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엉?”

“뭘 그렇게 뚫어져라 봐요. 부끄럽게.”

 

정국이는 멍청하게 되묻는 내 표정을 보며 못 말린다는 듯 웃어 보였다. 묻기는 뭐가 묻어. 기껏해야 잘생김과 귀여움, 청순함, 예쁨 뭐 그런 것만 묻었겠지. 정국이는 진짜 모르는 건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끝으로 제 얼굴을 매만졌다.

 

‘뭐가 묻어서가 아니라 그냥 잘생겨서, 그리고 너가 너무 좋아서 쳐다본 거야.’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참아야 했다. 내보내달라고 아우성치는 진심을 꾸역꾸역, 목구멍 아래로 밀어 넣기 위해 괜히 침을 삼켰다. 꼴깍. 그러면서 애꿎은 나무 바닥만 발끝으로 툭툭 찼다.

정국이 어깨너머로 모니터가 보였다. 그 안에 있는 내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애새끼다. 마트에서 과자 사달라며 부모 앞에 드러눕는 그런 애들처럼 말이다. 아, 그래도 24살인 성인 남자답게 드러눕진 않았다. 그냥 보조 의자에 앉은 채,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이 보조 의자로 말할 것 같으면, 원래는 정국이 작업실에 없는 물건이었다. 의자라고는, 정국이가 앉아있는 저 빨간 의자만이 전부였다. 그랬는데, 정국이가 나를 위해 준비해줬다. 이따금 씩 작업실에 놀러 오면 마냥 서 있거나, 찬 바닥에 앉아있는 게 좀 그랬다나 뭐라나. 기왕이면 저 빨간 의자에 엉덩이 한 짝씩 걸쳐 앉는 게 좀 더 취향이지만, 이쯤이야 형답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이야?”

“거의 다 했어요.”

 

정국이는 연신 마우스를 딸깍였다. 마우스를 움직이며 자판 몇 개를 두들기면, 화면 속 영상의 색감이 휙휙 바뀌었다. 원본도 괜찮다 싶었는데 막상 보정한 걸 보니까 이게 더 나은 것 같다. 저번에 지나가는 말로, 나만 나오는 골클필은 없냐고 했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던 모양이다. 어쩐지 이번 해외 로케에서 유독 날 따라다니더라니.

정국이의 이런 섬세함까지도 좋았다. 그룹에서나 집안에서나 어딜 가도 막내인 탓에, 주는 것보다 받는 게 익숙할 텐데도 제 나름대로 섬세하게 잘 챙겼다. 그것도 나만. 다른 멤버들도 챙기긴 하겠지만, 그것과는 다른 종류의 챙김이었고 섬세함이었다. 그 묘하고 작은 차이를 난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모니터 속 움직이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괜히 마음이 간질거리는 것도 같고. 이런 걸 몽글몽글하다고 해야 하나? 춤과 노래 다음으로 익숙한 게 카메라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동안 찍은 화보와 뮤비, 광고, VCR 등등 셀 수 없이 많을 텐데도 영 어색했다.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도, 저무는 햇살을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도. 어느 것 하나 민망하지 않은 게 없다. 첫 뮤비 촬영할 때도 모니터링하면서 민망하기보다는 오히려 들떠있었는데…

이상하게 정국이만 다르다.

 

“나중에 보라니까요.”

 

몰래 훔쳐보던 걸 그새 또 들켰다. 이쯤 되면 나는 ‘몰래’ 라는 거에 재능이 없는 게 분명했다. 정국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나만큼이나 큰 손으로 제 모니터를 가렸다. 워낙에 큰 모니터라 두 손으로도 다 가려지진 못했지만.

아마추어 실력이라 부끄럽다나 뭐라나. 멤버들과 팬들이 입술이 마르고 닳도록 ‘정국아, 너는 천재야.’라고 말해줬건만, 어찌 된 이유에서인지 그 말을 도통 새겨듣지 않았다. 어떻게 말해도 칭찬에 대한 정국이의 대답은, “많이 부족한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였다.

