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 거 없는 단문 백업용. 그냥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을 단문 형식으로 짧게 쓰고 그때그때 업데이트 합니다. 업데이트 안 될 수도 있습니다.

* 가학, 폭력 묘사가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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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하아. 후우.”

만족할 만큼 식사를 마친 뱀파이어는 숨을 고르며 머리를 치켜든다. 너무 오랜만의 식사여서인지, 첫 번째 이후로 이만큼 정신을 놓고 심취한 적은 처음이다. 게다가 상대는 가장 맛있는 피를 가진 저의 연인이다. 전투 때마다 틈틈이 적들의 피를 훔쳐 먹기도 했지만 그 사람만큼은 아니다. 사랑이 피를 더 달콤하게 만들기라도 하는 걸까? 그렇다면 무슨 논문 감이겠다!

“하아. 미안, 자기. 오늘은 좀 절제심이 부족했네.”

평소보다 심취한 것을 자각한 뱀파이어는 사과의 말을 건넨다. 그리고 당연히 돌아올 타박과 투정 어린 목소리를 기대했지만…… 그저 침묵뿐이었다.

“? 자기야?”

뱀파이어는 갸웃거리며 바닥에 누운 연인을 한 번 더 불러본다. 그러나 여전히 답은 없다. 이건 또 무슨 장난이야, 라고 웃으려다 서늘함이 등골을 타고 올라온다. 바닥에 누운 사람의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어?”

다급하게 엎드려 가슴께에 귀를 대본다. 타종족보다 몇 배는 예민한 엘프의 귀로도 희미한 맥박 비슷한 소리조차 느낄 수 없다. 식은땀이 주룩 흐른다. 잠깐만, 가지고 있는 짐에 부활 스크롤이 남았던가? 며칠 전 이이가 스크롤이 떨어졌다면서 초조한 듯이 말하지 않았던가? 그게 언제 적 일이었지? 그래서, 잠깐만, 아니야…….

“자기야, 자기야…….”

떨리는 목소리가 흉할 정도지만 그런 걸 따질 여력은 없다. 축 늘어진 몸은 아무리 흔들어도 미동조차 없고 놀랍도록 빠르게 온기가 사라져간다. 뱀파이어는 식어가는 신체를 마치 흩어져가는 영혼을 붙들려는 것처럼 꽈악 끌어안는다. 

멍청하구나.

익숙한, 그리고 또 너무도 끔찍한 목소리가 귓가에서 속삭이듯 울린다.

너는 파괴만을 일삼는 괴물이야.

비릿한 웃음을 항상 떠올리던 입가.

내가 항상 말하지 않았느냐?

찢어죽일 전 주인의 말은, 결국 진실이었을까?

‘생각, 생각해.’

뱀파이어의 덜덜 떨리는 몸 때문에 그 품안에 끌어안긴 시신도 같이 진동한다.

‘별 일 아닐 수도 있어.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어디 신전이나…… 클레릭이라도 찾을 수 있으면…….’

그러나 세상은 뱀파이어에게 친절하지 않고, 특히 신전이나 클레릭이란 족속들은 더욱 그렇다. 어찌 어찌 우호적인 별종을 찾는다 하더라도, 그때까지 영혼이 이승에 붙어있어줄 것인가? 뱀파이어는 그런 쪽 지식에는 무지했다. 사람이 죽었을 때 온전히 되살려 내려면 과연 얼마 정도의 시간 유예가 있는지, 정확한 조건은 무엇인지. 지금까지 숱한 모험과 위기들을 헤쳐온 그들에게 죽음이란 어쩐지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았고, 드물게 위기가 닥쳐오더라도 금방 해결할 수단이 가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위기를 가져온 게 이번엔 다름아닌 자신이라니! 뱀파이어는 숨막힐 듯한 자책감에 무너져내린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네 웃는 얼굴을 다시 못 보게 되면.’

나는 스스로를 영원토록 용서하지 못할 거야.




“가만히 있거라.”

다분히 명령조였으나 강제력이 없는 말. 로드 뱀파이어는 마음만 먹으면 ‘힘’을 부여한 말로 스폰들을 조종할 수 있으나, 이번만은 일부러 그 강제력을 제하였다. 차분하고도 어르는 듯한 말투는 그의 희생양을 오히려 조롱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은으로 만든 칼날이 피부를 찢는다. 고통은 순간이라지만 흉터는 영원할 것이다. 뱀파이어에게 은 무기란 그런 것이다. 불멸을 보장받은 괴물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는 몇 없는 수단. 그것을 알고서도 이 미친 새끼가.

몸부림친다.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지른다. 가만히 당하고만 있기는 싫다. 가만히 있으라면 저항한다. 조용히 하라면 소리 지른다. 그럴수록 등을 긋는 칼날이 박히는 힘은 더 강해지지만 저놈이 하라는 대로 하고 싶지는 않다.

“가만히 있으라니까, 그러면 더 아프기만 하지 않느냐? 말을 참 안 듣는구나. 나쁜 아이 같으니.”

“참을성이 없어서……, 큭, 죄송하게 됐습니, 다?”

“다시 말하마. 가만 있거라.”

그러나 이번에도 강제력이 없다. 말투에 비릿한 웃음기까지 느껴진다. 등을 보이고 있는 상태이므로 놈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틀림없이 웃고 있을 테다. 썩을 놈의 변태 자식.

다시 한 번, 이번에는 더 깊이 칼날이 박힌다. 고통에 혀를 씹을 뻔했다. 숨이 막혀서 오히려 비명을 삼켰더니, 주인은 만족인지 의아함인지 모를 투로 말한다.

“진작에 조용했으면 좋았을 것을.”

씨발 새끼. 죽여버린다. 네놈은 반드시 죽인다. 똑같이 은으로 된 칼날을 네 몸속에 몇 번이고 박아주겠다. 비릿한 웃음도 깔보는 말투도 할 수 없도록 얼굴과 혀를 그어버리겠다.

“로드시여…….”

“그래, 아이야.”

“요즘 너무 아랫것들 부리기만 하셨나 봅니다. 칼 쓰는 솜씨가 그렇게 녹슬어 버리셨으니 어떡합니까? 고귀한 분이시여.”

그러나 그것은 오늘이 아니다.





그때 그때 좋아하는 것을 막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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