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닌니












깜깜한 밤, 목이 말랐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잠에서 깨 최대한 잠이 달아나지 않으려고 비척이며 주방을 찾았다. 시원한 물은 되려 잠을 깨울테니 꺼내 둔 물을 마시기 위해 잔을 찾는데, 한 방에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반쯤 감은 눈을 끔뻑이며 한걸음 떼냈을 때,




‘능력 차는 어쩔 수 없어.’




생각지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찌나 집중 했는지 센티넬이면서 기척도 못 느꼈다.




‘여주가 있어도 약을 먹어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 유일한 탈출구는 주연이야.’




서여주는 몰랐다. 모르게 만들었단 말이 정확했다. 그들은 항상 멀쩡한 척 웃었고, 서여주가 손 잡고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끼듯 환히 웃었다. 병동에선 서여주의 등급이 팀원들보다 한단계 떨어지니 그들을 완전히 가이딩 하지 못하는 걸 그러려니 해서 조언도 하지 않았다. 팀원들의 유대감이 좋으니 알아서 잘하겠지 판단했던 탓이다. 약을 먹는 걸 본 적도 없고, 힘든 티도 안 냈다. 그러고선 무얼 알아주고, 무엇을 해주길 바랐던 걸까.




‘너도 봤잖아. 정우 죽다 살았어. 여주가 아니라 주연이가 한 거야.’

‘그치만…, 여주가 많이 힘들어 하잖아.’

‘이해 해줘야지. 걔도 이해 할 거야. 우릴 위한다면.’

‘……….’

‘주연이가 있어야 해.’




서여주의 시야가 돌아간다. 목이 말라 내려왔던 서여주는 눈물을 삼키며 조용히 계단을 올랐다.


그제야 꿈이란 걸 깨달았다. 글에 쓰여진 내용이었으나 본 적 없는 장면이다. 김도영이 정재현에게 홍주연을 팀에 남겨야 한다고 말하는 걸, 화장실에 갔던 홍주연이 들었다. 그리곤 조금 안심했다. 자신이 나름 이 팀에 필요한 사람이구나 느껴서. 홍주연은 김도영이 방에 올라가고 몇 분 뒤에야 화장실에서 나왔다. 서여주가 내려 왔다는 걸 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서여주가 삐뚤어진 계기를 아는 사람도 없다.




‘여주야,’

‘조용히 해.’

‘좀 들어 줘!’

‘닥치라고.’




계단을 오른 서여주 앞에 새하얀 천막이 처져있다. 밖에선 볼 수 없는 천막 안에 있던 서여주와 홍주연. 크게 위험한 임무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만약을 위해 가이드가 동행 했을 뿐, 그곳에서 가이드가 할 일은 임무를 끝내고 온 센티넬을 돌아가는 길에 가이딩 하는 것 뿐이었다.




‘이 팀에 계속 있어야 한다면 네게 지켜지는 사람이 아니라—!’

‘숙여!!’




현장을 몇년이나 돌았던 서여주와 달리 홍주연은 천막 안을 안전지대로 여겼다. 어차피 현장과는 조금 떨어진 자리였으니 팀원이 아닌 사람들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홍주연도 서여주와 마찬가지였다. 팀원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이곳은 안전할 거라고,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고 떠났으니까. 현장에 무지한 홍주연은 그 말을 굳게 믿을 수 밖에. 사람이 다 그렇잖아. 나에게만은 사고가 나지 않을 거라고 안일하게 굴곤 했으니까. 그러니까 이건 팀원들이 문제였다.




‘그, 이게,’

‘칼 들어.’




서여주는 홍주연을 지켰다. 고작 가이드 둘만 있는 곳이라 레벨이 낮은 센티넬이 찾아온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홍주연은 칼을 쥐었고, 서여주는 총을 쥐었다. 서여주는 홍주연을 뒤로 숨긴 채 상황을 봤다. 총기 사용 후 주변에 더 있을지도 모를 적들이 오는 시간과 팀원들이 올 시간, 둘 중 뭐가 더 빠를지. 와중에 뒤에서 덜덜 떨리는 몸이 느껴져서 짜증이 치밀었다. 자기 한 몸을 지키기도 벅찰 상황에 지켜야 할 사람도 있다.


서글프게도 서여주는 자기가 죽더라도 홍주연을 지켜야겠단 생각을 했다. 김도영의 말대로 팀원들을 위해야 하는 서여주는 끝내 이해 했기 때문이다.




‘그냥 가만히 있어. 괜히 끼어들지 말고.’

‘하지만 너 혼자서,’

‘거슬린다고.’




유약하고 착한 홍주연은 자기 한 몸 지킬 힘 없으면서 남을 걱정했다. 홍주연이 나쁜게 아니라 상황이 나빴다. 서여주는 챙겨 둔 탄창이 없었다. 쥐고 있는 총 안의 것이 전부였다.


홍주연을 밖으로 빼돌리자니 밖에 누가 있을지 몰라서 도망 가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눈 앞의 센티넬은 낄낄대며 두사람의 공포를 즐겼다. 전형적인 엑스트라 악역이었다. 저쪽도 이쪽도 둘, 하지만 신체 조건이 너무 달라서 한명만 있더라도 버거운 상황이었다.


결국 서여주는 홀로 싸웠다.




‘개소리 말고 테이블 아래로 가.’

‘여주야!’

‘빨리!!’