 

“내 얼굴 내가 보는데 왜.”

“아 쫌.”

“초상권은 나한테 있거든.”

 

다정다감하던 분위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그새 또 바뀌었다. 하여간 정국이랑만 있으면 사람이 한없이 유치해졌다. 시도 때도 없이 투닥거리기나 하고. 나도 윤기 형이나 남준이 형처럼 어른스럽게 말하고 싶은데, 그게 잘되지 않는다. 괜히 툭툭 치고 싶고, 손가락으로 찔러보고 싶고, 덥다는 데도 끈질기게 엉겨 붙고 싶고. 본가에 가면 맏이 노릇 한답시고 요즘에는 어깨에 힘 바짝 주고 다니는데. 어떻게 얘하고만 있으면 자꾸 애처럼 굴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어이가 없어서 픽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형은 햄버거 먹는 게 그렇게 좋아요?”

 

정국이가 앉은 의자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 웃음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몸을 튼 모양이다. 아니 그나저나, 거 의자에 나사 좀 조이라니까. 아무래도 내가 봐주거나, 윤기 형에게 대신 부탁하는 게 나을 거 같다. 의자가 심하게 기우뚱거리기 전까지는 그냥 내버려 둘 것이 분명하니까.

오랜만에 먹는 햄버거이긴 했다. 요 근래 들어 살이 붙은 탓에 급하게 시작한 다이어트였다. 활동 공백기임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내내 무리하게 했더니 죽을 맛이었다. 몇 년째 하는 다이어트 중인데, 어찌 된 게 못 먹는 고통은 좀처럼 익숙해지질 못했다. 그렇다고 석진 형처럼 원 없이 먹고, 먹은 만큼 운동하는 게 더 싫은 터라 남은 선택지는 굶는 것뿐이었다. 곯은 배를 부여잡고 끙끙대는 내게 정국이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햄버거 먹을래요?’

 

얘는 무슨 내가 햄버거라면 껌뻑 죽는 줄 아나 보다. 햄버거가 아니라, 너랑 먹는 게 좋은 건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제 딴에는 해결책이랍시고 내놓은 게 귀여워서 웃으며 말했다. 같이 먹어줄 거야? 내 물음에 정국이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그게 뭐 어렵다고? 이런 말 하면 ‘전정국 병’ 중증 환자라고 생각할 거 같긴 하다만, 정국이의 이런 모습까지도 너무 좋다.

 

“아니. 햄버거 말고.”

“그럼 뭐가 그렇게 좋아요?”

 

그 순간 삘이 왔다.

아! 이 타이밍이구나, 하고. 지금이야말로 멋있게, 어른답게, 그리고 형답게 사귀자고 말할 타이밍이었다. 의자를 돌려, 정국이와 마주 보고 앉았다. 막상 말하려니 물밀 듯 몰려오는 쑥스러움에 얼굴이 홧홧해졌다. 에어컨을 이렇게나 빵빵하게 틀어놓은 작업실에서 저 혼자만 붉어진 얼굴이라니. 이쯤 되면 정국이도 눈치 챘을지 모른다. 우리의 썸이 드디어 막을 내리고, 연애의 서막이 오를 거라는 걸.

큼, 괜스레 헛기침을 했다. 어떤 타이밍에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라서 그동안 상상으로만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온갖 영화를 섭렵하며 준비했건만 쉽사리 말이 나오질 않는다. 멋쩍은 마음에 로션만 바른, 맨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내리고 덥수룩한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1층에 햄버거 왔대요.”

“어?”

 

갑자기 산통 깨는 정국이의 말에,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손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지금 이 타이밍에 뭐가 왔다고?

 

“정국아, 있잖아.”

 

허리가 끊겨버린 분위기를 애써 부여잡았다. 때마침 찾아온 타이밍과 이 분위기가 먼지처럼 흩어져버리기 전에 얼른 말해야 했다. 그게 다소 급하고, 서툴고, 멋없더라도 말이다.

