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먹겠습니다. 뒷머리는 잔뜩 뻗쳐서는 수저를 쥐고 낮게 웅얼대는 목소리가 잔뜩 갈라졌다. 감기에 걸리기라도 한걸까. 영민은 조심스레 그의 옆에 다가가 따뜻한 생강차를 건네어본다. 성격이 급한편인건지 컵을 들고 순식간에 입에 넣은 그의 입에서 줄줄, 물이 흘러나왔다.


"아, 씨, 아악! 뭐야? 뜨거워, 이거 뭐에요?"


보통 컵을 쥐어보면 따듯하다는 걸 알텐데. 영민은 궁시렁대는 그를 흘긋 바라보며 마른 수건으로 그의 입가며 잔뜩 젖은 하얀 티셔츠 위롤 닦아낸다. 투덜거리면서도 가만히 있는 양이 꼭 생선구이집 아주머니네 고양이 다람이같아 영민은 저도 모르게 낮게 웃음을 터트린다.


"아 뭐야, 뭘 웃어. 누구는 다 젖었는데."


하여간 저 투덜이. 영민은 미안하다고 말하려다가 사실 저가 미안할 행동은 하지 않은 것 같아 다시 마른 어깨를 쥐어 테이블 앞에 앉히며 수저를 쥐어준다. 예상대로 투덜거리면서도 맛있는지 곧잘 먹는 말랑한 뺨이 조금은 귀엽다고 느껴졌다.


"돈 왜 안받아요?"


나 아침 먹는 김에 그냥 차려주는 거라니까. 


매번 같은 문장을 쓰는 것이 귀찮아진 영민이 처음보다 더 휘갈긴 글씨를 서걱대며 하얀 얼굴 앞에 들이민다. 커다란 눈으로 찬찬히 메모지를 살핀 그의 도톰한 입술이 슬며시 벌어지며 큼지막하게 잘도 생긴 얼굴이 팍 구겨진다.


"나 거지 아니라니까? 돈 좀 받아요."


거지 아닌거 알지. 저 사람은, 그러니까 김동현이라는 이름을 한 사람은, 건물주 남동생인 저 사람은 제가 말을 못한다고 해서 바보 천치쯤으로 아는 모양인지 자꾸만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한다. 이미 약간의 돈을 건물주에게 받았고, 저는 그녀의 말대로 싸가지라고는 하나 없지만 그래도 영 나쁜 애는 아니라는 남동생의 식사를 챙겨주고 있다. 이미 받을 거 다 받았는데, 뭘 또 받으라는 건지. 영민은 누나와 이미 계산이 끝났다는 말을 하려다 어쩐지 귀찮아져 그냥 등을 돌려낸다.


"임사장, 돈 안받냐고!!"


소리를 빽지른 김동현의 씩씩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영민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 채 그가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먹은 빈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약간 망나니 기질이 있는 것 같아도 정갈하게 먹은 흔적을 보면 그래도 영 글러먹은 도련님은 아닌 모양이다. 꼭 그의 누나처럼.


김다정이라는 이름이 적혀진 명함을 받은 건 영민의 일상을 제법 즐겁게 만드는 김동현이라는 남자가 이곳 인어리에 온 일주일 전 즈음이었다. 제법 크다란 키에 매서운 인상을 한 그녀는 이 다 쓰러져가는 건물을 꽤 높은 가격으로 매입한 건물주였는데 영민의 그녀의 얼굴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영민 역시 이 인어식당을 전 사장에게서 물려받은지 얼마 되지 않은 탓이었다. 동네 사람들 말에 의하면 깡패새끼들 은신처로 이 후줄근한 건물을 사들였다고 했는데 영민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저를 해치지 않을 테니까. 예상대로 새로운 건물주가 온 이후 사장이 되기 전 주방일을 하던 영민은 인상이 험상궃은 이들에게 여러번 밥을 해먹였다. 그들에게 받은 건 해코지라던가 험한 말이 아니라 잘 먹었다는 말이 대부분이었어서 솔직히 이번에 건물주의 동생이 온다고 해도 별 생각은 없었다. 그냥 조금은 궁금은 했지. 이번엔 무슨 죄를 저질려서 여기 왔을까. 

