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을( @oxer_01)님 리퀘 중편입니다


[Boss. D.O.D(국방부)로 추정되는 곳에서 메인서버 침입이 감지되었습니다.]

“두 번째 미끼 물려주고 적당한 쥐새끼로 반격해.”

[Yes. sir. 메크로 바이러스를 주입합니다.] 


어지럽게 퍼진 화면들을 톡톡 건드리며 프로그램들을 재설정 하다 시려오는 눈에 안경을 벗고 마른 세수를 했다. 익숙한 기계음 외에는 적막한 랩실이 어색하다. 이미 일이 터지자 마자 휴대폰이 뜨겁도록 전화를 해대거나 타워까지 쳐들어와서 왱알왱알 떠들어댔어야 할 아이가 소식이 끊긴지 2주 가까이 흘렀다.


“딸. 캐런의 위치는?”

[여전히 잡히지 않습니다.]

“메이 파커는?”

[역시 거주지나 직장에 나타난 정황은 잡히지 않습니다.]


아이만 사라졌다고 해도 이상한데 메이까지 행방불명이라니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 일’을 터뜨리기 전에도 준비하느라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 조사해보니 피터가 무단으로 학교를 결석한 것은 오늘로 딱  3주째 였다.


“쯧. 가뜩이나 복잡한 상황에 타이밍이 기가 막히는군.”


프라이데이에게 4주내에 퀸즈 내 CCTV를 다시 분석해보라 명령한 뒤 더미가 건네는 커피를 마시며 태블릿 문서를 훑었다. 


[Boss. 폐쇄된 A타워 입구에 생체반응이 나타났습니다.]

“뭐-. 노숙자라던가. 고물상 아니야?”

[비가 많이 내려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체형과 외형이 피터 파커군과 흡사…]

“가보지.”


눈이 감겼다 뜨는 사이 금색과 붉은색으로 온 몸이 뒤덮히다가 곧 완전한 아머의 형태를 이루었다. 아직은 낯선 Bleeding edge suit의 손을 두어번 쥐어보다 폭우가 내리는 하늘로 날아 올랐다.  

며칠이나 되었다고 벌써 버려진 티를 내는 타워 위에서 주변을 둘러봤다. 수상한 생체반응은 프라이데이가 발견한 곳과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힌트도 없이 사라졌던 넌 마치 영화처럼 태풍이 몰아치던 밤에 나타났다. 


“스캔.”

[맥박과 체온이 비정상적으로 낮습니다. 빠른 응급처치가 필요합니다.]


스텔스모드가 가능한 아머를 불러 피터에게 입히고 기지로 돌아왔다. 전담 주치의였던 자를 데려와 치료를 지시하고 미간을 문질렀다. 프라이데이가 수면을 권했지만 녀석에게서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주치의의 소견은 가관이었다. 피로누적. 스트레스 과다는 베이스로 깔고, 몸 곳곳에 약물 주입흔적이 발견되었고, 뇌파는 불안정해서 깨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했다. 수 차례 개복(開腹)을 한 자국이 아직 아물지 않은 채 배의 중간을 가르고 있고 끊임없이 피를 빼간 흔적도  보인다고 했다.  조용히 듣고 있는 토니의 안광이 빛나며 뿌드득 소리가 나도록 주먹을 쥐었다. 토니 주변에 있던 컴퓨터들이 파지직대며 오류를 일으키는 기현상에 주치의가 덜덜 떨며 채취한 혈액 샘플을 조사하겠다고 말을 이었다.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꾹꾹 누르면서 나가보라 손짓했다. 내 것에 손을 댄 간 큰 녀석이 누구일까. 눈을 가늘게 좁히며 고민하던 그는 도와줄 이를 호출했다.

아침이 밝을 때까지. 토니는 피터의 곁을 지키며 수없이 깨졌다 회복된 것으로 보이는 손톱과 너무나 거칠어진 손등을 쓰다듬어주었다. 



“스타크!”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급하게 들어온 완다가 눈 앞에 토니를 두고 다른 이를 찾듯 두리번거렸다.


“다짜고짜 피터를 도와달라니! 역시 당신이 데리고 있었어?”

앙칼지게 노려보며 따지는 말을 흘러넘기며 토니가 조용히 완다를 스캔했다. 귀 안에 내장된 인이어로 프라이데이가 도청될만한 기기는 보이지 않는다 보고했다.


“귀찮은 보호자를 달고 온건 아니겠지?”

“하! 철두철미한 당신이 퍽이나 눈치 못챌까!”

“높이 평가해줘서 고맙군. 이쪽이야.”

안쪽을 향해 고개를 까닥이며 토니가 앞장서고 불안한 듯 양 손을 맞잡은 완다가 따라갔다.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피터의 모습에 숨을 들이키며 입을 막았다가 서둘러 다가갔다. 여러 튜브로 간신히 생명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피터의 피부는 핏기없이 창백했다.


“익...피터에게 무슨 짓을 한거야?!”

차마 큰소리를 못내 억누르며 토해내는 분노에 토니의 눈썹 하나가 삐뚤게 올라갔다.


“나도 어젯밤에 발견해서 구조해온거야. 도망쳐온 모양이더군.”

“도망쳐와? 어디서?”

“그걸 이제부터 네가 알아내야지.”

