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제로미.




이 편지를 받을 때쯤 아마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


슬퍼하지마. 제로미. 이미 오빠가 울고 있는 게 보여.

제발 부탁이니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아줘.

이 모든 것이 내가 스스로 자초한 것이야.

내가 선택한 남자, 내가 선택한 아기, 내가 선택한 삶이자 죽음이야.

제로미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정말이야. 오빠가 잘못한 것은 한개도 없어.


사랑하는 나의 오빠.

항상 제로미 너를 사랑했어. 그리고 늘 고마웠어.

부왕얼굴도 모르고 자라 어려서  모후의 죽음을 봐야 했지만...

늘 외롭고 또 무서웠지만...

그럼에도 나는 행복했어. 내곁엔 항상 제로미가 있었거든.

제로미는 어린 아기시절부터, 나에게 너무나 아름답고 재밌는 이야기를 밤마다 내 머리맡에서 들려줬어.

용을 물리친 용감한 기사이야기, 레이디와 사랑에 빠진 왕자이야기...등

제로미가 들려준 수많은 낭만적인 노래들..

그 아름다운 전설들...

제로미 덕분에 내 어린 시절은 꿈과 낭만으로 가득차  공허했던 내 마음은 항상 들뜨고, 두근거렸어.

오빠가 밤새 내 침대맡에서 자장가를 불러주고 책을 읽어주면  악몽도 꾸지않고 매일밤 무도회에서 왕자님과 춤을 추는 즐거운 꿈을 꾸곤 했지.


제로미.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해.

내게 이렇듯 아름다운 어린 시절을 만들어 주어서.

이 추억덕분에 나는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생겼어.


나는 모후의 슬픈 최후를 보고 마음속으로 되뇌고 또 되뇌었었지.

난 모후처럼 살지 않을꺼야!

난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행복할꺼야!

하지만 어리석게도 모후와 같은 길을 걷고야 말았어.


사실 나 제로미 많이 원망했었어.

내가 불행해져서 오빠를 가슴아프게 하고 싶은 심술도 잔뜩 난적도 있었어


제로미. 나 많이 삐뚤어진 아이였나봐.

어렸을 때부터 나혼자 제로미를 독차지 하고 싶었어.

다른 사람이, 그 누구도 오빠를 갖는 것이 싫었어.

제로미.부디 이런 못난 안느를 용서해줘.


그리고 나와의 약.속.기억하지?

꼭 꼭 약속 지켜야 돼!

내가 설사 미워도 나와 한 약속 잊으면 안돼!


내 아기를 오빠의 뒤를 이어 브리태니아 국왕이 되게 해줘.

부디 그 아이에게 내 몫까지 오빠의 사랑을 줘.


절대로 내뒤를 따라 죽을 생각하지마!

그러면 내 아기는 누가 지켜.

일찍 내뒤를 따른다면 영원히 제로미를 미워할꺼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가지 소원이 있어.

내 시녀 마르타가 설명해줄꺼야.

부디 바라건데 내 남편 모나한을 없애줘.

내 아이의 앞날에 방해가 될 자야.


그리고 또, 모나한과 더불어 플랑드르 공국을 제발 내 아이의 앞길에서 치워줘.

대 브리태니아 왕실의 핏줄이고, 위대한 검은 용의 후예인, 내 아가의 앞날에 방해물은 모두 제거해야해.


내 아.들.의.앞.날.에는 꽃길만 열려야 해!


할수있지? 제로미?

할꺼지. 제로미.


나를 진정 사랑했다면 내 마지막 소원을 부디 이뤄줘.


내가 먼저 검은 용의 무덤에 들어가서 제로미를 기다릴깨.


부디 천천히 내몫까지 행복한 삶을 누리다가 와.


우리는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 아냐.제로미.


그러니 슬퍼하지 말고 제발 힘을 내!


언제까지나 시간이 기다려 주지 않아.


지금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아.


제로미!  사랑하는 내 오빠!

제로미 덕분에 내 삶의 순간 순간이 행복했어 .

이제는 내 아기가 제로미를 그렇게 만들어 주길!

부디 나처럼 후회하는 생을 살지 않기를.


안녕. 나의 제로미. 영원히 사랑해.



           - 안느로부터-               」



**********

안느의 마지막 편지를 쥔 제롬의 손가락이 부들 부들 떨렸다.


안느가 불과 1살의 아기일 때,선왕을 잃었다.


그리고 안느의 나이 13살때 모후마져 돌아가셨다.


밤새도록 울어대는 핏덩이 어린 누이를 안고 얼마나 많은 밤을 울면서 지새웠던가.