아름답고 돈이 많은 알파의 남동생을 아주 잠시 상상하긴 했지만 그 여러개의 얼굴 중 눈앞의 얼굴은 없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영민은 제법 불손한 태도로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온 젊은 남자를 보고 바로 깨달았다. 건물주의 남동생이구나. 그에게서는 어떤 냄새도 나지 않는 걸 봐서는 베타인 것이 분명했는데 아마 꼭 닮은 외양이 아니었더라면 그녀의 동생이라 생각하지 못했을 터였다.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주 잠시였으나 태도가 아주 달랐으니까.


- 이 사람, 소중한 사람인가보죠?


검은 손톱을 칠한 건물주의 목소리는 제법 상냥해서 날카로운 외모와는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이 들었다. 영민은 그녀의 검은 손톱 끝에 걸린, 계산대 유리 아래에 쑤셔진 아주 낡아빠진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중했었던 사람이라는게 정확한 표현이었으나, 영민은 굳이 많은 이야기를 하는 스타일은 아니라 별 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얘 뭐야, 사장님 아는 사람이야?"


심심한 모양인지 그렇게 골을 내고 갔으면서 가게 오픈 준비를 하며 재료들을 다듬는 제 옆에 다가온 그가 계산대 근처에 기대며 질문을 던진다. 영민은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양파의 껍질을 벗겼다. 볕에 잘 말린 양파껍질이 사그락 소리를 내며 뽀얀 살결을 드러냈다. 


"존나 재수없는 새끼랑 닮았네."

"......"

"이 사람이 재수없다는 게 아니고, 그냥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건물주와 그녀의 동생이 아는 사람과 사진속에 갇힌, 박우진이 닮기라도 한걸까. 아니면 정말 그 둘은 박우진과 알고 있을까. 영민은 이런 촌구석에 박혀있었음에도 텔레비전을 켤 때마다 보이는 우진을 떠올리면서 그들과 우진이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아닐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우진이 유명하긴 했지만 조폭들과는 가까울 일이 없을 테니까. 아니 그러질 않길 바람에 영민은 그들이 말하는 이와 제가 아는 박우진이 다른 사람이길 바랐다. 


"도와줄까?"


손에 물한방울 제대로 묻혀본 적 없을 것 같으면서 뭘 도와준다는 건지. 영민은 고개를 저었으나 애초에 말을 좀처럼 들어처먹지 않는 인간이라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을 거란걸 어느정도는 예상을 했다. 괜히 저를 귀찮게 할거란 것도.


"아니 근데 나 이 동네 이름 너무 신기해. 인어군 인어리라니. 나는 인어식당이라고 해서 사장님 말 못해서 막 자기 인어공주에 비교한 줄 알았잖아."


참, 별 생각을 다하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인어라는 지명에 이미 익숙해져있어 딱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곤 했는데, 영민도 별 다를 것은 없어 저런 말을 하는 동현이 조금은 귀여웠다. 저보다 어리긴 해보여도 20대 중반은 넘어보이는데, 인어공주같은 동화를 떠올리다니.


"아, 내가 좀, 말이 그렇지?"

"......"

"아냐, 미안. 내가 좀, 생각이 없었다."


건물주 말대로 싸가지는 없어도 영 나쁜애는 아니라는 것은 사실인 모양인지 갑자기 얼굴을 붉히고는 사과를 한 그가 양파를 만진 손으로 얼굴을 한번 만지작대더니 소리를 꽥 지른다. 내 저럴줄 알았지. 장갑 끼라니까 무시하더니.


"아, 진짜, 아, 씨! 눈매워."


정말 손이 많이가는 타입이네. 싸가지 없는 것보다는 사람 귀찮게 하는 타입인 건 잘 알겠다. 영민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눈이 맵다며 벌떡 일어나더니 팔랑대면서 난리를 쳐대는 동현의 마른 팔목을 쥐고는 싱크대로 끌고가 자그마한 얼굴 위로 손을 뻗어 눈을 씻어낸다. 


"아흐, 진짜, 매워."


위로 올라가 기가 세게 생긴 눈이 잔뜩 젖어서는 씩씩대던 김동현이 그대로 이마를 영민의 가슴팍에 푹 묻고는 웅얼댄다. 아, 이거 어떻게 맨날해요? 이걸 대답을 해, 말아. 영민은 손을 뻗어 잔뜩 붉어진 눈매를 쓸어내릴 뿐이다.


