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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운은 당혹스러운 기분으로 차를 몰고 있다. 애꿎은 핸들만 손가락으로 톡톡 내려치다가, 앞머리를 엉망으로 쓸어올리기를 반복했다.

   "하, 참..."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내비게이션을 한 번 쳐다본다. 영 줄지 않는 도착 소요 시간이 짜증스럽기만 하다.

   정운은 서울로 향하는 중이다. 수해 없이, 혼자. 

   '먼저... 내려가라고요?'

   '여기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좀 남아 있어서. 정운 씨 한테 기다리라고 하기도 뭐하고. 잠깐 먼저 가 있어요. 금방 돌아갈게요.'

   수해는 길게 늘어진 옆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며 단호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신경을 온통 다른 곳에 쓰고 있는 듯 했다.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일에 대한 생각일 것이다. 예민하게 처리해야 하는 중요한 사안들을 남겨두고 있는 것 같아 더 방해할 수 없어, 별다른 말도 해보지 못하고 혼자 출발하게 되었다.

   '생각할 수록 황당하네. 나한테 매달리면서 약한 소리 할 때는 언제고, 일할 때 되니까 또 먼저 가라고?'

   평소에도 명쾌하게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는 수해지만, 이번만큼은 원체 문제의 난이도 높은 데다가 알 수 없는 서운함까지 겹쳤다.

   '분명 이야기 한 것 같은데... 이제 수해 혼자 두는 거 못 하겠다고...'

   먼저 올라가라고 하는 사람을 두고 거기서 신경 쓰이게 맴돌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어쩔 수 없이 혼자 출발하게 되었지만, 정운은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수해가 집으로 돌아왔다. 지치고 피곤한 기색으로 잔뜩 짐가방을 지고 올라오는 바람에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수해의 손에서 가방을 받아들자, 수해가 기력이 다한 듯 힘없이 휘청였다. 겨우 씻고 나온 수해에게 밥 몇 술을 뜨게 했더니 힘겹게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금세 침대로 들어가 버렸다. 자는 수해를 깨울까 봐, 정운은 같은 침대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침대 밑에 자리를 깔았다.

   수해를 두고 아침에 먼저 출근했던 정운이 돌아왔을 때, 수해는 거실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 온통 인쇄물과 사진 출력물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정운은 그것들을 흩트려 놓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수해 곁에 와 앉았다. 수해가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돌려 정운의 얼굴에 자신의 뺨을 가볍게 맞대며 미소 지었다.

   "왔어요?"

   다정하게 물으며 정운의 뺨에 가볍게 입 맞추는 몸짓에, 어젯밤 쌓인 서운함이 사르르 녹을 뻔했다. 하지만 수해의 양손은 여전히 노트북 위를 떠나지 않았다. 뭘 좀 먹겠냐고 묻는 정운에게 별로 생각이 없다며 다시 일에 열중하는 수해를 보고, 정운은 부엌으로 가 저녁 거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더 가까워진 줄 알았는데. 서로 마음을 확인한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잘못 생각했던 걸까. 정운은 괜히 참치마요 주먹밥을 꾹꾹 눌러서 뭉쳤다.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이렇게 놔두면 하나씩 쏙쏙 집어 먹겠지. 겉에 김 가루를 묻혀 만든 참치마요 주먹밥을 접시에 담아 수해 옆에 놓아주고 돌아서자, 수해가 정운 씨는 같이 안 먹느냐고 묻는다. 정운은 괜히 씻고 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자리를 피했다.

   물을 맞으며 멍하니 서 있자 생각이 계속 괴롭게 맴돈다. 혼자 있고 싶어서 자리를 피했더니, 또 수해가 곁에 없는 건 싫다. 그렇다고 곁에 있자니, 자신이 명백히 후순위에 있는 것을 느끼는 게 싫다. 욕실 벽에 머리를 박고 삽질이나 하다가, 그래도 수해 곁에 있고 싶다고 결론 내린다. 바보 같아. 왜 이렇게 바보같이 굴어. 한숨을 쉬며 물을 잠그고 욕실을 나왔다.

   대충 머리를 말리고 거실로 나와보니, 손도 대지 않은 주먹밥이 보인다. 수해가 정운을 돌아보며 웃었다.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어요. 앉아요 얼른."

   군소리 않고 수해 곁에 얌전히 와 앉았다. 얼른 먹으라는 소리에, 정운은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

   "젓가락, 하나밖에 없는데."

   "응? 그렇네. 갖고 오기 귀찮죠. 먹으면서 나 하나씩 입에 넣어줘요."

