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창가에 비꽃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시원스레 실비가 땅을 적시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던 아침 하늘에 속아 우산을 안가지고 온 학생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비를 피하며 하교를 서둘렀다.

제갈량은 습관처럼 보는 아침 방송에서 기상 캐스터가 오늘 비올 확률이 70%라고 얘기했을 때, ‘그렇다면 비는 안 오겠군.’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방 한 구석에 우산을 챙기길 잘했다고 뿌듯해했다.

우산을 안 챙겨왔을 것이 분명한 서서에게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동아리 방에 지난번에 집에 안 가져갔던 우산이 남아있다며, 자신은 그 우산을 찾아서 쓰고 갈 테니 같은 방향까지만 같이 가자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왜인지 서서가 동아리 방에 들렀다 나오면 유비와 함께 나올 것 같다고 느껴져서, 서서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냥 혼자 집에 먼저 가겠다며 정문을 나섰다.

사실 제갈량은 오전에 유비가 잘못 전달―제갈량의 입장에서―한 서서의 운동장 사건 때문에 사마의를 찾아가서 따져 물을 뻔 했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 전에 서서를 만나, 자신이 운동장을 돈 것은 동아리 활동의 일부였을 뿐 기합이나 벌칙 같은 것이 절대 아니었다는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하마터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 큰 실례를 할 뻔 했다며, 제갈량은 앞으로 바보인 유비와 절대 엮이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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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반찬으로 소시지나 하나 사서 들어가야겠다며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골목길에서 작은 동물이 낑낑거리는 듯 한 소리와 곤란해 하는 듯 한 사람의 낮은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얼핏 골목 안쪽을 보니, 이제는 저 멀리서도 알아보고 피해갈 것 같은 유비의 초록 조끼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무시하자, 무시!”

가던 길을 계속 가려던 제갈량을 붙잡은 건, 자신을 부르는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은 유비의 목소리였다.


“제갈량……”

“부르지 마세요! 제 이름!”


제갈량은 앞으로 두 번 다시 자신을 찾아오지 말라며 한 마디 더 쏘아줄 생각에 유비 쪽으로 성큼 다가갔다. 유비의 앞에는 누군가 버리고 간 듯이 보이는 작은 강아지 두 마리가 들어있는 상자가 놓여있었고, 유비는 제 우산을 강아지가 들어 있는 상자 위에 씌워주고 자신은 그 비를 오롯이 다 맞고 있었다. 순간 제갈량의 눈에는 비에 젖은 강아지가 유비를 포함하여 세 마리로 보였다.


“지금 뭐하고 계십니까?”

“제갈량…―, 강아지들이 비에 젖었어― 이대로 여기에 두고 가면 분명 죽을 거야….”

“그 쪽, 아니, 선배………님…도 비에 젖으셨고, 이대로 여기 있다가는 분명 감기에 걸릴 겁니다. 그렇게 걱정되시면 집으로 데리고 가면 되지 않습니까?”


서서랑 같은 동아리만 아니면, 선배 취급도 안했을 텐데… 제갈량은 내년엔 꼭 서서를 그 동아리에서 탈퇴시켜야겠다고 단단히 각오를 다졌다.


“그치만 우리 집은 주인아주머니께서 강아지 털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못 데리고 가…”


여전히 비는 그칠 생각이 없어 보였고, 눈앞에 바보는 제 온몸에서 비가 떨어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다리를 쭈그리고 앉아 강아지들만 애처롭게 바라보며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쩌지…”

“하아―”

신경을 끄고 돌아가고 싶은데, 그러다 저 바보가 서서에게 도움이라도 청하면 착한 서서는 거절도 못하고, 저 강아지들을 어디에 맡겨야할지 방법도 못 찾다가 둘이 같이 밤새 빗속에서 고민만 할 것이 눈에 뻔히 보였다.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어? 정말?!!”

“그 대신!! 저는 무술 동아리에 들어갈 생각이 없으니, 앞으로 동아리 얘기는 꺼내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강아지들은 임시보호로 맡아 드리는 것이니, 책임지고 끝까지 키울 가족도 찾아주셔야 합니다.”