서여주의 총구가 센티넬들을 향해 있었다. 홍주연은 이를 악 문 채 서여주의 말을 따라 테이블로 갔다. 어차피 도망 갈 곳이 없다는 걸 잘 아는 센티넬들은 더이상 못 봐주겠다는 듯 자리를 정리하고자 했다. 그 틈을 노렸다. 방심이란 이름을 가진 틈.


센티넬 뒤에 홍주연이 빼 둔 총이 있었다. 현장에서 무기를 내려두는 건 자살 행위에 가까웠으나 어차피 홍주연은 사용법도 몰랐으니 상관 없었다. 총을 이리저리 만지며 탄창을 빼뒀고, 서여주는 다년간 쌓아 온 실력으로 정확히 탄창을 쐈다.


폭죽이 터졌다. 재빨리 몸을 숨긴다고 했으나 탄피가 찢겨 날아오는게 더 빨랐다. 팔이 찢기고, 허벅지엔 탄창 파편이 박혔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팠으나 우는 소리를 낼 때가 아니었다. 악을 지르는 센티넬들이 죽여버리겠다며 서여주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몸을 날린 곳은 통신기 뒤였다. 묵직한 기계가 뜨거운 열을 내며 지직대는 노이즈를 만든다.




총소리 누구야?




서여주보다 가까이 있던 센티넬들은 그의 바람대로 부상을 입었으나 그렇다고 능력을 못 쓰는게 아니었다. 어차피 하나만 데려가면 된다며 홍주연이 숨어있던 테이블을 들어올렸다. 이제노와 같은 사이코키네시스. 사색이 된 홍주연이 제 머리 위로 뜬 테이블에서 서여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날아들던 테이블을 막을 수 없던 서여주는 몸을 굴렸다. 커다란 파음을 내며 테이블이 박살났다. 질문에 답할 새도 없이 통신구가 박살이 난다. 이제 곧 팀원들이 오겠지. 임무는 끝났을까? 서여주는 부디 팀원을 제외한 이들이 오지 않길 바랐다.




‘네가 피하면 어쩔건데.’




서여주 멱살이 잡혔다. 텔레포터는 단 번에 서여주 앞으로 와 그의 멱살을 틀어쥐고 끌어올린다. 숨이 막힌 서여주를 애타게 부르는 홍주연에게 사이코키네시스가 다가가는게 보였다.




‘아, 억, …컥!’




서여주 손엔 여전히 총이 쥐어져 있었다. 이걸로 두 발. 그의 명치에 총을 쏘자 비명도 지르지 못한 그가 피를 토해낸다.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면서 다친 다리에 충격이 와도 서여주는 이를 악 문 채 다음 타켓을 노렸다. 자신의 피 뿐만 아니라 남의 피까지 뒤집어 쓴 채 독기 어린 눈을 한 가이드, 그를 보는 사이코키네시스가 한걸음 물러섰다.




‘그래봤자 가이드지.’




텔레포터가 정신을 잃었으니 도망 가려면 제 발로 가야만 하는 그는 상황에 맞지 않은 소리였으나 쫄려 보였다. 다시금 총을 장전한 서여주가 총구를 옮기자 이번엔 팔이 꺾였다.


염력이란 능력은 여러모로 편했다. 총기를 빼앗을 수 있었고, 손 한 번 까딱하면 모든 걸 움직일 수 있었으니까. 서여주의 총이 허공에서 주인을 향해 시퍼런 빛을 낸다. 제 동료에게 눈길 한 번 준 그가 혀를 차며 홍주연의 팔을 잡아챘다.




‘움직이면 끝이야.’




홍주연을 일으켜 세운 그가 천막 밖으로 향한다. 통신을 함께 들었으니 곧 팀원들이 올 거라고 판단하고 도망치려는 거였다.


서여주는 기지를 발휘했다. 몸에 박힌 이물질 때문에 몸에 열이 오르고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는 판국에 내린 결정은 짐승의 본능에 가까웠다.


총기 말고도 칼을 가지고 있었다. 과도에 가까울 정도로 작은 칼이라 단거리가 아니라면 흉기 역할을 해낼 수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여주는 한국 센터에서 등급 외에도 내노라 할 정도의 체력과 힘, 무기를 잘 다루는 사람이었다.


허공에 뜬 총이 서여주가 허리춤으로 손을 올렸을 뿐인데 총구를 당긴다. 작은 움직임도 용서치 않겠다는 시전자의 성격이 잘 보였으나, 탄창을 터트렸을 때처럼 몸을 굴렸다. 이번엔 왼 어깨에 총을 맞았고, 홍주연을 끌고 나가려던 그가 손을 들었다. 망가진, 이전엔 통신구의 일부였을 묵직한 부품이 서여주를 향해 날았다.




‘——.’




사이코키네시스의 목을 관통했다. 기괴한 쇳소리를 내며 쓰러진 그를 보며 홍주연은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서여주는 그가 날린 부품에 머리를 맞아 결국 바닥행이었다. 피를 줄줄 흘리며 죽어가는 놈들을 보며 웃던 그가 찬바람을 느끼고 시선을 올렸다. 익숙한 군화가 흙먼지를 일으켰다. 천막을 나가기 직전이라 팀원들과 딱 마주친 홍주연. 팀원들이란 걸 확인하고 안심한 동시에 서여주는 전과 비교 할 수 없는 두려움을 마주했다. 팀원들은 먼지 좀 묻고 우악스런 손 때문에 욱신거리는 팔을 감싸고 선 홍주연을 걱정했다.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크게 다친 서여주를 두고서.


