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사실... 나 오메가야.”

 

유리는 사귀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동거녀인 예나의 폭탄발언(인지 뭔지 모를 개소리)를 듣고 입술을 감쳐 물었다. 오메가? 그게 뭐지? 낯선 단어의 정체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지만, 건강 챙긴다고 얼마 전 해외직구한 오메가쓰리가 퍼뜩 머릿속에 떠올랐다. 유리의 눈동자에 집오리마냥 입술 삐죽 내민 예나의 모습이 들어찼다. 장난치려고 수작 부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망나니 같은 최예나 평소 행실 생각해보면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뭐 먹고 있을 때마다 한 입 달라고 하고는 더럽게 혀로 음식 다 망쳐서 못 먹게 만들어 버린다거나(그래놓고 얄밉게 푸헤헤헹 웃어서 빡치게 만든다), 공주풍 잠옷 입고 ‘나 사실, 공주야!’ 느닷없이 말하며 부리 같은 입술 빽 내민다거나(입 내밀면서 우우우웅 소리 내주는 건 덤이다), 막 밑도 끝도 없이 ‘야 조유리 너 나 좋아하지!!!!’ 소리치며 삿대질 한다거나(얼마 전까진 종일 그러더니 그래도 요즘엔 안 그러긴 한다), 같이 있으면 재밌긴 한데 좀 기 빨리는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뭐 그래도 싫은 건 절대 아니니까, 유리는 뇌에 힘 빼고 적당히 받아주기로 했다.

 

“뭐요 오메가쓰리? 언니 고등어라구요?”

“아니 말고, 오메가쓰리 아니고 오메가라니까.”

“아... 오메가 떡? 언니 떡이었어요? 어쩐지 말랑말랑하더니만.”

”그건 오메기고 이 멍청아!”

“그럼 오메가가 뭔데요.”

 

예나가 한숨 한번 빽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어휴, 그니깐 오메가가 뭐냐면.......

 

“진짜 한 번도 못 들어봤다는 거지?”

“네 단 한 번도요... 그게 뭔데요?”

“역시 그렇구나. 그럴 수 있지 모를 수 있어. 베타들은 이런 거 하나도 모르고 사는 경우도 많을 테니까.”

“베타들? 언니, 나 지금 언니가 무슨 소리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유리야, 세상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냥 보통 사람이구 베타야. 그리고 아주 드물게 알파랑 오메가인 사람들이 있는데.......”

“언니가 그 오메가고요?”

“응.”

“무슨 차이가 있는데요?”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는 식으로 유리가 반문했다.

 

“일단 알파는 유전자가 우월해서 보통 사람들보다 신체 능력이 훨씬 좋아. 운동선수들 있지, 막 티비에 나올 정도로 재능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 거의 다 알파야.”

“.......”

“오메가는 반대로 신체 능력이 좀 안 좋은데.......”

“잠깐만요 언니는 오메가라면서요? 근데 언니는 체력도 좋고 덩치에 비해 힘도 쎄잖아요.”

“그건 어렸을 때부터 내가 노력을 해서 그런 거야.”

“언닌 균형 감각도 되게 좋잖아요. 롱보드 처음 탈 때도 곧잘 타는 거 보고 되게 신기하다 생각했는데.”

“야 그니깐 난 노력파라고! 지짜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엄청 애기 때부터 신체 단련하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유리는 대략 정신이 멍해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곧 어안이 벙벙한 눈빛을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수업 시간 때에도 이런 건 전혀 안 배웠던 것 같은데. 수시로 퍼 자느라 못 들은 건가? 의문이었지만 예나의 흔들림 없는 눈빛을 보고서 도저히 쌩구라를 치는 눈빛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유리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곤 이어지는 예나의 이야기에 홀린 듯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오메가는 보통 사람들이랑 달라서 막 페로몬도 나오고,”

“페로몬? 사람 몸에서 페로몬이 나온다구요?”

“어 요즘 광고 많이 하는 페로몬 향수 같은 거 있잖아. 딱 그런 느낌으로. 그리구 또 오메가한텐 히트사이클이라는 게 있어가지구.......”

“그건 뭔데요?”

“그러니까 그게 뭐냐면...”

“네.”

“아니야.”

“네?”

“그냥 말 안 할래.”

“뭔데요? 뭔데 그러는데요. 왜 말을 하다 말아요.”

