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세라핌 코첼라 1주 차 공연이 끝나고 이 트윗을 한 후,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같은 공연을 본 게 맞냐는 인용이 많이 달려서 놀랐다. 친구들에게는 네가 르세라핌을 그렇게나 좋아하는 줄 몰랐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게..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르세라핌을 좋아했던 걸까... 하이브에 잘 보이려고 쓴 거냐는 반응도 많았다. 단언컨대 나만큼 하이브에 잘 보이려 하지 않는 K팝 관련 필자는 없다. 무난했던 2주 차 공연이 끝난 지금. 다시 생각해도 나는 1주차 공연이 좋았다. 

건국 이래 최대의 가창력 논란. 온라인에 접속할 때마다 르세라핌 가창력 평가 단톡방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주로 돌아다닌 영상은 톤앤매너를 잡지 못한 첫 곡과 체력이 무너진 마지막 곡이었다. 일부는 전체를 대표하기에 이 부분에서 특히 노래를 못 한 것이 가창력 논란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몇몇 장면으로 평가를 마치기엔 장점이 너무 많은 공연이었다. K팝은 입체적인 장르다. 퍼포먼스, 스타일, 아트 각각 독자적인 매력과 맥락이 있다. 

르세라핌 코첼라 공연은 막대한 투자와 준비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태가 난다. 1주 차 공연의 경우, 화려한 K팝 콘서트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빡센 오프닝 메들리 수준의 공연이 40여 분 동안 지속됐다. 연출도 오프닝급이고, 퍼포먼스 강도도 오프닝급이었다. 한 번만 해도 숨이 턱 끝까지 차는 오프닝 메들리를 세 번 연달아 한 셈이다. 르세라핌은 단지 춤추며 노래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무대를 뛰어다니며, 멘트도 거의 없이 공연만 했다. 춤을 획기적으로 줄였다면 당연히 노래를 더 잘했을 거다. 그런데 춤을 빼면 르세라핌이 코첼라에서 뭘 보여줘야 했을까. K팝은 춤추는 음악이고, 르세라핌의 퍼포먼스 능력은 매우 뛰어나다. 

상식적으로 숨 고를 시간이 넉넉했다면 가창이 좀 더 안정적이었을 텐데, 1주 차에서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나는 르세라핌 측이 밀어붙이는 공연만의 에너지와 연출적 완결성을 선택했고, 이번 논란은 본질적으로 그 선택의 결과라고 본다. 나는 이 선택이 완전히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K팝이 가수들에게 너무 많은 것이 요구되며 공고화된 '성대 분업'의 역사에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르세라핌이 이 '분업'을 조금 더 정교하게 했다면 이 정도의 가창력 논란은 없었을 거라고 본다. 

K팝은 즐기는 음악이라기 보다는 '해내야 하는' 음악에 가깝다. 적자생존의 무자비한 생태계에서 살아남은 가수들이 살벌하게 갈고닦은 노래와 퍼포먼스를 오차 없이 촬영한 영상으로 국경을 넘어왔다. 그래서 K팝 공연의 기본 정서는 비장함이다. 이 비장함은 모니터 속, 그리고 정서의 공감대가 있는 국내와 아시아 공연에서는 유효하지만, 서구권 뮤직페스티벌 무대에서는 독이 되곤 한다. 언어처럼 다른 공기 속에서 '해내야 하는' 공연을 하며 호응을 끌어내고자 노력하는 가수들의 모습은 종종 안쓰럽고 어색해 보인다. 르세라핌은 1주 차 공연에서 미완성이지만 코첼라의 '공기'를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쉽지 않은 일이다. 비장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관객과 호흡하는 여유를 가진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같은 가수들이 K팝 탑티어로 분류되는 이유다. 