서여주는 그것도 이해했다. 들어오자마자 마주칠 수 밖에 없었으니 당연히 걱정 되겠지. 그럼에도 억울했다. 왜 나만 다 이해 해야 해? 그 생각이 들기 무섭게 시선이 돌아온다. 놀란 팀원들이 한박자 늦게 서여주를 챙겼으나 이미 그의 마음은 갈가리 찢긴 후였다. 이제 정말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길 바랐으나 정신이 너무 또렷했다.




“또 울어?”




눈을 깜빡이자 조금 전 보았던 군화가 보인다. 나는 여전히 차가운 바닥이었으나 조금 전과 달리 아스팔트 바닥 위였다. 몸을 일으키자 뻗어오는 손이 나를 끌어올렸다.




“넌 나만 보면 울더라.”




뽀얀 손이 내 뺨을 보듬는다. 천진난만한, 티끌만한 그림자 하나 없는 서여주가 환히 웃고 있었다. 고개를 들자 난간 밖으로 몸을 뺀 N팀이 보인다. 서여주는 장난 치듯 그에게 손을 흔들어줬고, 그들은 난간 안으로 들어갔다.




“알지? 팀장은 패서네이트고, 제노는 사이코키네시스인 거.”

“……….”

“능력을 사용했다면 날 살릴 수도 있었어.”




툭, 서여주가 여전히 누워있는 몸을 건드렸다. 발로 아무리 건드려 봐도 꿈쩍도 않는 서여주는, 서여주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까만 그림자처럼 보였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가 죽은 걸 내 눈으로 본다면 멘탈이 남아나질 않았을 테니까.




“정말 죽었어?”

“새삼스럽게. 그럼 살았을까 봐?”

“몸은 살아있잖아. 내가 네 생명을 붙들고 있는 거라면?”

“나는 몸이 가진 기억의 일부이자 너의 연민과 간절함이야. 영혼 같은게 아니라 네가 보고 싶은 내 모습이라고.”

“……….”

“차라리 해리성 장애면 좋을 뻔 했다, 그치?”




그렇담 어떻게든 공존하며 살 텐데. 서여주는 무척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처럼 웃었다. 하나도 아쉬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쉬워 죽겠는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건물을 내려오는 N팀을 구경했다.




“사실 여기서부터는 네 바람이야. 난 죽은 후라 모르는 순간이거든.”




서술은 서여주가 뛰어내린 시점에서 끝이다. 후 처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누가 어떻게 센터로 이송 해갔는지는 나오지 않았다.




‘주연아, 보지 마.’

‘여주가…. 여주가,’

‘욱.’

‘웃기지 마. 또 연기 하는 거지?’




내 바람이라기엔 너무 리얼한 거 아닌가. 남이 토하는 것까지 보고 싶은 사람이 어디있다고. 심지어 서여주의 죽음을 보고 구역질을 해? 절대로 바라지 않는 일이다. 두 눈을 억지로 띄우고 보게 만들면 모를까.




“네가 바라는 거지?”




서여주를 돌아보자 조금 전과는 달리 냉랭하고 굳은 얼굴로 N팀을 보고 있다. 멀리 떨어져 토악질하는 이제노, 손을 벌벌 대며 어쩔 줄 몰라하는 정재현, 홍주연 눈을 가려주는 김도영, 무표정하게 울고만 있는 김정우, 센터에 연락하는 나재민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환각 센티넬을 찾으러 간 이동혁.


제각기 당시 상황을 부정했다. 나는 그들을 지켜보다가 다시 서여주에게 고개를 돌렸다. 피에 푹 젖은 그가 울고 있었다.




“여주야.”

“……….”

“너 이때도 안 죽었잖아.”




귀가 트여 있다는게 느껴졌다. 지금은 내가 그의 몸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런가, 그의 말대로 몸이 기억하는 것들을 나도 기억했다. 서여주가 죽기 전 들었던 목소리들은 중간중간 끊기더라도 확실히 들렸다.




“영호는 네 편일 거야. 불안해 하지마.”




전과 달리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른 소리를 했다. 답하기 싫은 듯 화제를 돌리는 그의 마음이 느껴져서 나는 그를 품었다. 네가 된 순간부터 너에게 직접 전달하고 싶었던 말이다.




“나도 네 편이야.”

“……….”

“힘들었을 텐데, 고생 했어.”




내 어깨도, 내 뺨도 함께 젖어들었다. 허리춤을 쥔 악력이 강해질수록 나도 서여주를 안는 힘을 더했다. 너는 사랑 받아 마땅한 사람이었는데, 그들을 위한 부품 취급을 받으며 무엇보다 아픈 끝을 택했다. 네가 바라던 평온이라도, 결코 타의가 섞이지 않았다 할 수 없는 죽음이었다.




“사랑해.”




나는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해. 서여주가 물거품이 되어 스러져 가는게 느껴진다. 제발 네가 이대로 사라지질 않길. 또 다시 꿈에서나마 마주하길 간절히 기도했다.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꽤 오랫동안 멍했다. 입이 텁텁해 물 한 잔 시원하게 마시고 싶은데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언제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기억나질 않았다. 지성이와 나가서 이동혁을 만났고, 돌아와서 영호와 빈즈랑 아침을 먹었던 것 같은데…. 그 모든 일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겨우 몸을 일으키자 무거운 이불이 떨어진다. 깊이 숨을 들이키고 나서야 주변이 제대로 보였다. 풀지 않은 짐은 박스 그대로 방 구석에 있었고, 서여주가 지내던 방과 비슷하지만 구조가 조금 달랐다. 확실히 빈즈와 함께 지내는 숙소라는게 느껴지고서야 편히 움직일 수 있었다.


