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력묘사가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상과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4. 깊은 밤의 미식회



여기는 어디지? 아파, 정신 놓으면 안 되는데. 형호야. 민규야. 우림아. 너무 아파. 날 꺼내 줘


“벌써 기절하면 곤란한데.”

“깨우면 되지.”

“근데 진짜 향 좋다. 한 입만 먹으면 안 되나.”

“마담한테 죽고 싶으면 먹어. 아직 마담도 입에 안 댔대.”

“쳇, 뭐 나야 재미보고 좋은데 향 진짜 미치겠다. 내가 먹어본 피 중에 최상급일 것 같은데, 인간 맞나?”


쇠사슬에 묶여 매달린 두훈의 등은 이미 너덜너덜 해져있었고, 손톱들은 원래 자리에서 벗어나 바닥에 나뒹굴었다. 정신을 놓을라 치면 얼굴을 물에 집어넣거나 손가락을 하나씩 반대로 꺾었기에 강제로 정신 차릴 수밖에 없었다. 두훈을 데려온 여자는 수하들에게 ‘맛있는 모습으로 만들라’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비웠다. 

가학 행동으로 재미를 느끼는 저급한 뱀파이어들은 두훈이 비명을 지르고 괴로워할 때마다 더 즐거워했다. 두훈이 4번째 기절을 하고 깨어났을 때, 그 여자, ‘마담’이 지하실로 들어왔다. 고개를 가눌 힘조차 없는 두훈의 턱을 들고 이리저리 감상한 마담은 흡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귀여워라. 더 맛있어졌네.”

“….”

“손님이 도착했다. 이제 식탁 위에 올려야겠어. 데려와.”


두 하급 뱀파이어에 들려 질질 끌려온 곳은 우아하고 커다란 샹들리에가 걸려있는 대 만찬실이었다. 그곳엔 10명쯤 되는 고상한 옷차림의 뱀파이어들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가운데에 위치한 무대엔 화려한 의자 하나가 조명을 받으며 있었다. 하급 뱀파이어들은 두훈을 무대 위 의자에 앉히고 두훈의 턱을 억세게 잡아 강제로 정면을 보게 했다. 두훈이 힘 없이 바라본 곳엔 얼굴에 분노가 가득한 동생, 형호가 서있었다.


“… 형, 형호야….”

“…”

“여, 여기서, 나가….”


더듬더듬 형호에게 나가라고 이야기 함과 동시에 거센 손길이 두훈의 뺨에 닿았다. 뱀파이어의 힘에 두훈은 저절로 고개가 돌아가고 입 안이 터져 피를 가득 머금었다. 두훈이 피를 흘릴 때마다 주변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향기로운 꽃 향기가 가득한 피는 미식회 뱀파이어들을 설레게 했다. 마담은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무대로 향했다.


“미식회 회원 여러분, 아름다운 밤입니다. 오늘 제가 가져온 먹잇감은 향기만으로도 여러분을 설레게 할 최고의 상품입니다. 이 상품을 협찬해준 무대 앞 쪽 잘생긴 신사분께 박수드릴까요?”


뱀파이어들은 형호를 향해 박수와 휘파람을 불며 조롱했다. 최상급의 피를 독점했던 형호를 향한 시기, 질투, 그리고 지금 무모하게 두훈을 되찾으러 혼자 온 행동을 향한 비웃음. 이 모든 것이 합쳐져 형호를 공격했다. 형호는 이를 너무 꽉 깨물어 턱이 아플 정도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 초대와 환호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을 위해 제가 맛 좋은 먹잇감을 하나 더 챙겨 왔으니, 애피타이저로 즐기시고 본식은 천천히 드시는 게 어떨까요?”


형호는 말을 꺼냄과 동시에 얼굴을 두건으로 가린 인간 하나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덩치가 큰 남성은 손이 묶여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얌전히 바닥에 누워있을 뿐이었다. 주변 뱀파이어들은 형호가 데려온 인간 남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제빵사인 듯 빵 냄새가 나는 남성은 신선하고 맛 좋아 보였다. 형호의 말 그대로 애피타이저로 손색이 없었다.

마담은 무대에서 내려와 형호가 데려온 인간 남자 머리에 씌워져 있던 두건을 벗겼다. 두려움에 가득한 표정으로 눈을 굴리는 남자는 눈물점이 매력적인 준수하고 귀여운 젊은 남자였다. 얼굴뿐만 아니라 몸에서 은은하게 나는 빵 냄새는 남자의 매력을 한층 더 높여주었다. 마담은 젊은 남자가 취향에 꼭 맞는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긍정의 고갯짓을 했다.


“그쪽, 정말 안목이 좋네요. 우리 미식회에 정식으로 들어올 생각 없나요?”

“… 글쎄요.”

“혼자만 즐기면 무슨 재미일까요. 다 같이 즐기면서 이야기도 나누는 거지. 생각 있으면 말해요. 문은 언제나 열려있으니.”

“… 호의 감사합니다.”


