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 물고기는 죽으면 파도가 된대

https://posty.pe/l692re

원문 > 물고기 흉내내기

https://posty.pe/ictucp





  오빠의 사인은 익사였다고 한다.

  하지만 오빠의 사인은 익사가 아니다. 정확하게 오빠는 죽지도 않았다.

  오빠는 아주 오래 전에 물고기가 되었다. 물고기가 바다로 회귀한 것을 죽음이라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말엔 분명히 어폐가 있다. 아가미가 달린 오빠는 물속에서도 숨을 잘만 들이쉬었을 거고 뭍으로의 길고 긴 여행이 끝났기 때문에 집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오빠의 사인은 익사가 아니다. 정확하게 오빠는 죽지도 않았다. 구태여 수식어가 붙어야 한다면 그건 실종 정도가 되어야 맞았다.

  오빠가 사라진 날 공교롭게도 나는 오빠의 고향 앞에 같이 서 있었다. 오빠가 사라지기 전날 하루 온종일을 좁은 방에서 죽이던 오빠는 대뜸 문을 젖히고 나오더니 정수기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띵. 하고 물이 나오는 소리가 났다. 오빠는 작은 유리컵에 물을 가득 담아놓고는 눈 한쪽을 그대로 처박아버렸다. 오빠는 천천히 숨을 쉬듯 눈을 깜빡였다. 아주 얇고도 투명한 유리컵 너머로 굴러가는 눈알을 봤다. 도저히 거기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들어올린 오빠는 작은 유리컵의 물을 싱크대에 부었다. 푹 젖은 앞 머리에서 똑. 하고 물방울이 낙하하는 소리가 났다.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오빠의 머리에서 계속 계속 물이 쏟아져 흘러내렸다. 말없이 물이 차오르고 있을 싱크대를 보던 오빠는 그대로

  풍덩

  머리를 처박았다.

  그 소리가 너무도 이질적이라 한참을 눈만 깜빡이던 나는 오빠가 싱크대에 목만 걸친 채 넘어지고서야 일어섰다. 쓰러지는 오빠를 부축하고 소파에 누이는데 방금 전 아주 얇고도 투명한 유리컵 너머로 굴러가던 눈알이 나를 파고들었다. 마치 그 모습이 다 죽어가는

  물

  

  기

  같

  았

  다.

  "오빠, 나랑 바다 보러 갈래?"

  절대로 뱉어서는 안 될 말이 입밖을 탈출한 순간 오빠가 웃었다. 낚싯줄에 입꼬리가 걸린 것처럼 아주 기이하게 웃었다. 눈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 입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아주 해괴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가 보다 했다. 우리는 다음 날 바다에 갔다.




  파도는 햇살에 부서지면서도 발밑까지 밀려왔다가 다시 저만치로 밀려가기를 반복했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신발코를 뒤덮는 포말이 바다를 밟고 서 있다는 착각을 유발했다. 오빠는 수평선을 보는 듯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말했다.

  "그거 알아? 물고기는 죽으면 파도가 된대."

  힘겹게 본 오빠의 눈에서는 진주 같은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파도가 되고 싶어?"

  "응."

  바다에 오고 처음으로 마주친 오빠의 얼굴은 내가 아는 오빠의 얼굴 중에 서 가장 일그러진 모습이었다. 살짝 뻗었던 손을 다시 허벅지에 갖다 댔다. 그런데 뇌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손이 제멋대로 오빠를 안았다. 얼굴도 목도 온통 진주 투성이가 된 오빠가 힘없이 나를 안았다. 소라고둥을 귀에다 댄 것처럼 오빠의 입에서는 파도 소리가 났다.

  오빠는 마지막으로 나를 힘껏 끌어안고 다리를

  절

  뚝

  이며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오빠의 울음소리는 파도 소리에 묻혔다. 그리고 오빠도 파도에 묻혔다. 오빠는 그날 고향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날 이후로 바다에 가지 못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갔을 텐데 가고 싶은 마음도 크게 없었다. 오빠가 햇살에 부서지며 밀려왔다가 다시 저만치로 밀려가는 모습은 가끔 궁금했지만, 어쨌든 나는 그날 이후로 바다에 가지 않았다.

  대신 인근에 있는 수영장에 갔다. 오빠가 아주 오래 전에 물고기가 되었으니 나도 비슷할지 몰랐다. 그저 나는 의식처럼 그곳에 갔고, 수영장에 가는 날이면 꼭 '그것'을 하곤 했다.

  물고기가 하는 짓이면 무엇이든 흉내를 내는 아주 단순한, 일명 '물고기 흉내내기 놀이'. 나는 수영을 잘하는 축에 속하진 못했지만, 잠수는 잘했다. 시작은 잠을 자는 물고기처럼 수영장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먹이를 사냥하는 물고기처럼 엉성한 손과 발로 물살을 가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잠을 자는 물고기와 먹이를 사냥하는 물고기가 된 내가 비치는 유리창을 구경할 수도 있었다. 유리창에 갇힌 나는 유영했고 흔들리는 물살은 물고기의 헤엄을 닮았다. 그러다 보면 수영장 바닥에서 오래 전에 파도가 되었을 오빠가 보이기도 했다. 그럼 나는 그 파도 를 쫓아, 오빠를 쫓아, 파도인지 오빠인지 모를 것을 쫓아 수영을 했다.

  오빠가 내 앞에 멈추어 섰다. 일렁이는 물살 속 오빠의 형체는 물살보다도 더 일렁였지만 나는 물살과 오빠를 확실하게 구분해냈다. 오빠는 웃고 있었다. 나도 언젠가 봤던 그 모습대로 오빠가 웃었다. 낚싯줄에 입꼬리가 걸린 것처럼 아주 기이하게 웃었다. 눈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 입안으로 들어갈 때가지 아주 해괴하게 웃었다.

  "오빠."

  대답이라도 하듯 공기방울이 떠올랐다.

  "파도가 됐어?"

  그 공기방울이 내가 벌린 입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은 이미 목구멍에물이찬때였다. 커억- 산소대신물이코와입으로하릴없이난입 해왔다. 지금은잠을잘때가아닌데몸이가라앉았다. 어푸, 어푸- 몸이침 강하자 오빠는 물고기니까 오빠와 같은 피가 흐를 나도 물고기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의 몸속엔 같은 피가 흐른다. 우리의 몸속에 흐르는 피는 어쩌면 바닷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나에게도 아가미가, 아가미가···.

  물 바깥에서는 앳된 목소리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여기 사람이 빠졌다고. 제발 누가 좀 와서 구해달라고.

  나는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건져졌다. 콜록, 콜록- 양껏 들이마신 물 을그대로뱉어냈다. 콜록, 콜록- 머리가어지럽고내등을받치고있는것 이 미끈한 수영장 바닥인지 미끈한 수영장 물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콜록, 콜록- 실눈사이로보인빨간옷을입은사람들이내가슴에손을댄다. 아, 이 모습 익숙하다. 보건 시간에 배운 적이 있었다. 심폐 소생술. 심폐. 소생. 술. 박자에 맞춰 가슴을 누르자 몸이 팔딱이는 물고기처럼 흔들렸다. 그 모습이 마치 물 밖으로 나와서는 살아갈 수 없는

  물

  고

  

  같

  았

  다.

  오빠.

  파도가 됐어?

  응.

  나는 물에서 건져지기 전에 그걸 들었다.






- 

220214 멘션한 트친 글 내 문체로 써 오기

안지안 님(@13utterf1ies)의 글을 제가 써 보았습니다...... 굵은 글씨는 모두 지안 님의 글에서 인용한 문장이에용.

이주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