꿈에선 하지 못했던 걸 했다. 주방으로 가 물을 꺼내 마시고, 불이 다 꺼진 집안을 둘러봤다. 각 방엔 N팀이 아닌 빈즈가 있겠지. 작게 열린 문 틈 사이로 고롱고롱 대는 누군가의 코골이가 들렸다.


최대한 숨 죽여 화장실로 가 씻었다. 어제는 잠으로 전부를 날려 버렸으니 오늘은 나름 알차게 보내 볼 생각이다. 꿈을 꿔서 개운하진 않아도 정신만큼은 또렷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니 아침을 즐겨볼까. 어제의 아침은 홍주연에게 방해 받았으니 오늘만큼은 정말 고요히 보내야지. 그 생각으로 커피 한 잔을 내려 외투를 챙겼다. 따끈한 머그잔을 쥐고 거실의 통창을 열었다. 단독주택은 이런게 좋았다. 좁지만 깨끗한 흙냄새를 풍기는 잔디밭, 그 위에 엉덩이만 붙일 정도의 좁은 마루가 있었다. 마루에 앉아 발을 내리면 잔디가 발바닥을 간질인다.




“후—. 하아—.”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괜히 입김을 불었다. 불 뗀 굴뚝처럼 허연 입김이 피어 오른다. 서여주가 되고 처음 느껴보는 고요다. 언제나 주변이 시끄러웠고, 혼자더라도 머릿속이 시끄러웠다.


영호가 입어도 널널할 항공점퍼를 여미며 다리를 접어 올렸다. 창에 등을 기댄 채 산등선에 빛이 보이길 기다렸다. 병동에서 보던 방향과 같으니 어둠이 가시면 해가 뜨겠지. 문득 홍주연이 내가 해를 좋아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어쩔 수 없다. 서여주가 태양 같으니 그와 닮은 해를 좋아 할 수 밖에.


아직 겨울이라 그런가, 코 끝이 시렵다. 머그잔을 들어 코에 대니 내 꼴이 우스워 킥킥댔다. 남이 없어서 할수 있는 멍청한 장난이었다.


웃음이 사그라드니 또 다시 시끄러운 생각이 범람한다. 사람들이 새벽감성이란 말을 만들어 낸 이유가 다 있다. 새벽은 유달리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전부 떠오르는 시간. 커피를 한모금 들이키며 어지러운 것들을 차례로 정리했다.


내가 가장 우선 순위로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일까. 길게 생갈 할 것도 없이 서남매다. 서여주 만큼은 아니어도 영호 또한 사랑하게 됐으니 더이상 그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다. 그러려면 N팀과 더는 엮여선 안 될 텐데, 그들과는 공조하고 있는 입장이니 상황이 여의치 않는다. N팀과 함께 하면서 영호를 안심 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최대한 멀리 해야지.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서영호보다 서여주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 쉽지 않은 선택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얼른 임무를 끝내고 미국으로 가는 것 뿐이다. 그러려면 얼른 라조를 잡아 들여야 하는데…, 여기서 또 골 아파진다. 방법은 아는데 쉽게 떠들만한 거리가 아니다.


라조가 초창기 사업을 벌린 곳은 부산이었다. 두달만에 경남지역을 장악하고, 세달째엔 경상도 전지역과 각 도마다 업장을 심었다. 가장 위에 위치한 강원도까지 뻗치는데 반년도 안 걸렸다. 지금은 라조가 한국에 들어온지 한달이 조금 지난 시점이니까 아직 부산에 있지 않을까. 초창기 라조의 보스가 어디에 머물렀는진 서술되지 않았다. 그저 반년 뒤에 크게 부풀린 대부업의 종착지가 서울 끄트머리에 위치한 곳이었다.


수요 측을 잡으려면 신중 해야 한다. 약품 구매자가 오리발 내밀면 증거 없이 밀어붙이기도 어려우니까. 우선 정재현이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알아야만 했다. 그의 성정을 봐선 오늘 회의를 잡을 테니 따라 갈 수만 있어도 좋을 텐데. 저번과 같은 분란도 없어야 할 거고.




“유통을 잡아…?”




문제는 유통지까지 팀원들을 어떻게 끌고 가느냐다. 급발진 해서 무턱대고 난 이곳을 책으로 읽은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그래서 라조에 대해 빠삭하니 내 말만 믿어라!! 라고 외친들 믿어줄리 만무하지만, 믿어도 문제다. 서여주의 죽음이 홍주연과 N팀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단 걸 영호가 알게 될 테니까. 서여주가 해리성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버거워하던 영호가 실은 제 동생은 완전히 죽고 다른 사람이 들어 앉았단 걸 알게 된다면….




‘차라리 해리성 장애면 좋을 뻔 했다, 그치?’




감히 상상 하기조차 죄스럽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라조의 본거지까지 가는 실마리를 풀어야만 했다. 그러려면 회의 뿐만 아니라 현장에도 따라 나서야 하는데, 홍주연이 마담의 눈에 띄었다는 이동혁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려울게 분명하다. N팀은 홍주연을 현장에 데려가려 하지 않을 거고, 같은 가이드라는 이유로 나도 안 데려 가려 할 테니까. 어차피 가이딩이야 센터에 돌아와 하면 된다고 생각하겠지. 천러도 있으니 쉽고 빠르게 복귀 할 수 있을 테니까.


