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b_type.22

어떤 공간이라도 어둠이 내리면 

나가야 할 곳을 알리는 불빛도 

같이 켜지기 마련이야. 


그럼 내가 세는 걸 잊을 정도로 

그동안 내달렸던 공간 안에도 

비상구는 그 자리에 있었을까? 


 올려다보면 작게나마 반짝이는 

초록빛을 내는 사람이.  

내게도. 


우린 어둠 속에서 

비상구가 보이는 한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네가 종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게 처음 이용당했다고 

내게 말했을 때.” 


“나는 어떤 걸 가장 후회한 줄 알아?” 


“네가 그곳에 소속되어 있는 동안 

먼저 연락하지 못했던 거.” 

“그리고 네가 나한테까지 

이야기하지 못한 걸 질문하지 않았던 거.” 


“그땐 우리가 잘 만나지도 않았잖아.” 

“너는 학교생활에서 해야 할 일도 많았고.” 


“그래. 그땐 그랬다고 치자고.” 

“근데 중요한 건 그다음이었어.” 


너는 스스로 그 장소를 뛰쳐나갔지. 

가까웠다고 믿었던 그 소속 사람들에 

연락처를 전부 혼자서 

끊어버리기도 했고 말이야. 


몇 년 뒤 갑작스레  

너에게서 통화가 왔고 


나는 네가 복무요원 활동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 


“너한테 반드시 해야 하는 말이 있어.” 


그 말 이후 네가 전한 말들은 

너와 그동안 대화했던 대화중에서 

어쩌면 가장 감정적이었을지도 몰라. 


뭔가에 쫓기는 듯한 두려움과 공포, 

다만 그 안에서 감정이라 정리될 수 없는 

수많은 감각들이 화면을 뚫고 

내게 쏟아내고 있더라고. 


속으로 생각했지. 


‘다른 사람을 만났구나.’ 

‘아니. 종교라는 이름에 널 이용한 

사람들을 또 만난 거야..?’ 


너는 네게 계속해서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어. 

불안은 해소되지 않은 채로. 계속. 


“이후 한동안 너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었지. 맞아?” 


나는 그 대답을 듣고는 

긴 침묵을 이어가다 다시 말을 이었어. 


“미안해. 너를 믿지 못했어..” 


“통화를 하기 몇 달 전 너에게 

소개했던 사람은 그 소속이었지.” 

“나는 그들이 시키고 전했던 대로 

너를 그곳에 끌어당기려 했어.” 

“너는 내게 언제나 어떤 이야기든 

들어줄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해왔는데..!” 


밀려오는 죄악과 자책감인 걸까. 

나는 어느새 너에 어깨에 기대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기댄 너를 보곤 

한숨을 쉬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일, 내년이면 이제 2년 넘어가.” 

“네가 망각을 하지 못한다는 걸 

떠올렸어야 했는데.” 


“네가 강조하듯이 내게 늘 말해오던 건 

정해져 있었는데 말이지.” 


“사람들에게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내가 간직한 환각을 

전부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전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래서 의심을 멈출 수 없어.” 

“내가 대화를 나눈 사람들에 대부분은 

내 환각에 대해 듣더라도 그건 

그저 흥미로운 이야기 그 이상도 아니었어.” 


“내가 말을 해주면 

그다음은 보장되지 없었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은 자리를 떴으니까.” 


“가족은 물론이고 

내가 만났던 사람들까지 

내겐 전부 진심이었던 적 없다고 생각했어.” 


“사람과 관계에 대한 의심을 

난 내가 지닌 생명을 놓칠 때까지 

내려놓지 못할 것 같아.”

 

“만화에서 말하는 진정한 사랑을 

보여줄 사람이 내게 나타난다고 해도 말이지.”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사랑을, 관심을, 응원을 받았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았을까?” 


“네가 내 바로 앞에 있는데도 

이렇게 말하는 내가 참 싫네.” 


“미안해. 하지만 이게 나야.” 

“만들어지기만 했던 나이니까.” 


말투를 흉내 내며 

내가 이렇게 말하자 넌 아직 

붉은 얼굴로 그렇게까지는 아니라는 듯 

팔을 살짝 꼬집었지. 


