르는 일은 드물었지만, 우주력 782년의 여름은 예외였다. 그는 유명한 페잔의 미술 수집가가 죽음의 문턱 앞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시체가 땅속에 묻히는 대로 수집품들은 경매에 부쳐질 예정이었다. 그런 중대한 사건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타이롱은 상선의 운항을 잠시 부하들에게 맡긴 채 아들과 함께 행성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땅 위에서 한 번에 며칠 이상씩 보내는 것은 양 웬리에게는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처음에는 아버지 상선의 복도가 아닌 다른 곳에 갈 수 있다는 이상하고도 낯선 자유에 난처함을 느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는 땅 위에 있을 때 그가 가장 좋아하는 활동이 그렇지 않을 때와 아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빈둥거리며 역사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이었다. 지상 생활에서 그가 유일하게 발견한 좋은 점은, 바깥에서 따스한 페잔의 태양 아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친구 보리스 코네프가 자신을 찾으러 왔을 때, 양 웬리는 바로 그렇게 공원의 나무에 기대어 책을 반쯤 읽다가 반쯤 졸다가 하는 중이었다.


“어이, 양.” 코네프가 말했다. “일어나.”


“네가 떠날 예정인 줄 알았는데.” 양은 중얼거리며 덥수룩한 검은 머리를 눈에서 쓸어내린 다음, 조금이라도 잠에서 깨어나려고 눈을 비볐다.


“그러고 싶었지.” 그는 두 팔을 벌리고 억울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양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럼 왜 여기 있는 건데?”


“사랑하는 엄마께서 나한테 올 여름에 아빠랑 우주를 탐험하기보다는 공부하는 데 집중하라고 명하셨거든.”


“그럼 할 거야?”


“내가 뭘 해?”


“집중하는 거?”


코네프가 웃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지금 널 괴롭히러 왔지.”


양은 그 말이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 좀 그냥 책이나 보면서 평화롭게 사는 단순한 사람이 되면 안 되는 거냐?”


“하. 안 되지.” 코네프는 나무 아래 양 옆자리에 앉았다. “나한테 천재적인 계획이 있다고.”


“내 기억에 네 천재적인 계획들은 죄다 우리 둘을 상당히 곤란하게 했던 것 같은데.”


코네프는 마치 양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마냥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리 엄마 말야, 널 마음에 들어하시지 않냐?” 

양은 어깨를 으쓱했다. 


“진짜 그렇거든. 그리고 네가 나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시지.”


“너희 엄마께서 나는 책을 읽는데 너는 문제를 일으키는 걸 보시니까 그런 거겠지. 내 생각에 그건 그런  의미가 아니라—”


“조용히 해봐.” 코네프가 말했다. “내 생각은 이래. 너랑 내가 공부로 맞붙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할 수만 있다면, 엄마는 학교에 대한 걱정은 덜고 내가 다시 아빠랑 일할 수 있게 해 주실 거라는 거지.”


양은 야구 모자를 얼굴 위로 덮어버리고, 눈을 감고 나무에 기댔다. “이거 내가 힘든 일 좀 해야 한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내가 심각하게 게으른 사람이란 거 몰라?”


“다음 주 토요일에 여섯 시간이면 돼. 놓치기도 쉽지 않을걸?”


양은 다시 앞으로 몸을 내밀고, 눈을 뜨고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금발머리 코네프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다음 주 토요일에 무슨 일이 있는데?”


“내가 찾을 수 있는 한, 우리 둘 다 신청할 수 있는 제일 공정하고 어려운 시험이 있었어.”


“무슨 짓을 한 거야?”


코네프는 뒷주머니에 손을 가져가 두 개의 편지봉투를 꺼냈다. 하나에는 코네프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다른 하나에는… 양은 코네프의 손에서 두 번째 봉투를 낚아챘다.


“행크 폰 리(Hank von Leigh)? 너 내 이름도 몰라?”


“뭐, 오딘 은하제국 사관학교에 지원하려면 양 웬리라는 이름으로는 절대 통과되지 못할 테니까.” 코네프는 여전히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름 최대한 비슷한 느낌을 주는 이름으로 고를 수밖에 없었다고.”


“안 해.” 양은 몸을 뒤로 젖히고 다시 눈을 감았다. “나한테 억지로 시킬 수는 없을걸.”


“왜 안 되는데?”


“토요일을 낭비하고 싶진 않거든.”


“그 때 네가 해야 될 더 나은 일이 뭐가 있냐?”


“이것저것 많이. 그리고 난 어떤 방식으로든 골덴바움 왕조와 관계를 맺고 그들을 정당화하고 싶지 않아.“ 양은 그렇게 말한 뒤 모자를 얼굴 위로 완전히 끌어내렸다.


“그 학교에 네가 꼭 다니거나 해야 되는 건 아냐.” 코네프가 말했다. “내가 널 이길 수 있게 시험만 봐 줬으면 하는 거라니까? 공부할 필요도 없어. 사실, 네가 공부 안 하면 나한테야 더 좋은 기회일 테니까 오히려 낫지.”