현장에 나가려면 그만한 쓸모가 있어야 한다. 내 몸을 지키고, 임무에 참여 할 일원이 되어야만, 하다못해 보조라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내가 내세울 건 본래의 서여주가 가지고 있던 몸뚱이 뿐이다. 꿈에서 보고 느꼈던 것처럼 민첩하고, 무기를 잘 다루며, 모든 걸 뒷받침 할 체력과 지구력 같은 거. 하지만 이 마저도 센티넬 앞에선 무용지물에 가깝다. 일전에도 크게 다쳤으니 N팀이 그때의 일을 영호 앞에서 들먹인다면 영호는 가차없이 나를 두고 현장에 나갈 거다. 실마리를 잡으려면 현장에 나가야만 하는데, 영호의 과보호가 발목을 잡는다.




“해 뜨네….”




산등선이 겹친 곳에 볕이 맺힌다. 속과 달리 주변은 너무나 고요했다. 기껏해야 새가 지저귀는 소리, 바람 따라 흔들리는 나뭇잎이 비비적대는 백색소음이 고작이다. 영호는 곤히 자고 있는 아침, N팀을 마주칠 걱정도 없는 우리의 공간. 이 모든게 너무나 평화로워 다 내려놓고 싶어진다. 미국이 아니어도, 고요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곳이라면 더 없이 좋을 것 같다. 머그잔을 들어 커피를 한모금 더 마시자 등 뒤에서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린다. 통통 소리를 낸 창 너머 볕을 받고 선 마크가 문고리를 밀었다.




“여기서 뭐해?”

“일출 보는 중.”

“일…, 그게 뭔데?”

“해 뜨는 거 본다고.”

“안 추워?”




모락모락 김이 피어 오르는 커피를 보여주자 마크는 잠시 집 안을 훑더니 밖으로 나왔다. 조심스레 문을 닫은 그는 두터운 후디와 널널한 면바지만 입고서 마루를 밟았다. 심지어 맨발이네. 마루 아래로 발을 내린 그가 내 옆으로 붙어 앉았다. 엉망인 머리를 넘겨주는데도 별 다른 반응이 없다. 분명 방금 일어났을 텐데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하품을 하는 그에게 커피를 내밀자 고개를 젓는다.




“미안. 커피는 잘 못 마셔.”

“아, 그랬지.”

“대신 안고 있어도 돼?”




그가 팔짱을 끼며 몸을 떨었다. 코를 훌쩍이는게 꽤 추워보여서 외투를 젖히자 됐다며 옷깃을 여민다. 뭐 이렇게 큰 걸 입고 다니냐기에 잔을 내려두고 두 팔을 널찍히 벌렸다. 잘 보라고. 영호 옷인 걸 알아차린 그가 웃음을 터뜨린다.




“외투를 가져 오는게 어때?”

“그보단 널 안는게 빠르지 않을까?”

“영호한테 혼나도 난 모르는 일이야.”

“그래.”




마크가 다리 사이로 공간을 만들어 툭툭 두드린다. 옮겨 앉기 위해 몸을 일으키다가 점퍼를 벗었다. 내 움직임을 지켜보던 마크의 어깨 위로 걸쳐주고 그의 품에 등을 대고 앉았다.


그의 품에 기대고 천러의 심정을 이해했다. 자다 깬 마크는 따끈따끈한 온기는 물론, 훈내까지 풍겼다. 마크는 걸쳐 준 점퍼를 입고 앞섶으로 나를 덮었다. 덮은 그대로 팔을 모아 안는대로 안겨 있으니 점퍼 안으로 온기가 갇혔다. 내 머리 위로 뺨을 붙인 마크는 느리게 눈꺼풀을 움직였다. 괜히 나때문에 나온 걸까. 찬바람을 맞으며 잠을 깨우던 나와 달리 마크는 축축 늘어지기만 했다.




“졸리면 더 자.”

“졸린 것보단…, 가이딩 부족이야. 현장 다녀와서 가이딩을 못 받아서.”

“아,”

“아냐. 그냥 우리가 받기 싫었던 거야.”




이제노를 가이딩 한 후에 영호와 다툰다고 빈즈를 살피지 못했다. 나재민을 가이딩 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빈즈도 현장을 다녀와서 당연히 가이딩을 소모 했을 텐데, N팀보다 부상이 적다고 가이딩 할 생각도 안 했다. 내 팀은 이제 빈즈라고 말하고서 말과 행동을 달리 했다.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들자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눈이 맞는다. 머리에 대고 있던 뺨이 떨어지고 마주한 얼굴은 마크가 조금만 고개를 숙이면 입술이 닿을 정도로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놀란 마음에 숨을 멈추자 마크는 웃으며 내 턱을 돌려준다. 정면엔 해가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너랑 형이 다퉜는데 가이딩 해달라는 것도 이상하잖아.”

“센터에 다른 가이드도 있어.”

“우리 담당은 너고.”

“그거야 임시니까,”

“아니야. 내가 그랬잖아. 널 만나기 전부터 우린 너였어.”




