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바람이 간절해지는 계절이 왔다. 보쿠토의 방에는 에어컨이 달려있었다. 둘은 여느 때처럼 나란히 길을 걷다가, 너무 더워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사먹으려다가, 차라리 보쿠토의 방으로 향하기로 했다.

  정신 차리니 어느 샌가 엉겨 붙어 있던 것도 여느 때와 같았다. 더웠다. 뙤약볕보다도 서로의 체온이 더 뜨거웠다. 서늘한 에어컨 바람이 열 오른 육체 사이를 스쳐갈 때면 그 가파른 온도차에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보쿠토는 멈출 줄 모르는 사람처럼 내달렸다. 아카아시도 멈추라든가, 그만하라는 말은 그냥 삼켜버렸다. 대신 짧은 손톱이 몇 번 그의 등을 긁어내리긴 했다.

  오랜만이었다. 중간고사가 막 끝난 참이었다. 시험기간 동안, 보쿠토는 연습도 연애도 일시정지 상태였다. 감독이 혹여 낙제해 보충학습 하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봐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던 탓이었다. 아카아시는 보쿠토가 얼굴이라도 맞대볼라 치면, ‘시험 준비는 다 하셨습니까?’하며 매정하게 대했다. 보쿠토도 괴로웠겠지만, 아카아시도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괴로웠었다.




  살짝 부어오른 게 느껴졌다. 등을 더듬는 검지가 그 피부의 요철을 따라 미세하게 오르락내리락 했다.


  “안 아픕니까?”

  “이 정도로 뭘.”


  둘은 이불을 덮은 채 에어컨 바람을 쐬는 사치를 누리는 중이었다. 보쿠토는 그 동안 못 부렸던 응석을 한 번에 몰아 부리듯 아카아시에게 달라붙었다. 그 튼실한 두 팔에 끌어 안겨져 아카아시도 마음껏 보쿠토를 귀여워했다. 보쿠토의 넓은 등은 쓰다듬는 맛이 있었다. 단단한 근육에다 조금 그을린 탄탄한 피부. 거기에 더해 자신이 긁어놓은 흔적들을 더듬고 있노라면 더없이 흡족했다.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끌어안고, 아카아시는 그의 정수리에 볼을 대고, 한쪽 손은 맞잡고, 한쪽 손은 그 등을 쓸고….


  “헉.”


  그 평화로운 흐름을 깨며 보쿠토가 불쑥 고개를 들어올렸다. 아카아시가 당황스러워 보이는 보쿠토와 눈을 맞췄다.


  “나 내일 수영수업 있는데.”


  어떡하지?….

  아카아시가 한숨을 내쉬었다.




  보쿠토는 커다란 배스타월에 감겨 있었다. 학교의 야외 수영장은 소독약냄새는 조금 덜 했고, 햇빛은 수면에 닿아 수십 갈래로 뻗어나갔고, 무척이나 더웠다.

  그늘이라고는 본관 건물과 연결된 통로를 덮은 지붕이 만들어낸 그 조금이 다였다. 보쿠토는 그곳 기둥에 기대어 있었다.

  수업은 열외였다.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거짓말 하는 보쿠토의 연기실력은 형편없었지만, 다행히도 그의 등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테이핑에는 설득력이 넘쳤다. 선생님은 미심쩍은 듯 눈썹을 조금 들썩였지만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다른 학생들을 바라보는 보쿠토의 눈은 조금 촉촉했다. 물 속에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날은 더웠고,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눈썹도 어깨도 축축 쳐졌다.


  “꼴좋으시네요.”


  순간 바람보다 더 시원한 목소리가 뒤에서부터 불어왔다.


  “이게 누구 때문인데.”


  어지간히도 아쉬운지 대답하는 보쿠토의 목소리는 물기를 머금은 채였고 말끝은 조금 늘어졌다.


  “글쎄요. 누구 때문인데요?”


  아카아시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카아시는 그의 등에 남은 애정행위의 흔적이, 그걸 가리기 위한 테이핑이, 그래서 결국 수영 수업에서 제외된 것이 순전히 자신 때문 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사람을 녹여버릴 것처럼 쉴 틈도 주지 않고 몰아붙였던 건 보쿠토였다.


  “근데 아카아시는 이 시간에 왜 나와 있어?”

  혹시 땡땡이?


  놀리듯 그렇게 물으며 보쿠토가 아카아시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가 만든 그늘이 아카아시의 얼굴 위로 드리워졌다.


  “선생님 심부름 다녀오는 길인데요.”

  “아아. 무슨 시간인데?”

  “고전이요.”

  “윽. 재미없겠다.”


  아카아시는 그 말엔 대꾸하지 않으며, 대신 보쿠토의 손등을 매섭게 쳐냈다. 보쿠토의 나쁜 손은 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아카아시의 넥타이를 만지작거렸다. 잘 뻗은 손가락 하나가 넥타이의 매듭을 느슨하게 만들며 셔츠와 넥타이 사이의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뭐 하시는 거예요.”

  “단추 끝까지 다 잠갔네.”


  보쿠토가 씨익 웃었다.


  “예. 이 더운 날에요.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게. 누구 때문일까.”


  아카아시가 그의 등을 온통 긁어놓았다면,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목덜미를 마구 물어놓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하면서도 아카아시는 뒷목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해가 뜨거워서인지, 아니면 어제의 낯 뜨거운 기억 때문인지 가려내기 어려웠다.

  얇은 하복 셔츠 밑에는 하얀 반팔 티셔츠를 받쳐 입었고, 그 밑엔 열꽃 같은 것이 울긋불긋했다. 보쿠토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하얀 타월 밑 감춰진 등에는 덕지덕지 테이핑이 붙어 있었고 그 밑엔 살짝 부풀어 오른 피부가 있었다.

  비현실적이었다. 더운 열기에 이곳저곳에선 아지랑이가 피었고, 볕은 따가울 정도였고, 수영장엔 학생들이 가득했으며, 아무도 둘의 비밀을 몰랐다.


  “이제 가봐야 해요.”

  “그래. 이따 봐!”

  “네.”


  바이바이. 보쿠토가 붕붕 손을 흔들었다. 아카아시는 웃으며 돌아섰다.

  열이 올라 셔츠를 몇 번 펄럭였다.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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