양은 친구를 무시했다.


“그리고 ‘골덴바움 왕조의 정당화’라는 얘기 말인데, 하이네센에서 태어났지만 그쪽은 제국 시민이시거든요, 형님? 페잔 주민등록증은 페잔 시민이라는 뜻이고, 페잔은 엄밀히 말하면 제국령이잖냐.”


“내가 선택한 건 아니었지.” 양은 말했다. “게다가 난 이 계획이 효과가 있을 거라고도 생각 안 해, 코네프. 너희 엄마께서 날 마음에 들어하시긴 하지만, 그 정도까진 아니거든. 여름 내내 학교 공부를 땡땡이치고서 6시간 동안 시험을 치를 수 있을 리도 없고 말이야.”


“넌 내 설득 능력에 대한 믿음이 하나도 없구나.“ 코네프가 말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실망한 표정을 지어냈다. 


“지금 나한테는 아무 효과도 없긴 해.”


“나 벌써 네 응시료도 냈다고.” 코네프가 말했다. “야, 재밌을 거야. 내가 장담하는데 너 분명히 역사 영역은 박살낼걸?”


“그럼 수학 영역은?” 양이 물었다. 그는 악명 높을 정도로 수학을 못 했는데, 그건 그의 교육에 있어 아버지의 걱정을 사는 점이었다. 어떻게 숫자도 똑바로 못 다루는 사람이 상선의 재정을 운영하길 바랄 수 있을까? 사실 양이 수학에 재능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의 지적 능력은 다른 과목을 할 때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단지 그는 수학에 대한 흥미가 너무 적어서 공부하는 데 전혀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뿐이었고, 결국 언제나 낙제할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야아, 네가 낮은 점수를 받을수록 비교돼서 오히려 내가 돋보일 거라고. 나 한 번만 도와주면 안 돼, 제발?”


“아직도 내가 왜 그래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양이 말했다. “우리 아버지 말씀처럼, 아무 이득도 안 되는 일에 힘을 낭비하지 않는 건 중요하거든.”


코네프는 눈알을 굴렸지만, 얼굴 위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는 양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봐봐, 잘하면 그게 너한테 이득이 될 수도 있지 않겠냐. 충분히 잘 해내면 결과를 아빠한테 보여드릴 수도 있을 거고. 어쩌면 너희 아빠는 네가 상인보다는 늙다리 먼지투성이 학자로 사는 게 더 낫다는 걸 깨닫게 되실지도 모르잖아.”


“그냥 우리가 부모님을 서로 바꾸는 게 낫겠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너한텐 공부를 안 해서 혼내는 분들이 계시고, 나한테는 내가 공부를 훨씬 덜 했으면 하는 아버지가 계시니까 말야.”


“가족을 고를 순 없잖냐, 그냥 같이 사는 수밖에.“ 코네프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래서, 하겠다는 거야?”


“얼마나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아, 금요일 밤에 우리 집에 묵으면 내가 너 제시간에 일어날 수 있게 해 줄게.”


“내 질문에 대답 안 했다.”


코네프는 그저 히죽 웃었다.



그리하여 그 다음 주 토요일에 양은 마지못해 페잔 주재 은하제국 대사관 소유의 건물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코네프와 함께 다른 소년들이 서 있는 긴 줄에 합류했다. 그들은 들어가서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코네프는 금발 머리와 대담한 외모로 다른 예비 생도들과 잘 어울렸지만, 양은 여느 예비 생도들과 닮은 구석이 전혀 없었고, 그래서 벽에 기댄 채로 가져온 책을 읽으며 극도로 어색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따분해하고 있는 직원에게로 한 번에 한 명씩 가서 접수하기 위해 말을 걸었다.


“성함이?” 사무원이 제국어로 물었다. 양은 제국인들은 페잔에 있더라도 여전히 그들의 모국어를 사용할 거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제국어로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의미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선견지명 부족이었지만,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는 제국어를 읽는 데 꽤 능숙했으니까.

 

“어, 행크 폰 리요.” 양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사무원은 그에게 재미있다는 눈길을 던졌지만, 이내 빠르게 시선을 거두고는 컴퓨터에 이름을 입력했다.


“주민등록증이나 그 외의 시민 증명서 있습니까?”


양은 주민등록증을 넘겨주었다. 주민등록증에는 다행히 그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고, 오직 주소와 아버지의 재산을 증명하는 숫자 코드만이 적혀 있었다. 페잔은 그들의 시민이 누구이건, 또 어디서 왔건 상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유일한 목적은 그들이 재산의 소유자가 되어 페잔 경제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침은 제국과 동맹이 페잔 시민권이라는 얄팍한 외피 아래에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물론, 이는 가진 재산이 없는 사람들은 비주체가 되어 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안전을 전혀 보장받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양은 이 시스템이 마음에 든 적이 전혀 없었지만, 지금은 사무원과 이 문제로 다투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사무원이 카드를 돌려주었다. “수험표요?”


