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어둠 속에서 종인은,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를 눈 뜨고도 한참을 고민했다. 제 몸을 엮은 하얀 실 때문이었다. 아니, 실이 아닌가. 오히려 단단하게 죄어오는 것이 빳빳한 밧줄보다도 더하고, 그보다는 부드러우면서도 또 높은 점성을 가진 느낌이었다. 제 몸에 착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보면 그러했다. 제 몸을 얽고 있는 그 끈들이 무엇인지 한참을 내려 보던 종인은, 뿌연 시야 사이로 하얗기만 하던 것이 어느새 투명해졌다가, 반투명해지며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다. 끈이 아닌가. 한참을 내려다보며 생각해도 알 수가 없어 종인은 고개를 들었다. 제 몸을 죄고 있는 그 줄이 양옆으로도 길게 이어져 있는 것 같아 유심히 보았다. 제 어린 동생이 가지고 놀던 실이 얼기설기 엉켜있는 꼴과 닮아있었다. 그래, 그것은.

 

“거미줄이야.”

목소리가 들렸다.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은. 익숙한 것 같지만, 익숙하지만은 않은. 그런 목소리였다. 종인은 방향이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제 앞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검은 어둠 속에서 제 몸을 감싸던 끈들이 그러하듯, 흰 피부의 얼굴 위로 빛이 뿌옇게 흐렸다. 날카로운 얼굴 위로 안개 같은 빛이 부서졌다. 종인은 컴컴한 사방에서 갑자기 뜬금없이 나타난 빛 같은 그 존재에 눈을 꿈뻑였다. 저 얼굴에 홀린 걸까.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얼굴은 하얗고. 날카롭고. 차갑고. 무서운데, 예뻤다. 아니, 아름다웠다. 남자인데, 여자였다. 그일까, 그녀일까. 사람이 맞을까.

 

종인은 그저 검은 머리칼과 대조되는 흰 피부가 눈이 부셨다. 그의 미모를 감상하다보니 자각이 되지 않았다. 그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멍청한 스스로를 인지하고 나서야, 제 몸을 감싸는 게 ‘거미줄’이라는 그의 말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거미줄이요?”

종인은 놀라지도 않고. 담담히 물었다. 놀라지 않은 건지, 인지가 되지 않는 건지. 무덤덤하다. 그 앞의 남자는 그렇다는 듯, 예쁜 눈을 감았다 떴다. 꽤 거리가 있는 듯하면서도 가까워 보이는 남자. 그 눈동자색은, 검고도 붉었다. 종인은 멍하니 그 눈을 바라보다 같이 제 눈을 깜빡였다.

그러니까, 이게. 거미줄이라는 거지. 내가 지금, 거미줄에 묶여있다는 거지. 종인이 그제야 제 주변을 둘러보며 거미줄에 걸린 나비꼴을 하고 있는 제 모습을 제대로 인지했다. 사람인 저가 거미줄에 걸려있다.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이다. 이게 가능한 것일까. 종인은 감이 오지 않았다.

 

“제가 왜 여기 있죠?”

자연스럽게 물음이 튀어나왔다. 제 앞의 남자는 미동도 없이 눈을 또 감았다 떴다. 길쭉한 눈매가 시원스러운 게 마냥 동양적이지만은 않았다. 그의 눈을 보고서 종인은 제가 들은 게 한국어가 맞는지 생각하기까지 갔다. 이상한 상황이었다.

 

“거미의 한을 사서 잡혀온 거야.”

“거미요?”

거미의 한을? 내가? 종인은 점점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뒤이어 오는 남자의 말은 더더욱 알 길이 없었다.

 

“거미줄을 헤친 적이 있지. 너의 가족들도, 친구도. 똑같은 짓을 해서 죽었는데 말이야.”

거미줄. 종인은 그제야 저의 동창이었던 재혁의 장례식이 생각났다. 담배를 피우러 나온 친구들을 따라 나갔다가, 어두운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는 것에 혼자 몰래 건물 뒤편으로 나아갔었다. 이제야 곧 취준생이 될 저에게는 낯설기만 한 검은 정장과 딱 맞는 구두가 답답해 축축해진 바닥을 긁어대며 돌멩이를 발로 차고. 사실은 이 정장을 입는 것이 처음만은 아니라고. 그러네, 하며.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축축한 가을비가 떨어지는 하늘을 바라보던 참이었다. 불편한 주머니에 손을 꽂고 컴컴한 하늘의 뿌옇고 희미하게 보이는 먹구름들을 멍하니, 의미 없이 세어보는데. 눈앞에서 허연 게 나풀거리는 것이, 제 앞에 끊어진 거미줄이 달랑이고 있었다. 종인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 얼굴을 간지럽히는 그것에 괜히 신경질이 돋아 제 오른손을 들어 휘휘 저었다. 끊어져 가볍게 나풀거리며 떨어질 것이라 생각한 것이 어느새 끈적하게 종인의 손에 달라붙었다. 풀리지 않은 눈썹 위 짙게 진 인상을 들고서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씻어내었는데. 그날의 화장실 거울도 유독 뿌옇게 흐렸는데.

