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거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글에서 등장하는 인물과 배경은 이름, 직업을 제외한 모두 픽션이며 이 점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풍덩-. 아이는 몸이 기우는 대로 바닷속으로 몸을 맡겼다. 아주 부드럽고 따스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바다는 아이의 생각과 다르게 뼈속을 헤집을 정도로 차가웠다. 바닷속은 아이를 따스하게 감싸 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아이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점점 발버둥 치던 힘이 빠지고 아이의 몸이 축 늘어지자 수면 위로 흰 팔이 튀어나와 아이를 잡아끌었다.

 

 

 

 

우울증

03. 발버둥

 

 

 

  창섭은 천천히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에 비치는 곳은 자신의 방이 아닌 낯선 곳이었다. 멍한 정신에 그저 느릿하게 눈만 끔벅거릴 뿐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창섭의 마지막 기억이 되살아나자 가장 먼저 든 것은 의문이었다. 어지럽게 걸려있는 링거들이 이리저리 꼬여 자신의 팔뚝에 꽂혀있었다. 모든 것이 이질적이게 느껴지자 창섭은 자신의 팔을 들어 바라보았다. 

  소매가 긴 병원복은 창섭이 팔을 들자 말려 올라갔고, 자신의 손 목 위로 붙여진 드레싱을 보자 욱신거리는 통증이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들었던 손을 힘없이 다시 내리고 창섭은 입술을 꾹 깨물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다시 눈을 안 떴으면 좋았을 것을. 

 

“형!!” 

 

  잠시 뒤에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소리에 창섭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그들이 있었다. 적어도 이렇게 깨어나서 제일 처음 보고 싶지는 않았던 얼굴들이었다. 

 

‘겁쟁이.’ 

‘그거 하나 제대로 못하는 너도 참…’ 

‘한심해.’ 

 

  그들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에 창섭은 그들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목소리로 들려오는 비난은 마치 그들의 속마음을 읽어주는 것 같았다. 창섭은 천천히 몸을 웅크리고 자신의 두 귀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그런 창섭을 비웃기라도 하듯 소리는 점점 커졌다.

 

“형! 괜차…” 

“아니야, 아니야!!” 

 

  잔뜩 갈라진 볼품없는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창섭에게 다가가려던 멤버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 누구도 움직일 수도 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터져 나오는 비명소리와 발버둥 치며 괴로워하는 창섭에게서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

 

 

 

  어두운 거실 안은 희미하게 비추는 티비의 불빛만이 전부였다. 그 가운데 창섭은 소파 위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티비 속에서는 멤버들이 웃는 모습이 가득이었다. 무대 위에서 팡파르가 터지고 상을 받는 그들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창섭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이번 앨범에 함께하지 못한 창섭이가 많이 생각이 나네요…” 

 

  티비 속에서 은광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창섭은 더 이어지는 말을 듣지 못하고 리모컨을 들어 티비를 꺼버렸다. 거실은 정적뿐이었다. 

 

‘이게 맞는 거지.’ 

‘네가 저곳에 있었으면 저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 

‘목소리도 안 나오는 김에 그냥 죽어버리는 게 어때?’ 

‘오히려 기회일 지도? 그냥 죽어버릴 기회?’ 

 

  또다시 들려오는 목소리에 창섭은 귀를 틀어막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날 이후로 점점 목소리는 선명해졌다. 목소리는 여러 가지의 목소리가 섞여서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점점 미쳐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미쳐버린 걸 지도 몰랐다. 

  얼마나 그곳에서 웅크리고 있었을까. 창섭의 핸드폰이 작은 진동소리를 내며 울렸다. 하지만 창섭은 그것을 받을 수 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받고 싶지 않았다. 한참 울리던 진동이 멈추자 창섭은 눈을 뜨고 핸드폰을 들었다. 

 

[창섭아!! 얼른 준비해라!! 우리 오늘 회식이다!! 데리러 갈게!!] 

[네 생각이 많이 나더라. 밥 먹게 준비해라.] 

[형, 얼른 준비해!!] 