양은 코네프가 준 봉투를 건네주었고, 사무원은 수험표에 펀치 기계로 구멍을 뚫은 뒤 양에게 시험 장소를 안내했다.


시험은 두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졌는데, 첫 번째 영역은 필기 시험으로 수학과 과학 문제 두 시간, 그리고 분석 두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필기 시험이 끝난 후 그들은 점심을 먹기 위해 쉰 다음, 돌아와서 마지막 두 시간의 실기 시험을 치를 예정이었다. 양은 ‘분석’이나 실기 시험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몰랐고, 수학과 과학 영역 시험을 열심히 치르는 동안에도 (실수로 그의 머리보다 훨씬 위에 있는 뭔가에 뛰어든 것처럼 느끼며) 막막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그리 심하게 긴장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첫 번째 영역의 시험 성적이 조금이라도 돋보일 일은 없을 것 같았고, 제국 사관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 때문이다.

수학을 싫어했지만, 양은 그 영역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는 코네프가 자신을 학교에서 벗어나기 위한 디딤돌로 이용하려고 한다면 (실패할 게 거의 확실한 음모였지만), 진짜로 그와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무튼, 가능한 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저가 울리고 엄청나게 골치를 앓게 했던 수학 영역을 제출한 다음 의문의 ‘분석’ 영역으로 바꾸면서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알고 보니 그것은 군사사 시험이었다. 그에게 제시된 것은 고대 지구에서 발생한 전투였는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 없이 그것을 ‘분석’해야만 했다. 제공된 문서는 방대한 양이었는데, 양은 그것을 자세히 조사하는 일이 약간 흥분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는 사소한 일이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고, 이야기의 조각들을 골라 하나하나 살펴본 다음 응집성 있는 전체로 재조립하는 느낌을 좋아했다.

양은 자신이 분석하고 있는 전투가 발생했던 더 광범위한 분쟁에 언뜻 익숙함을 느꼈다. 이 특정한 소규모 접전은 고대 역사 중에서도 제 1차 미국 남북전쟁이라고 알려진 사건에서 따온 것이었다. 세부적인 사항까지 공부한 건 아니었지만, 양은 이에 관한 책을 적어도 한 권 읽은 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핵전쟁 이전 최초의 근대적인 전쟁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는 그것이 연구 주제로서 꽤 인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양은 정치사를 더 선호했지, 군사사를 진지하게 파 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그의 배경 지식이 촘촘하지 않다는 것이 달가웠다. 그가 이용할 수 있는 거의 압도적인 양의 정보를 분류하기 시작했을 때 확실히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보고 있는 문서에는 전투가 진행된 경로의 지형과 군대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 동시대인이 쓴 실제 사건에 대한 설명(양은 승전국 측에서 찍은 것이라고 메모했다), 전장과 지휘관들의 사진, 병력 및 보급품에 대해 정리 및 분석한 표, 기상 관측 기록, 전쟁 전반에 대한 지식이 없는 학생들을 위한 약간의 배경 지식, 그리고 놀랍게도 양측 병사들이 보낸 많은 양의 편지와 일기장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이 문서들을 꼼꼼히 읽고, 메모를 적고, 펜을 얼굴에다 두들기는 데 정신이 팔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거의 깨닫지 못했다.

주변에서는 다른 응시자들이 미친 듯이 글을 쓰고 있었고, 양은 허공을 응시하며 자신이 수집한 모든 정보를 소화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시계를 본 양은 자신에게 주어진 2시간 중 절반 이상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즉시 ‘분석’에 들어가야 했다. 다시 메모를 읽어보는 동안, 몇 가지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선, 그는 “분석”이 뭘 의미하는지 결정해야 했다.  그저 전투가 그런 양상으로 진행된 이유를 쓰면 되는 걸까? 각 진영의 지휘관들의 생각은 어떠했는가? 결과를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을 다르게 해야 했는가? 각 진영에서는 어떠한 실책과 올바른 선택이 이루어졌는가? 아니면, 그 자신이 뭔가 다른 것을 생각해내야만 하는 것일까?

둘째로, 어쩌면 더욱 문제가 되는 점은, 그가 제공받은 1차 자료에서 몇 가지 불일치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지도와 대조했을 때, 지형 위에서의 병사들의 움직임이 묘사된 방식은 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문서에 따르면 이 전투의 최종 승자는 남부연합이었지만, 그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남부연합은 적은 병력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작전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주어진 설명에 의거하여 이 사건이 모든 면에서 매우 일반적인 정면충돌로 보인다는 점을 고려할 때, 양은 어떻게 이렇게 규모가 작고 준비가 덜 된 군대가 승리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양측 병사들의 개인 편지와 일기장에서 그다지 유용한 정보를 찾지 못했다–그것들은 그저 프로파간다처럼 보였다. 남부군이 이 교전에서 승리한 것은 그들의 군대가 대의에 더 헌신했기 때문이었으며... 북부연방 병사들은 어리석고 나약한 지도부에 분노했고, 패배감에 휩싸여 사기가 떨어져 있었다. 모든 것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잘못되어 있었다. 양은 좌절감에 휩싸여 뒤통수를 벅벅 문질렀다.


