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는 차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새파란 하늘에 솜뭉치 같은 뭉게구름이 떠 있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차가 서고 어느새 학교 주차장에 도착했다.

안전 벨트를 풀려고 팔을 올렸다.

“쪽!”

한결이 유하의 뺨에 기습적으로 입술을 맞추었다. 

엇. 깜짝이야. 

매일 당하는데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좋아서 그려러니 했는데 매일 이렇게 할 줄은 몰랐다. 사귄 지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도 한결은 여전히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놀란 유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였다.

한결이 그 모습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며 눈을 활처럼 휘었다. 

“엇, 또 놀랐네요. 어쩜 그렇게 매일 놀라요! 크큭.”

유하의 뺨을 조심스레 어루만져 주었다. 한결은 최근에 몰라볼 정도로 얼굴이 꽃처럼 활짝 피었다. 원래 잘생긴 외모에서 더 빛이 나서 반짝거렸다. 저렇게 코가 높았던가, 저렇게 턱선이 베일 듯이 날렵했던가…. 잘생기긴 참 잘 생겼어. 누…눈이 부시다.

유하는 얼굴이 잔뜩 붉어진 채 고개를 숙이고 눈을 비볐다.

“눈에 뭐 들어갔어요? 어디 봐요?”

한결이 얼굴을 유하의 코끝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와서 유하의 두 눈을 자세히 보았다.

“눈동자는 괜찮은 것 같은데….”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쓰지 마.”

유하는 한결의 눈빛이 부담스러워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도 온 김에….”

한결이 유하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쪽.”

두근두근. 

여기 학교 주차장이야. 누가 보며 어떡하려고 그래. 부끄럽게.

“그…그만해. 이제 수업 들어가야 해. 많이 했잖아.”

“두 번 했네요.”

한결이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알지? 학교 내에서는 절대 사귀는 티 내지 않기로 한 거.”

“네. 선배가 그러길 원하니깐.”

한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하는 한결을 사귀고 나서 좋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안함과 초조함도 커졌다. 이 불안과 초조함의 원인을 요즘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 며칠간 한결이 보여준 사랑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 녀석…. 그동안 어떻게 참고 살았던 거야. 이렇게 애정 표현을 하는 걸 좋아하는 애가. 그동안 같이 살면서 몸에서 사리가 안 나온 게 신기해.

자동차 문을 열기 전에 잠깐 한결이 유하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들키면 안 되는 거 알지?”

“네.”

한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걸어갈 때 일부러 조금 떨어져 걸었다. 평소 같으면 한결이 유하의 옆에 찰싹 붙어서 걸어갔지만 최근에는 일부러 적당한 거리를 두었다.

두 사람은 강의실로 들어갔다. 같이 듣는 유일한 강의였다.

한결이 맨 뒷자리로 가서 유하와 나란히 앉았다. 앞 좌석과 옆 좌석 모두 비어있었다. 이 교수의 수업은 잠 오기로 유명했다. 

유하는 한결과 늘 이 수업을 같이 들었지만 깨어서 들은 적은 거의 없었다. 깰려고 몇 번 노력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전공책을 책상 위에 놓고 잘 준비에 돌입했다. 책에 머리를 기대고 엎드렸다. 한결은 체력이 좋아서 그런지 1교시 수업이지만 이 수업을 잘 들었다. 필기를 했다가 나중에 유하에게 보여주었다.

유하는 오늘도 실컷 잠이나 잘 생각에 눈을 스르륵 감았다.

무릎이 위에 둔 손에 묘한 촉감이 느껴졌다. 한결의 손이었다.

어…. 

한결이 책상 아래에서 유하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눈을 살며시 떠서 한결의 얼굴을 보니 시치미를 뚝 떼며 수업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유하는 누군가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놀라서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자는 학생들과 교수의 앵앵거리는 모기 같은 목소리만 들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언제 들킬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착각인지 창문가에서 누군가 보는 것 같다는 생각에 고개를 휙 돌려보았다. 창문에는 아무도 없었다. 뭔가 검은 그림자 휙 하고 스쳐 간 것 같기도 했지만 확신할 순 없었다. 