마담은 젊은 남자를 수하들에게 넘기고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갔다. 형호의 눈은 수하들에게 끌려간 젊은 남자에게 향했다. 형호는 조용히 눈으로 신호를 줬다. ‘기다려.’ 젊은 남자, 우림은 그 눈짓에 다시 서늘한 표정을 지우고 두려운 얼굴을 연기 했다. 마담과 다른 뱀파이어의 정신은 무대 위로 향했기에 아무도 그 둘의 신호를 보지 못했다.

마담은 다시 두훈에게 향했다. 취향의 애피타이저 감이 있었지만,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저건 더 묵혀 먹을 것이다. 지금은 다 익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는 두훈이 먼저였다. 마담은 날카로운 칼을 우아하게 들어 두훈의 손목에 댔다. 형호가 움찔거리는 모습에 마담은 더 즐거워졌다. 우아하지만 단호한 손짓에 두훈의 손목엔 깊은 상처가 났다. 잘린 혈관으로 피가 빠져나가는 서늘한 감각에 두훈은 살짝 몸서리쳤다. 상처를 따라 흐르는 피는 어떤 향수보다 향기로운 향을 내뿜었다. 주변에 있던 모든 뱀파이어들은 탄식을 하며 저 향기로운 피를 탐하고 싶어 했다. 두훈의 피는 아름다운 와인잔에 가득 담겼다.


“아름다운 밤을 위하여!”


마담이 와인잔을 높이 들고 외쳤다. 그리고,


“고우림!”


형호의 외침에 웅크리고 있던 늑대인간이 깨어났다. 전쟁의 시작이었다.


*


늑대인간의 발톱과 손톱은 뱀파이어들에게 자비가 없었다. 갑작스러운 늑대인간의 공격에 방심하고 있던 뱀파이어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이미 절반이 우림의 공격에 의해 재가 되었다. 혼비백산한 상황에서 마담은 수하들 뒤로 숨어 두훈을 감싸 안았다. 이것만큼은 빼앗길 수 없다. 마담은 자신의 날카로운 이를 잔뜩 세워 두훈의 목에 박아 넣으려 했다. 그 순간 날카로운 칼이 마담의 얼굴 바로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멈칫한 사이 빠르게 다가온 형호가 마담의 얼굴을 잡고 벽에 박아버렸다.


“그 잘난 입 못 놀리니까 어때?”

“크윽…!”


마담이 충격으로 잠시 주춤한 사이 형호가 마담의 심장을 향해 빠르게 손을 뻗었다. 마담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형호를 막았으나 이미 늦었다. 형호는 자비 없이 방심한 마담의 심장을 뽑아 바닥에 내팽개쳤다. 마담은 자신의 심장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새빨간 심장은 수하들을 정리하고 온 우림의 커다란 발아래서 터져 사라졌다. 그대로 마담은 허무하게 한낱 재가 되어 바람에 사라졌다. 

나머지 조무래기 뱀파이어와 목숨을 건진 미식회의 뱀파이어들은 허겁지겁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서둘러 건물 바깥으로 사라졌다. 재와 피로 가득한 무대 위 조명은 형호와 우림을 은은하게 비쳐주었다. 숨을 고를 새도 없이 형호는 두훈에게 달려가 상태를 확인했다. 많은 고문으로 인해 이미 만신창이였던 두훈은 손목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피로 인해 결국 기절한 상태였다. 형호는 자신의 옷을 찢어 다급히 지혈을 진행했지만,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점점 차가워지는 몸을 데우기 위해 우림은 두훈을 꼭 끌어안았다.


“형님 제발, 제발….”

“형호 형 빨리 가요!”


엉망진창인 대 만찬실을 뒤로하고 형호와 우림은 다급하게 길을 달렸다.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은 누가 보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본 모습으로 내달렸다. 큰 소리와 함께 열린 문은 결국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졌으나 둘은 신경 쓰지 못했다. 집 안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있던 민규는 갑작스럽게 쳐들어온 피투성이의 형호와 커다란 늑대인간에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아!”

“시끄러워. 두훈 형님 수혈해야 하니까 냉장고에서 피 꺼내와.”

“저, 늑, 늑대야? 뭐야 저거?”

“민규 형, 저 우림인데요.”

“으아아아! 말도 한다!”

“하, 조민규 방해되니까 꺼져.”

“이게 뭔데!”


우림은 자신을 보면서 소리 지르는 민규를 뒤로 한 채 두훈을 침대에 옮겼다. 침대는 두훈의 상처 난 등으로 인해 붉게 물들었다. 지혈을 위해 손목에 감아두었던 옷가지 역시 축축하게 피로 젖어 제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 우림이는 붕대를 찾아 다시 응급처치를 했지만 금 간 벽에 반창고를 붙이는 격이었다. 

점점 안색이 나빠지는 두훈을 보며 형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정말 전화하고 싶지 않았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안되었다. 다급히 통화를 마친 형호는 입술만 물어뜯은 채 초조하게 창밖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잠시 후 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가 소란스럽게 들려왔다. 

트위터: @i_am_mushroom

백색가루버섯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