분석. 그것은 정말이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단어였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의자에 뒤로 기댔다. 이곳에서는 그가 짜맞추어야 하는 사실과 이야기들 외에 다른 뭔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고려해야 했다. 그리고 그가 하고 있는 일이란 여기에 앉아서 제국의 장교가 될 사람을 뽑는 시험에 응시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어떤 특정한 부류의 사람일 것이다. 이 시험의 출제자 역시 특정한 부류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 시험의 평가자 또한 특정한 부류의 사람일 것이다. 지금 양이 정해진 답을 말하기를 요구하고 있는 사람 말이다.

양은 자신이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프로파간다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실은 거의 그의 등골을 오싹하게 할 지경이었다. 제 1차 미국 남북전쟁은 인종우월주의를 둘러싸고 벌어지지 않았던가? 그것은 골덴바움 왕조의 건국에 이르기까지 손을 뻗친 인류 역사의 사악한 흐름이었다. 지금, 그가 목도한 것은 인종우월주의적 이상을 가진 세력이 순전히 의지의 힘으로 이론적으로 더 강한 적을 물리친 말도 안 되는 전투였다. 물론 실제로는 남부연합은 결국 전쟁에서 패배했다. 출제자들은 그들이 만들어낸 이 환상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그가 보기에, 그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이 (가짜)전투에 대한 그의 진짜 생각을 적거나, 아니면 그가 생각하기에 평가자들이 원하는 답을 적어내거나. 그는 마음을 정하고, 미소를 지은 뒤, 몸을 앞으로 숙이고 그에게 남은 짧은 시간 동안 종이에 글씨를 맹렬하게 휘갈기기 시작했다.


이제, 보시다시피 저는 이 시나리오에 대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분석을 제공해 드렸습니다. 저는 두 사령관이 어떤 사고관을 가졌기에 그러한 결정을 내렸을 가능성이 있는지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저는 전투의 흐름을 뒤흔들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탐색하고, 그러한 선택이 어떤 이득과 위험을 지닐 수 있는지에 대해 논했습니다. 

하지만 물론 맥레인 장군이 저의 조언을 따랐든, 따르지 않았든 간에, 연합군이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전투는 애초에 일어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공된 문서에 의거하여, 저는 상당한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립니다. 이 모든 시나리오는 완전히 짜맞춰진 것이라고 말입니다. 저는 미국 1차 남북전쟁의 모든 전투를 열거할 수 있을 정도로 고대 지구 역사에 정통하지 않습니다. 또한 찰스 강 전투가 실제로 일어났는지, 또는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에 제시된 기록은 실제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없는 일입니다. 

당신들은 기술적으로 우월한 군대가 순수한 신념을 딛고 승리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어떤 자를 찾아내려는 것입니까? 루돌프 폰 골덴바움의 이상을 진심을 다해 신봉하며, 승리가 불가능해 보이는 전투에서도 이기기를 꿈꾸며 무작정 돌진하는 장교를 얻고 싶으십니까?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합리화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장교를 찾고 싶으십니까? 이 속임수를 꿰뚫어보고 침묵하는 장교를 찾고 싶으십니까?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말하는 장교를 찾고 싶으십니까?


최소한 당신들 스스로가 믿을 만하다고 느끼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까?


글쎄요. 더 말씀드리고 싶지만, 당신들이 준 단서를 면밀히 조사해 골라내고, 당신들이 보고 싶어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을 쓰느라 저는 시간을 다 써버렸군요. 그래도 어려운 문제를 던져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시험장에서 풀려나자마자 양은 코네프와 만났다. 그곳에는 작은 마당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모여 앉아서 직접 가져왔거나 노점에서 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양은 후자에 속했고, 절망에 빠진 듯한 코네프에게 뭔가 말할 수 있게 되기 전에 피타 랩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코네프는 너무 침울한 나머지 다른 학생들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양은 그들을 무시하려고 애썼다.

"이 계획은 안 될 것 같아." 코네브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일에 끌어들여서 미안하다."

"괜찮아." 양은 샌드위치를 먹으며 웅얼거렸다. "수학은 네가 날 이겼을 거야."

"그래, 하지만 난 고대 지구 역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 코네브가 툴툴거렸다. "내 점수는 끔찍할 거야.”

"중요했던 건 역사가 아니라..." 양은 포기하고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어쩌면 실기에서 만회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코네프는 낙담한 듯했다. "그래, 맞아." 

제국식 복장을 한 사람이 종을 울려 모든 응시자를 다시 안으로 불러들이면서, 점심은 빨리 시작되었듯이 빨리 끝났다. 학생들은 약 스무 명씩 여러 그룹으로 나뉘었고, 필기시험을 치렀던 방과는 다른 방으로 안내되어 벽을 향해 줄을 서라는 지시를 받았다. 시험 감독관은 줄을 선 학생들 중 무작위로 두 명을 지목했다. "폰 하이어마르크와 폰 마르케, 각자 팀에 합류시킬 사람을 한 명씩 선택하고, 선택된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팀에 배정받을 때까지 줄을 따라 다음 사람을 선택하도록.”