 

  멤버들의 메시지였다. 창섭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신의 핸드폰을 집어던졌다. 힘껏 던진 탓인지 화분에 맞아 화분이 쓰러지며 깨지는 소리가 났다. 입술을 꾹 깨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톱을 깨물었다. 정신없이 거실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손톱을 물던 창섭이 자리에서 멈춰서 손을 내려 주먹을 꽉 쥐었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입술을 꾹 깨문 창섭이 성큼성큼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 어서 죽어버려.’ 

 

  그것이 마지막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이들의 목소리가 아닌, 자신의 목소리였다. 

 

  방 안으로 들어온 창섭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것을 쥐었다. 참 우스운 일이었다. 지금까지 창섭을 지독하게 괴롭히던 목소리들이 이제야 고요해졌다는 것이. 마치 목소리가 원하는 것이 이것이었다는 듯이. 방 한편에 놓인 거울을 힐끗 보던 창섭이 마치 도망치듯 방의 제일 구석에 쪼그려 앉았다. 드르륵, 손에 쥐어진 것이 꺼내질 때 나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방 안을 울렸다. 마치 지옥의 망자들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이런 것이었을까. 하지만 창섭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천천히 손목으로 다가가던 손이 멈췄다. 이상하게도 멤버들이, 그들의 자신을 향해 짓던 미소가 손을 멈추게 했지만 그것은 아주 찰나였다. 

 

‘내가 없다면 그들은 더욱 높이 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은 늦었다. 창섭에게는 더 이상 모든 것을 버텨낼 힘이 없었다. 들고 있던 손에 꾹 힘을 주어 자신의 살 안쪽을 파고들게 밀어 넣었다. 아득한 고통이 창섭을 덮쳐왔지만 창섭은 멈추지 않았다. 

  점점 손에 힘이 풀렸다. 들고 있던 것을 놓친 창섭이 그 자리에 풀썩 쓰러지듯 누웠다. 가물거리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팔 전체가 잘릴 듯 아려오고 정신은 점점 희미해져만 갔지만 마음만은 그 어떤 순간보다 고요했다. 꾹 다물려 있던 입이 달짝거렸다. 마지막으로 무언가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결국 창섭은 그 말을 기억해내지 못하고 희미한 의식의 저 편으로 몸을 맡겼다. 이제 모든 것이 끝이었다.

 

 

 

-

 

 

 

“창섭아.” 

 

  은광은 착잡한 목소리로 창섭의 손을 살며시 붙잡았다. 은광의 손안에 담긴 창섭의 손은 마치 해골처럼 비쩍 말라 뼈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하지만 창섭은 은광의 부름에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형, 우리 좀 봐줘라. 응?” 

 

  일훈의 부탁에도 창섭은 꿈쩍하지 않았다. 창섭이 눈을 뜬 지 한 달이 넘었다. 첫날의 발작 같은 발악 후, 창섭은 입을 닫았다. 그리고 스스로 모든 것을 거부하며 마치 다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 같았다. 

  이런 창섭의 상태에 멤버들은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갑작스러운 활동 중단에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토했지만 그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창섭은 큰 버팀목이었다. 힘이 드는 일이나 고민이 있을 때 항상 묵묵히 들어주는 창섭에게 그들은 큰 힘을 받았고, 알게 모르게 팀을 지탱하는 기둥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 기둥이 무너졌다. 

 

  성재는 시선을 내려 그대로 음식이 담겨있는 식판을 바라보았다. 창섭은 식사조차 거부했기 때문에 그의 몸은 하루가 지날수록 점점 말라가고 있었다. 언제고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가만히 지켜보던 민혁이 창섭에게 물었다. 옆에서 눈치 보던 프니엘이 조심스럽게 민혁의 팔을 잡아 말렸다. 하지만 민혁은 잡힌 팔을 힐끗 보고서는 다시 창섭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프니엘의 손을 살짝 뿌리치고 성큼 다가가 창섭의 팔을 붙잡았다. 앙상한 뼈마디만 잡히는 팔에 민혁이 잠시 멈칫하다 손에 쥔 힘을 풀어냈다. 