즐기는 공연을 만들기 위해 많은 장치가 작동했다. 밴드 편곡은 묵직하고 날렵한 드럼 사운드 중심이었고, 그 비트가 자아내는 고조감과 속도에 맞춰 공연이 진행됐다. 르세라핌 멤버들의 보컬은 평소보다 굵고 높았고, 체격이 다부진 댄서들과 함께 끊임없이 대열을 바꾸고, 걷고, 뛰고, 멈추며 퍼포먼스를 했다. 입체적인 공간 구성과 쉴 새 없는 전환을 계산한 전광판 그래픽도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너무 많이 준비했으면서도 촌스럽지 않았다. 이 현란함이 비장함을 가렸다. 하이브가 구현하려는 '(K)팝' 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가늠해 볼 수도 있었다. 그 생동감이 흥미롭고 새로웠고, 끝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1주 차 공연의 목적이 도전과 모험이었다면, 2주 차의 목적은 안정적인 라이브였다. 가창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 공연의 힘과 흐름의 축이었던 밴드 사운드가 얇아졌다. 공연에서 사운드가 바뀌었다는 건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의미다. 오프닝 멘트 차례를 넣고, 연주를 길게 끌어 숨 고를 타이밍을 적절히 만들었다. 호응을 유도하는 목소리를 자제하고, 호흡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이전보다 무대 동선을 신중하게 쓰며 퍼포먼스가 심플해졌다. 세트리스트는 같았지만 1주 차와 2주 차 공연이 완전히 달랐다. 라이브가 비교적 안정적인 2주 차 공연을 더 높게 평가하는 의견이 압도적 다수인 것 같지만, 그래도 내가 1주 차 공연이 더 좋다고 말하는 이유는 즐거웠기 때문이다. 비장한 공연은 많지만, 즐거운 공연은 드물다. 

작년 위버스콘서트에서 본 르세라핌의 무대에는 '콘서트'에 걸맞은 호흡과 에너지가 부족했다. 아직 공연할 줄 모르는, 컨셉이 멋지고 춤을 잘 추는 신인 여돌이라고만 느껴졌다. 그러나 코첼라 1주 차 공연에서 얼어붙지 않고 극한의 메들리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1년 전과는 격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것도 애드립은 없었을 호응 유도, 영어를 못하는 멤버들의 자연스러운 딕션, 정신이 나갈 정도로 지친 상황에서도 무의식적으로 전광판 그래픽의 정가운데를 찾아 서는 모습들..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해내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연습과 준비를 했을지 그려져 내내 뭉클했다. 

자신들이 얼마나 멋진 공연을 보여줄 수 있을지, 얼마나 많이 연습했는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고 기대하는, 두려움 없는 표정과 동작도 좋았다. 야외 뮤직페스티벌이 흥미로운 이유는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 '변수'는 음향사고가 아니라 짐작하지 못했던 에너지와 즐거움을 만나는 일이다. 르세라핌은 1주 차 공연에서 분명 좋은 변수를 보여줬다.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시도도 감동적이었다. 후반부에 체력이 바닥나며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렇기에 인간적이었다. 나는 K팝이 과정에도 박수를 보내는 음악이라고 믿는다. 가창력 문제는 그것대로 비판받되, 이 공연을 준비하며 이뤄낸 그들의 성장과 노력에 대해서도 이야기 되었으면 좋겠다. 

코첼라는 '미국의 로컬' 뮤직 페스티벌일 뿐 올림픽이 아니다. 르세라핌은 국가대표가 아니라 꿈 많은 데뷔 2년 차 아이돌이다. K팝의 파이가 커지고 북미 투어가 보편화되는 흐름과 연동되어, 올해 많은 K팝 가수들이 미국 야외 뮤직페스티벌 공연을 예정하고 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기에 이번처럼 라이브 논란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나, 르세라핌이 코첼라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도전과 시도가 그들에게 금기가 아니라, 교훈과 디딤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공연을 준비한 르세라핌이 그들의 모토대로 앞으로도 두려움 없이 노래하고 춤췄으면 좋겠다. 


(자칭) K-pop 팬 칼럼니스트/ 인생을 아이돌로 배운 사람/ 'Rolling Stone Korea' 객원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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