역시 착각이었나 보네. 한결이때문에 요즘 내가 정신이 없어. 

유하는 고개를 저었다. 잠이 확 달아났다. 무거운 상체를 세워서 몸을 일으켰다.

한결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쿡 쑤셨다. 전공책 모서리에 글을 썼다.

[야, 너 손!]

[안 들키면 되죠.]

한결이 장난스레 웃으며 바로 답장을 썼다.

한 손은 필기를 하고 한 손은 유하의 손을 잡았다. 한결은 왼손으로 유하의 손을 잡았지만 유하는 오른손이 잡혀서 필기도 못하고 멍하니 처음으로 교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무슨 말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자꾸만 한결의 손에만 신경이 집중되었다.

땀이 나자 한결이 잡았던 손을 놓았다.

이번에는 장난치듯 손가락으로 유하의 손을 손톱으로 콕콕 누르기도 간지럽히기도 했다.

하아…. 한결아, 그만해. 수업중인데…. 

유하는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괜시리 얼굴이 자꾸만 붉어졌다. 크게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누가 보면 낯뜨거운 애정행각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른 커플들이 이렇게 뒷자석에 앉아서 남들 몰래 스킨십을 하는 걸 보고도 모른 척한 적이 있었지만 자신이 이렇게 할 줄은 몰랐다.

대…대담하다. 한결아…. 뻔뻔하다.

처음에 유하는 안절부절못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묘한 스릴을 느끼게 되었다. 일상에서 결코 맛보지 못한 묘한 기분이었다.

교수가 오늘은 무슨 바람이 들어서인지 뒷좌석 쪽으로 슬금슬금 걸어왔다. 자고 있는 학생들 을 한 명씩 깨우고 있었다. 아마도 여름이라서 자는 학생 수가 너무 많아서 그런 것 같았다. 

오…오지 마세요. 교수님. 한결아, 손 놔라. 놔.

유하는 입술을 꽉 깨물고 한결에게 잡힌 손을 빼내려고 마구 흔들었다. 한결은 아랑곳하지 않고 더 꽉 잡았다. 교수는 비틀비틀 걸어오다가 맨 뒷자석에 앉아 있는 유하와 한결을 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아마도 유일하게 수업을 듣는 학생이라서 그런 것 같았다. 다행히 교수는 더 가까이 오지 않고 교탁으로 돌아갔다.

한결은 유하와 잡은 손을 끝내 놓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씩 웃으면서 다시 필기를 했다.

후우. 십 년 감수했네. 도…독한 놈.

유하가 눈을 흘기며 평온한 한결을 보았다. 

그때 갑자기 뒷문으로 지각한 여학생이 몸을 잔뜩 움츠리며 쭈뼛거리며 들어왔다.

으악. 큰 일이야!

놀란 유하는 급히 한결의 손을 뿌리쳤다. 유하가 너무 세게 뿌리치는 바람에 한결의 상체가 휘청였다. 책과 필기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여학생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몇 번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얼굴을 잔뜩 붉히며 당황하며 아무 자리에 앉았다.

유하는 등골이 오싹했다.

드…들켰다. 저 여학생 분명히 본 것 같아. 아니야. 안 봤을지도…. 몰라. 

유하는 민망해서 책상에 얼굴을 쿵쿵 박았다. 한결도 얼굴이 시뻘게졌다. 허겁지겁 떨어진 공책과 필기구를 주웠다. 나머지 수업은 어떻게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강의가 끝난 후, 유하는 강의실에 학생들이 다 떠나고 나서 한결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야, 손은 잡지 말자. 누가 볼까 무섭다. 아까 지각한 여학생 얼마나 놀랐겠냐? 갑자기 멀쩡한 남자 두 명이 손을 꼭 잡고 있으면 나라도 놀라서 까무러치겠다.”

“그게. 그냥 저도 다른 커플들처럼 꼭 해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서. 앞으로 조심할게요.”