   하는 수 없이 젓가락으로 주먹밥 하나를 집어 수해의 입 근처에 갖다 댔다. 수해가 얄밉게 쏙 하고 주먹밥을 받아먹고는 오물거리며 다시 노트북 화면을 쳐다본다.

   에휴. 정운은 한숨을 쉬고 자기도 주먹밥 하나를 집어먹었다. 빌어먹게도 맛이 고소하고 좋았다. 간이 잘됐네. 수해도 먹어보니 은근히 입맛이 돌아오는지, 아. 하고 입을 벌린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운데 동시에 너무 얄미워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러나 별 수 없었다. 주먹밥 하나를 내놓으라는데. 정운은 주먹밥 하나를 집어 입에 넣어주었다.

   어느새 동이 난 그릇을 앞에 두고, 정운이 수해의 팔에 살짝 고개를 올려놓았다. 후순위로 밀려도, 역시 수해 곁에 있는 것이 좋다.

   "...수해 씨."

   "응?"

   "수해 씨, 사람 되게 유치하게 만든다."

   "응? 뭐가요."

   수해는 마치 자기가 깜빡 놓친 농담이라도 있다는 양, 웃으며 가볍게 되물었다. 아직 상황 파악이 덜된 것 같은 저 모습이 정운에게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다.

   "..."

   "주먹밥 먹여 달라고 해서 그런가? 좀 유치했죠."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온다. 저거, 다 알고 저러는 거다. 내가 뭐 때문에 서운한지 다 알고. 모를 리가 없지. 권수해인데. 정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던 일을 마무리하려는지, 수해가 노트북 전원을 종료하고 뚜껑을 덮었다.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쉰 수해가 정운의 복슬복슬한 뒷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정운 씨.”

   “…”

   “정운 씨.”

   “…네.”

   “나한테 서운해요?”

   “…”

   정운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았다. 수해가 쓰다듬던 머리통에 쪽 하고 입 맞추자 슬슬 고개를 들어 수해를 곁눈질로 보았다.

   수해는 여전히 빙글거리며 웃을 뿐, 먼저 말을 꺼낼 기미가 없어 보였다. 정운은 하는 수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수해 씨가… 수해 씨 삶에 나를 못 들어오게 하잖아요.”

   수해의 얼굴에서 놀리듯 빙글대던 미소가 사라졌다.

   “…그건… 곤란한데.”

   정운의 기댄 머리를 쓰다듬으며 수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운 씨. 나쁜 놈들 이야기 해줄까요. 나 거기 있었던 이유. 워낙에 나쁜 놈들 천지인 거 알고 있었지만, 진짜 가지가지 하더라고. 파 보니까 뭐가 자꾸만 딸려 나와. 근데, 구린 놈들은 구린 놈들끼리 통한다고. 내 의뢰인 쪽 불리한 정보들도 자꾸 같이 나오더라고요. 이야, 이것 봐라 싶었지. 아무리 의뢰인이라지만, 편을 들어주기가 좀 우습더라고요. 이렇게 된 거, 양쪽 다 정보 모아두면서 간을 좀 보자 했죠.“

   정운이 기대었던 고개를 살짝 들었다. 수해가 자신이 맡은 사건과 의뢰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따라두었던 차가운 녹차를 홀짝이며 수해는 잠시 말을 골랐다.

   “일부러 모습을 노출했어요. 직접 부딪혀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내가 탐정이라는 것도, 상대 진영에서 고용했다는 것도 다 이야기 했더니,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더라고. 그때부터 양쪽 진영이 머리를 엄청 굴리기 시작하는데, 아 이놈 새끼들이. 여차하면 나를 꼬리 자르기 하려고 각을 보더라고요. 상대 쪽은 내 업무폰까지 압수해가고. 그래서 뭐 그때부터는… 오기가 들어서 버티기 시작했죠. 딜을 중간에서 한번 꼬아보기도 하고, 뭐가 더 나올까 싶어서. 그냥, 버티고 있었어요. 정신력으로.”

   수해가 잔을 내려놓고 정운을 보았다.

   “근데 정운 씨가 온 거에요. 진짜 하늘이 도왔나 싶게.”

   잠시 정운을 보던 수해가 고개를 숙였다. 컵 가장자리를 매만지다, 작게 중얼거린다.

   “...진짜 보고 싶었는데.”

   정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고 싶었다는 수해의 말에 마음이 울렁였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수해가 정운을 생각하는 방식. 정운에게 바라는 것들. 처음 만났을 때 수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정운과 함께 있으면 일이 잘 풀릴 것 같다면서 웃던 그때. 그때의 기대가 지금까지 남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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