그렇게 자지러지게 울다가도 5살위의 오라비가 한 번 품에  안아주면 울음을 뚝 끄치던 사랑스러운 누이였다.


제롬의 눈엔 아직도 오빠의 작은 손가락을 빨며 까르르 웃던 1살짜리 아기동생의 얼굴이 선했다.



고향에서 멀고먼 이곳 플랑드르까지 시집와 홀로 쓸쓸히 산고를 겪다 세상을 떠나간 누이의 모습이 눈에 밟혀 왔다.



마지막까지 고통에 시달리다 죽어갔을, 제롬의 눈엔 아직 한참 어리기만 한 안느의 앳된 얼굴이 떠올라 제롬은 슬픈과 분노가 뒤섞여 작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너는 아직도 이리 어린데..


너는 아직 아기인데...


하나뿐인 피붙이인 이 오라비가 너를 보호해주지 못했구나.


제론은 목이 메여 가슴을 치며 흐느꼈다.


군터도, 줄리앙도, 달리아도 국왕의 아픔을 같이 느꼈지만, 그의 고통을 덜어 줄수는 없었다.


제롬은 여러번 정신을 잃고 까무러칠 뻔했다.




잠시 정신을 찾은 제롬이 마르타를 애닳게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혹시...안느가 내게 마지막으로 더 남긴 말은 없었어?"


마르타는 양볼에 흘러내리는 두 줄기 눈물울 닦아내며 대답했다.


이제 그녀가 안느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폐하.공주님께서 이말을 꼭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공주님의 아기를...그 분을 자신처럼 여기고, 폐하께서 공주님을 사랑하셨던 것처럼 공주님의 아기도 사랑해달라 하셨습니다."


"으아아아악!!"


마르타에 의해 전해진 안느의 마지막 유언은 제롬의 살아 숨시는 심장을 갈가리 찢어 놓을 듯 날카로운 비수처럼 꽂혔다.


잔인한 내 동생 안느!!


그리 아기가 걱정되면 죽지 말았어야지!

왜 너는 아기를 위해 그리 쉽게 네 목숨을 포기한 것이야?

내가...이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알면서..

네 아기따윈 관심없어! 안느!

내게 중요한 것은 오직 너였어.

네가 이 세상에 없는데, 조카가 무슨 소용이야.


달리아가 제롬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폐하.뭐하십니까? 안느 공주님의 유언을 들어주세요.

이러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그때 다시 시녀 마르타가 나섰다.


그녀는 상전임에도 주저않고 모나한 대공을 손가락 끝으로 가르키며 말했다.



"폐하. 이 자입니다.

모두 이자가 벌인 일입니다.

제가 뒤에서 모두 듣고 보았습니다.

안느 공주님이 아직 연령 미령하시어 , 출산시 생명이 위독했습니다.

 어의가 아기가  작을 때 낙태하도록, 미리 임신초기에 모나한 대공에게 간곡히 권했습니다.

하지만 모나한 저자가 어의를 살해해 입을 막았습니다."


"거짓말!!저 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 거짓입니다."


모나한이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마르타에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네 이년!  어디서 누구 사주를 받아 흉악한 간계를 꾸미느냐?

처남! 저 년 혀부터 잘라야 하네!"



마르타는 달리아에게 아기를 건네주며, 지지않고 끝까지 진술했다.


" 그는 안느공주님이 죽기를 빌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실을 알고서도 숨겼습니다.

폐하께서 이 사실을 아시면, 아기를 낙태시키고 안느 공주님 생명을 먼저 구할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공주님이 죽으면, 어린 아기 왕자님을 앞세워 브리태니아의 섭정공이 되어 저희 나라를 집어 삼키려는 속셈이었습니다."


"네 이년!!"


모나한이 눈이 뒤집혀 마르타에게 달려들어 목을 비틀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줄리앙이 검을 들어 위협해서야 모나한은 마르타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모나한 대공! 입 닥치고 가만 있으시오."


달리아가 앞으로 유유히 걸어와 모나한을 지목했다.


"이 자를 브리태니아 왕실 전복 음모 및 안느공주 시해죄로  체포한다!"



달리아가 군사들에게 지시해서 모나한을 포박하게 했다.


모나한은 발버둥치며 발악했다.


그는 잽싸게 제롬에게 달려가 제롬의 작은 몸을 한품에 안았다.


순간, 줄리앙과 군터가 놀라 발검했다.


"아...아니....처...처남!!

나를 살려주게! 내 아내 안느를 봐서라도..."


제롬은 혐오감에 모나한을 노려보았다.


남편을 그리도 사랑했던 안느가 마지막 편지에 남편을 죽여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것으로 보아도 저 작자가 한 짓은 죽어 마땅했다.