한결이 얼굴을 잔뜩 붉히며 입술을 뿌루퉁하게 내밀며 불쌍한 눈빛으로 말했다.

 유하는 미안해하는 한결 앞에서 한숨을 푹푹 쉬었다.

꼭 해보고 싶어서 그랬다는 데 할 말이 없었다. 유하도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한결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불안과 초조함은 고스란히 유하의 몫이었다.

어휴…. 

유하는 한숨을 푹푹 쉬며 휴게실로 갔다. 소현과 동훈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결은 사물함에 뭔가 가지러 갈게 있어서 유하를 먼저 보냈다. 사물함에서 책을 꺼내고 있는데 여자 동기들의 수다떠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 여름 엠티 때 왕게임에서 태준 선배랑 유하 선배 뽀뽀했다며?”

“진짜? 태준 선배 전설에 그 잘생겼다는 조각과 선배 아니야? 잘 어울린다.”

“두 사람 커플 될 리도 없지만 왠지 응원하고 싶은 걸 크큭.”

한결은 그 소리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잊고 있었던 그 사건을 떠올리자 기분이 급격히 나빠졌다. 이마에 뽀뽀를 당하고 수줍어서 얼굴이 새빨개진 얼굴의 유하 모습이 생생하게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왕 게임 따위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게임이었다. 유하가 다른 사람과 엮이는 것이 그자체가 싫었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차피 지나간 일이었다. 그걸로 유하를 원망할 생각은 없었다. 게임은 게임일 뿐이었으니….

휴게실로 가는 복도에서 한 여학생이 한결에게 조심스레 다가왔다. 눈앞에는 휴게실 테이블에 앉아서 동훈, 소현과 얘기를 나누는 유하가 보였다.

한결이 여학생에게 자리를 비켜주려고 하자 앞을 가로막고 섰다.

“저…. 할 말이 있어요.”

여학생을 고개를 들어 한결을 수줍게 쳐다보았다.

이건 필시…. 그거다. 고…고백이다. 한결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자…잠깐 시간 있어요?”

“네?”

한결은 평소라면 시간이고 뭐고 다 없다고 냉정하게 딱 잘라 거절했을 것이다. 유하가 한결이 안 오자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선배…. 한 번 골려 줄까? 크큭.

절대…. 태준 선배랑 뽀뽀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오해 금지.

한결이 여학생을 보자 상당한 미인이었다. 어딘가 자신의 외모에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그쪽이랑 사귀고 싶어요.”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이 상당히 매력적인 여학생이었다.

“글쎄요….”

한결은 괜히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유하가 커피를 마시다가 테이블에 엎질렀다. 

한결은 유하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자 그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유하 선배. 질투 아닌 척 하면서 엄청 동요하고 있어. 크큭.

유하는 얼굴이 빨개져서 휴지로 테이블과 바닥에 쏟은 커피를 닦느라 정신이 없었다. 소현과 동훈도 같이 닦아주었다. 한결은 대충 여학생이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고 유유히 가벼운 발걸음으로 휴게실로 들어갔다. 

유하의 눈에 차가운 냉기가 감돌았다.

한결이 유하의 바로 옆에 앉자 유하가 의자를 움직여서 사이를 일부러 띄웠다.

“선배, 저도 캔커피…. 지금 동전이 없어서.”

유하가 팔짱을 끼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 건 내가 알아서 뽑아 먹어. 한두 살 어린애도 아니고.”

동훈이 유하의 갑작스런 쌀쌀맞은 태도에 놀라서 말했다.

“한결아, 네가 뽑아 줄게. 잠깐만….”

동훈이 한결의 캔커피를 자판기에서 뽑아 주었다. 

유하는 심기 불편한 듯 얼굴이 어두웠다.

한결은 겉은 모른척 했지만 유하의 그 모습을 신기하게 보았다.

귀…귀여워. 너무 귀여워. 입술이 병아리처럼 쭉 튀어나와서 질투하고 있어. 나보고 그렇게 질투하지 말라던 사람이….

한결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유하 몰래 헤벌쭉 웃었다.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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