"근데 사람이 원래 그래요?"


그런 너는 무슨 그렇게 질문이 많냐. 그것도 죄다 대답하기 귀찮거나 무어라 해야할지 모르는 질문만 쏙쏙 골라하고 말이지.


"내가 첫날 그랬잖아, 나 남자 좋아한다고."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영민은 불퉁한 얼굴을 한 김동현의 마른 어깨를 툭 치고는 등을 돌려 이번엔 파를 꺼내들었다. 원래같았으면 이미 마늘까지 다 깠을텐데 손이 많이가는 도련님을 데리고 있는 탓에 통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요?"


내가 뭘 잘해줬다는 거지. 대답하기 역시나 귀찮아 영민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파를 다듬기 시작한다. 그런 저가 답답하지도 않은지 김동현은 어느새 가게 안으로 들어온 다람이를 안아 쓰다듬고는 중얼대기 시작한다.


"아니, 내가 밥값 안받으니까 밥 사준다고 그래도 뭐 사달라 소리도 안하고. 그럴거면 잘해주지나 말던가."


다람이는 생선가게 사장님이 키우다시피하는 이곳의 길고양이로 하얀 바탕에 다람쥐처럼 이마 위에 줄무늬가 세개 나있고 그것이 등의 절반은 덮고 있어 꼭 다람쥐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는데, 둘이 같이 있어서 그런가 다람이와 김동현이 퍽 비슷한 외양을 하고 있다. 


"아씨, 진짜!"


다람이랑 저랑 같다고 생각한 걸 들킨걸까. 영민은 갑자기 대파를 들더니 그대로 등을 후려치는 손길에 놀라 유순한 눈만 끔벅이며 씩씩대는 김동현을 올려다본다. 퍽, 하고 나는 소리에 놀랐는지 이야옹, 소리를 낸 다람이는 이미 저만치 달아났고. 


"왜 대답을 안해! 내가 메모지랑 연필 가져다 줄게. 아니다 여기 휴대폰. 얼른 적어봐봐."


뭐를? 


건넨 휴대폰에 타이핑을 하자 낮게 으으, 하고 앓는 소리를 하더니 눈을 크다하게 뜨고는 저를 노려본다. 왜 이렇게 맨날 골을 내. 


"아니 왜 나한테 다정하게 대해주냐고. 내가 같이 밥먹자고 해도 같이 먹어주지도 않을 거면서. 어?"


건물주분한테 동생 잘부탁한다는 소리와 함께 약간의 돈을 받았으니까요. 그리고 전 별로 다정하게 대해준 적 없습니다. 


너무 딱딱하게 말했나. 나름 고심끝에 김동현의 휴대폰에 문장을 쓰고는 건네주자 그를 바라본 하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바알간 입술이 벌어지면서 실룩대고는 양파를 만진 손을 눈에 가져다 비빈것도 아니면서 눈가를 발갛게 물들인다.


"아, 씨발."


뭐 잘못했나. 영민은 제법 크다란 손으로 입을 막고는 고개를 숙여 그대로 가게를 뛰쳐나가는 김동현의 뒷모습만 바라보고는 혀로 입술을 훑어올림다. 아, 작게 입모양으로 탄식을 뱉은 영민이 시선을 내려 손을 바라본다. 휴대폰, 놓고갔네. 

휴대폰이 없으면 퍽 답답할텐데. 김동현은 점심이 지나도 오지를 않는다. 배고프지 않으려나, 잠시 그를 걱정하던 영민은 밀려들어오는 손님들의 목소리에 다시 머리에서 동현을 걷어내고는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밀어넣는다. 뭐, 필요하면 오겠지 싶은거다. 조금의 틈이 날 때마다 왜 그가 화가 났는지를 떠올리다 다시 잊기도 했다. 두번 정도 생각을 해봤는데 왜 화가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건물주 동생이라 돈이 없지는 않겠지만 숨어사는 사람한테 밥은 얻어먹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지. 

인어리의 비린내나는 시장가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위치한 백반집 인어식당은 늘 그렇듯이 점심시간에 바다를 보러 온 타지 사람들과 시장 사람들로 북적여 다시 영민은 그들을 맞이하느라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문득 대파를 들다가 저를 때린 김동현이 생각나 영민은 아주 잠시, 웃어보았다.




참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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