모나한이 국왕인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범하고 감히 유린하도록 둔 것은 오직  안느의 행복을 위해서였다.


그 역겨운 좆이 제롬의 몸속 깊이 박히고 이 자의 더러운 혀가 자신의 입술을 희롱할때, 몇번이고 이 자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다.


제롬은 모나한의 가슴을 밀어쳐 냈다.


"내몸에 손대지마! 모나한!"



모나한은 갑자기 씩 웃으며, 소름끼치게 징그러운 눈빛으로 제롬을 바라 보았다.


부인을 잃은 불쌍한 남편연기를 하던 그는 불쌍한 척 하던 가면을 벗고 바로 실체를 드러냈다.



그는 커다란 손으로 제롬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귀에 속삭였다.


"처남.이러면 안되지.

우리 사이가 평범한 사이는 아니쟎나.

내 것을 몸안에 수없이 받아 들이며 그렇게 좋아서 허리를 흔들고 소리를 질러댔으면서...설마 그새 나에 대한 사랑이 식은 것은 아니겠지?"


제롬의 두 푸른 눈동자에 하얀 불꽃이 튀었다.


짜악!


제롬의 작은 손이 모나한의 뺨을 갈겼다.


제롬은 모나한을 밀치고 줄리앙에게 달려가 그의 손에 들려있던 검을 빼앗아 쥐었다.


줄리앙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제로미...뭐...뭐할려고?"


군터가 줄리앙에게 눈짓했다.


군터는 이미 상황을 예감하고 그의 바스터드 검을 뽑아든 채였다.


제롬은 분노로 파란 눈동자가 시뻘개져서 검을 들고 모나한에게 달려들었다.


"죽어!"


제롬의 작은 몸으로 검이 무거워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모나한은 제롬의 모습을 보고 키득키득 비웃었다.


" 귀여운 처남. 왜그래? 부끄러워서 그래?

그러지 마. 신하들앞에서 나와의 관계를명명백백하게 밝혀야지.

모두 듣거라! 아무도 나를 해칠수 없다!

 나는 브리태니아 왕실의 하나뿐인 후계자의 생부다.

그리고 너희 사랑스런 국왕의 정부니라!

우리는 한두번 몸을 섞은 게 아니야!"


"닥쳐!"

줄리앙과 군터가 분노로 눈이 뒤집히는 동안, 제롬이 검을 휘두르며 모나한에게 달려 들었다.



모나한은 여유있게 몸을 틀어  제롬의 공격을 피하며 동시에 제롬의 몸을 끌어 안았다.



"요렇게 제발로 품에 안기는 데 어찌 내가 거부할 수 있겠어?

우리 예쁘니. 그렇게 나에게 안기고 싶었어?

그만 튕기고 이제 나를 받아들여.너도 좋아했쟌아!

너도 같이 즐겨놓고 이제와서 그러면 곤란하지."



제롬은 화가나 그의 품에서 벗어 나오려 발버둥쳤다.


모나한은 길고 강한 팔을 이용해 제롬의 손에서 검을 뺏으려 했다.


"얌전히 있어! 귀요미! 앙탈부리지마! 크헉!!"


제롬의 작은 손에서 막 검을 뺏으려는 찰나 모나한이 목을 잡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모나한의 목에 짧은 단검이 꽂혀 있었다.


어느새 달리아가 모나한의 뒤에 유령처럼 다가와 그의 목에 단검을 꽂아 넣은 것이다.


그제서야 몸이 자유로와진 제롬은 군터의 품에 안겼다.


"모나한 대공. 

안느 공주의 부군이라 가급적 명예롭게 보내드리려 했는데, 끝까지 추하게 구는군요. 당신의 시체는 사지가 갈가리 찢겨 개먹이로 던져질 겁니다.

감히 존엄하신 국왕 폐하의 몸에 손을 대다니."


목에 피를 뿜으며 쓰러진 모나한의 위로 달리아가 다가서며 차가운  눈으로 그를 내려다 보았다 .


모나한의 두 눈은 공포로 튀어나올 듯 커졌다.


달리아가 군터에게 눈짓했다.


하지만 군터보다  줄리앙이 먼저 나섰다.


달리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줄리앙의 또다른 롱소드가 모나한의 가슴 깊숙히 박혔다.


"끄아아악!!"


"이건 감히 내 애인을 건드린 댓가다!

이 더러운 새끼야."


가슴과 목에서 붉은 피가 솟아 줄리앙의 얼굴에 튀었다.


줄리앙이 더러운 것이 튀어 불쾌하다는 듯이 소매로 피를 닦아낸 뒤 모나한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퉷! 우리 아기 공주를 괴롭힌 댓가로 최대한 오래 고통스럽게 보내주마!"