완다는 지그시 맞춰오는 낯선 검붉은 눈동자에 소름이 돋았다. 


“피터의 기억을 읽어서 당신에게 말해달라? 내가 왜 그런짓을 해?”

“인체실험을 당했어.”

“...뭐?”

“자백제, 마취제, 각성제 등등 중독성이 있는 약물까지 주저없이 사용했다더군. 내장도 회복되나 궁금했는지 위와 폐도 절제했던 모양이야.”

“미쳤어!!! 어떤 놈이?!”

“이제 이유는 충분하나?”

이를 악 문 완다가 뒤로 돌아 피터의 이마를 손으로 덮었다. 많이 까칠해진 피부마저 안쓰러워 가슴이 아파왔다.


“미안 피터… 실례 할게.”

완다의 눈이 감기자 붉은 기운이 넘실대며 손을 타고 피터의 이마로 흘러들었다. 곧 닫힌 시야에 어두운 골목이 보였다. 거친 숨소리. 강하게 흔들리는 시야. 빠르게 지나가는 건물들. 피터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더 이전으로 가야해.’

그녀의 의지에 따라 장소가 바뀌었다.  피터가 어두컴컴한 방 바닥에 주저 앉아있었다.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큰 충격을 받았는지 제 몸을 팔로 감싸고 덜덜 떨고있었다. 금방이라도 울부짖을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더 이전으로.’

완다는 차근차근 그의 최근 기억을 되짚어 올라갔다. 차가운 실험대. 피부에 닿는 날카롭거나 뾰족한 수술도구들. 메이의 사진. 토니 스타크의 사진과 함께 뉴스 영상으로 띄워진 파괴된 실드건물. 닉 퓨리의 인터뷰. 뛰어가던 피터의 앞에 세워지는 검은 승합차.  그들은…


“헉! 우욱!!”

 피터와 눈이 마주쳤다고 느낌과 동시에 의식에서 튕겨져나와 반동으로 헛구역질을 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진정을 하는 그 잠깐도 초조했는지 어느 새 앉은 토니가 탁자에 올린 손가락을 탁탁탁 두드렸다.


“뭘 봤어?”

날카로운 시선에 완다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말도 안돼… 왜 그들이?”

“Ok. Lady. 못믿을 사실이라는 건 알것 같고, 이제 힌트 말고 답을 주면 안될까?”

토니의 독촉에도 완다는 제 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기며 몇 걸음 서성였다. 토니가 손가락을 펴며 당장 저 가느다란 목을 틀어쥐어버릴까 고민하던 순간 완다가 고개를 들었다.


“쉴드가 피터를 납치했어요.”

완다의 말에  탁자의 끝이 토니의 손에 의해 ‘콰직’ 부서져버렸다. 그에게 있을리 없는 비정상적인 악력에 굳어버린 완다를 보며 토니가 짐승의 효후(哮吼)가 섞인 목소리로 재촉했다.


“그리고?”

“그, 그리고 협박을 했어요. 스파이더맨의 힐링팩터와 강화된 힘의 연구에 협조하라고.

피터가 거절하자 메이를 인질로 내세웠어요. ..또...”

“눈치보지말고 네가 본걸 모두 말해”

“당신을 죽이라 명령했어요.”

“하!”

토니가 까만 머리를 쓸어넘겼다. 어이없다는 감정이 여지없이 표출되었다. 누구에게 뭘 명령해? 똑똑한 AI는 알아서 쉴드 내에서 피터의 실험에 참가한 명단을 해킹하겠다고 알려왔다.


“피터는 당연히 거부했어요. 당신이 배신했을 리 없고, 했다면 이유가 있을거라고... 그 뒤에 그들은 피터를 더욱…...”

완다가 얼굴을 두 손에 묻으며 말을 끊었다. 기억 속에서 피터는 끊임없이 고통에 몸부림치거나 약에 취해 슬프게 웃었다. 아이가 반항할 기미가 보일 때마다 메이를 멀리서 몰래 찍은 듯한 영상을 보여주며 알아서 기라고 경고했다. 


“방에 갇혀 있던 피터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어요. 메이의 이름을 우는 것 같은 목소리로 계속 불렀는데… 설마 쉴드가 그녀를 죽인걸까요?”

“가능성이 없진 않지. 메이 파커는 피터와 비슷한 시기에 실종되었어. 그런데도 피터에게 계속 그녀의 일상적인 날을 영상으로 보여주었다면…”

“아아… 피터…”

피터가 누워있는 곳을 돌아보며 완다가 눈물을 글썽였다. 지금 이 순간. 창백하게 호흡기로 숨을 유지하는 아이가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고요히 잠들어있는 얼굴 위로 실험 당시의 표정이 오버랩되어 보여서 입술을 떨며 링겔을 꽂은 손등을 조심히 들어 살며시 쥐었다.


“2주 전에 받은 그 충격과 배신감은 아직도 여전해요.”

“......”

“스타크. 당신이 돌아선 이유가 그들과 관련이 있나요?”

“아직은 말해줄 수 없어”

“...... 날 피터의 곁에 있을 수 있게 해줘요”

토니는 완다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는 피터의 얼굴을 잠시 더 바라보다 토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붉은 눈과 마주치는 눈동자는 이제 떨리지 않았다.


“I accept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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