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8. 19 제 2회 템플스테이에 발간했던 단편을 무료 공개로 돌립니다. 추후 다시 일부공개 또는 비공개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 본 글은 화성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2015 라이센스판 JCS 를 기반으로 한 2차 창작으로, 공식 및 실존 인물, 단체, 종교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성흔 Stigmata



그와 싸웠다.

한참이나 몸을 뒤척여도 잠이 오지 않았다. 유다는 한 시간 가까이 억지로 꾹 감고 있던 눈을 마지못해 도로 떴다. 흘끔 어렴풋이 보이는 문의 윤곽에 시선을 주다, 유다는 목 너머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신경질을 삼키며 다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그러나 뒤집어쓴 이불의 열기는 텁텁하여 외려 기분만 더욱 나쁘게 했다. 똑딱대는 시침을 따라 신경이 점점 더 날카롭게 곤두서고 있었다.

문득 문이 열린 듯 경첩이 삐걱대는 소리가 들렸다. 무시하려 했으나, 어느새 손은 슬그머니 도로 뒤집어쓴 이불을 내리고 벌어진 틈을 향해 귀는 쫑긋 기울여져 있었다. 뒤이어 스스로를 향해 극심하게 올라오는 자괴감에 괜히 이불만 쥐어뜯는 밖으로 발걸음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 식사를 하시려나, 기대했으나 발소리는 부엌을 지나쳤다. 뒤이어 문이 다시 닫히는 소리, 가로막힌 문 사이로 뭉개진 물소리로 유다는 그가 아마 씻으러 욕실로 갔을 것을 짐작했다.

유다는 잠들기 전 식탁에 차려둔, 그리고 결국 식어갈 저녁밥을 떠올렸다. 겨우 눌러둔 뜨거운 덩어리가 또다시 울컥 올라올 것 같아, 괜한 아랫입술만 자근자근 깨물며 그는 외면하듯 등을 돌려 누웠다. 드시기 싫으면 마시라지. 나는 절대 신경 쓰지 않아, 신경 쓰지 않을 거야…공연히 소리 낼 듯 말 듯 툴툴대는 입모양도 만들어 보았다.

그러나 사실은 스스로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어지던 물소리가 잠시 끊기고 물이 튀듯 찰박대는 소리가 들리다 다시 이어졌다. 물줄기 소리가 굵고 큰 것을 미루어 볼 때, 샤워기가 아닌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 같았다…이건 샤워하는 소리가 아닌데. 세수만 하시나?

아, 미련한 자는 누운 채 오른팔로 두 눈을 가렸다. 아, 이 머저리.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 놓고 또, 또.

유다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니까, 사실은 스스로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제가 그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아니, 애초에 그런 게 제게 가능키나 할까. 한 번이 아니라 열 번쯤을 더 다시 태어나도 불가능하리라. 심지어 저 지옥에서 악마의 아가리에 물려 있는다 해도, 당신이 와 준다면 분노를 토하고 원망을 입에 담을망정 그리하진 못하겠지.

그리고 그래서 더욱 화가 나는 것이었다. 꽉 깨문 입술에서 피 맛이 났다.

 

그와 싸웠다.

그것만 놓고 보면 별다를 것도 없는, 자주 있는 일이었다.

벌써 흐려져 가는 기억을 애써 붙들고 찬찬이 이제 와 곱씹어 보면 원인은 굳이 입에 담기조차 하찮고 사소한 것이었다. 그러나 두 사제는 본디부터 아주 정다운 사이는 아니었고, 아주 오랜 시간과 생을 넘어 다시 만난 뒤에는 더욱 서먹해져 매우 사소한 일로도 쉽게 다투게 될 만큼 날이 서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날이 바짝 서 있는 것은 제자의 쪽이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기실 그들이 함께 한 마지막은 전 세계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만큼 최악이었고 그 최악의 마지막을 계획하고 실행한 이가 바로 그 스승이었으니. 눈물로 호소하며 말리려 든 제자를 끝끝내 밀어내고 싫다는 이에게 제가 마실 독잔을 들고 오게 했던 것까지 생각하면 더욱 그러했다. 하물며.