내가 가이드였단 것도 몰랐으면서 입에 발린 소리를 잘도 했다. 사과를 하고 싶은데 마크는 내 행동이 당연했다는 것처럼 굴었다. 그래서인지 말도 마음도 삐딱선을 탄다. 영호도, 마크도, 빈즈 전체가 참 다정하다. 마크는 숨을 들이키며 팔을 당겼다. 덕분에 그의 몸에 밀착 된 등에 냉기 한 점 비집고 들어 올 틈이 없었다.




“네가 우리 가이드야. 네가 아니면 필요 없어.”




마크를 비롯한 빈즈 전부 N팀과 같은 레벨인 S다. 내 가이딩은 턱없이 부족할 텐데…. 나재민의 병실에서 의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가이드 레벨을 재정비 해야 한다는 논의가 오가게 만든 논문이에요.’




내 가이딩이 정말 도움이 되는 걸까? 피칠갑을 하고 눈물을 흘리던 서여주가 떠올라 마냥 좋아할 수도 없다. 또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너희도 N팀처럼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면 등 돌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어쩌면 진짜 제자리를 찾아 갈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가 뒤엉키고, 서여주를 향한 안타까움이 추가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마크에게 안긴 지금 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가이딩을 해주는 것 뿐이다.












우울할 땐 몸을 움직이는게 최고다. 서여주 기억을 베이스로 둔 꿈과 현재의 시점, 상황, 모든 것들이 끝없이 나를 몰아붙인다.




“다녀올게.”

“어디 가?”

“훈련 가려고.”

“갑자기? 어디로?”

“훈련장. 다녀올게—.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솔직히 마크의 말에 의지하고 싶다. 너희에겐 나 뿐이고, 영원히 내게 종속 됐으면 좋겠다. 그게 안 된다면 내 우울과 불안이 사라질 때까지만이라도 내게만 집중 하길 바랐다. 하지만 이 모든게 내 이기심이란 걸 안다. 사람 마음이 그리 간단한 것이었다면 애초에 서여주와 N팀이 틀어질 일도 없었을 테니까.




“여주야!”

“왜 따라 와?”

“같이 가. 너 혼자 보내면 형이 쫓아 올 걸.”




홀로 걷던 내 옆으로 마크가 달려온다. 날숨을 크게 뱉은 그가 시원하게 웃어보인다. 일부러 영호가 씻을 때 나온 거였는데, 생각 해보니 몰래 나온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마크 말대로 영호는 나를 찾는다고 센터를 다 뒤질 위인이긴 했으니까.




“네가 나랑 가면 안 쫓아 와?”

“적어도 형이 화내진 않겠지.”

“…너여서 화내면?”

“설마~.”




한국인이 아니라 그런가.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을 못들어 본 모양이다. 돌려 보낸대도 따라 올 거 같아서 아무 말없이 걸었다. 훈련장까지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지만, 요즘 천러가 여기저기 데려다 준 탓인지 기껏해야 10분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혹시 화났어?”

“내가?”

“해 뜰 때 했던 말 때문에 기분 안 좋아 보여서.”




그것 때문에 쫓아 나왔구나. 아니라고 하기엔 일부는 맞고, 맞다고 하기엔 일부는 틀렸다. 화는 나지 않았고…, 그저 생각이 많아졌다. 통제되지 않는 감정이 어떻게 터질지 나도 모르겠어서 묵묵히 걷는 것 말곤 할 수 있는게 없다.




“내가 너무 가볍게 말했어?”

“진심인 거 알아.”

“진심이라도 너한테 어떻게 닿을지 생각하고 말 했어야 해.”

“…마크, 그냥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해.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싶어.”




그의 입이 다물린다. 그건 그것대로 불편해서 한숨이 터져나오기 직전이었다. 기대 하지 않으려 해도 빈즈에게 기대하게 된다. 기대가 서여주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면서. 빈즈엔 영호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N팀도 서여주를 사랑했고 평생을 함께 해줄거라 믿었는데 아니었으니까. 흉터가 너무 컸다. 가끔씩 보이는 어깨 뒷편의 흉터가 아니라 얼굴에 자리한 흉터 같았다. 누구나 볼 수 있고, 나는 항상 의식할 수 밖에 없는.


그래서인지 계속 마음이 오락가락 했다. N팀이 다시 나를 사랑하고 처절하게 아파했으면 하다가도, 존재한 적 없던 사람처럼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죄책감은 가지길 바라고, 그 죄책감을 다 버린 채 안아주길 바라기도 했다. N팀에게 충족하지 못한 사랑을 빈즈에게 받길 원하지만, 그들이 애정을 나눠 줄 때마다 온전히 받을 수가 없다. 왜 N팀에겐 받을 수 없었을까, 왜 좀 더 빨리 오지 못했을까, 왜 서여주는 그 시점에 죽어야만 했을까. 생각 끝엔 또 복수심이 머리를 쳐든다. 너희가 서여주처럼 아팠으면 해. 그러기 위해선 날 사랑해야겠지. 끝없이 반복되는 생각에 머리가 터져나갔다.


N팀이나 빈즈만 신경 써도 머리가 아픈데 라조까지 끼어들었다. 이 지긋지긋한 이야기가 빨리 끝나길 바랐다. 이야기가 끝나면…, 그러면 난 괜찮아질까?




“데려다줘서 고마워.”

“나 가?”

“응. 가.”




몇 번 뻐끔대던 입이 꾹 다물린다. 함께 있고 싶은 듯 했으나 결국 한 발 뺐다. 알았어, 하고 손 흔드는 그를 두고 훈련장으로 들어왔다.