지목된 두 학생들은 방 안을 훑어본 후, 줄을 따라서 팀을 선택하는 긴 과정을 시작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대부분 서로 아는 사이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은 아마  페잔 주재 제국 대사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혹은 주로 페잔과 제국을 오가며 무역을 하는 상인들의 아들일 것이었다. 양은 꿔다 놓은 자루처럼 눈에 띄었고, 코네프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코네프는 두 번째에서 마지막으로 뽑혔고, 양은 최대한 참을성 있는 표정을 지은 채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코네프가 자기 팀에 합류하기 위해 떠나며 양에게 미안하다는 듯이 반쯤 어깨를 으쓱하자, 양은 그를 최대한 불친절한 얼굴로 노려보며 마지못해 반대편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 실기 과제에 대한 지시 사항은 다음과 같다. 제군들은 책상에 앉아 가상 현실 헬멧을 착용하고,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듣게 될 것이다. 사용할 전략에 대해 팀원들과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은 20분이며, 그 후에 시뮬레이션이 시작될 것이다. 질문 있나?"

"팀으로 진행하는데 점수는 어떻게 매겨지나요?" 코네프는 모두가 궁금해하는 질문을 두려움 없이 던졌다. 어차피 탈락할 테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버리자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전문가들로 꾸려진 팀이 제군들의 성과를 총체적으로 판단하여 점수를 매길 것이다. 제군들의 계획 단계와 시뮬레이션 중의 행동들도 모두 포함이다."

"평가 기준같은 게 있나요, 아니면…?"

"코네프 군, 질문이 있다면 손을 들도록. 제군들의 의도적인 부정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시험에 대한 평가 기준은 제공되지 않는다. 다른 질문 있나?"

코네프는 이번에는 비아냥거리듯이 다시 손을 들었다. "우린 서로 대결하게 되나요?" 그는 움찔하는 양을 가리켰다.

"그렇다. 두 팀은 서로 맞붙게 될 것이다. 질문 더 있나?"

코네프의 질문은 동이 났다. 이윽고 교관은 헬멧이 놓인 책상을 가리켰고, 모두가 착석했다. 

양은 헬멧을 머리 위로 미끄러뜨리듯 썼다. 약간 큰 편이었던 헬멧은 그의 귓가에서 덜그덕거리며 외부 세계를 완전히 차단시켰다. 동기화하느라 잠시 시간이 걸렸고, 곧이어 디스플레이가 나타나 기계적인 목소리로 우주와 그 안의 함선들에 대한 도표와 함께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제공했다.

그는 청색 팀에 속해 적색 팀을 상대로 싸워야 했다. 주어진 상황은 일개 함대 규모에 못 미치는 함선들끼리 작은 행성을 놓고 싸우는 소규모 접전이었다. 이 쪽 팀의 목표는 함선을 행성에 착륙시키는 것이었고, 상대 팀의 목표는 추측하건대 이를 막아내는 것이었다. 극도로 단순한 상황이었다. 특히 '분석' 영역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복잡하게 느껴졌던 것과 비교하면 더더욱. 교전이 시작되는 시점에 적색 팀의 함선이 어디에 배치될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을 것이었다.

모든 배경 정보를 확인한 후, 헬멧은 양이 나머지 팀원들과 함께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는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누구도 먼저 말하고 싶지 않아 서로의 눈치를 보는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몇 초 후, 첫 번째로 선택받았던 폰 하이어마르크가 말을 꺼내며 스스로 리더가 되었다. "뭐, 이 정도는 간단해 보이는데."

양도 간단한 상황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전투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전적으로 상대 팀의 행동에 달려 있다고도 생각했다. 코네프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지만, 그는 다른 응시자들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그는 친구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사실에 조금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서 코네프를 위해 일부러 지는 것이 어떨까 잠시 생각하다가, 곧 그러지 않기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군대를 쪼갤 거야? 백 척의 함선이 있고, 각자 열 척씩 나눠 가졌는데." 폰 키어만이라는 이름표를 단 다른 소년이 말했다.

"중앙 지휘 하에 두는 게 더 나을 거야." 하이어마르크가 말했다.

키어만은 눈살을 찌푸렸다. "네 지휘 하에?"

하이어마르크는 어깨를 으쓱했다. "제일 처음으로 뽑힌 내가 책임자가 되어야지."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럼 어떻게 해야 말이 되는 건데?"

양은 두 사람의 힘겨루기하는 대화에는 관심을 끄고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그는 자신이 직접 지휘할 수 있는 열 척의 배만 있다면– 아니, 아예 없더라도– 누가 이 작전을 지휘하든 상관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은밀한 계획이 세워지고 있었다.