‘유다.’

그래 놓고 장장 이천 년 만에 뻔뻔히 제 앞에 나타났다면 오죽할까.

‘오랜만이구나.’

불가능했을 걸 앎에도 유다는 이따금 그날을 떠올리며 생각하곤 했다. 그때 그냥 모른 척 지나가 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럼에도 결국 동거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시작되었다. 그러나 유다는 그를 바라보는 매 순간마다 울컥대며 치솟는 복합적인 감정을 억지로 삭이곤 했다. 끓어오르는 복잡한 그 원망과 애증을 유다는 대체로 제 가슴 속에 잘 갈무리해 억누르는 편이기는 했으나, 해소되지 못하고 켜켜이 쌓여 온 감정이 그대로 언젠가 흩어져 스러지길 기다리긴 이천 년의 세월은 너무 길었다.

물론 유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적어도 유다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불화의 씨를 키우기론 스승의 태도도 결코 그 몫이 작다 할 수 없었다. 끓어오르는 감정은 이따금 결국 임계점을 지나면 폭발하곤 했는데, 거기까지 가는 데는 어찌 하나도 변한 게 없는 스승의 고집과 독선이 혁혁한 공을 세우곤 했으니. 이천 년 만에 만난 스승은 변함없이 아름다우셨으나―그야 예전보단 많이 유해지긴 하셨지만, 그 올곧고 단호한 성품도 쇠 같던 고집도 유감스럽게도 변함없는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 날도 그러하였다. 분명 시작은 굳이 입에 담기도 민망할 정도로 사소했던 것 같은데, 한쪽의 고집과 다른 한쪽의 예민함이 더해지니 언성이 높아지는 것도 순간이었다. 보통 이와 같은 소요는 어느 한쪽이―다소 높은 확률로는 유다가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것으로 일단락되기 마련이었다. 오늘은 유다가 아닌 스승이 먼저 방에 틀어박히기는 하였지만, 그 역시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일만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저스, 식사하세요.’

한참 시간이 지나 유다는 저녁상을 차리고 문을 두드려 그를 불렀다. 가라앉은 목소리만 제하면 그 태도에 싸움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 역시 늘 그랬던 그대로였다. 어쨌든 옛 제자는 스승에게 그렇게 오래 화를 내진 못했으므로.

고로 평소와 무언가 다르게 돌아가기 시작한 연유가 유다 때문은 아니었다. 닫힌 문 너머로 작은 말소리가 들린 것은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랜 시간이 흐른 후의 일이었다.

'…생각 없다.'

유다의 미간에 주름이 새겨졌다. 그래, 여기까지는 아주 없는 일은 아니었다. 그가 제 말을 안 들은 게 어디 한두 번인가.

‘당신 점심도 안 먹었지 않습니까. 와서 드세요.’

‘생각 없대도.’

‘제가 불편해서 그러십니까? 그럼 제가 나중에 먹죠.’

‘…아니다.’

‘당신 정말―’

―이천 살 넘게 먹어서 아이처럼 왜 이러십니까? 짜증어린 말을 삼킨 것은 순전히 아직도 제 영혼에 남은 공경과 사랑 때문이었다. 잠시 숨을 짧게 들이쉬고, 유다는 더 이상 뭐라 말하는 대신 문고리를 돌렸다. 아마 이불을 뒤집어쓴 채 누워 계시겠지. 아니면 창가에 앉아 밖을 노려보고 계시든가. 어떻게 되었든 더 이상 저를 피할 수 없게 만들어줄 작정이었다.

나를 봐, 그는 이를 갈았다. 내가 여기 있는데 또 나를 무시하려 하지 마.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철컥, 하고 문이 잠긴 메마른 소리가 들렸을 때 유다는 싸하게 가라앉는 심장과 함께 드디어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다.