훈련장은 땀 빼는 일이 많아 그런지 서늘한 공기로 가득했다. 푹 자고 일어나서 그런지 몸은 쌩쌩한데 머리엔 어지러운 생각이 가득해 피로한 것처럼 느껴졌다. 탈의실로 들어가 입고 온 자켓만 벗어 걸어뒀다. 높게 올려 묶은 머리 때문인지 시린 공기가 뒷덜미에 닿으니 몸이 으슬으슬 떨린다.




“후….”




다리부터 풀었다. 첫시작은 가볍게 러닝부터 할 생각이다. 서여주는 여덟바퀴 뛰는 동안 안정적인 호흡을 유지 했으니 오늘 목표는 여덟바퀴가 됐다. 러닝은 기초 중의 기초니까 어렵지 않을 거라 여기며 땅을 찼다.


한 바퀴, 두 바퀴. 호흡에 집중하니 잡생각이 점차 사라졌다. 정말 웃기게도, 잡생각이 사라질수록 이렇게나 아무 생각 없이 있어도 되나—하는 죄책감이 생겼다. 뭐 어쩌란 건지. 나도 날 모르겠다.


생각을 다른 길로 틀었다. 운동장 곡선 레일을 달리는 것처럼. 부드럽게 기운 생각은 N팀이나 빈즈 같이 감정적인 것들을 뺀 라조로 향하게 만들었다. 회의와 현장, 두가지에 참여 할 수 있는 자격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새벽에 했던 생각을 이어나가려 했다.




“……….”

“……….”




숙소만 벗어나면 보이는 N팀이 아니었다면 훨씬 수월 했을 텐데. 애써 외면하고 호흡을 유지하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한 번 의식 되기 시작하니 자석처럼 눈길이 따라 붙었다.


이른 아침이라 아무도 없던 훈련장에 나타난 홍주연은 나와 함께 레일을 달렸다. 몇 번이나 그의 옆을 지나쳤다. 홍주연은 속도가 느렸고, 중간엔 속도를 높이다가 숨을 헐떡이며 전보다 더 느린 속도로 달렸다. 걷는 것과 다름 없었다. 그러다 또 두어발 힘차게 떼고, 자세가 흐트러지고, 결국 다리가 무너진다.




“그냥 앉아요.”

“하아…. 후—. 후우….”

“나 다 뛸 때까지 앉아 있어요.”




이제 일곱바퀴다. 한바퀴만 더 뛰면 된다. 홍주연을 레일 안으로 넣어두고 제자리로 돌아가려는데 그의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잠, 잠시만. 같, 이 가.”

“그 호흡으론 당장 못 뛰어요.”




호흡을 재정비하고 뛰어야 할 텐데, 홍주연은 열이 올라 새빨갛게 익은 얼굴로 흐느적대며 일어나려 했다. 그의 손을 떨쳐내고 다시 뛰려하자 이번엔 발목이 붙들린다. 이쯤이면 짜증난다. 한바퀴면 되는데. 홍주연이란 존재 자체가 내게 걸림돌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은 이 상황이 죄다 비틀려 그런 건데도.




“할 수, 있어. 같이,”

“제발 되도 않는 고집 부리지 마요.”




발을 빼자 그가 잔디밭으로 엎어진다. 그러게 왜…. 무시하고 발을 떼려 했으나 여전히 헐떡대는 홍주연이 신경 쓰여 나도 자리에 앉아야 했다. 어깨를 밀어 앉히려는데 그가 힘을 주고 버텼다. 뭐야, 또. 짜증이 치밀려는데 헐떡대는 호흡이 전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울어요?”

“나도…. 나도 잘 하고 싶단 말이야아….”




훌쩍이는 소리가 섞이는가 싶더니 와앙—하는 소리와 함께 울음이 터졌다. 황당하기 짝이 없어 얼이 빠진다.




“나도, 나도 잘 하고 싶어! 도움 받는 거 싫다고! 짜증나…. 왜 나는, 아무 것도 못해? 나는 인형이 아니란 말이야….”




여태까지 머리를 메우고 있던 생각이 싹 날아가고, 밤 중의 꿈이 홍주연의 눈물이 되어 방울방울 터졌다. 천막 아래에 단 둘만 있을 때 홍주연이 서여주에게 목소리를 높이던 순간이 떠오른다.




“이번에도 빠지래. 또 빠지래! 팀이라면서…. 또 나는, 왜….”




서여주가 죽고 난 후 홍주연이 피어났다. 홍주연은 레벨 S나 되는 가이드였으나 늘 보호만 받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서여주가 죽고, N팀을 홀로 감당해야 했던 그는 현장에서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성장하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팀원들 몰래 나와 체력을 기른다거나 이동혁에게 총을, 김도영에게 호신술을 배우고, 현장 경력을 쌓아갔다. 중간중간 스토리 진행을 위한 고난과 역경이 있었으나 그의 노력을 발판 삼아 훌쩍 넘었다. 그리고…, 현장에서 제 몫을 해냈을 때 환히 웃었던 것 같다.




“나 때문에 누군가 위험에 빠지는 꼴은…, 보기 싫어….”




뺨이며 머리에 잔디를 붙이고 꼬질꼬질한 얼굴을 한 홍주연은 내 소매를 꽉 붙들고 있었다. 다시금 깨달았다. 서여주의 죽음은 N팀의 행복과 성장의 발판. 행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던 탓에 성장 서사에 대한 이야기를 죄 잊고 지냈다. N팀의 성장은 홍주연을 통해 이뤄졌고, 홍주연이 성장해야 N팀도 비로소 성장하는 이야기였다.