의자에서 일어나려는 정국이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할 말이 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대뜸 좋아한다는 사랑 고백부터 내질러야 할까. 급한 마음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잔뜩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복잡한 마음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태형이 형.”

 

정국이는 꽉 쥐고 있는 내 손아귀에서 제 옷자락을 빼내며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는 평소와 조금도 다를 거 없는 표정으로, 따뜻한 시선을 내게 보내며 말했다.

 

“햄버거. 좋아하잖아요.”

 

그 목소리가 어찌나 단호하던지 손아귀에 힘이 절로 풀렸다. 웅, 그렇지. 멍청한 표정으로,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나는 너가 더 좋은데. 차마 하지 못한 말이 응어리져 마음 한구석에 처박혔다. 아무래도 타이밍이 영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햄버거 먹을 준비하다 말고 고백하는 게 모양 빠지긴 하지. 내가 고백하려는 게 싫어서가 아니라, 무드 없고 어정쩡한 이 타이밍이 싫은 게 분명했다.

정국이는 제가 다녀오겠다며, 앉아버렸던 제 몸을 도로 일으켜 세웠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나를 지나쳐 가던 정국이는 문고리를 돌리던 손길을 멈추었다.

 

“아, 참.”

 

그리고는 고개만 살짝 돌려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정국이는 좀 전의 제 추임새만큼이나 해맑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 헷갈리잖아요.”

“…뭐가?”

“혹시 나 좋아하는 건가? 하고요.”

“…….”

“어디 가서 그러면 안돼요. 나야 친한 동생이니까 아니라는 거 알지만, 남들이 형 게이로 오해하면 어떡해요.”

 

아, 친한 동생...

 

목구멍이 턱 하고 막혔다. 이런 느낌은 과연 말문이 막힌 걸까, 아니면 숨이 막힌 걸까.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른다. 생각하지도 못한 정국이의 말에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는 것뿐이었다. 정국이는 뾰족한 송곳니에 찔려있는 내 아랫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살살 만지며 빼내었다. 그리고는 이렇다 하는 말도 없이, 내 대답을 듣지도 않았으면서 씩 웃고는 작업실을 빠져나갔다.

전정국이 나갔지만, 작업실엔 온통 전정국만 있다. 작업실을 가득 채운 달큰한 향기도, 레드 앤 블랙으로 셋팅 되어있는 인테리어까지도.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전정국이 있다. 유일하게 전정국이 없는, 모니터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내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전정국이 찍어준 거라, 따지고 보면 이것도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전정국이 남기고 간 말을 나는 아직 이해 못 했는데, 그래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어째서인지 마음이 자꾸만 벅찼다. 기분 나쁜 울렁거림이 덩달아 턱 끝까지 차올랐다. 침을 연신 삼켜봤지만, 내려갈 생각이 없는지 제멋대로 자꾸만 꾸물거리며 올라오려 했다.

 

“아...”

 

오랫동안 밝게 켜져 있던 화면이 갑자기 꺼지며, 그 속에서 웃고 있던 나도 함께 사라졌다. 어두컴컴한 화면 속에는 아랫입술도 깨물지 못한 채, 멍청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모니터만 바라보는 내가 있었다.






“혀엉.”

“불편해?”

“움직이지 좀 말아바여.”

 

내 무릎을 베고 누운 정국이가 잠에 취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애였다. 아마 이 세상에서 정국이를 제외하고, 잠투정 부리는 어른은 존재하지 않을 거다. 만약에 존재한다면… 정국이가 아니라 그런가? 진짜 꼴 보기 싫을 거 같다.

집을 넓은 곳으로 이사 갔건만, 옛날에 작고 좁은 소파에서 웅크리고 자던 버릇이 남은 건지 정국이는 제 몸을 한껏 말았다. 진짜 좀만 더 작았어도 도톰한 솜이불로 둘둘 싸서 보쌈 했을 지도 모른다. 여동생이 하는 말을 빌려보자면, 들튀 각이다. 현실적으로 정국이가 체격이 더 좋은 탓에 들고튀기는커녕 내가 업히는 신세지만.