그는 잠시 후 돌처럼 굳어 있던 입술을 열었다. 조금 전보다 수십 배는 더 싸늘한 어조였다. 그러나 그 끝은 분노에 그을린 채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문 열어요.’

‘들어오지 마라.’

‘어서 열어요, 애도 아니고 대체 지금 뭐 하는 겁―’

‘들어오지 말라니까!’

갑자기 벼락같은 고함이 터졌다. 유다는 마치 감전된 듯 흠칫 놀라 문고리를 놓았다. 제게 돌아온 스승은 한 번도 이와 같이 소리친 적이 없었지만 유다는 먼 옛날 이와 같았던 그의 음성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신의 이름을 팔아 장사하던 이에게 내지르던 고함소리, 마리아를 핍박하던 저와 다른 이들을 꾸짖던 소리, 마지막 날, 저를 밀치며 배신을 종용하던 그 목소리.

서서히 그의 머리가 차갑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울컥 밀려오는 것은 모멸감이었다. 분노였다. 참담함이었다. 가파른 감정의 끝에서 유다는 굳게 닫힌 문을 사납게 노려보며 짓씹듯 내뱉었다.

‘좋습니다. 좋을 대로 하세요.’

‘…….’

‘저는 빌어먹을 인간이라 살려면 먹어야 해서 먼저 들겠습니다. 나중에 드시든 말든 마음대로 하세요. 이제는 더 간섭하지 않지요.’

‘…….’

‘고함을 치실 정도로 화가 나셨다니, 미욱한 제자가 어리석어 그만 스승님의 심기를 어지럽혔습니다. 죄송합니다.’

정제된 독설을 쏟아 붓고는 유다는 팽개치듯 자리를 떴다. 실컷 빈정대어 속이 조금 후련한 듯도 하였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분이 풀리는 것도 잠시, 외려 곧 더더욱 답답하게 죄여오는 가슴에 질식할 것 같았다. 꼭 옛날 목을 매달아 숨이 가빠오던 그때 같았다.

떠난 자리로 가느다란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 듯도 했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그 소리가 제 이름자를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역시 굳이 되새기지 않기로 했다. 지금 이 집에는 유다 자신과 스승밖에 없었고, 스승이 지금 제 이름을 부를 리는 전혀 없었으므로.

 

그후 삼십여 분이 흘러도 물소리는 굵어질 뿐 멈추지를 않았다.

이쯤 되니 억지로 눈을 꼭 붙이고 버티기도 힘들었다. 방향을 오 분마다 바꿔 뉘며 한참을 버티고 또 버티던 유다도 결국에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만사를 포기한 채, 그는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내키지 않는 듯 천천히 걸음을 끌어 욕실로 향했다. 대체 뭘 하고 계시기에 반시간이 넘도록 물을 틀어놓고 계시느냐, 혹시 새로 얻으신 육신에 다시 세례를 받고 싶으신 거라면 좁은 욕실에서 고생하지 마시고 목욕탕에를 가시라고 비꼬아줄 작정이었다……그리고 아주 약간, 응, 아주 약간 걱정이 안 든 것도 아니긴 했다. 유다는 입 속 가득히 변명과 합리화를 우물거렸다. 제 스승은 위대하다 못해 범인의 시각으로는 가끔 종잡을 수가 없는 분이셨으며, 하물며 오늘은 평소에는 잘 하지 않던 짓들도 하고 계셨다……게다가 보통 사람들도 화장실에 삼십분 넘게 틀어박혀 수도꼭지를 틀어놓는 짓은 여간해선 하지 않기도 하고…….