"그냥 정면 돌격하는 거 어때?" 양은 눈을 뜨고 다시 대화에 참여하여 물었다. "우리나 상대측이나 수적으로 비등할 게 분명한데."

"아니, 포위 공격을 해야지." 하이어마르크가 깔보듯 말했다. "대기를 등지게 한 다음 저쪽을 압박할 수 있다면,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하강하게 될 테니까. 그러면 우리한테 통제권이 넘어오게 될 거야."

양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하이어마르크는 갑자기 훨씬 방어적인 태도로 물었다. 

양은 여전히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부정적인 주목을 받는 것은 이상적이지 않았다. "왜 그들이 포위당하도록 허락할 거라고 생각해?"

"우리가 지면으로 내려가는 걸 막으려는 거지." 하이어마르크가 비꼬듯 인내심 있는 척 하며 말했다. "우리가 그들을 압박하면 그들이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방향은 행성으로 돌아가는 것뿐일 거야.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행성을 차지하도록 내버려둘 위험이 있으니까."

"그래, 하지만..." 양은 헬멧의 컴퓨터를 이용해 하이어마르크가 설명한 포위 공격을 도식화했다. "네가 함선들을 펼친 상태로 적들을 한데 모은다면, 상대측은 중앙을 관통한 다음, 네가 하강할 때 후방을 공격할 거야."

"하지만 그때쯤이면 우리는 하강하고 있지 않겠냐." 하이어마르크가 다시 잘난 체하는 어조로 말했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다른 사람들은 이미 그를 리더로 인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함선 한 척만 내려가도 우리가 이겨."

"상대측 함선을 포위하는 데 성공할지 확신할 수 없어." 양이 말했다. "상대측이 똑똑하다면, 저쪽도 네가 포위할 수 없을 정도로 넓게 퍼져 있을 거야."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의 중심을 뚫어버릴 거야."

양은 한숨을 쉬었다. "대등한 상황일 때, 적어도 초반에는 방어하는 측이 언제나 우위를 점하게 돼. 그리고 이 전투는 그 우위가 바뀔 만큼 충분히 오래 지속되지 않을 거야.”

"그럼 넌 대신 뭘 제안하려는 거지?"

"키어만은 우리가 각자 전투의 한 구역을 맡아 지휘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어. 그렇게 하는 게 어때?"

"어째서?"

"예비 계획을 세우고 싶어." 양이 말했다. "적은 수의 함선이 본 전투에서 벗어나 행성으로 내려가는 거지. 네 말대로, 그게 엄밀히 말하면 승리의 조건이니까."

하이어마르크는 잠시 침묵했다. "난 네 녀석을 믿지 않아."

"네가 날 믿든 말든 상관없어. 난 그저 우리가 이길 수 있게 하고 싶을 뿐이야."

"이 계획의 세부 사항을 모두 얘기해. 그럼 다른 사람이 그 일을 수행하게 하겠어."

"좋아." 양이 말했다. 그는 자기가 직접 계획을 실행하는 것보다는 일단 계획을 통과시키는 것이, 그리고 이상적으로는 승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결정했다. "함선 몇 척, 한 다섯 척 정도를 데려가야 해. 우리가 행성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을 때, 행성의 반대편에 상륙할 수 있는 궤도에 그 함선들을 배치하는 거야. 그 함선들은 주력 함대가 전투에 진입하는 동시에 궤도에 진입하는 속임수를 써서 행동이 드러나지 않게 한 다음, 모든 통신을 끊고 엔진을 꺼서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해야 해. 행성 반대편에 도착했을 때 거기에도 저지하려는 부대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 피해야 하고." 양은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만약 상대 팀을 이끌고 있다면, 이런 전략을 막기 위해 반대쪽에도 함선 몇 척을 배치했을 거야. 그러니 상륙 부대의 대부분을 한 척의 함선에 배치하고, 나머지 함선들은 방어에 전념해서 그 한 척이 상륙할 수 있게 한다면..." 그는 말을 멈췄다.

하이어마르크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현실에서는 그걸 승리라고 부를 수는 없을 텐데."

"만약 지금 이 전투가 현실이었다면?" 양이 물었다. "두 개의 작은 함대에, 지휘관도 없는 상황에서..." 그는 다시 어깨를 으쓱했다.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 행성에 상륙하는 거라고 한다면, 그렇게 될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는 게 낫겠지."

"그럼 그냥 다같이 찢어져서 모든 우주선을 무작위로 흩어 놓는 건 어때?" 키어만이 물었다. "우리 그냥 다같이 그렇게 하자."

"우리는 행성에서 꽤 멀리 떨어져서 출발하기 때문에, 만약 그렇게 한다면 상대측이 개별 함선을 조준사격할 수 있게 될 거야. 후방으로 몰래 침투하는 게 통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그들이 주요 교전을 주시하고 있을 거기 때문이고. 그러니 우리 역시 이기기 위해 노력해야 해. 만약을 대비해서." 양이 어설프게 덧붙였다.