 

궁금해진 유리가 몸을 들이밀며 대답을 촉구했지만 예나는 끝끝내 뒷얘기를 이어가지 않았다. ‘나 잘래-’ 하더니 커다란 황토색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린 게 다였다. 뭐지? 이 언니 야행성이라 원래 이 시간에 안 자는데...... 평소엔 나 먼저 자려고 하는 거 이불 뺏으면서 방해하는 에너지 넘치는 언닌데....... 유리는 찝찝함을 느꼈다. 황토색 이불 몇 번 손으로 콕콕 찔러보다 반응 없길래 얌전히 옆에 누웠다. 눈을 감았다. 그랬더니 마지막에 봤던 예나의 옆모습이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기억이 왜곡된 걸까? 조금 슬픈 눈망울을 하고 있었던 것도 같았다. 괜히 신경 쓰여서 그 날밤 유리는 잠을 설치고 말았다.

 

 

 

 



 

 

교양 수업 하나가 빵꾸나서 꽁으로 자유시간 한 시간 얻었는데도 유리는 기분이 멜랑꼴리했다. 같이 사는 그 언니 때문이었다. 하여간 사람 신경 쓰이게 만드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유리는 정신 반쯤 내놓은 채로 멍하니 과 선배 채원 쪽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자그마한 화면에 빽빽이 들어차 있는 검정색 글자들이 얼핏 보였다. 톡을 하는 것도 아니고 분명 뭔가를 읽고 있는 거 같은데, 막상 뭘 읽고 있냐 물으면 채원은 스마트폰 뒤로 감추며 비밀이라고 하고는 했다.

 

“선배. 선배 있잖아요.”

“응? 왜?”

 

채원은 고갤 들어 유리와 눈을 맞췄다. 동기고 선배들이고 다 조유리랑 김채원 닮았다 하고 유리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이긴 한데, 순수한 느낌 가득한 밤비 같은 눈망울만큼은 도저히 채원 선배 따라잡을 수 없었다. 유리는 그 눈 보며 맥락 없이 확신했다. 은근 아는 거 많고 거짓말 절대 안 한다는 이 모범적인 선배가 제 궁금증 확실하게 해결해줄 수 있을 거라고. 비록 이런저런 일 다 터놓고 얘기하기엔 아직 친밀도가 좀 많이 부족하긴 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여겼다.

 

“선배는 혹시 알파랑 오메가라고 들어봤어요?”

“어???”

 

곧바로 터져 나온 채원 선배 음성이 너무 커서 유리는 당황했다. 꼭 커다란 벌레 봤을 때처럼 엄청 놀란 목소리였다.


“당, 당연히 들어봤지이... 그거 이과 쪽에서 쓰는 기호들이잖아...”

 

그 평범한 대답이랑은 다르게 확연히 느껴지는 동공의 거친 흔들림에다, 아하하하- 평소와는 전혀 다른 어색한 웃음소리까지. 분명 거짓말이 틀림없었다.

 

“아니 그런 거 말고요. 사람들 중에 알파랑 오메가가 있고 오메가한테서는 페로몬도 막 나온다 그러던데.”

“야!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채원의 아연실색한 목소리랑 커다랗게 뜨여진 눈동자에, 조유리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채원 선배는 이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설마 이게 진짜라고? 이게 왜 진짜야? 말도 안 돼....... 반쯤 넋 나간 채로 중얼거리며 유리는 눈앞의 채원 얼굴 응시했다. 부끄러워하고 있는 건지 왠지 좀 얼굴이 붉어져 있는 것도 같다. 더군다나 살짝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는 것도 같았다. 뭐지? 혹시 내가 알파나 오메가라고 생각해서? 그 와중에도 오해는 피하고 싶은 유리가 입을 열었다.

 

“아, 그러니까 제가 그런 사람은 아닌데요...”

“나도, 나도 그런 사람은 아니지 당연히...”

“네 전 뭐 아는 사람이..”

“아, 응, 나도 친구가...”

 

곧바로 찾아온 목을 옥죄이는 듯한 숨 막히는 어색함. 오메가라는 게 알 사람들만 아는 암묵적인 비밀이라도 되는 걸까. 채원 선배 입 닫은 채로 아무 말 않길래 유리는 한참을 또르르 눈만 굴렸다.