하여 드디어 욕실 앞에 섰을 때 그는 다소 기이한 광경을 보게 되고 만 것이었다. 하필 이번에는 문이 잠겨 있지도 않아서 아주 쉽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유다는 조금 얼이 빠진 얼굴로 그 꼴을 보고 있다, 그 가운데 있는 사람이 여전히 제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자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불쑥 끼어들고 말았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무언가 쾅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그쪽을 보니 위에 올려둔 대야가 떨어졌을 뿐이었다. 다시 시선을 돌리니 스승이 어색하게 굳은 얼굴로 손에 든 뭔가를 뒤로 감추고 엉거주춤 서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한 번 갈아입었는지 낮에 입고 있던 흰 셔츠가 아닌 검은 색의 폴라티였다. 유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저스.”

당황한 채 유다를 바라보던 눈동자가 그의 시선을 피해 미묘히 굴러갔다. 유다는 또다시 속이 뒤틀리는 한편 미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저런 얼굴을 하시는 걸 분명 전에 본 적이 있는데 옛날에. 유다는 잠시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가물가물 잘 떠오르지 않았다. 무화과를 드시고 싶어 전대에서 슬쩍 얼마를 빼가셨을 때였던가? 아니, 그건 시몬이었나? 하지만 그 놈은 좀 더 뻔뻔한 표정이었던 거 같은데.

뭐, 상관없을는지 모른다. 대신 그는 손가락을 들어 지저스가 미처 치우지 못한 빨래판과 비누를 가리켰다.

“빨래는 세탁기를 쓰시면 된다고 분명 말씀드렸는데요.”

혹시 세탁기 작동법을 잊으셨나. 물론 제 스승이신 성자께선 아주 영민한 분이었지만, 이천 년 전의 문명 수준에 멈춰 있던 목수가 현대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게 아주 없을 법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실제로 지금까지의 기억을 반추해 보면, 아무리 스마트폰이며 컴퓨터며 이런저런 기계에 대해 알려드려도 여전히 자동보다는 아날로그를 선호하시는 듯도 했고.

유다는 다시 한 번 올라오는 한숨을 삼켰다. 여전히 화가 나긴 했지만 어쩐지 조금 맥이 빠졌다. 그는 조금 누그러진 어조로 계속 말했다.

“…쓰는 법을 잊으셨다면 제가 내일 할게요. 빨래 바구니에 두세요.”

그러나 지저스는 여전히 머뭇대듯 뻣뻣한 모양새였다. 왜 저러고 계신가, 아니, 애초에 이 한밤중에 뭘 빨고 계신 거지?

궁금증이 커질 즈음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어쩐지 지친 듯한 목소리에서는 피로감과 함께 이유를 알 수 없는 초조함이 묻어났다.

“내가 할 수 있으니 괜찮다. 들어가 자렴.”

, 유다는 인상을 찡그렸다. 끝까지 저러시네, 진짜.

“제가 한다니까요.”

“괜찮다니까.”

“한참이 지나도 계속 빠시는 걸 보면 앞으로 혼자 더 하신다고 해도 지워질지 모르겠는데요. 대체 뭘 빨고 계시길래 그런 겁니까?”

“들어가서 자라고 했다.”

조금 가라앉는 듯했던 짜증이 도로 울컥 몰려왔다. 유다는 무어라 더 대꾸하려다 도로 입을 꾹 다물었다. 더 이상 실랑이를 벌였다간 또 싸울 것 같았다. 그리고 혹시 또 아나, 여기서 더 화나게 했다가는 어쩌면 또 제게 고함을 치실지도 모르지.

갑자기 입맛이 썼다. 유다는 그를 조금 노려보다 문고리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정확히 지저스가 원하신 대로 이만 꺼져 드릴 생각이었다. 네에, 제자는 스승의 뜻에 순종해야지요. 그는 속으로 빈정거렸다. 그러나 막 문을 닫으려던 찰나 문고리를 당기던 그의 손을 시야에 언뜻 들어온 무언가가 막았다. 아주 희미한 빛깔이었지만 그에게는 아주 질리도록 익숙한 색이기도 했으며, 그의 영혼 깊숙이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을 악몽을 심어둔 빛이기도 하였다.