"이 작전은 마음에 안 들어." 하이어마르크가 말했다. "우리가 이런 것에 대해 평가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우리는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평가받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양이 말했다. 그는 잠시 테이블을 둘러보며 은밀하게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우리 투표할까?"

"넌 뭐, 공화주의자라도 되냐?"

"우리는 동등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위원회야." 양이 말했다. "카이저께서 여기 계시다면 여쭤볼 수 있겠지만, 계시지 않으니까 그럴 수가 없네." 그는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지." 하이어마르크가 말했다. "우린 동등하지 않아."

양은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키어만이 한숨을 쉬었다. "좋아, 그냥 투표하자. 시간이 없다고. 다들 그의 계획에 찬성해?" 그는 손가락으로 양을 가리켰다. 두어 명이 소심하게 손을 들자, 동료들이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더 많은 사람이 손을 들었다. 양은 그의 손을 허공에 내밀어 슬쩍 과반수가 넘어가게 했다.

하이어마르크는 얼굴을 깊이 찡그렸다. "좋아. 키어만, 네 녀석이 그렇게 분리되길 원했으니까 직접 그 멍청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라고."

"함선 다섯 척은 포위망을 만들거나 해제하게 되지 않을 거야." 양이 말했다. "결국 그 함선들이 필요 없게 된대도, 넌 원하는 만큼의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될 거야."

양이 한 말은 분명히 잘못된 발언이었다. 하이어마르크가 그를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나머지 대원들은 이런 식으로 함선을 분할하게 될 거야."

양은 결국 포위 전술의 최후미에 위치하게 되었고, 그 위치는 모든 것이 흐지부지되지 않는 한 영광을 얻지 못할 게 분명한 자리였다. 그는 열 척의 작은 함선을 컴퓨터로 조종하며 조직을 정비하고 시뮬레이션에 '투입'될 준비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양과 하이어마르크 모두에게 불행하게도, 전투의 시작부터 두 사람의 계획은 거의 휴지 조각이 될 것처럼 보였다. 아직 행성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적의 전열을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키어만은 소규모 파견대를 이끌고 출발했고, 주력 함대는 행성을 향해 이동했다.

포위 공격이 실패할 것임은 거의 즉시 알 수 있었지만, 그들의 팀이 패배할 것 같지는 않았다. 상대 팀은 행성 표면 전체에 걸쳐 매우 얇게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양은 자신의 함대가 행성을 향해 다가가는데도 상대측이 꿈쩍도 하지 않자, 한숨과 함께 그들에게 동정심이 들었다.

"이봐, 우리 그냥 이대로 다같이 있는 게 낫겠어." 양이 무전기에 대고 중얼거렸습니다. "우린 어디든 뚫고 들어갈 수 있겠어. 상대 팀은 우리를 막을 만큼 병력을 모아 두지 않았어."

"이건 도대체 뭔 바보짓이지?" 하이어마르크는 큰 소리로 의아해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말하자 양은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코네프는 똑똑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바보 같은 계획이 종종 양을 곤경에 빠뜨리기는 했다), 양을 밀어주기 위해 자기 군대를 짓밟을 리는 없는 노릇이었다. "설마 속임수인가?" 양은 큰 소리로 궁금해했다. 

"네 콧대를 흙에다가 우아하게 처박을 속임수겠지." 하이어마르크가 말했다. 

뭐가 됐건 그들은 이제 전속력으로 행성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상대측 함대의 함선 몇 척이 변변찮게 저항하며 한두 척을 격추시켰지만, 양 함대의 주력 호위함들이 그들을 재빠르게 처리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속임수는 드러났다. 찰나의 시간 동안 행성의 대기가 끓는 듯이 보였다. 양은 함선들에게 최대한 빨리 발사 경로에서 벗어나라고 명령했다. 운 좋게도 그는 대열의 맨 뒤에 있었기 때문에 황급히 도망칠 수 있었지만, 행성의 주포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켜 나머지 함대의 대부분을 녹여 버렸다.

곧바로 양이 착용한 헬멧의 무전기는 다른 응시자들의 목소리로 포화 상태가 되었고, 자기 함선의 대부분 또는 전부가 날아갔다고 고함을 지르며 불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양은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행성 반대편으로 떠난 키어만의 파견대를 제외하면 한순간에 원래 머릿수의 약 30%로 줄어든 상태였다. 

"흩어져!" 혼돈 속에서 양이 소리쳤다. "저쪽이 다시 발포하기 전에 최대한 빨리 하강해!"

어쩌면 최선의 명령은 아니었을 것이다. 과연 누가 그의 말을 들을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모두가 한 데 모여서 제자리에 얼어붙은 채 또다시 격침당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 자신도 본인의  함선들에게 하강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비록 지상군의 포격을 다시 받았음에도 흩어지라는 그의 명령이 함선들을 충분히 구한 것 같았다. 양의 함선들이 행성 표면을 향해 실질적인 하강을 시작하기 무섭게, 헬멧이 완전히 암흑으로 변하면서 시뮬레이션이 종료되었다.

