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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연관은 없는 노래



넥타이는 비효율적이다. 

단정한 모습을 보여 신뢰감을 주면서 격식을 차렸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라고 그 누가 그랬던가. 무더운 여름에는 숨통을 턱 막아 갑갑하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에는 이리저리 휘날리는 것이 단정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뒤에 '재질: 실크'라고 적힌 택을 보면 분명 고급 상품일 텐데 마치 죄수가 차는 칼 같기도 하고 대형견 산책 시킬 때 쓰는 목줄 같기도 한 것을, 목이 졸리고 안압이 높아져 건강에도 좋지 않은 이 물체를 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매일같이 차고 다니는 걸까. 아마 신사의 상징이던 페도라가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듯 넥타이 역시도 수십년 뒤에는 유물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정대만! 이제 슬슬 안 나와?"

"어? 으응, 잠깐만."


30분 째, 정대만은 넥타이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레슬링이었다면 목이 졸려 바로 탭을 했을 상황이었을 정도로 그 물체에게 처참히 지고 있는 중이었고.

끙끙거리는 소리를 들은 건지, 한참동안 나오지 않는 게 걱정이 된 건지, 아니면 단순히 일정이 밀리는 걸 못 참겠는 건지. 아마 맨 마지막일 확률이 높을 터였다. 어느 쪽이든 정대만에게는 상당히 창피할 일이었으나 이 녀석은 언제나처럼 상대방의 수치를 배려할 줄 모르는 녀석이었다. 벌컥 열린 문 사이로 거실에 차려 놓은 계란프라이 냄새가 화악 끼쳤다. 제목은 모르겠으나 익숙한 무슨 록스타의 노래도. 그리고 정대만과 거실 사이를 가르는 문턱에서, 그 녀석이 목을 한껏 쳐들고 정대만을 올려다보았다.

비웃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 녀석은 한참 동안이나 그의 목에 있는 기다란 천이 매듭 지어진 모습(이미 그것은 넥타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도 아니었다)을 보고 있었다. 정대만은 머쓱하게 웃으며 꼬인 매듭을 풀어헤치려고 했으나 어쩐지 점점 더 강하게 묶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게 진짜 다 맨 거야?"


몇 초간 그랬을까, 정적 속에 울리는 목소리는 높낮이도 크기도 분명 평소와 다름없었을 터다. 그럼에도 왜일까, 정대만은 그 녀석의 눈을 보며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땐 무섭다니까. 정대만이 눈을 피하자 그 녀석은 안경을 벗고 관자놀이를 짚었다. 하아, 한숨을 쉬는 모습에 정대만은 억울하기도 하고, 이 녀석 앞에서 자존심이 남아있었는지도 처음 알았지만, 자존심이 벅벅 긁히는 느낌이 들어 괜히 까칠하게 투덜대었다.


"아니, 이거 어렵다니까. 넌 넥타이 맬 일 없어서 이 불편함을 모를 걸."


그리고 아마 이 발언이 그 녀석의 자존심도 건드린 듯했다. 내뱉기 전에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 녀석이 안경을 고쳐 쓰며 씨익 웃자 정대만은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마음 속에서 무언가 웅웅 울렸다. 아마 경보기일 것이다.


"좋아, 넥타이 풀어 봐."


쳇, 티를 내지 않으려 했으나 정대만의 입술은 솔직했던 모양이다. 한껏 샐쭉해져서 자기주장을 하는 모양새를 가만 보던 그 녀석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니면 내가 풀까?"

"아뇨."


경보기가 내리는 명령을 잘 듣는 남자, 칼같이 대답한 정대만은 분주하게 손을 움직였다. 사실 정대만은 한참 전부터 누구보다도 이 흉물을 풀고 싶었다. 이런 매듭을 어떻게 묶었는지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며, 그렇게 몇 번의 시도 끝에 넥타이 천이 힘없이 스르륵 떨어졌다.


"자, 잘 봐. 이번 한 번만 매줄 테니까."


예이, 그렇게 건성 대답하면서도 정대만은 순순히 몸을 돌려 제 목과 넥타이 천을 그 녀석에게 내주었다. 그 녀석의 손이 와이셔츠 카라를 지나는 게 느껴졌다. 허리를 조금 굽히는 게 나을까, 아니면 매너 다리라도 해줘야 하나. 어정쩡하게 서있는 사이 넥타이 천이 목에 둘러졌다. 넥타이 길이를 이리저리 재던 그 녀석이 왜 그렇게 불편하게 서 있냐는 질문을 하자 그제야 구부정한 등을 눈치챈 정대만은 멋쩍은 소리를 내었다.

