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너에대해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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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록; 野史錄 02


전 정 국  X  김 태 형

W.  B  A  E  B  A  E .





 내 이름은 김태형이다. 호산 밑자락 마을에서 태어나 이 고을의 강신무당으로 마을을 위한 제사와 무사평안을 기원하는 기원제를 관장하며 호산의 영물인 백호령을 모시고 있는 무당이다.

내가 나고 자란 호산은 천년백호가 드 높은 산세와 마을을 지켜 흉물을 비켜나가게 하고 마을 사람들의 곡식과 생명을 지켜준다는 믿음으로 가득하다. 나 역시 기억은 어렴풋하지만 네살쯤인가 여느때와 집 앞마당에서 거푸작거리며 걸음을 뒤뚱거릴 때 백호한마리가 찾아왔다. 기억에는 엄청 큰 호랑이는 온순했고 온 몸을 뒤 덮은 윤기나는 털은 멋있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은빛깔의 털 사이 사이 대비되는 검은색 털은 매끈한 윤기를 자랑하듯 바람에 휘날렸고, 빛에 비친 보석을 품은 푸른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그 안으로 홀려 들어갈 것만 같은 비상함과 용맹한 기운 그 자체였다.



 은빛보다 빛나는 백호의 눈동자를 멀뚱히 바라보고 그 백호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 성인 남자보다 훨씬 큰 덩치를 자랑하는 백호와 이제 뒤뚱거리며 뛰어다니는 네살배기의 아기가 서롤 마주보고 선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 일을 마치 신기루의 일처럼 말한다. 게다가 떠들기 좋아하고 신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일화로 백호와 나 사이에 빛이 반짝였고 그 주변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묘한 기운이 두 형체를 에워 쌓다며 백호에게 선택받은, 백호의 영엄한 기운을 받은 강신무당이라고 인정받으며 강신무로 불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고작 네살배기에 불과했는데도 말이다.





 과장이 섞인 일화이겠지만 내 기억에도 그 백호의 눈동자만큼은 잊지 못한다. 강렬한 무언가가 나를 잡아당기는 듯 했다. 그 속에 깊은 무언가가 마치 나를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만큼은 생생하다. 백호신이 마당에 찾아왔으니, 무당이었던 내 어머니는 곧장 예를 갖춰 인사를 하고 나니 빛과 함께 백호는 시야에서 사라졌었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백호와의 첫 만남이었다.



* * *



"표정이 왜그래?"



선선한 가을 하늘 아래, 산신각의 청마루에 앉아 오늘 할머니께 받은 일을 할 것이 산더미인데도, 한량백수인 이 호령은 자꾸 나타나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조용히 해. 오늘 이 호경전을 다 옮겨쓰지 못하면 할미가 밥 안줄거래"



덩치나 작아야 무시라도 할텐데 체격으로도 기운으로도 이 산을 메꾸고도 차고 넘치니 절대로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감이 아니었다.



"놀자"



경전 위에 호랑이의 앞발이 턱-,하고 올라왔다.

백호령의 앞발이 잠시 스쳐지나간 서책 위에는 날카로운 발톱에 의해 조금 찢기고, 앞발이 미끄러져나간 방향으로 서책에 묶였던 종이들이 낱장으로 흐트러 날아간다. 그가 살짝 흔든 기운을 이기지 못한 종이장이 정말 종이장처럼 구겨져버린 것이다.




"아잇!!, 저어-쪽 가서 혼자 놀아"



흐트러져 날라간 종이장들을 결국 일어나 하나하나 줍는 것은 오롯이 내몫이었다. 씩씩거리며 종이장을 줍는와중 영물의 큰 몸이 어슬렁 어슬렁 산신각 앞 큰 바위로 훌쩍 뛰어 앉아 종이를 주우러 다니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심심한데..."


"뭐가 심심해. 

너도 그럼 이거 좀 돕든가-,"


"도와주면 놀아줘?"


"무슨 신령이 맨날 천날 그렇게 바라는게 많냐!"


"크르릉"



으르렁 소리에 절대로, 절대로 겁을 먹은 것은 아니고 힘으로도 영적으로도 절대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 으름장 놓는 소리에 씅내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아...그냥 그렇다고오... 

지난번에도 기도하러 산신각에 보냈더니 하나도 안하고 왔다고 할미한테 혼났단말야..."


"넌 그런거 안해도 돼"



짐짓 단호한 목소리가 호령의 목소리에서 인간의 목소리로 변화했다. 마당 앞 흩날린 종이에 빼앗겼던 시선이 목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슬쩍 돌려보았다.




"...왜?"





정국이었다.

유일하게 나만이 볼 수 있다는 백호령의 현신.



"넌 이미 나와 연결되어있으니까."



정국과 마주한 시선이 처음 호령을 만났던 그날처럼, 

서로 말 없이 시선을 교환할 뿐 이다. 


누군가 너에대해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거야


'그 애는 나의 제목같은 사람이라고

모든걸 제치고 언제나 맨 앞에 놓일 문장이라고'


하현 - <제목>



"그러니..."



땅 위에 있지만, 서 있지 않은 듯한 자태로

인간의 형상을 한 현신이지만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습인 채로,



"이리오라."



나는 그저 그가 부르는 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전정국의 이름이었던 것일까.

태초부터 나는 그렇게 너에게 홀려진 것일까.

그도 아니면....



"..."



정국이 내게로 뻗어오는 정갈한 손이 어느새 바짝 앞으로 다가와 있다. 정국의 큰손을 한번 그리고 솜털같이 보드라울 것 같은 그의 여린 얼굴을 한 번 바라보니, 정국이 웃는다. 그리고 말한다.



"이리오라,

나의 이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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