줄리앙이 다시 모나한의 가슴에서 검을 뽑아 다시 내리칠려 하였다.


쨍!


그순간 군터의 거대한 바스터드 검이 줄리앙의 검을 막았다.


"뭐야? 너. 귀쟎게!"


"마지막 끝은 폐하께서 손수 하시도록 허락해주시오.

줄리앙 대공.폐하께서는 이자에게 돌려줘야할 빛이 있소."


줄리앙이 제롬을 돌아 보았다.


제롬은 조용히 고개를 끄떡이며 검을 들고 쓰러진 모나한의 앞에 섰다.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모나한은 가슴을 부여잡고 앉아 제롬을 바라보았다.


점점 숨이 끊어져 서서히 흐려져가는 시야에 에드워드5세의 요정같은 아름다운 얼굴이 들어왔다.


순간 모나한은 아득해져가는 정신속에서도 이상하리만큼 큰 행복감이 물밀듯 몰려왔다.


"국왕 폐하.내 사랑. 당신의 손에 죽게되다니...크헉 ..

이런 죽음도 나쁘지 않군..큿!!크허억.."


입에서 피를 한웅큼 쏟면서도 모나한은 기쁜듯 환하게 웃었다.


제롬은 소름이 돋았다.


죽어가면서도 늘어놓는 저 역겨운 자의 사랑고백에 죽은 누이의 원혼이 분노하는 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듯 했다.


"지옥에서 안느에게 영원히 참회하라!"



제롬은 어디서 났는지 분노와 증오의 강한 힘으로 검을 가로로 있는 힘껏 쳐냈다.


뗑구르르.


모나한의 머리는 툭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그의 얼굴은 희열에 가득찬 미소로 즐겁게 웃고 있었다.


제롬은 그 자리서 힘없이 스르르 쓰러져, 놀란  줄리앙이 바로 달려가 무릎밑으로 팔을 걸어 줄리앙의 가슴에 안아 들었다.




군터가 군사들에게 지시했다.


"이 자의 사지를 잘라 개먹이로 던져주고, 머리는 성벽 꼭대기에 전시하라!"


제롬이 줄리앙에게 눈짓하자,줄리앙은 마지 못해 안느가 누워있는 침대 모서리에 그를 앉혔다.


제롬은 말없이 안느의 머리맡에 앉아 하염없이 안느의 얼굴만 바라 보았다.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안느. 이제 네 소원 하나를 이뤘어.

너와의 약속은 모두 다 지킬꺼야.

이 제로미만 믿어."


제롬이 계속 혼자서 중얼댔다.


아무도 제롬의 곁에 다가 갈수 없어 난처해하고 있을 때였다.


"으아앙! 응애.응애."


 달리아의 품안의 아기왕자 리차드2세가 막 잠에서 깨어 울음을 터트렸다.


아기의 요란한 울음소리에 제롬의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아기왕자는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경기까지 일으키고 미친듯 울어 댔다.


마르타가 달려와 아기를 어르고 달래고 난리를 쳤지만 아기는 기어이 작은 몸이 시뻘개지도록 울어댔다.


달리아가 아기왕자를 지켜보더니, 아기를 안고 조용히 제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제롬의 품에 아기를 안겼다.


달리아의 품에서  작은 아기주먹으로 치며  발악하던 튼튼한 아기왕자는 제롬의 품안에 들어가자마자, 조용해졌다.


신기하게도 아기는 언제 울었냐는 듯 제롬의 품에서 작은 두손을 제롬을 향해 뻗으며 방글방글 웃었다.


제롬의 눈은 경이에 차 아기에게 자신의 얼굴을 좀더 가까이 대었다.


아기는 연푸른 눈동자를 반짝이며 작은 손으로 제롬의 얼굴을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제롬은 강한 기시감을 느꼈다.


어린 시절, 5살 어린나이에 모후가 처음으로 아기동생 안느공주를 제롬의 품에 안겨주었을 때도, 안느는 자신의 아들처럼 울음을 뚝 그치고 오라비와 눈을 맞추며 방글방글 웃었었다.


아기왕자는 제롬의 머리를 다시 잔인하고 냉정한 현실로 돌아오게 해주었다.





아기를 품에 안고 제롬은 자리에서 번쩍 일어섰다.


제롬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줄리앙과 군터, 달리아외의 수많은 브리태니아 기사들을 향해 외쳤다.


"오늘부로 '플랑드르 '란 이름은 이제리아 지도와 역사에서 사라진다."


그 순간 제롬의 두 눈에서 지옥에서 돌아온 악마가 보였다.






조아라 노블레스 작가. 회사원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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