 

“유리야 내가 그런 거 안다는 건 비밀로 해줘... 알았지?”

 

자리 떠나기 전 채원은 이렇게 말했고, 물론 유리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여줬다.

 

 



 

 

 

 

집 가는 19번 만원 버스 안에서 유리는 또 예나 생각이 났다. 중학교 교복 입던 쪼꼬맣던 시절부터 언니 생각은 시도 때도 없이 났으니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니, 우린 그냥 아는 언니 동생 사이니까 사실은 좀 이상하긴 했다....... 유리는 조금 늦은 타이밍 사과를 어떻게 건네야 할까 속으로 고민하다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초록창을 열고 홀린 듯이 알파오메가를 검색했다. 다들 알면서도 쉬쉬하는 암묵적 비밀인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정보가 많았다. 되게 글이 많길래, 유리는 그중 제일 눈에 띄는 개념 간단 정리 글을 클릭했다.

 

결론적으로 예나가 했던 말은 다 맞는 말이었다. 극소수의 알파들은 가장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났으며 스포츠 쪽뿐만 아니라 정계, 법계, 고위직의 사회지도층에 자리를 잡고 있댔다. 같은 알파 사이에서도 경쟁이 있으며 페로몬 향이 짙을수록 상대에게 압박을 준다는데, 알싸한 박하 향을 내뿜는 게 특징이라고 했다. 베타는 그냥 딱 일반인을 가리킨다는 설명이 다였다. 마지막으로 예나가 속해있다는 오메가 쪽 설명을 읽는데, 유리는 사람 미어터지는 버스 안에서 하마터면 왈칵 눈물을 쏟아내 버릴 뻔했다. 오메가는 최하위층이라 멸시를 받아서 보통 자신들이 오메가인 걸 숨기고 산댔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히트싸이클은 쉽게 말하면 동물들 발정기 같은 건데, 약을 따로 챙겨 먹지 않으면 하고 싶은 욕구 도저히 못 견딜 정도 되어버린단다. 근데 보통의 오메가 처지에선 약이 비싸서 구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그 기간엔 알파라도 맞닥뜨리면 정말 큰 일이 날 수도 있다고, 강간당하는 것도 흔한 일이라고 했다. 오메가한테선 숨 막히도록 달콤한 향이 풍긴다는 문장까지 읽어냈을 때 버스는 마침내 집 앞 정류장에 도착해 있었다. 유리는 빠른 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겨가다가 곧이어 뛰기 시작했다. 맞닥뜨리는 바람이 차서 그런지 눈알이 괜히 따끔거렸다. 유리는 따끔거림을 꾹 참고 내달렸다. 문을 확 열자마자 보였다. 예나가 사탕인지 뭔지를 오물거리며 귀엽게 부푼 볼살을 꼬물거리고 있었다.

 

“야, 벌써 왔어? 오늘은 좀 빨리 왔네?”

 

정말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 듣고 유리는 왠지 모르게 더 울컥했다.

 

“왜 더 진작 얘기 안 했어요?”

“엉? 뭐가.”

“왜 미리 얘기 안 했냐구요!”

“지금 무슨 얘기하는 거야 대체.”

“언니 오메가인 거요. 오메가라서 베타들보다 훨씬 힘겹게 살아왔던 거, 내가 언니 중학교 때부터 봤는데 진작 얘기했어야죠. 내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알아요?”

“어? 그 이야기? 야! 유리야 그거 있잖아,”

“됐어요 아무 말 안 해도 돼요. 지금은 아무 말도 안 해도 된다고요.”

 

유리는 충동적으로 제 키보다 살짝 더 큰 예나를 부둥켜안았다. 어찌나 꼬옥 안아버렸던지 안긴 예나가 켁켁거릴 지경이었다.

 

“아니, 야, 이 멍청아 그게 아니구....... 뭐 할려구 그러는 거야 잠깐만 내 얘길 들어보라니깐!”