그렇담 나는…. 홍주연의 성장을 방해 해야 N팀의 성장과 행복을 모두 망가뜨릴 수 있는 걸까? 마른 침이 절로 넘어가는 가설이다. N팀을 나락으로 보내려면,




“네가 나 대신이 되는 꼴을 두 번 볼 수 없어.”




………. 정말 개같다. 그는 지금 천막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게 분명하다. 서여주가 그를 위해 온 몸을 날렸던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니까. 홍주연의 ‘나 때문에’, ‘나 대신에’ 하는 소리를 점점 이해하고 있는 나 자신이 밉다. 난 서여주의 복수를 완성 시켜야만 하는데, 홍주연을 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랑 같이 가….”




내 손도 아닌 허상 같은 소매를 붙든 채 우는 홍주연을 외면하기 힘들다. 차라리 네가 못된 애였다면 좋았을 텐데. 차라리 내가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이었다면, 그랬다면…. 우리는 좀 더 쉽게 서로를 대했을 텐데.




















💭 핳 좀 늦었죠…? 다름이 아니라 이상하게 13편이 안 써져서 오지 못했어요ㅠ 12편은 진작 써놨는데, 예고편 가져오려고 장아찌마냥 계속 묵혀뒀습다ㅠ


💭 개인적으로 다양한 사랑을 좋아해요. 연애감정도 좋은데, 가족애나 우정, 그 밖의 형용 할 수 없는 모든 감정들을 좋아해요. 이런 것들을 정의 내리는 말이나 문장도 좋고 표현도 좋아하는데, 이미 사라진 여주에겐 짧은 말로 모든 걸 전달하고 애도하고 싶었습니다. 너무 많이 힘들었던 아이라 두루뭉술한 것들론 풀리지 않을 테니까요. 여주는 여주를 너무 잘 아는 사람이라 바라는대로 표현 해준 거기도 하고요.


💭 그 밖에 도영이의 발언과 주연이와의 에피소드도 등장 했죠? 오늘도 화를 내실 여러분이 그려지네요. 도영이도 결국 센티넬이니까요. 구구절절 도영이에 대해 사족을 덧붙이다가 지워봅니다. 언젠가 글로 표현하고 싶은데, 안 된다면 완결 났을 때 후기로 쓸게요. 까마득한 오랜 후겠지만.


💭 오늘도 감정에 절절절절 끓는 중~.~ 특히나 글 속 서여주를 유일하게 위로 해줄 수 있는 현 여주가 제 마음을 고백한 장면과 여주와 주연이 관계성이 점차 정립되고 있는 장면이 뽀인트 같네요. 왠지 여주x주연이나 주연x여주 밀어야 할 거 가틈. 아님 여주x여주ㅎㅎ


💭 라조에 대해서도 한 번 짚고 넘어가고, 복잡한 여주의 생각을 정리하는 회차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문이 꽤 길어서 호흡이 늘어지는 느낌이었으나 다음편부터는 다시 돌아갈 예정. 그래도 다들 잘 따라 와주시는 거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너무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려해서 늘어진다고 중도 포기 하시는 분이 있을 거라 생각 했거든요ㅋㅋ


💭 다들 러브라인을 마크 아니면 천러로 밀고 계시더라고요?ㅋㅋ 아니면 등장 하지도 않았던 성찬이를 부르시던데. 제일 많이 찾는 건 사약인게 뻔한 영호고ㅋㅋㅋㅋ 영호는 저슽 호메. 여러분. 호메랑은 엮는 거 아냐…. 그저 동생을 자식처럼 생각하는 호메일 뿐, 호메는 호메입니다. 안 돼. 오피셜이야. 뱉어요, 얼른! 웃긴 건 지성이는 찐으로 동생처럼만 봨ㅋㅋㅋㅋ 우리 지성이도 좋아한다고 고백 했거든요?ㅠ 물론 여러분이 생각 하시는 것처럼 애기처럼 본 거 맞는데, 애기 맘은 모르자네. 다들 아는 거지만 모르는 거라고 쳐주세요.


💭 암턴 오늘 럽라 비스무리하게 마크랑 엮어보긴 했는데, 럽라? 싶긴 합니다. 우리 여주 연애 하기엔 지금 사정 복잡한 아깽이잖아요. 제노재민이랑 움뫔마 하긴 했는데 다들 떠먹여 줘도 뱉을게 뻔하고. 사실 N팀에 가망 있는 사람이 있나?ㅋㅋ 눈덩이처럼 데굴데굴 굴리기만 할 거, 나도 여러분도 여주도 알아. 아직까진 잘 모르겠어요ㅋㅋㅋㅋ 여러분이 점 찍어 주세요. 누가 더 여주에게 알맞는 사람인지!


💭 글 짧다고 사족이 길었네요. 그럼 이제 진짜 가볼게요! 다들 곧 찾아 올 환절기 조심하시고, 조만간 다시 봅시다! 안녕~❤︎


💭 마지막으로, 꿈 속의 여주는 진짜 염원으로만 나타난 여주일까? 하는 의문 살포시 두고 떠납니다😃




━⊱༻ 아래는 13화 예고편입니다. ༺⊰━

이어지는 내용이 궁금하세요? 포스트를 구매하고 이어지는 내용을 감상해보세요.

  • 텍스트 239 공백 제외
10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