“응응! 내가 꼭 강아지들 키워줄 가족을 찾아볼게! 그리고… 동아리 얘기도…… 하지 않을게―.”


유비의 표정이 생기가 돌다가 시무룩해졌다가 다양하게 변하는 것과 반대로 제갈량은 자신이 지금 올바른 결정을 내린 것인지 고민에 빠진 표정이었다. 그러나 일단 유비 본인의 입으로 동아리 얘기는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유비로부터 강아지들을 건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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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오니 강아지들이 들어있는 상자는 자신이 옮겨주겠다는 유비의 선의를 단칼에 거절한 제갈량은 어깨와 머리 사이에 우산을 끼고, 두 손으로 상자를 들고 힘겹게 집에 도착하였다. 우산을 쓴 소용은 없었는지 비에 흠뻑 젖은 채 들어왔지만, 자신보다 강아지들의 털부터 말려주고, 담요를 가지고 와서 덮어준 뒤에야 자신도 씻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제야 화장실로 들어갔다.

간단히 샤워를 하면서도 강아지 생각뿐이어서, 조금 큰 아이를 ‘강아지 1호’, 그보다 살짝 작은 아이를 ‘강아지 2호’라고 부르기로 하고, 비가 많이 오니 오늘은 일단 편의점에서 간단히 먹을 것을 사다 먹이기로 결정하였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밖으로 나오는데 ‘딩동―’, 초인종이 맑은 소리를 내며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뭐지? 택배인가?”


‘누구세요―’라고 묻기는 했지만 상대방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문을 열어보았고 문 밖에는 사람 대신, 흡사 쌀자루 같은 것이 들어있는 커다란 비닐봉투가 놓여있었다.


“이게 뭐야…”


비 한 방울 들어가지 못하도록 꽁꽁 잘 매어놓은 비닐봉투 안에는 강아지 사료가 한 포대 들어있었다. 비닐봉투는 모두 젖었지만, 묶은 사람이 워낙 신경을 써서 잘 묶은 덕분에 사료에는 물이 한 방울도 묻어있지 않았다.

그리고 포스트잇도 하나 붙어있었는데,


「강아지들 맡아준다고 해줘서 고마워, 제갈량.

그리고 동아리 얘기는 안 꺼내기로 했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얘기할게.

속담에 나무도 세 번 찍어야 한다고 했으니까!

제갈량! 우리 동아리에 들어와줘!

미안, 앞으로는 절대 얘기하지 않을게. ―유비

추신: 집 주소는 서서에게 물어봤어. 내가 알려달라고 고집부린 거니까 서서에게는 아무 말하지 말아줘. 

진짜 미안.」


글씨도 주인을 닮아서인지 잘 못쓰고 삐뚤어지는 것을 간신히 힘으로 제자리에 갖다 놓은 듯, 꾹꾹 눌러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포스트잇에 뭐라고 써야할지 고민했을 모습과 서서에게 주소 좀 알려달라며 사정했을 모습, 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우산도 못쓰고 끙끙거리며 사료를 옮겼을 모습, 자신의 집 벨을 누르고 황급히 도망가는 모습 등이 보지 않았어도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아서, 제갈량은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바보인가…? 아니, 바보인줄은 알고 있었지만 정도가 있지…, 그리고 대체 이 속담이란 건 뭐야?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뭐, 그런 말이 하고 싶은 건가?!”


제갈량은 직접 들어보니 꽤나 묵직한 사료 포대를 집 안으로 옮기며, 이 빗속에서 이런걸 잘도 가지고 왔다고 다시 한 번 속으로 감탄했다.

물과 함께 강아지들 앞에 사료를 놓아주고, 가만히 포스트잇과 강아지 두 마리를 번갈아 보며 ‘유비’라는 글자를 다시 되뇌던 제갈량은 조금 큰 아이를 ‘관우’, 그보다 살짝 작은 아이를 ‘장비’라고 부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입술 사이로 비죽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서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서―, 나 그 무술 동아리 가입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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