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와있었다.




너의 경호를 맡고 나서 100일이 되도록 그와 함께 있는 너의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그의 셔츠 단추를 잠가주고 있던 너는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찬열씨 좋은 아침!"



"……."



너와 그, 둘 중에 누구에게 부터 인사해야 할지 순간 머뭇거리다 결국 너의 인사를 받고도 그에게 먼저 허리 숙여 인사했다. 너에게는 가볍게 눈인사로 대신했고 다행히 너는 다 안다는 듯 내게 웃어보였다.



너와 그는 전날 집으로 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잔듯했다.  



나가. 나가버려-



너와 나의 공간에 침입한 그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다정한 너희 둘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의 불청객은 나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전혀 즐겁지도 괜찮지도 않았다.



“아 맞다, 형 이거 가면서 먹어요!”



형?

나는 당연히 네가 레이씨나 보스 뭐 이런 호칭으로 그를 부를 거라고 생각했다. 너는 그의 정부였고 그는 이 조직의 보스였으니까. 그런데 형이라니.



나도 찬열이형. 이라고 불러줬으면. 

눈앞에서 그가 너와 함께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너에 대한 욕심이 커져갔다.



둘을 멍하니 바라보며 서있던 나는. 너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다가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앉아도 좋다는 보스의 손짓에 아차 싶어 얼른 고개를 돌리고 소파에 앉으려다, 그 위에서 너와 그가 뒤엉켜있는 그림이 떠올라 갑자기 속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앉으려다말고 주춤거리며 서서 소파를 노려보고 있자 너는 늘 그렇듯 네 멋대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찬열씨 또 아침 안 챙겨먹었죠! 빈혈인가? 어지러워요?"



대체 나를 보고 어디가 아침 한 끼 굶는다고 빈혈이 생길 것 같은지. 나는 할 말을 잃고 너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고 그도 어이가 없다는 듯 너를 쳐다봤다.



"아닙니다. 저.. 있다가 보스 가시는 거 보고 앉겠습니다."



겨우 그렇게 둘러대고 그의 눈치를 보았더니 그는 웃으면서 알았다고 했고 너는 그래도 탐탁치않다는듯 입을 삐쭉였다.




"밥을 잘 먹어야되요."



"네가 할 소리는 아닌 거 같은데-"




그가 돌아가고 나면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을거라는듯 눈을 살짝 흘기더니 다시 그에게 집중하는 너였다.




다행히도 너는 그와 이곳에서 같이 잔 것은 아니었다. 컬렉션 준비가 막바지인 너는 어제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잤다고 했다. 아침에 그가 너의 간식거리를 들고 방문했고 너는 그의 넥타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바꿔서 매주고 있던거라고 했다.



진짜야? 거짓말 아니지?



거짓말을 못하는 네 덕분에. 소파에 파묻힌채로 네가 나눠준 그가 사온 간식을 먹으면서. 나는 다시 좋아진 기분으로 그날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함께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동요했던 그때. 내가 너를 향한 마음을 새삼 깨달은 그 때 그도 눈치를 챘던건지, 다음날 바로 그는 자신의 비서를 나에게 보냈다.



여느 날처럼 너를 데리러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는데 문 앞에 비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수고했어.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는 다시 잭으로 출근해-.”



수고비라는 하얀 봉투와 함께 너의 경호를 그만두라는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빛은 냉담했다. 네가 감히 라고 생각하는 걸까. 너무나 갑작스러운 통보였지만 나는 이유도 물을 수도 그 일을 계속 맡고 싶다고 말할 수 도 없었다. 순간 가슴이 답답해져 알겠다는 대답도 못한 채 그저 고개만 끄덕여보였을 뿐.



너와 나는 그렇게 끝나버렸다.

제대로 시작한적조차 없었지만 갑자기 끝나버린 이 관계에 나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흐르고. 또다시 한주가 흘렀다. 연락 한번 없는 네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가 강제로 나를 바꿨다고 해도 너라면 내게 충분히 연락을 하고도 남았을 것을 알기에. 정말 네가 직접 내가 싫다고 바꿔달라고 한 건가 싶어 서운함과 동시에 억울함이 밀려왔다. 그동안 내가 너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망할 놈.



뒤늦게 사춘기가 온 것 마냥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네 모습 때문에 나는 숙소에서 하루 종일 운동만 미친듯이 해댔고 잭의 반장은 그런 나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너를 못 본지 2주가 되던 날.

이제는 밤마다 찾아와서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너때문에 잠도 설친 채 잭으로 가려고 숙소를 나서는데 낯익은 인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 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바로 그 방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생각보다 더 빨리 친해졌더군.” 



나에 대한 그의 평가.



“너도 알겠지만 고집이 좀 세서 말이야.”



물론 이건 네 얘기. 얼마 만에 듣는 너의 소식인지 어서 말하라며 그를 재촉하고 싶었다.




“네가 맘에 들었는지 다시 왔으면 좋겠다더군. 며칠 동안 밥도 제대로 안 먹었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픈지 눈을 감은 채 관자놀이를 쓸어내리며 그는 내게 말했다.



“내일부터 다시 종대 사무실로 출근해. 대신 지금 맡고 있는 녀석이랑 같이 하도록 한다.”



너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기쁨과

나를 감시할 놈이 붙은 것에 대한 짜증

그리고 나를 보는 그의 눈빛에 서려있는 의심에서 오는 불안감.



너와 다시 해도 좋다는 그의 허락이 떨어진 그 순간.



나는 그랬다.






-다음날 아파트가 아닌 너의 사무실로 바로 갔다. 

너와 단둘이 있는 것을 막을 심산인지 앞으로 너의 출퇴근은 그 새로운 담당이 맡는다고 했다.



너는 2주 만에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보자마자 그대로 내게 달려와 안겼다. 내 목을 끌어안은 채 '힘들어서 못해먹겠다면서 왜 왔어- 앞으로 말 잘 들을게요 진짜..' 한참을 칭얼거리면서. 너는 나를 놔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그때라고 말할지도.



밥을 굶으면서까지 나를 다시 불러준것이 기특해서 엉덩이라도 토닥여주고 싶은데 나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에 그럴 수 없었다.



우리의 감동적인 재회 장면을 대놓고 못마땅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던 너의 새로운 담당은 오세훈이라고 했다. 삼백 안이라고 하나 저런 눈을. 키는 나만한 게 곱상하게 생겨서 눈빛만 살벌한 놈은 이제 겨우 22살이라고 했다.



"완전 애기지?"



내 뒤에 숨어서 거드는 너의 모습에 놈은 숨김없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아저씨가 늙은 거라니까요-'



놈은 어려서 그런지 보스의 애인이고 뭐고 상하관계라는 개념이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심심할 때마다 너를 놀리면서 지루함을 달래는 듯 했다.



" 아 디자인 조나 구림. 이거 딱봐도 안 팔려요 요새 누가 지퍼를 이런걸 달아"



" 야 네가 뭘 알아 그리고 내가 그거 훔쳐보지 말랬지 찬열씨 쟤 좀 어떻게 해봐요. 아 진짜 미치겠어-"




너와 다시 만난 첫날.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딱 며칠만 더 쉬다 왔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박찬열선생님 반에 새로운 전학생이 왔네요^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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