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돌아온 율의 짐 정리를 맡아서 한건 정교진이었다. 소중히 비단에 감싸 온 것이 어찌나 귀하게 느껴졌는지, 신중히 그것을 펼쳤는데. 율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의 모습도 있었다. 붉은 머리의 남자는 흐트러진 자신의 모습에도 신경 쓰지 않고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이 사람이구나! 조선의 왕."

그리고 그 쌓여진 그림들 사이로 아직 아무도 손을 데지 않은 듯한 서신이 있었다. 봉합된 봉투 입구에는 왕의 표식이 찢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아직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한듯하였다. 어떻게 담겨져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율환관 몰래 넣은 듯하였다.

잠시 망설이던 정교진은 서신을 자신의 옷 주머니에 몰래 넣었다. 그리고 그림들은 모두 율의 개인 서재 뒤편 보관함에 넣어두었다. 

위충현을 만나고 돌아온 율은 술로 며칠을 보내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정교진이 옆에서 최선을 다해 곁을 지키고 있었지만, 날로 술에 취해있는 율의 모습은 아주 위태로워 보였다. 마치 삶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처럼. 그날도 술에 취한 율이 배시시 웃다가 울며, 탁자에 놓인 그림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붉은 머리의 사내가 웃고 있는 그림은 그리움의 흔적으로 그의 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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