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불면증은 꽤 역사가 깊었다. 멋모르던 신생아 시절에도 품에서 내려놓으면 잠에서 깨는 예민한 아기였고, 유치원 낮잠 시간에도 작은 소리에 깨어 선생님들을 난감하게 만드는 아이였다. 늘 부족한 수면시간은 성격에도 영향을 미쳐서, 결국 커서도 날카롭고 예민한 성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나에게 수면은 휴식보단 매일 밤 돌아오는 숙제에 가까웠다. 



그래서 중학생 때,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하던 서지호를 신기하게 쳐다보곤 했다.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에 미동도 하지 않고 자는 서지호를 깨운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물론 자발적으로 깨우진 않았지만. 자는 학생을 깨우라는 선생님의 말에 마지못해 서지호의 어깨를 잡고 흔들면, 서지호는 부스스 일어나 눈을 깜빡이다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앞쪽을 가리키는 나의 눈짓에 곧 정신을 차리고 옆에 놓인 안경을 쓰던 그 남자애를 로스쿨에서까지 보게 될 줄은 그때의 나도 몰랐지만 서지호도 몰랐겠지. 



성인이 되어서인지, 아니면 로스쿨의 살인적인 공부량 때문인지 서지호는 이제 수업 중간 쉬는 시간에 엎드려 잠을 청하진 않았다. 밤을 새워 스터디를 할 때나 한 번씩 쪽잠을 자곤 했는데, 안경을 벗고 책상에 엎드리기보다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여 잠을 청했다. 하지만 그 불편한 자세에도 깊게 자는 건 여전해서, 다시 스터디를 시작하기 위해 주변이 어수선해져도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고,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깨워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내가 주로 앉는 자리는 서지호의 옆자리가 아니었지만, 우연히 서지호가 옆에 앉게 된 날은 중학생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어깨를 흔들어 깨워야 했다. 

자는 자세가 바뀌어도 부스스 일어나 눈을 깜빡이고,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그 시선은 변함이 없었다. 특유의 그 까칠함이 사라지고, 나른하며, 어쩐지 시간이 멈춘 것 마냥 느껴지는 그 시선. 




이제서야 알게 되었지만, 나는 그 시선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마지못해 서지호를 깨우던 중학생 때부터. 나의 신경과민으로 인한 불면증은 절대 만들어 낼 수 없는 나른한 그 시선을 받게 되면, 어쩐지 날카로운 나의 마음 한쪽도 무뎌지는 기분이 들었다. 서지호의 멍한 시선 끝쪽에 내가 있는지도 모를 일인데, 나를 봄으로써 서서히 그의 눈에 초점이 돌아오는 그 일련의 과정은 내가 얻지 못하는 잠으로부터의 평화를 목격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어릴 적부터 쌓여온 그의 시선 때문에 정말 나의 마음이 무뎌졌을지도 몰랐다. 늦은 겨울밤 나를 데려다주겠다며 옆에서 걷던 서지호의 손을 잡은 것도, 보내기가 아쉬워 찬바람에 붉어진 그의 뺨과 귀를 감싸고 입술을 포갠 것도, 나조차도 어찌할 수 없었던 날카로움이 어느샌가 무뎌졌다는 반증이었다. 키스에 취해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그의 시선에서 확신했다. 그의 시선은 내가 평생 느낄 수 없었던 평화를 가져다주었으며, 나는 이 평화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처음 함께 보내던 밤, 내 몸 곳곳에 닿았던 그의 입술과 손길도,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던 절정도 잊을 순 없었지만 가쁜 숨이 안정된 이후 올곧게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유독 자꾸 떠올라서 더 욕심나게 만들었다. 그가 이렇게 바라보는 상대가 나뿐이길. 오로지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유일한 평화이길. 그의 머리칼과 뺨을 쓰다듬는 내 손길과, 그의 이마와 콧등에 입 맞추는 내 입술에 담긴 욕심을 그가 눈치채지 못하길 바랐다. 






나의 옆에서 완전히 잠에 빠져 고른 숨소리를 내는 서지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침대에 누워서도 엎드려서 자는 습관이 있었다. 이런 사소한 습관 말고도 그와 몇 번의 밤을 보내고 알게 된 사실이 몇 개 더 있었다. 서지호도 걱정으로 지새우는 밤이 있고, 악몽으로 거친 숨을 내쉬며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 있다는 것. 악몽을 꾼 밤이면 다시 잠자리에 들기가 무서워 뜬 눈으로 천장만 노려보고 있다고, 나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속삭이듯 내뱉던 음성이 귓가에서 간질거렸다. 그래도 네가 옆에 있을 땐 악몽을 꾸지 않는다며 손을 맞잡아오던 그 온기가 손끝에서 느껴지는 듯했다. 

나의 시선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잠버릇인지 그는 잠깐 뒤척거리더니, 몸을 돌려 옆으로 누웠다. 그의 오른손이 머리를 받쳤고, 왼손이 침대 위로 떨어졌다. 잠깐 망설이다, 침대 위로 떨어진 서지호의 손을 잡았다. 손에 무엇인가 잡히자 무의식적으로 꽉 쥐는 행동이 신생아의 반사행동 같기도 했다. 자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손을 감싸오는 온기에 결국 노트북을 덮어 옆 협탁에 두었다. 

천천히 몸을 뉘어서, 팔을 베고 서지호와 마주 보았다. 잠에서 깬 건 아닌지 다행히 서지호는 눈을 뜨지 않았다. 잠에 빠져든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나에게도 졸음이 밀려들어 왔다. 억지로 청하지 않는 잠이 반가워 그대로 눈을 감았다. 내 손에 그러쥔 이 온기는, 영원히 놓지 않을, 오롯이 나만이 느낄 수 있는 평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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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우 토크라는 주제를 갖다써놓고 대사 한줄 안나오는 연성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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