정국이는 내 무릎을 당기더니 머리를 움직여 자세를 고쳐 잡았다. 내리깐 눈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정국이의 속눈썹은 길고 빽빽했다. 한 번 잠들면 탱크가 지나가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자는 정국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몰래 만져볼 깜냥은 없었다. 그리고 이런 건 사귀면 해보고 싶은 리스트에 밀어 넣은 것 중 하나였다. 100%의 확률로 사귀게 될 거라 생각했던 게,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고백을 거절당했다고 해가 서쪽에서 뜬다거나, 지구가 쩍 갈라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좋아한다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말문이 막힌 거라 고백했다고 하기도 뭐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고백 아닌 고백이 가로막혔던 그 날도 정국이는 아무렇지 않았다. 문을 열고 방을 나서기 전과 후가 어찌나 한결같던지, 하마터면 좀 전에 들었던 그 모든 말이 기분 나쁜 악몽이라 생각할 뻔했다. 정국이가 방으로 들어온 후, 연신 시선을 피하는 내게 정국이는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아파요?”

 

아프진 않았다. 뭐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사람이 너무 놀라면 생각도, 고통도 잠시 잊는다고. 그냥 딱 그 정도였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 때문에 근래 들어 좀처럼 쓴 적 없는 머리를 연신 굴리느라. 그래서 반응이 느렸다.

이마를 가린 덥수룩한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고개를 돌리자, 베란다 창에 비친 나와 정국이가 보였다. 저마다 작업실에, 혹은 친구와 놀러 간다며 나간 터라 숙소는 조용했다. 예전에 살던 집도 멤버들이 없으면 꽤 조용해서 이따금 씩 마음이 적적했는데, 집이 커지니 그 느낌이 더 커졌다. 정갈한 제 이름만큼이나 정갈하게 숨을 쉬는 정국이의 숨소리가 적막한 집안을 쓸쓸하지 않게 만들었다. 고개를 숙여 정국이를 보니 저 밑에 고이 숨겨놓은 마음이 또다시 울컥, 제 존재감을 드러냈다.

미취학 아동 시절부터 데뷔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인기 없는 순간이 없었다. 유치원 때는 내게 뽀뽀해주고 싶다며 줄 선 여자 친구들은 어찌나 많던지, 고운 마음반에서 푸른 새싹반까지 줄을 서야 할 정도였다. 중‧고등학생 때 받은 온갖 초콜릿과 빼빼로는 과장을 조금 보태서, 우리 할머니 밭을 다 가리고도 남을 정도였다. 데뷔한 후로는 또 어떻고. 이놈의 인기는 어쩜 그리 줄어들 생각을 안 하는지, 남녀 가리지 않고 내 번호를 알아내려 노력하는 연예계 선후배로 수두룩했다.

그런 내가 어쩌다 얘한테 빠졌더라.

 

“못생긴 게.”

 

정신없이 자느라 듣지도 못할 애한테 괜한 심술을 부렸다. 정국이가 너무 귀여울 때면 곧잘 못생겼다며 심술을 부렸다. 못생기기는 개뿔. 아니야, 너 하나도 안 못생겼어. 입 밖으로 꺼내기 부끄러운 말을 마음속으로만 되뇌었다. 너만큼 예쁜 게 또 어디 있다고. 제멋대로 스르르 쏟아져 내린 정국이의 앞머리를 슬쩍 들어 올리자, 짙은 눈썹이 드러났다. 어쩌면 진하고 단정한 이 눈썹이 잘생겨서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떠도 예쁘고, 감아도 예쁜 맑은 눈 때문에 좋아하게 된 걸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라면 뭐든 예쁜 말만 나오는 저 입술이 범인일지도 모른다.