양은 앉은 채로 잠시 동안 동안 심호흡을 하며 어깨와 등에 바짝 들어갔던 예상치 못한 긴장을 이완시켰다. 이건 진짜가 아니었다. 괜찮았다. 승패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땀에 젖은 머리에서 헬멧을 벗겨내고 교실의 아수라장을 마주했다. 시험 감독관(자기 편에게 주포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을 포함해 모두가 승패와 상관없이 서로에게 고함을 질러대고 있는 것 같았다. 양은 거기에 끼어들기 싫었다. 그래서 그는 가능한 한 조용히 본 시험실을 빠져나와 밖으로 나갔다.

그가 코네프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불행히도 하이어마르크가 밖으로 나왔다.

"너," 하이어마르크가 양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뭐?" 양이 물었다.

"다 알고 있었지–"

"아니 난 몰랐어," 양이 항의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무의미했다. 하이어마르크가 이미 양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이 몸을 피하자 하이어마르크는 앞으로 비틀거리며 나아갔다. 하지만 하이어마르크의 다음 펀치는 양의 배로 정확히 제자리를 찾아갔고, 양은 공기가 빠져나가는 '우욱'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질 뻔한 순간 팔을 휘저어 몸을 일으켰다. 양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이제 나머지 응시자들이 건물을 빠져나오고 있었고, 마찬가지였던 코네프는 불그죽죽한 얼굴의 하이어마르크 앞에 와서 섰다. 

"너네가 이겼어." 코네프가 가볍게 말했다. "근데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모르겠네. 그래도 화 내니까 좆나게 멍청해 보이긴 한다, 너."

하이어마르크는 코네프의 체격을 가늠하며 얼굴을 찡그리고는, 코네프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코네프는 평균적인 15세보다 몇 인치 정도는 키가 컸고, 하이어마르크는 건장하다기보단 차라리 살집이 많은 체격에 가까웠다.

"자, 가자, 폰 리." 코네프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나를 정정당당하게 이겼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 엄마가 기뻐하실 거다."

양은 주먹을 맞아서 아직도 약간 숨이 가쁜 채로 고개를 끄덕였고, 구경하고 있는 다른 응시자들에게 작별 인사로 어깨를 으쓱한 다음, 코네프를 따라 거리로 나갔다.



작가 노트:

챕터 1을 재미있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본질적으로 “양이 재미로 APUSH를 보다.” 라는 내용이죠.

제목은 옛날 옛적의 fanwank에 대한 레퍼런스이기도 하지만, 제가 전 우주에서 가장 자만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실 이 챕터 전체가 그것에 대한 얘기입니다. 텍스트에 대한 심문. 이 얘기는 정말 많이 언급되죠. 우리는 유사 이래 인간에게 알려지지 않은 수준의 허세를 부리고 있습니다.

초고를 읽어주신 리디아에게 감사드립니다.

아, 그리고 혹시 심심하시면 여기서 제 창작 스페이스 오페라도 읽어보세요. bit.ly/shadowofheaven



번역자 메모:

⬆️⬆️⬆️이번 챕터 원작 링크입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꼭!!! 원작 링크 맨 밑에 있는 "Kudos❤️" 버튼을 눌러주세요!


본편보다 작가님 메모 번역하기가 더 어렵네요!!!! 도움!!!!!!! 🥹

1부의 원제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방언’이라는 두 글자로 번역되는 종교적 용어입니다. 그러나 1부의 다른 버전인 1.5부와의 대칭성을 살리고자 ‘방언으로 말하기’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은영전 팬에게 있어 이 팬픽의 가장 큰 묘미는 단연코 ‘은영전 원작과 다른 듯 비슷한 전개 찾기’일 겁니다. 예를 들어 양 웬리가 이번 화의 모의 전투 시험에서 사용한 작전은 원작에서 그가 엘 파실 전투에서 민간인들을 구출했던 방법과 아주 비슷하죠. 원작에서는 엘 파실의 영웅이라는 별칭을 얻지만, 여기서는 주먹을 얻어맞게 됐군요. 물론 이것만 얻은 건 아닙니다. 양 웬리가 이 작은 승리를 통해 무엇을 얻게 되는지는 다음 챕터를 통해 확인하세요! ^_^


+) 01/26 추가

챕터 1의 원제 <Interrogating the Text from the Wrong Perspective>는, 실제로 있었던 한 유명한 사건에서 비롯된 표현입니다. 2004년, 작가 Anne Rice는 자신의 작품을 비판하는 독자들에 대한 답변을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Anne Rice는 작품에 대한 비판을 '부정적인 목소리'라고 일축했으며, 이때 답변에서 발췌되어 유명해진 표현이 바로 '잘못된 관점에서 텍스트를 심문한다'입니다. 이 표현은 오히려 Fandom Wank Post 등의 활발한 독자 토론을 낳았으며, 독자들에게 텍스트를 다양한 관점에서 자유롭게 읽을 권리를 일깨워주는 상징적인 밈으로 남아 있습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아래를 참고해 주세요:


오타쿠 평생교육원에 감금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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