 

버둥거리면서 무슨 대꾸하려는 예나 입술을 유리는 앙 물어 버렸다. 확 끼쳐오는 달콤한 향기에 정신이 금세 혼미해져 버려서 그랬다. 이대로 질식해버릴 것만 같았다. 페로몬이라는 게 정말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거인 모양이었다. 돌이켜보면 예전부터 그랬다. 쪼꼬미 시절부터 조유리는 최예나라면 사족을 못 썼다. 그래놓고선 딴 거 아니고 웃겨서 쫓아다니는 거라고 애써 퉁치곤 했다. 근데 그게 다 이 언니가 빌어먹을 오메가라서 그런 거였어....... 유리는 최예나 뒤통수 감싼 손 덜덜 떨면서 코도 막 훌쩍거렸다. 숨이 찼고 또 벅찼고 좋은 만큼 또 괴로웠다. 입술 진득하게 부비다가 잠깐 떨어진 그 찰나의 순간에 유리는 숨 잔뜩 몰아쉬며 말했다. 멍하니 손가락 끝으로 아랫입술 만지작거리고 있는 예나를 향해서,

 

“언니 나 아까 전에 알았어요. 아니 방금이요. 내가 언니 좋아하는 거 같아요. 맞아요 나 언니 좋아해요. 오메가는 무조건 알파를 만나야 된다는 글도 봤는데 그런 거 상관없어요 나한텐. 언니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언니가 그랬음 좋겠어요. 좋아하니까.......”


가까운 미래에 두고두고 회자되는, 울음기 가득한 조유리표 사랑 고백이었다.

 

 

 

 

 

 

 


“유리야 걱정하지 마! 그거 다 장난이니까.”

 

유리가 그 청천벽력 같은 소릴 들은 건 그 전설의 고백으로부터 15분쯤 지난 후의 일이었다. 설움 북받쳐서 질질 짜다가 겨우겨우 눈물 멈춘 상황이었다. 사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다. 말뜻이 이해 안 돼서 ‘뭐라는 거에요.’했다.

 

“아니 유리야, 니가 워낙 잘 속아 넘어가서 재밌으니까 그냥 평소처럼 이상한 장난 한번 친 건데. 그게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그냥 장난 한번 친 건데.”

 

푸스스 웃으며 말하는 예나 얼굴 보면서도 유리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다.

 

“야야 세상에 오메가? 뭐 그런 게 어딨니.”

“없다구요....? 다 장난이라구요?”

“어휴, 순진하기도 해라. 어쩜 좋아 그렇게 순진해서 어떻게 이 험한 세상 살아가려고 그러니. 진짜 귀요미다 귀요미.”

 

멘붕 온 유리 볼살 만지작거리며 예나는 시원하게 웃음 터뜨렸다. 그리곤 말을 이었다.

 

“아니 그리구 장난치다 뇌절하는 거 같아서 중간에 그만두기도 했는데, 그래서 나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니가 뜬금없는 타이밍에 급발진하면서 달려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

“니가 원하는 대로 사귀어줄 테니까! 막 질질 짤 정도로 언니 너무 좋아하지는 말고! 사랑한다 조유리!”


마지막엔 양팔까지 벌려가면서 요 지랄을 떠는데, 얌전히 멍 때리면서 볼살 늘림 당하던 조유리는 예나에게 기구한 사연 같은 건 없다는 사실 깨닫고서 감격해 눈물 줄줄 흘려대기는 개뿔, 존나 빡치기 시작했다. 난 누구 말 한마디에 속아 넘어가서 맘고생을 이리도 심하게 했는데. 깜빡 속아서 내 인생 두 번째 키스를 지한테 갖다 바쳤는데 –사고나 다름없는 조유리 첫 키스 상대도 최예나였다, 공교롭게도- 저딴 발언을 해! 제대로 빡이 친 유리가 주먹을 말아쥐었다. 자고로 이쁜 망나니한테 매가 약이라는 건 익히 알려지고 또 증명된 사실이었다. 있는 힘껏 날린 조유리표 진심 펀치에 어깨 제대로 얻어맞은 예나가 악! 소릴 냈다.

 

“뭐야 쳤냐? 이씨 조유리 지금 쳤냐고.”

“그래요 쳤다 쳤어! 언니 왜 이렇게 찌질해요? 얼마나 찌질하면 그딴 장난을 다 치냐구요!”

“야 대체 누가 찌질하다는 거야!”

”찌질해요 완전 왕찌질이거든요!“

“뭐? 야, 니가 제일 찌질해!”

“아니거든요? 언니가 세상에서 제일 찌질하거든요! 이 세상 사람들 전부 다 알고 있어요!!”

 

역시나 조유리 최예나 동거하는 이 집 한 칸,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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