 

그러고 보니 제 오른손에 유독 거미줄이 칭칭 감겨있었다. 아주 조금이지만, 손가락 몇 개 까딱일 수 있는 왼손과는 다르게. 빳빳하고 아주 옥죄게. 그것을 인지하고 나서야 종인은, 뿌옇게 흐린 하늘의 비 아래. 그 장례식. 그때인가. 생각을 했다. 남자는 또 맞다는 듯이, 대답해오듯이 눈을 깜빡였다. 아니, 맞다는 대답을 위해 깜빡인 것인지 아니면 무언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그저, 뿌옇게 흐리는 빛이 하얀 남자의 얼굴 위로 드리워지는 게 그 화장실의 거울마냥 희었다.

 

“주변에서 일어난 단순한 교통사고, 단순한 화재. 계속해서 눈앞에 나타나는 거미줄. 모두 우연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너는, 거미와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몰랐겠지만. 날카로운 얼굴이 눈썹을 들었다 내렸다. 무신경한 얼굴에 그제야 감정이라는 게 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감정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귀찮음? 하찮음? 그것도 아니면 동정?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기에 종인은 알 길이 없었다. 그저 뿌연 시야 속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그 얼굴은. 그가 뿜는 뿌연 빛을 눈에 담으며 종인은, 문득 제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가던 질문을 뱉었다.

 

그럼 나는, 왜, 죽지 않죠.

죽고 싶었다.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죽음을 바라던 생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화재로 가족을 잃었고, 친구라는 이름으로 함께 다니던 이들은 모두 사고를 당했다. 그 생에, 그 비참한 시간 속에, 유일하게 제 주변에 남아있던 것은, 허름한 벽에 붙은 징그러운 거미 몇 마리뿐이었다. 외롭고, 더럽고, 끔찍했다.

그렇기에 남자의 말을 듣자마자 어쩌면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거미의 한을 산 주변 사람들처럼, 저도 곧 죽을 수 있는 걸까 괜한 기대가 들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그렇지 않다는 듯 저를 꽉 죄어오는 거미줄은, 어느새 힘이 더 들어가 있었다. 넌 아직 살아있다는 듯. 통증으로 변한 그 감각이 여즉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듯. 아프게. 더 팽팽해진 것 같은 그것을 바라보다, 종인은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나의 청을 들어줬으면 해.”

남자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해왔다. 감정이 없는 듯한 그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예쁘게 울렸다. 그 어둠 속에서. ‘죽은 목숨과 같은 너의 생은, 나의 발에 달려있다.’ 독특한 음색이 종인의 귀를 감쌌다. 여전히 저가 듣고 있는 것이 저 나라의 말이 맞는지 인지하기가 어려웠다. 캄캄했다. 그 어둠 속에서 남자의 뒤로, 곧게 뻗은 무언가가 보였다. 그의 뒤에도 하얗게 뻗은 거미줄이 칭칭. 그보다 앞에, 검고 윤택 있는 그것. 촘촘한 털이 박혀있는 것 같기도 한 그것, 아니 그것들.

 

 

“……당신은 누구죠?”

종인은 어쩌면 처음부터 튀어나왔어야 할 질문을, 그제야 뱉어내었다. 저가 뱉어내고 있는 것이 목소리인지, 숨인지. 그저 머릿속의 생각인지. 꿈인지. 아니, 어쩌면 아무것도 뱉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아무것도 와 닿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종인은, 세훈…… 저도 모르게 머릿속에 스치는 이름을 중얼거렸다. 마침 그 웅얼거림에, 그제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던 그 얼굴이 아주 조금, 웃는 것 같기도 하고.

 

 

“……나?”

남자의 예쁜 얼굴이 그제야 선명히 보일 즈음이었다. 종인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그 이름, 세훈, 그것이 저의 앞에 서 있는 저 남자의 이름인가. 짐작했다. 갑작스레 두터운 눈꺼풀은 자꾸만 느려졌다. 눈이 감길 즈음이었다. 종인의 눈이 느리게 꿈뻑였다. 하얗게 부서지는 빛은 어느새 그의 뒤, 거미줄 덩이를 비췄다. 흐려지는 시야가 힘들게 세훈을 담았다. 종인은 까무룩, 완전한 어둠에 빠지기 전. 마지막 제 시야에 든 것을 보았다.

 


“신.”

 

신. 신이라고 했다. 남자는.

그대로 감기는 눈을 하고 종인은, 그제야 완전한 어둠 속에 삼켜 들어갔다.


세훈의 뒤에는, 여덟 개의 다리가 있었다.





새로운 연재글입니다
너무 짧아서 다음 편과 함께 가져오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다른 연재 예정의 글들과, 미처 끝내지 못한 단편의 글들과 함께. 천천히 올라올 예정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또한 좋으셨다면 하트와 댓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글 쓰는 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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