 

“제발… 창섭아… 이러지 마…”

 

  민혁의 작은 속삭임이 방 안을 울렸다. 그 속삭임에 멤버들 모두 고개를 떨궜다. 너무 슬퍼서. 그들은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고요한 적막 속에서 창섭이 감았던 눈을 떴다. 메마른 창섭의 시선이 천천히 멤버들을 훑어본 다음 차게 식은 간이 식탁 위에 하얀 미음을 바라보았다. 

창섭의 귀에 무언가가 기괴하게 비틀린 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인상을 찌푸린 창섭은 천천히 식탁을 당겨 자신의 몸 앞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손을 느리지만 정확히 수저를 들었다. 

 

  달그락, 조용한 병실을 울리는 식기가 부딪히는 작은 소리에 모두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시선에는 미음을 들어 천천히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는 창섭이 있었다. 그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창섭은 몇 수저를 채 뜨지 못하고 다시 내려둘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들어온 음식을 위가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미안.” 

 

  창섭의 작은 목소리가 병실을 울렸다. 무릎 위에 올려둔 손을 꼼지락 거리며 힘겹게 목소리를 내었다.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 뭐가?” 

 

  다시 창섭의 입이 열리기 전에 현식의 목소리가 작게 물었다. 창섭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더더욱 고개를 숙였다. 그것은 마치 죄인의 자세였다. 

 

“너희들 힘들게 해서… 미안해…” 

“그게 왜 잘못인데?” 

 

  감정을 힘겹게 누르는듯한 목소리. 창섭은 그 괴로운 목소리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지친 목소리가 죄책감이 되어 창섭을 아프게 타고 들었다. 

 

“전부 다. 모든 것이.” 

 

  이번에는 그 누구도 창섭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의 슬픈 음성이 너무나 가슴 아팠기 때문일까, 아니면 비쩍 마른 창섭의 모습이 유독 작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모두가 알아버렸다. 그는 아직도 벗어날 수 없는 지옥에 서 있다는 사실을.

 

 

 

-

 

 

 

 일주일 후, 창섭의 상태는 호전되어가고 있었다. 그 날의 사과 이후 창섭은 그들이 바라는 대로 고분고분 따랐다. 밥도 꾸준히 먹고 치료도 열심히 받았다. 마치 전처럼 돌아간 것 같았다. 

 

“내일 퇴원하래.” 

“답답했는데 잘됐네.” 

 

  은광의 소식에 창섭은 기쁜 듯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더 이상 예전처럼 생기 있는 웃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이 봐도 억지로 짓는 듯한 미소, 억지로 만들어낸 행복이었다. 창섭은 이미 지쳤고, 더 이상 숨길 힘도 남지 않았다. 그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그저 모든 것을 흘려 넘기기 시작했다. 

 

‘어차피 달라질 건 없어.’ 

‘아무리 노력해도 넌 이미 나락에 빠진 거야.’ 

 

  지금도 창섭의 귀에는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생각할 힘도 남지 않은 창섭은 마치 인형과 같았다. 모든 게 텅 비어버린, 감정도, 생각도 남지 않은 인형. 

 

“이제 어떻게 해?” 

 

  창섭의 퇴원 하루 전, 성재가 멤버들에게 물었다. 그동안은 왜 몰랐을까. 창섭이 점점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창섭이 깨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멤버 모두가 창섭의 팔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팔은 성한 곳이 없었다. 적어도 이 일이 아주 오래된 일이라는 사실과 그것을 알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멤버들의 가슴을 아릿하게 만들었다. 

 

“난 전혀 몰랐어. 형이 그렇게 힘들어했다는 걸.” 

 

  일훈이 애써 울음을 참으며 말을 꺼냈다. 저렇게 힘들 동안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왜 몰랐을까.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때 챙겨줬어야 했다. 하지만 그의 눈물 섞인 자책을 들은 다른 이들도 아무런 답을 할 수 없었다. 일훈처럼 그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이상함을 느꼈어도 알아서 잘할 수 있겠지 하며 그냥 넘어갔다. 

 

“이제부터라도 노력하면 되지.” 

 

  작은 침묵 끝에 은광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은광의 말에 그들은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후 그들이 모인 거실의 불은 아주 오랫동안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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