도둑고양이처럼 정국이의 얼굴을 하나하나 꼼꼼히도 뜯어봤다. 이때 아니면 또 언제 이렇게 진득하니 바라볼 수 있을까. 다른 멤버들이 언제 들어올지 몰라서, 괜스레 마음이 조급해졌다.

 

“뭐해요.”

 

한쪽 눈만 게슴츠레하게 뜬 정국이 날 보며 물었다. 겨우 반쯤 떴을 뿐인데, 그 시선이 어찌나 올곧게 날 향하던지 나도 모르게 눈을 피하고 말았다. 그런 내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정국이는 입을 삐죽였다. 그리고는 느릿하게 제 손을 들어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강하지도 않은 그 손길에 그대로 잡혀서는 꼭두각시 인형 마냥, 전정국이 잡아 이끄는 대로 몸을 숙였다.

 

“나 못생겼어요?”

 

두 눈두덩이 위에 잠 요정이 올라타기라도 한 건지, 정국이는 좀처럼 두 눈을 또렷하게 뜨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래서 다행이었다. 저 예쁜 눈으로 올곧게 날 바라보며 물었다면,

 

“엉.”

 

이런 거짓말 같은 거 못했을 테니까. 단호한 대꾸에 정국이는 입을 삐죽이며 내 무릎에 제 얼굴을 부비작거렸다. 그 모습이 꼭 어릴 때 시골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닮아있어서 나도 모르게 그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 얜 아마 동물로 태어났어도 엄청 귀여웠을 게 분명하다. 하얀 털이 복실복실해서, 꼭 솜뭉치를 닮았을지도 모른다. 귀여운 상상을 하고 있자니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때마침 꼼질거리는 걸 멈춘 정국이가 입을 앙다물고 날 올려다봤다. 얼굴도, 눈도, 코끝도 어느 하나 동그랗지 않은 게 없다. 너 진짜 귀엽다. 마음이 또 한 번 크게 일렁였다.

 

“무슨 만날 못난이래. 그런 거 말고 예뻐해 줘요.”

 

자기가 말해놓고 부끄러운 건지, 정국이는 귀까지 빨개져 가며 말했다. 길고 긴 사춘기를 끝낸 후로 낯가림도 덜 하고, 표현도 많아졌다는 생각은 했다만 이 정도까지 발전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옛날 같으면 닭살이라며 오만상을 하고 뛰쳐나갔을 애가, 이젠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제가 하고 있었다.

 

“아, 왜 대답 안 해요. 사람 민망하게.”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내려다보기만 하는 나 때문에 꽤 나 머쓱해졌는지, 정국이가 투덜거렸다.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 걸 어쩌겠는가. 지금도 예뻐 죽겠는데. 어떻게 이보다 더 예뻐하라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예뻐 죽겠으면서 청개구리마냥 싫다고 하기도 싫었다.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끊겨버린 고백이지만, 좋으면서 안 좋은 척하는 건 확신을 못 주는 것 같아서 싫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확신이 있고 없고 하는 게 뭐 그리 의미 있는 행동인지는 모르겠지만.

 

“아….”

“…….”

 

갑작스런 내 뽀뽀에 놀란 정국이는, 외마디와 함께 붙잡고 있던 내 옷자락을 슬며시 놓았다. 아주 잠깐, 뭐가 닿았더라?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김태형이 전정국에게 뽀뽀했다. 그것도 입술에. 귀엽다며 끌어안고 목덜미고 볼이고 뽀뽀하는 호석이 형의 평소 모습과는 100% 아니, 1000% 다른 행동이었다.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내 동공을 가만 바라보던 정국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녀석은 잠깐 놀라는 듯싶더니, 벌써 아무렇지도 않은 건지 픽 하고 웃어 보이는 여유까지 있었다.

 

“잘 자는 사람한테 못생겼다고 욕해놓고, 들키니까 괜히 뽀뽀하는 것 좀 봐.”

 

정국이는 못 말린다는 말투로 꿍얼거리며, 동그란 코끝을 찡긋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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