순간 눈앞이 하얗게 물들었다. 유다는 문을 닫고 나가는 대신 욕실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와 아직 물이 채 내려가지 않은 세면대 앞에 섰다. 지저스는 갑작스런 제자의 행동에 놀라 소리를 치려다 그가 선 곳을 보고 도로 입을 다물었다. 세면대 안에서 아직 시끄럽게 콰르륵 콰르륵 내려가고 있는 물의 빛깔은 분명 옅은 선홍색이었다.

무거운 적막이 욕실 안에 가득히 내렸다. 유다는 묵묵히 배수구로 나가고 있는 핏물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곧 몸을 돌려 무엄히도 뒷짐을 지고 있던 성자의 팔을 거칠게 나꿔챘다. 동시에 흰 형광등 아래 손에 쥐고 있던 피 묻은 셔츠가 드러났다. 그의 스승이 낮에 그와 싸울 적에 입고 있었던 바로 그 옷이었다.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셔츠를 뚫어지게 노려보다, 이번에는 쥐고 있던 셔츠를 빼내어 그를 쥐고 있던 손을 제 눈앞에 가져다 들이밀었다. 찬물에 창백히 질린 손, 그 정중앙에 뻥 뚫린 상처가 굳다 만 피를 머금고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깨끗이 낫지는 않았으되, 분명 오랜 세월을 거쳐 흉터만 남기고 아물었어야 할 상처였다. 방금 전 못을 빼낸 것 같은 그 참혹한 상처에 유다는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끔찍한 과거는 못이 되고 창이 되어 간신히 묻어둔 옛 상처를 쑤시고 벌려냈다.

“당신 손이, 왜…….”

이제 나았어야 했는데, 나은 걸 내가 봤는데, 또 이제 와서?

지저스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탄식 같은 그 소리에 들키고 싶지 않았던 비밀이 드러나고 만, 착잡하고 씁쓸한 기색이 묻어났다. 다른 쪽 손, 역시나 가운데 못 자국이 선연한 그 손이 가벼이 유다의 뺨 위에 얹히었다. 제 뺨과 눈가를 쓸어주는 손가락의 감촉을 느끼며, 그제야 유다는 제가 눈물을 흘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감정이 격해질 때, 슬프고 괴로울 때, 이따금 상처가 벌어지는 일이 있다고 그는 말했다.

상처는 비단 손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못이 박힌 양손과 발, 절명 직전 창이 박힌 옆구리에 이르는 피를 배어문 옛 상처를 보고 유다는 더 이상 흘릴 눈물조차 없었다. 흉하게 벌어진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바르고, 그 위로 붕대를 감는 동안 두 사람 사이로 침묵이 서리처럼 서렸다.

한참 시간이 흘러 붕대를 마감하고 늘어놓은 약과 붕대를 주섬주섬 치우며 유다는 중얼거리듯 치료가 끝났음을 고했다. 아까의 독기와 분노는 그 안에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눈물이 그친 눈시울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끝났습니다. 아프실 테니, 아물 때까지 손 움직이지 마세요. 손이 물에 닿게 하지도 마시고요.”

사실 아무 소용도 없을 테지만 그렇게 말했다. 신성의 증거인 상처가 고작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는다고 나을까.

지저스는 물끄러미 붕대만 바라볼 뿐 말이 없었다. 대답은 없었지만 아마 이번에는 제 뜻에 따라 주리라, 유다는 그렇게 직감하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 웃음이 터지기도 하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가 제 말을 안 들은 게 한두 번이냐고 투덜댔던 거 같은데.