실크가 사락 하고 스치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 건 착각이었을까. 열중하는 녀석은 속눈썹이 제법 길었다. 안경 사이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넥타이를 매본 적도 없을 녀석이 손놀림 하나는 제법 능숙했다. 고리 사이로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손이 마치 음악 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것만 같을 정도로, 정대만에게는 낯설게 느껴졌다. 문득 이 녀석이라고 별 수 있겠냐며 잠깐 무시했던 게 미안해졌다. 그래, 이 녀석은 원체 그런 녀석이었지. 정말 누구 말마따나 무인도에 떨궈 놔도 문명을 이룩할 녀석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됐다. 그 애가 다 매어진 넥타이 매듭을 조여 올렸다.


"오."


스르륵, 분명 헐거웠던 넥타이가 검상돌기를 따라 목에 착 붙었다. 어떻게 한 거지. 마술 쇼를 보고 신기해하는 어린아이마냥 정대만은 거울을 보며 넥타이를 이리저리 매만져보았다. 제법 잘, 아니. 교과서에서 본 듯한 정갈하게 묶인 넥타이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이렇게 묶일 수 있었으면서 왜 내가 묶었을 땐 이상했던 거지. 그는 이제 도구 탓도 하지 못하게 된 본인의 처지가 퍽 불행해졌다. 


"대만아, 나는 농구선수도 아니고 농구감독도 아니고 네 전용 코디네이터도 아닌데 내가 매일매일 넥타이를 매 줘야 할까?" 

"아뇨."

"전혀 관계없는 나도 널 위해서 책 보고 연습했는데 우리 불굴의 3점 슈터 정대만 감독님께서는 감독이란 위치에 서 놓고 그 정도의 의지도 없는 걸까?"

"아닙니다."

"나 없을 때도 잘 챙겨입고 다녀야 할 거 아니야."


예에, 예에. 정대만은 투덜거리면서도 대답만큼은 빠릿빠릿하게 했다. 이 녀석한테 까불지 말아야지. 정대만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래도 자신이 그 녀석보다 잘 하는 게 최소한 하나는 명확해서 다행이라고 중얼거렸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정대만의 기는 단순히 죽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았을 테니까.


"이제 봤으니까 혼자 맬 수 있지?"


큰일 났다. 제대로 못 봐서 아직 잘 모르겠다고 하면 얘가 날 죽일 텐데. 정대만의 머릿 속에 내일 아침의 광경이 선하게 그려졌다. 똑같이 거울 앞에서 30분 째 넥타이를 붙잡고 끙끙대는 자신의 모습이. 방문을 똑똑 하고 두드리는 소리에 무심코 문을 열어 보면, 이 녀석이 웃는 얼굴로 나와 내가 엉망으로 매놓은 넥타이를 보곤 넥타이로 목을 졸라 죽일지도 모른다⋯ 으, 정대만은 순간 오한이 들어 두 팔을 문질렀다. 농담이 아니라, 이 녀석은 정말로 그럴 것 같았다. 


"그런데 넌 이런 거 되게 잘 하네."


천운으로, 정대만의 순발력은 비단 농구 코트 위에서만 좋은 게 아니었으니 참 다행인 일이었다. 어깨를 으쓱대는 그 녀석을 보며 화제를 돌리는 데 성공했다고 직감한 정대만은 온몸의 긴장이 풀리는 것만 같았다. 아직 출근도 안 했는데 이러면 곤란하지⋯. 한껏 우쭐해하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녀석에게 그 역시 어깨를 으쓱대는 것밖엔 별 수가 없었다.


"자주 매줘봤나 봐?"

"넥타이가 헐거운가⋯."

"아뇨, 아닙니다."

"얼른 나와. 5분 안에 밥 먹을 수 있지? 태워줄 테니까."


5분이 뭐야! 그렇게 대답하기도 전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녀석은 제 할 일을 하러 휘익 떠나버렸다. 언제나 그런 식이라니까. 뒤통수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정대만은 괜히 넥타이만 만지작거렸다. 그 녀석의 손이 닿았던 감각을 따라서, 그 손가락이 어떤 춤을 추었는지 기억해내려 애쓰면서.





야생의 그뭔씹 오타쿠입니다. 산하엽/Sanay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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