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당보 앤솔로지 '암향귀환록'에 참여한 글입니다.

 

 

당보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창으로 해가 들어오는 것을 보니 시각은 대략 정오. 장소는 화산파의 접객당이었던 백매관. 시간이 흐르며 내부는 다소 변했지만, 화산에 들를 때마다 신세를 졌던 곳이기에 기억하는 대략의 형태는 남아 있었다.

하지만 백매관에 방문한 여느 때와 달리 당보는 제 의사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는 묶여 있었다.

세상 어느 누가 감히 암존을 묶을 수 있을까? 마교와 전쟁을 치를 때조차도 이런 꼴로 사로잡힌 적은 없었다. 그는 지금 무기로 쓸만한 모든 도구와 장신구를 빼앗긴 채 손발을 구속당해 침들에서 꿈틀대는 모양새였다.

그 와중에 추울까봐 모피를 덮어주는 상냥함 하고는! 참으로 어이없지만 실로 그의 도사 형님이 할 만한 짓이었다.

“도사 형님.”

당보가 자신을 이 꼴로 만든 범인의 호칭을 불러 보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도사 형님! 팔에 쥐가 나니 좀 풀어 주시오!”

발버둥을 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알고 있었다. 오늘 반나절 동안에도 벌써 몇 번을 시도해 보았는가? 이 미친 말코가 정말 당보를 꽁꽁 묶어 방치하고는 수련을 하러 사라져 버린 것이다.

당보는 손이 묶여 닦을 수도 없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중얼거렸다.

“……그 헛소리가 진담일 줄은 몰랐지.”

가만히 방치당해 생각밖에 할 것 오래 전 그의 하나뿐인 정인이 했던 헛소리가 떠올랐다. 자신도 별로 다를 바는 없지만, 기실 그가 하는 말의 대부분의 말이 헛소리였기에 조금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던 발언이었다.

 

“너는 사천당가에서 태어난 것을 다행인 줄로 알아라. 세가 놈이 아니었으면 진작 납치해서 가둬 놓았을 것이다.”

“하아? 제가 당가에서 안 태어났으면 암존이 못 되었을 것 같습니까? 그랬으면 아예 화산에 입문해서 도사 형님을 뛰어넘는 천하제일인이 됐을 거요!”

 

그 때는 ‘세가 놈이 아니었으면’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답을 했었다. 한참 싸운 뒤라 자신의 무위에 관해 이야기하는 줄 알았건만……, 뒷배를 의미한 것이었다.

모종의 일로 당보가 바람을 폈다고 오해한 청명이 길길이 날뛰다가 결국 사천당가로 돌려보내줄 때 한 말이었다. 그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으나 뒷배라고는 없는 거지꼴이 된 지금은 청명의 진심이 무엇이었는지 절절히 느껴졌다.

“그래도 그렇지 납치 감금이라니, 너무하잖소.”

곁에 있어 달라고 말했으면 기꺼이 그러겠다 했을 텐데.

당보는 씁쓸하게 중얼거리며 몸을 추욱 늘어뜨렸다. 먼 곳에서 지켜보고 있을 일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우는 소리를 해본 것이다. 발버둥을 포기하고 체념한 척 했지만 그의 입꼬리는 슬며시 올라가 있었다.

 

***

 

인정한다. 반 정도는 당보 자신의 자업자득이었다. 아니지, 반은 좀 세고. 반의 반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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