"있지. 이후 넌 내게 그렇게 물어봤어." 


"내가 그렇게까지 하려고 했는데도 

왜 화를 내지 않냐고." 


"글쎄. 왜일까?" 

"난 평소에도 내 감정을 신경 쓰는 편은 

아니야. 다만..." 


"오히려 난 그곳을 전과 같은 방식으로 

뛰쳐나갔다는 게 오히려 대단해서 

그 생각만 했던 걸지도." 


 "반복된다는 거 힘든 일이잖아."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일을 

또 비슷한 경우로 경험한다는 거 말이야." 


나는 두 손을 너에 양 어깨에 대준 후 

일부로 힘을 실어 말했어. 


"넌 나에게 그동안 간직한 병과 

관계로 인해 겪었던 상처를 전부 말해줬어." 


"사람에 대한 생각을 포기하는 말을 할 때 

내가 거기에 포함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면 

그건 내 자만일 거야!" 


"네가 자신에 대해 싫어할 때마다 

난 계속 같은 표정으로 널 바라봤지." 


"하지만.. 그 아래 

내 마음에서는 얼마나 

많은 말을 하고 싶었는데!" 


"난 너처럼 감정을 표현해낼 수 없어!"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는데도 

그 부분이 변하지 않는다고!" 


"네가 너와 함께 있을 때 

내 속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지 

질문해 본 적은 있는 거야?" 


"물론... 넌 내가 말했던 

난 표현이 서투르다는 말을 기억했겠지." 

"그리고 각인한 거야. 네가 보는 나는  

분명 한계가 있을 거라고." 


"그래도.. 그래도..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걸로 

널 도우려고 했을 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고 해도!" 

 

"네가 나를 믿지 않는다면 

그 전부를 말하지 않았을 테지만..." 

"나도 너에게 진심이 되려고 노력했다고!" 



그 말을 끝내자 너는 

어깨를 대고 있던 손으로 날 밀쳐냈지. 


밀쳐낸 순간 

붉어졌던 얼굴이 서로 바뀐 채로. 


나는 누워서 

잠시 할 말을 생각하다 

곧장 들어오는 생각을 그만 말해버렸어. 


"그거... 너한테 들었던 말 중에 

가장 감정을 잘 표현한 말이었어." 


몸을 일으켜 너를 보니 

붉어진 얼굴을 진정시키려 

손을 이리저리 휘저었지. 


"정말... 본인 기억은 각인하면서 

나한테 했던 말들은 까먹기나 하고."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니 

웃음은 나오지만 왜인지 뿌듯해졌어. 


"너한테는 확실하게 말해둘게." 


"상담을 받은 후 지금도 

심리적인 후유증은 겪고 있지만 

단 하나 장점이라면." 


"과거의 기억에 더 미련을 가지지 못해." 

"마치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유도등 조각이라도 찾으려고 

시간을 쓰지 않는다는 거지." 


"다만 비슷한 기억이 또 반복되면 

그와 연결된 기억들이 내게 한 번에 밀려올 거야." 


 "내가 두려운 건 이제 그것뿐이야." 


"그리고 그때가 되면 

찾는 사람은 틀림없이 네가 될 거야." 


"이 말, 나 대신 기억해 줄 수 있지?" 


"어으. 정말." 


By Self(셀프) 




이후 거짓말처럼 너는 

또 같은 기억을 마주하고 말았어. 


종교라는 이름에 사람들이 아냐. 

실제 사람들에게서 넌 다시 이용당했지. 


결국 넌 네가 좋아했던 것들까지 

내려놓았고 그나마 지녔던 마음까지 

전부 지워버렸어. 


연락이 끊긴 건 아냐. 

만나지 못하는 것도 아니지. 


하지만 흑백만이 남은 채 

움직이는 너에 표정을 볼 때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기록하는 이 사진들이 

너에 마음에 닿기를 바래. 


모든 사진에 저작권은

셀프(Self) 저와

[re : sonority]에 있습니다.


사진에 대한

2차 창작, 복제, 수정을 금합니다.



"이기적이거나. 자신이 되거나." 반갑습니다. 현실의 흔적을 담아내는 셀프(Self)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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