한편 조금 의외이기도 했다. 한참 소리 없이 울던 유다가 엉망이 된 얼굴로 구급상자를 가져왔을 때 지저스는 아무 말 없이 그를 향해 상처가 난 손을 내밀었다. 필시 아까처럼 필요 없다, 내버려 두어도 된다 말씀하실 거라고 했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처럼 얌전하게 유다가 치료를 끝낼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새하얀 붕대에 감긴 손 위로는 더 이상 아무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해서 그 속에 감겨 있을 상처가 벌써 아주 사라졌을까. 유다는 메마른 자조를 토했다. 그는 감정이 들끓을 때 상처가 벌어진다 했고, 오늘 그의 감정을 들끓게 한 것은 자신이었다. 즉 지저스가 얼마나 저를 아프게 했든 간에, 결국 그를 또 아프게 하고 상처를 낸 것은 자신이었다. 이천 년 전부터 결국 이런 식이었다. 그를 사랑하여, 그를 살리려고, 그의 뜻을 따르려 한 일조차 모두 칼이 되어 제가 사랑하는 이를 찌르고 만다.

“유다야.”

나직한 목소리가 내려앉아 유다를 감쌌다. 유다는 여전히 조소를 머금고 말했다.

“언제부터 피가 나신 겁니까?”

“유다.”

“모르긴 해도 아까 싸우고, 들어오지 말라 소리를 치셨을 때는 이미 상처가 벌어진 후셨겠죠. 아닙니까.”

“…….”

“혹시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게 아닙니까? 전에도 그랬는데 그냥 제가 멍청해서 몰랐던 것뿐이고요.”

다시 한 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 역시. 그는 눈을 감았다.

힘없이 약병을 쥔 손을 마디진 손가락이 포개어 잡았다. 붕대에 감긴 손바닥으로부터 그 살결을 느낄 수는 없었으나 적어도 전해지는 온기만은 따스하였다. 차분한 음성이 다시 한 번 죄책에 사로잡힌 제자를 다독였다. 저를 곧게 바라보는 검은 눈길을 이번에는 유다가 고개를 숙여 피했다.

“곧 나을 거란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유다는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그거 경험에서 나온 말입니까?”

“유다.”

“왜 진작 말씀 안 하셨습니까? 제가 슬퍼할까 봐요? 당신께 싫단 소리도 못 하게 될까 봐? 하지만 당신께는 그 편이 더 낫지 않습니까?”

그리고 제게도 그 편이 나았을 것이다. 싫은 말은 아무것도 못 하고 아예 혀를 자르게 된다고 해도, 제 혀로 그를 또다시 못 박고 찌르게 되는 것보다는 나았다. 스스로 가라앉을 때까지 절대로 치유되지 않을 기이한 상처를 그 몸에 새기고, 그저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어 억지로 그 위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 스스로 기만하게 되는 것보다는 나았다.

세간이 그 상처를 어떻게 부르는지는 유다도 알고 있었다. 성흔이라고, 성스러운 상처이며 징표라고 부른다지. 심지어 그를 숭배한다며 일부러 제 손발에 상처를 새기는 미친놈도 있다고 들었다. 잘라 말하건대 유다는 그들 모두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또한 동시에 저주하고 혐오했다. 제 부모의 손에, 제 자녀의 손에, 제 연인의 옆구리에 평생 낫지 않는 상처가 남는다 해도 거기에 성스럽다 경배를 할까? 스스로를 죽여 전 인류의 죄를 대신 쓰고 갔다고?

약병을 쥐고 있던 손에 문득 힘이 들어갔다. 입술을 꽉 다시 한 번 물고, 유다는 천천히 제 손을 감싸 쥔 흰 손마디를 마주 쥐고 들어 올렸다. 그리고 제 입가에 갖다 대고서 붕대를 감은 상처 위로 깊숙이 입 맞추었다. 종종 입 맞추곤 했던 손등이 아닌, 손바닥 쪽에 하는 키스였다. 입술을 묻은 손바닥 위로 옅은 피 냄새와 소독약의 냄새가 났다. 마른 붕대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져 그 위를 적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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